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44화 (144/242)

144. 동아리 (4)

“꺅!”

때아닌 기습에 놀란 유리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

태주가 궁수가 있을 법한 곳을 황급히 돌아봤지만, 화살의 주인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괜찮아?”

태주가 유리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어. 너는?”

유리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되물었다.

“나도 괜찮아.”

“선배들이 그런 걸까?”

유리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일단 확인해보면 알겠지.”

태주가 화살대에 감겨진 쪽지를 풀어내며 말했다.

“뭐라고 적혀 있어?”

유리가 태주의 곁에 바짝 붙으며 물었다.

“선배들이 한 게 맞네.”

먼저 내용을 확인한 태주가 유리에게 쪽지를 보여주었다.

[선후배와 동기를 위해 희생할 수 없는 자는 돌아가시오.]

“근데 내용을 떠나서 전달 방법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선배가 보낸 경고문을 읽은 유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라도 기선제압을 하고 싶었나 봐.”

태주가 나무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애들은 없겠지?”

유리가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강압적인 문구를 떠올리며 물었다.

“아마도.”

회귀 전의 멤버를 알고 있는 태주가 모른 척, 모호하게 대답하던 바로 그때.

“어? 내가 일등이 아니었네?”

혼란스러운 틈에 나타난 금서윤이 해맑은 목소리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어, 서윤아, 안녕.”

유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태주도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헌터의 역사 시간에 있었던 서윤의 전직 희망으로 인해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딱 예상했던 멤버네. 근데 웬 화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서윤이 태주의 손에 들린 화살을 보며 물었다.

“선배들이 화살에 쪽지를 묶어 날렸어.”

유리가 태주를 대신해 자초지종을 밝혔다.

“쪽지? 무슨 쪽지?”

“자.”

화살을 든 태주가 반대편 손에 쥐고 있던 쪽지를 서윤에게 내밀었다.

“뭐야, 선후배와 동기를 위해 희생할 수 없는 자는 돌아가시오? 태주야.”

쪽지에 적힌 내용을 소리 내어 읽던 서윤이 뜬금없이 태주의 이름을 불렀다.

“왜.”

“넌 나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

“뭐?”

“어? 바로 대답이 안 나오면 돌아가야 되는 거 아니야?”

서윤이 황당해하는 태주의 코앞에 검지를 들이밀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넌. 날 위해 희생할 수 있어?”

태주가 서윤의 검지를 옆으로 밀어내며 물었다.

“당연하지.”

서윤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말로는 무슨 말을 못 해.”

태주가 서윤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럼 위험에 한 번 처해 봐. 말뿐인지 아닌지는 그때 확인 시켜 줄 테니까.”

“글쎄. 그런 상황이 있을지 모르겠네.”

서윤의 자신만만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태주는 여전히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고맙네. 이렇게까지 날 생각해주고.”

실력의 격차가 이미 현저하게 벌어졌다는 것을 아는 태주가 반어법을 사용해 서윤의 부족한 현실 감각을 비꼬았다.

“고맙긴. 내 1년짜리 롤모델인데.”

100세 시대에 1년 정도 허비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서윤이 매직 아처로의 전직 의지를 또 한 번 드러냈다.

“…….”

서윤의 당차고 의욕적인 모습을 본 태주가 소리 없이 웃었다.

“역시 웃네.”

태주의 표정에 주목하던 서윤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덩달아 웃음 지었다.

“하긴, 긴장하길 바라는 게 욕심이긴 하지.”

한 발짝 다가간 서윤이 태주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근데 웃음 포인트가 어디였어? 1년? 아님, 롤모델?”

“웃음 포인트? 네 어깨.”

“뭐?”

태주의 알 수 없는 대답에 자신의 어깨부터 확인한 서윤이 집게 모양의 턱을 까딱거리고 있는 사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꺅!”

순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 서윤이 얼굴을 손으로 감싼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빨리 떼! 떼!”

“날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사슴벌레를 떼어내던 태주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사슴벌레랑 눈도 못 마주치면서?”

“벌레는 딱 질색이라고!”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서윤이 태주의 손에 들린 사슴벌레를 보며 몸서리를 쳤다.

“알았으니까 날 위해 희생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본인 몸이나 잘 챙겨.”

태주가 짧은 다리로 발버둥 치던 사슴벌레를 나무에 붙여주며 말했다.

“…….”

그러자 민망함에 말문이 막힌 서윤이 애꿎은 어깨만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며 태주를 쏘아봤다.

“이제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왜 아직도 안 오지? 7시까지 도착하려면 지금쯤 출발해야 될 거 같은데.”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보다 못한 유리가 시간을 체크하는 척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안 그래도 저기 한 명 오네.”

못마땅한 기색이 얼굴에 남아 있는 서윤이 유리의 뒤편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 어디?”

서윤의 말에 고개를 돌린 유리의 시야에 허창민이 들어왔다.

“다들 일찍 왔네.”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것이 번거로웠던 창민이 먼저 도착해 있던 동기들의 얼굴을 쓱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

“선배들이 뽑을 때 지각 횟수도 봤나 봐.”

유리가 네 번째 멤버인 창민을 가벼운 농담으로 맞이했다.

“그럼 이제 두 명만 오면 되는 건가?”

“어. 근데 어쌔신이랑 무투가는 누가 올지 모르겠어.”

사려 깊은 성격 탓에 창민의 당연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응해주는 유리였다.

“어쌔신은 대엽이가 오지 않을까? 뭐, 선발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친형이 피크닉의 현직 회장이면, 후보를 선정하는 선배들의 입장에서도 알게 모르게 눈치가 보일 거 아니야.”

서윤이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으로 대엽을 둘러싼 민감한 주제를 건드렸다.

“그래? 난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그럼 동아리 회장의 동생인 게 단점이라는 거야?”

서윤이 창민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되물었다.

“너도 방금 대엽이의 선정 이유를 실력이 아닌 혈연에서 찾았잖아. 그럼 피크닉에 들어올 자격이 충분해도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게 뻔한데, 어떻게 부담이 안 되겠어. 어떻게 보면, 신입 부원의 선발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피크닉의 명성과 투명함에 먹칠을 하는 건데.”

서윤의 논리를 반박하던 창민은 선배들이 오히려 대엽에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 주장했다.

“네 생각은 어때? 네가 보기에도 현직 회장의 친동생인 게 단점인 거 같아?”

동조자가 필요했던 서윤이 둘 다 일리가 있다고 말할 것 같은 유리의 평화적인 답변을 배제시킨 채 태주의 의견만 확인했다.

“글쎄. 내가 대엽이도 알고, 주엽 선배랑도 좀 아는데, 둘이 형제인 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야. 특히 피크닉의 선발 과정에 있어선 더더욱 그렇고.”

두 형제 모두와 수업을 듣고 있는 태주가 선택지에 없는 의견을 내놓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서윤이 태주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형은 동생을 꽂을 마음이 없고, 동생은 형한테 기댈 마음이 없거든.”

태주는 친형인 주엽에게 재능에 대한 열등감과 무력감을, 그것도 자신을 통해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는 대엽의 이례적인 부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뭐?”

물론 민 씨 형제의 우애에 대해 알 리 없는 서윤의 입장에선 태주의 분석이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그래도 못 믿겠으면,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좀 내성적이긴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할 녀석이니까.”

“아니. 믿어. 지인이 그렇다는데 안 믿을 이유도 없고.”

동조자를 찾으려다 본전도 못 찾은 서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저기 또 한 명 온다.”

아이들이 다섯 번째 멤버를 발견한 유리의 시선을 따라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무투가는 황건우였네.”

창민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건우를 보며 말했다.

“후우. 나 늦은 거 아니지? 사실 동아리 면접이 있는 걸 깜빡했다가 정문에서부터 뛰어왔거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아낸 건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뭐? 정문에서 여기까지? 미친 거 아니야? 차라리 버스를 타고 오지.”

서윤이 건우의 극단적인 판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학교 안에 버스가 돌아다닐 만큼 광대한 한국대 캠퍼스의 면적상 정문에서부터 치유의 숲까지의 거리는 고등학교 운동장에 익숙한 신입생들에게 풀코스 마라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멈추잖아. 어차피 여기까진 오지도 않고.”

“아무튼 뛰어오느라 수고했어. 아, 힘들면 힐 좀 넣어줄까?”

유리가 건우의 얼굴에 손부채를 해주며 물었다.

“어, 진짜? 그럼 나야 고맙지.”

건우가 유리를 향해 몸을 돌리며 합장을 했다.

“근데 오다가 누구 못 봤어? 예를 들면 민대엽이라든지.”

“민대엽? 못 봤는데 왜? 걔가 어쌔신 후보야?”

유리의 도움으로 체력을 회복하던 건우가 서윤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혹시나 해서.”

서윤이 건우와의 대화 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근데 우리 이제 출발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약속 시간까지 5분밖에 안 남았는데.”

힐을 마친 유리가 가디언 하우스로 이어진 숲의 입구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시간을 체크했다.

바로 그때.

띠링!

‘으음?’

한동안 조용했던 태주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태주야, 나 대엽인데, 조금 늦을 거 같으니까 애들이랑 먼저 가.]

‘하필 왜 이 타이밍에.’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엽의 예상치 못한 지각에 태주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끼리 일단 출발해야 될 거 같은데?”

태주가 대엽이 보낸 메시지의 내용을 아이들에게 알렸다.

“왜? 따로 연락이 왔어?”

유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대엽이가 조금 늦을 것 같대.”

“아아, 민대엽 이거 안 되겠네.”

지각생의 정체를 알게 된 건우가 대놓고 불만을 표출했다.

“잠깐. 이거 이러다 우리까지 욕먹는 거 아니야? 동기끼리 서로 안 챙겼다고?”

운동부 출신으로 선배들의 트집과 지적에 익숙했던 건우가 문득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누군지 몰랐는데 어떻게 챙겨.”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서윤이 건우의 우려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뭐, 미리 알아보지 않을 걸 지적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일단 우리라도 제시간에 도착해야 말발이 서지 않겠어?”

태주가 흥분한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그래. 대엽이가 아예 안 온다는 건 아니니까 일단 가면서 생각해보자.”

곁에 있던 유리가 태주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아무래도 뛰어가는 게 낫겠지?”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확인한 창민이 발목을 풀며 물었다.

“뭐야, 또 뛰어야 돼?”

이제 막 체력을 회복한 건우가 시작도 하기 전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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