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동아리 (2)
“내가 받은 사진은 방이 아니라 건물이었거든.”
피크닉으로부터 초대 메시지를 받은 태주가 함께 첨부되어 있던 사진을 세준에게 보여주었다.
“어? 진짜네?”
태주의 휴대폰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세준이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 “어딘데 그래.”
- “야, 나도 좀 보여줘.”
- “뭐야, 학교 안에 이런 건물도 있었어?”
하나둘 모여든 아이들이 머리를 맞댄 채 사진 속 건물을 정체를 확인했다.
“학교 안은 맞는데, 외진 곳에 동떨어져 있어서 그래.”
서울에서 가장 큰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 대학이다 보니 헌터관과 트레이닝 돔만 오가는 신입생들의 눈엔 인공 숲속에 위치한 동아리 건물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수업 전이라고 잡담하는 거냐?”
몰래 등장하는 법이 없는 엄 교수가 멀리서부터 인기척을 내며 당당하게 걸어왔다.
- “안녕하십니까!”
엄 교수를 향해 힘찬 인사를 올린 12명의 아이들이 2열 횡대로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그래. 너희들이 보낸 사진은 클래스 리더를 통해 잘 받았다.”
학생들의 신속한 정렬 덕분에 별도의 출석 체크 없이 한눈에 인원 파악한 엄 교수가 지난 시간에 내어준 과제에 대한 평가 소감을 전했다.
“특히,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미션을 통과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구나. 다들 수고했다.”
- “감사합니다!”
짝! 짝! 짝! 짝!
엄 교수의 칭찬을 받은 아이들이 고생한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물론 표적과의 거리가 짧고 실내라는 특성상 바람의 영향도 받지 않았지만, 최소 1000번을 집중해야 얻을 수 있는 높은 점수인 만큼 분명 깨달은 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엄 교수의 지적대로 실전에 비해 변수가 적은 환경이긴 했지만, 점수가 아닌 태도에 중점을 둔 과제인 만큼 과정 자체를 폄하하고 싶진 않았다.
“저, 교수님, 혹시 앞으로도 계속 인증샷을 보내야 되는 겁니까?”
인증샷을 취합하는 것이 내심 귀찮았던 희범이 엄 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지?”
질문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눈치챈 엄 교수가 모른 척 희범에게 되물었다.
“예? 아, 아니요. 전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엄 교수의 반문에 당황한 희범이 말까지 더듬어 가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새로운 습관이 몸에 배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누구는 3주, 누구는 66일, 누구는 100일. 물론 정답은 없다. 우리의 몸은 기계가 아니고, 우리의 두뇌는 인공지능이 아니니까.”
다른 아이들도 동일한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라 여긴 엄 교수가 희범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에겐 정신력과 의지라는, 현대 과학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이건 프로그래밍을 통해 심어줄 수 없는 생명체만의 특권이지.”
엄 교수가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훈련하는 습관이 하루 만에 밸 순 없지만, 정신력과 의지는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다시 말해,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상태에서도 활을 들게 만드는 강한 원동력이다.”
수업 때마다 성실함을 강조하는 엄 교수가 이번 시간에도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교훈을 통한 끊임없는 정진을 독려했다.
“앞으로도 계속 인증샷을 보내야 하냐고?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단, 지난 일주일간 얻은 깨달음이 휘발되기 전에 훈련을 이어가는 자는 그렇지 못한 녀석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운 궁사로 거듭나 있을 거다.”
엄 교수가 속칭, 지옥주에 질린 나머지 요령을 피우려 했던 희범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것. 특히, 생사를 함께하는 동료가 내 활 솜씨에 믿음을 보낸다는 건 꾸준함의 보상이자 궁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니까.”
함 교수와 달리 전우애와 팀워크를 중시하는 엄 교수는 개인을 위한 훈련이 곧 믿음의 시작이고, 나아가 동료들을 지키는 길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자,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나?”
“넵.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속내를 들킨 희범이 엄 교수의 일침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또 질문 있는 사람. 없으면…….”
“저, 교수님.”
본의 아니게 엄 교수의 말을 자른 세준이 오른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혹시 피크닉이라는 동아리를 아십니까?”
“피크닉? 아아, 그러고 보니 슬슬 신입 부원을 모집할 시기군.”
엄 교수가 세준의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했다.
“근데 그 질문을 왜 네가 하는지 모르겠구나.”
질문자는 세준이었지만, 피크닉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엄 교수의 시선은 이미 태주에게 향해 있었다.
“예? 왜요?”
엄 교수의 의도를 알 리 없는 세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피크닉은 각 클래스에서 단 한 명씩만 선발하거든.”
- “……?!”
엄 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주에게 집중됐다.
“예?! 딱 한 명만요?!”
한국대를 턱걸이로 입학한 세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절망적인 티오였다.
“그래. 가입 신청서만 내면 그만인 여느 동아리들과 달리, 입학 성적과 각성 수준은 물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결격 사유 등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기존 멤버들의 회의를 거쳐 후보가 선정되는 아주 까다로운 구조지.”
엄 교수가 취업을 방불케 하는 피크닉만의 유별난 입회 방식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 “뭐야, 우리 과에 저런 동아리가 있었어?”
- “그러게. 거의 이너서클 수준인데?”
피크닉의 실체를 알게 된 아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근데 궁수가 태주면, 다른 클래스는 누가 뽑혔을까?”
- “으음. 일단 전사는 허창민, 법사는 금서윤, 힐러는 한유리, 어쌔신은……. 글쎄. 어쌔신이랑 무투가는 좀 박빙인데?”
곧이어 선배들의 픽을 둘러싼 아이들의 추측이 이어졌는데, 당시엔 어쌔신에 민대엽, 무투가엔 권투 선수 출신인 A급 무투가 황건우가 뽑혔었다.
물론 궁수의 자리에 다른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태주만이 알고 있었지만.
‘…….’
두 번째 줄에 위치한 태주가 바로 앞에 있던 A급 궁수이자 여자 양궁 선출인 손은재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태주의 압도적인 실력에 가려져 크게 주목을 받진 못하고 있었지만, 각성 이전부터 쌓아온 탄탄한 기본기와 특유의 성실함으로 인해 회귀 전, 피크닉의 멤버로서 궁수 클래스를 대표했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머지는 아예 기회조차 없는 거네요.”
태주와 같은 동아리에 들고 싶었던 세준이 실망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선택받지 못한 학생들의 희망을 꺾는 잔인한 답변이었지만, 한편으론 아무나 지원할 수 없다는 높은 자격 요건이 내부적으로는 멤버들의 자부심을, 외부적으로는 피크닉의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되게 재수 없는 모임이네.”
엄 교수의 대답을 들은 희범이 못마땅한 얼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피크닉을 고깝게 여기는 걸 보니 살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군.”
희범의 삐딱한 태도가 시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 엄 교수가 자존심을 건드리는 표현으로 떠보듯이 물었다.
“예? 제가요?”
엄 교수의 단정적인 평가에 발끈한 희범이 격양된 목소리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박했다.
“아니에요. 저도 저희 집에선 나름 대접받고 살아요. 한국대에 들어온 이후부턴 더더욱 그렇고요.”
“하하하하.”
엄 교수가 태주에게 지기 싫어하는 희범의 억지스러운 답변에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크게 웃은 것 같아 미안하다만, 그들이 말하는 특별 대우는 가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A급 이상의 각성자, 그중에서도 한국대 헌터학과, 그중에서도 피크닉의 일원이 된다는 건 레드오션이 된 헌터 업계에서도 성공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희범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엄 교수가 자신이 언급한 특별 대우의 의미에 대해 친절히 일러줬다.
“너희들이 지금 28기인가?”
- “네.”
엄 교수의 물음에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피크닉 역시 헌터학과의 역사와 함께했으니 이번에 들어가는 멤버들 또한 28기가 될 거다. 다시 말해, 신입 부원의 위로 무려 27기수의 선배들이, 그것도 최정상급의 실력을 지닌 기수별 핵심 인재들이 업계와 사회 전반에, 그리고 세계에 두루 포진되어 있다는 뜻이지.”
지금은 송기철 협회장이나 최지문 총장 같은 1세대 헌터들의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머지않아 업계와 관련된 모든 권력과 이권들이 피크닉 출신들에게로 점차 이양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는 엄 교수였다.
“특별한 이에겐 특별한 대우를. 이것이 바로 피크닉의 동아리방인 가디언 하우스 앞에 붙어 있는 슬로건이기도 하지.”
다른 동아리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 동방.
졸업한 피크닉 출신 선배들의 모금으로 기증된 건물인 일명 가디언 하우스는 외부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 “특별한 이에겐 특별한 대우라……. 우와, 완전 그들만의 리그네.”
- “야, 가디언 하우스란 이름도 되게 있어 보이지 않냐? 수호자의 집, 뭐, 그런 거잖아.”
- “근데 그래 봤자 200명도 안 되지 않아?”
- “숫자상으로는 그렇지만, 그 한 명 한 명의 실력이나 사회적 위상이 일당백이잖아. 우리 기수에서 예상되는 애들만 봐도 그렇고.”
- “하긴, 나중에 후배들이 봤을 땐 태주가 선배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 든든하겠지.”
- “아아, 나도 피크닉에 들어가고 싶다.”
피크닉의 위엄을 실감한 아이들이 노골적인 부러움을 드러내며 또 한 번 술렁였다.
- “근데 동아리의 성격에 비해 이름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요?”
- “맞아. 무슨 여행 동아리도 아니고.”
피크닉의 이름을 둘러싼 의문에 모두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첫인상은 그렇지만, 사실 피크닉은 소풍의 피크닉(picnic)이 아니라 정점을 뜻하는 피크(peak)와 기술을 뜻하는 테크닉(technique)의 합성어다. 물론 피크닉에 속한 제자들에게 듣기론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소풍처럼 즐겁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 같지만.”
본인이 피크닉 출신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제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할 수밖에 없는 교수의 특성상 동아리와 관련된 정보들 역시 멤버들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엄 교수였다.
“저, 근데 교수님, 설마 취업이 잘 되고 사회적으로 끌어주는 게 메리트의 전부인가요? 솔직히 그런 사모임은 꼭 피크닉이 아니더라도 많이 있는 것 같아서요.”
선택받지 못한 축에 속한 희범이 여전히 피크닉의 존재 목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피크닉만의 메리트. 그래. 다른 모임에선 찾아볼 수 없는 피크닉만의 메리트가 있긴 하지.”
순간, 희범의 질문을 받은 엄 교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