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45화 (145/242)

145. 동아리 (5)

잠시 후.

치유의 숲을 달리던 아이들이 가디언 하우스라고 적힌 나무 이정표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먼데?”

선두에서 아이들을 이끌던 태주가 샛길로 접어들며 말했다.

“그러게. 이거 뭐 귀찮아서 다닐 수나 있겠어?”

태주의 뒤를 열심히 쫓던 서윤이 배려심 따윈 없는 동방의 접근성에 혀를 내둘렀다.

“다른 동방하고 붙어 있는 게 싫은가 보지. 절대 공개되면 안 되는 피크닉만의 특별한 의식이 있을 수도 있고.”

연이은 스프린트에 발바닥이 뜨거워진 건우가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특별한 의식?”

“왜 그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나오잖아. 가면이나 복면을 쓴 사람들이 신입 회원들에게 비인간적인 입단식을 하는 뭐 그런 거.”

유리가 관심을 보이자 부연 설명까지 덧붙인 건우였다.

“네 말대로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그에 반해 창민은 서윤에게 그랬듯 건우의 추측에도 크게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 난 꽤 그럴듯한 추측이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네가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잖아.”

오늘따라 창민과의 의견이 유독 엇갈리는 서윤이었다.

“그럼 넌 선배들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도 피크닉에 가입할 거야?”

금서윤만큼이나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허창민이 속도를 줄여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물었다.

물론 회귀 전, 허창민이 피크닉의 멤버였다는 사실만 봐도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았음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그리고 실보단 득이 더 많잖아. 성공이 보장된 헌터 업계 최고의 황금 인맥이기도 하고.”

매직 아처로의 전직 도전을 강의 시간에 발표한 것처럼 서윤은 자신의 욕심을 숨기는 법이 없었다.

“정 찝찝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어차피 몸을 사리는 사람은 선후배와 동기를 위해 희생할 수 없으니까.”

서윤이 출발 직전에 보여줬던 선배의 쪽지를 창민의 코앞에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에이, 뭘 여기까지 와서 가라 마라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신경전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건우가 두 사람의 사이로 끼어들며 서윤의 손에 들린 쪽지를 낚아챘다.

“그나저나 대엽이는 아직이래? 이왕이면 같이 들어가는 게 그림상으로도 좋을 거 같은데.”

건우가 태주에게 쪽지를 흔들어 보이며 말을 돌렸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톡을 보냈는데, 아직 안 읽었어.”

태주의 메시지 옆엔 아직 1이 남아 있었다.

“아아, 이 자식 이거 완전 빠져가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달리던 건우가 태주의 대답에 일말의 기대마저 내려놨다.

“진짜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살짝 뒤처지기 시작한 유리가 진로를 방해하지 않게 옆으로 빠져주며 말했다.

“그러게. 최소한 늦어지는 이유를 알아야 선배들 앞에서 커버를 칠지 손절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데 말이야.”

아직은 쌩쌩한 서윤이 유리의 등을 손으로 가볍게 밀어주며 보조를 맞췄다.

“일단은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창민의 대답엔 정도만 걸을 것 같은 고지식한 성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하긴, 어설프게 말을 맞췄다 들키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으니까.”

건우의 말대로 선배들의 추궁이 집요할 경우 민대엽 개인의 실수가 전체의 잘못으로 확대될 여지가 있었다.

“어? 저기 있다!”

서윤이 사진 속에서 봤던 건물을 검지로 가리키며 외쳤다.

“우리 아직 안 늦었지?”

“어. 딱 1분 남았어.”

남은 시간을 체크하던 유리가 러닝메이트가 되어준 서윤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1분? 걸어왔으면 100퍼센트 늦었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강의 시간에 늦었을 때보다 더 조급한 마음이 든 서윤이었다.

“근데 밖에 아무도 안 나와 있네?”

가디언 하우스의 휑한 앞마당이 유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오히려 잘된 거 아니야? 들어가기 전에 숨 돌릴 시간도 있고.”

서윤이 달리기로 헝클어진 앞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면접은 누가 진행할까? 회장이 속한 4학년? 아님, 가장 오래 볼 2학년 직속 선배? 어! 설마 선배들 전원이 오는 건 아니겠지?”

“글쎄.”

피크닉의 면접 절차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태주가 건우의 물음에 말을 아꼈다.

[특별한 이에겐 특별한 대우를]

‘여기구나. 피크닉의 성지가…….’

문 위에 새겨진 슬로건을 발견한 태주가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생각보다 아담하네? 사진으로 봤을 땐 되게 큰 줄 알았는데.”

앞마당으로 들어선 건우가 가디언 하우스를 보며 약간의 실망감을 드러냈다.

“근데 왜 창문이 하나도 없을까?”

마지막으로 걸음을 멈춘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층으로 구성된 네모반듯한 외관과 가운데 위치한 출입문 하나.

물론 환기와 냉난방을 위한 보조 장치들은 존재했지만, 바람을 즐기기 위한 창문은 설계 단계에서 이미 제외되어 있었다.

“심지어 CCTV도 없어.”

태주가 건물의 외벽과 주변에 위치한 나무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곳이라던 엄 교수의 설명과는 사뭇 괴리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역시 나의 음모론이 맞아떨어지는 건가?”

“됐고. 누가 먼저 들어갈래?”

비밀 의식의 존재 가능성에 동조했던 서윤마저 건우의 눈치 없는 농담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태주가 먼저 들어가는 게 맞지 않을까?”

유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의 시선이 태주에게 모였다.

바로 그때.

‘잠깐.’

선배와의 약속에만 집중하고 있던 태주의 머릿속에 건우가 흔들었던 쪽지의 문구가 불현듯 스쳤다.

‘설마 테스트인가?’

대엽의 지각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추어봤을 때 테스트를 위한 별도의 지시가 내려졌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기다리자. 어쩌면 지각한 동기를 기다리다 다 같이 혼나는 게 선배들이 원하는 그림일 수도 있으니까.’

리스크가 큰 결단이었지만, 동기를 위한 희생에 초점을 맞추고 나니 7시라는 데드라인의 무게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대엽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어.”

“……?!”

가디언 하우스를 코앞에 둔 태주의 예상치 못한 선택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왜?”

마음의 준비를 마쳤던 서윤의 언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왜? 대엽이한테서 연락이 왔어?”

유리가 흥분한 서윤의 등에 손을 갖다 대며 침착하게 물었다.

“아니. 하지만 선후배와 동기를 위해 희생할 수 없는 자는 돌아가라는 말.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뭐야, 그럼 연락도 안 되는 애를 무작정 기다리자는 거야? 이러는 동안에 벌써 7시 1분이 됐는데?”

단체 기합을 받을까 초조해진 건우가 출입문 쪽을 힐끗거리며 태주의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

“대엽이의 태도가 평소랑 너무 달라. 마치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것처럼.”

“사실 나도 그 점이 좀 이상하긴 했어. 굳이 화살을 쏘면서까지 희생을 강조한 것도 그렇고.”

선배들의 의도를 헤아려보던 창민이 태주의 가정에 수긍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또 듣고 보니 그러네.”

기약 없는 기다림에 난색을 표하던 건우가 태주의 합리적인 의심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차피 제시간에 들어가긴 다 틀렸으니까 태주가 말한 대로 한번 기다려보는 게 어때?”

유리가 반대 의견을 낸 서윤과 건우를 번갈아 바라보며 설득했다.

“그래. 뭐 까짓것 기다려준다 내가.”

결국 뜻을 함께하기로 한 건우가 두 팔을 걷어붙이며 호기롭게 말했다.

“서윤아, 넌?”

“이미 과반수가 찬성했는데, 나 혼자 별 수 있겠어?”

유리의 호소력 짙은 눈빛을 애써 외면하던 서윤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승낙했다.

*

*

*

그로부터 약 1시간 뒤.

“근데 왜 안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지?”

팔짱을 낀 채 출입문을 노려보고 있던 서윤이 왠지 모를 불안감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그러게. 상식적으로 한 명도 안 왔으면, 어디쯤 왔냐고 연락을 해보거나 밖에 나와서 기다릴 법도 한데…….”

생각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다 보니 기다림을 종용했던 유리의 얼굴에도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선배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건 알까?”

“하아. 뭐, 대화 소릴 들었을 순 있지만, 주변에 CCTV가 없어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를걸?”

한동안 말이 없던 창민이 건우의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야, 근데 이런 말 하긴 좀 뭐 하지만, 솔직히 30분이 넘어가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지 않냐? 초반에 진짜 1분 단위로 쫄렸는데.”

무거운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우가 또 한 번 눈치 없이 입을 놀렸다.

“됐고. 대엽이는 아직도 답장이 없지?”

물론 이번에도 서윤의 싸늘한 반응에 대화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어. 여전히 1이야.”

태주가 서윤의 반복적인 질문에 반복적인 답변만을 들려줬다.

“그럼 태주의 예상대로 테스트가 맞았다는 거네. 동기를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종의 인내심 테스트.”

현재까지의 상황을 정리해보던 건우가 대엽의 무책임한 처신과 선배들의 납득할 수 없는 무관심을 테스트의 근거로 내세웠다.

“근데 1시간 정도 기다렸으면 슬슬 들어가 봐도 되지 않을까?”

할 만큼 했다고 여긴 서윤이 태주에게 새로운 타협점을 제시하던 바로 그때.

덜컥

“아이, 깜짝이야!”

의외로 겁이 많은 서윤이 갑자기 열린 출입문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물론 소리만 지르지 않았을 뿐 다른 멤버들 역시 긴장감이 고조된 건 마찬가지였지만.

“…….”

문틈으로 몸을 반쯤 드러낸 이름 모를 선배 한 명이 마당에 서 있던 아이들을 말없이 쳐다봤다.

“왜 다섯 명밖에 없어?”

이름 모를 선배가 가장 요란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던 서윤과 눈을 마주치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예? 아, 저, 그게. 한 명이 늦는다고 연락이 와서…….”

선배의 눈치를 살피던 서윤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일단 들어와.”

잠시 뜸을 들이던 선배가 아이들을 향해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서윤이 태주가 먼저 들어가기로 한 약속을 까맣게 잊은 채 제일 먼저 걸음을 재촉했다.

*

*

*

베일에 감춰져 있던 가디언 하우스의 내부는 생각보다 심플했다.

‘면접 볼 때랑 똑같네.’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는 3명의 선배와 맞은편에 놓인 6개의 의자를 보는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오성 길드와의 면접 장면이 떠올랐다.

“끝자리 하나만 비워두고 서 있어. 아직 앉지는 말고.”

문을 열어준 선배의 말투는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았다.

“네.”

대답을 마친 아이들이 눈치껏 적당한 자리 앞으로 이동했다.

“…….”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숨 막히는 적막감.

면접관으로 참석한 선배들의 불편한 시선이 아이들의 자세를 경직되게 만들 무렵.

“불 꺼.”

가운데 앉아 있던 선배가 문을 열어준 선배에게 뜻밖의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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