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35화 (135/242)

135. 공성전 (5)

‘뭐지?’

호각에서 입을 뗀 태주가 마부를 향해 몸을 돌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미션의 성공 기준은 서른 마리였지만, 실제론 더 많은 수의 늑대 인간들이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히히힝!

고삐와 상관없이 달음박질을 멈춘 말과 등받이에 바짝 기댄 마부의 움츠러든 어깨.

뒷모습만 봐도 두려움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소란의 원인을 안 태주가 내뱉은 건 비명이 아닌 안도의 한숨이었다.

‘하아. 찾았다.’

활시위를 원위치 시킨 태주가 마차의 지붕에서 사뿐히 뛰어내렸다.

‘아 참.’

▶ 착용한 장비를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티마란의 잔소리가 예상됐던 태주가 허락도 없이 끼고 있던 오크의 팔찌를 얼른 숨겼다.

“꼬꼬로.”

어느새 다가온 꼬꼬로가 태주와 걸음을 나란히 하며 같은 곳을 바라봤다.

선발대인 티마란과의 조우.

‘여전하네.’

태주가 티마란 주위에 널려 있는 늑대 인간의 사체들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으아악!”

늑대 인간의 피로 얼룩진 거대한 도끼를 든 오크 전사를 발견한 마부가 후들거리는 손으로 고삐를 당기며 마차를 돌리려던 바로 그때.

“괜찮아요. 이제 다 놀랐으니까.”

티마란에게 다가가던 태주가 놀란 말의 등을 쓰다듬으며 마부에게 말했다.

“예? 그, 그럼 설마…….”

마부가 태주의 곁에 바짝 붙어 있는 꼬꼬로와 길 한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티마란을 혼란스러운 얼굴로 번갈아 보며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마차에 자리 있죠?”

“예?!”

마부가 합승을 암시하는 태주의 물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해치지 않아요. 아마도.”

“아, 아마도요?!”

마부에게 살 떨리는 농담을 건넨 태주가 티마란이 있는 곳으로 느긋하게 다가갔다.

“좋은 구경을 놓쳤네. 좀 더 빨리 올걸.”

형식적인 인사를 생략한 태주가 바닥에 널브러진 늑대 인간들의 사체를 피해 발걸음을 옮기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안전한 길을 놔두고 왜 여기로 왔지? 저거면, 어디로 가든 나보다 먼저 도착했을 텐데.”

역시 형식적인 인사를 생략한 티마란이 마차를 쳐다보며 물었다.

“혼자 보낸 게 마음에 걸려서 와 봤지. 뭐, 보아하니 괜한 걱정을 한 거 같지만.”

주위를 둘러보던 태주가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그렇고 다른 녀석들은 어디 있지?”

티마란이 필요한 인원이 모이는 대로 따라간다 했던 태주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다른 마차로 먼저 출발했어. 무려 네 명씩이나.”

“네 명? 혹시 그들도 나에 대해 알고 있나?”

인간과 오크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티마란이 마부의 불안한 눈빛을 느끼며 물었다.

“아니. 아직은 그냥 선발대 정도로만 알아. 이 녀석의 존재도 물론 비밀로 했고.”

태주가 늑대 인간이 죽었나 앞발로 콕콕 찔러보고 있는 꼬꼬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언제쯤 밝힐 생각이지?”

“베로닌으로 돌아가기 애매할 때쯤?”

몬스터의 합류 과정에서 겪게 될 조원들과의 마찰과 팀워크 지수의 하락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지만, 게르딘과 테테가 한 배를, 아니, 한 마차를 타게 했듯 조별 과제 중에 발생하는 잡음을 제거하는 것 또한 조장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티마란과 꼬꼬로를 소개하는 효과적인 시점에 있어서도 미리미리 고민을 해둔 태주였다.

“뭐?”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티마란의 반문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답한 태주가 자신의 모든 능력치를 5배로 증폭시켰다.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그보다 마차가 지나가야 되니까 일단 이것들부터 옆으로 치우자.”

활을 거둔 태주가 바닥에 있던 늑대 인간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아 길 밖으로 무심하게 던져 버렸다.

철퍼덕!

“……?!”

인간의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태주의 가공할 만한 힘에 놀란 티마란의 눈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물론 태주가 보여준 근원을 알 수 없는 괴력에 할 말을 잃은 건 비단 티마란만이 아니었지만.

“헉?!”

자신도 모르게 턱을 늘어뜨린 마부가 끔뻑이던 두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헛것을 본 건 아닌지 재차 확인했다.

“계속 보고만 있을 거야?”

한차례 시범을 보인 태주가 두 번째 늑대 인간을 동일한 방식으로 집어 던지며 티마란의 도움을 재촉하던 바로 그때.

▶ 자체 정화 기능이 발동되었습니다.

한정판 과잠이 늑대 인간을 치우는 과정에서 튄 핏방울을 말끔히 제거했다.

‘으음?’

본의 아니게 성능 실험을 마친 태주가 이번엔 손에 묻은 잔여 이물질을 과잠에 닦아 보았다.

▶ 자체 정화 기능이 발동되었습니다.

‘오오, 이거 나쁘지 않은데?’

원거리 딜러의 특성상 몬스터의 체액을 직접적으로 뒤집어쓸 일은 많지 않았지만, 오염된 지역에서의 레이드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기 때문에 전략적인 옵션으로 활용될 여지가 충분히 존재했다.

“흐흡!”

거대한 도끼를 등에 짊어진 티마란이 늑대 인간의 사체를 두 손으로 집어 든 뒤 길가로 옮겼다.

‘설마.’

행여나 힘든 티가 날까 기합 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티마란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주의 손목을 슬쩍 곁눈질했다.

‘없네.’

자신이 맡긴 팔찌가 근력의 증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아는 티마란의 입장에선 힘의 원천을 장비의 버프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어디서 저런 괴력이 나오는 거지?’

물론 티마란의 바람과 달리 폭주 스킬의 버프를 받지 않은 태주의 기초 근력 자체가 일일 과제의 꾸준한 보상으로 인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되어 있었지만.

“이 정도면 얼추 된 거 같은데?”

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순식간에 확보한 태주가 꼬꼬로를 향해 오른쪽 손바닥을 뻗었다.

▶ 펫을 회수하시겠습니까? (Y/N)

“수고했어 꼬꼬로.”

“꼬꼬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은 태주가 Y로 시선을 옮기자 열심히 확인 사살을 하고 있던 꼬꼬로의 몸이 황금빛 표식 안으로 연기처럼 빨려 들어갔다.

▶ 회수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만 가자.”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갈 수 있겠군.”

태주가 마차를 향해 발걸음을 돌리자 이르면 오늘밤, 늦어도 내일 새벽까진 비테론에 당도할 것이라 했던 티마란이 복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잠시 후.

비테론 성채 인근에 위치한 외진 숲속.

‘생각보다 일찍 왔네.’

마부의 옆자리에 앉은 태주가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을 향해 말없이 손을 들어 보였다.

“…….”

말발굽 소리에 고개를 돌린 동료들 역시 늦지 않게 도착한 태주와 조용히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워워.”

마부가 말을 멈춰 세우자 마차에서 내린 태주가 티마란을 소개하기에 앞서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별일 없으셨어요?”

조원들의 낯빛을 빠르게 스캔한 태주가 보르가넨에게 물었다.

“별일까지는 아니지만, 테테도 자네처럼 마부의 옆자리에 타고 왔다네.”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테테를 힐끗 쳐다본 보르가넨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선발대를 데리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고개를 쭉 뺀 보르가넨이 태주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마차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차 안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께 따로 드릴 말씀도 있고.”

“따로 드릴 말씀이란 것이 혹시 새로운 동료의 정체에 대한 것입니까?”

슬그머니 다가온 피렐레가 테테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이듯이 물었다.

“네.”

“어? 그럼 이번에도 설마 도적 출신의 암살자처럼 남다른 이력을 지닌 인물입니까?”

테테의 합류가 그리 달갑진 않았던 피렐레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네.”

“예?! 지금 네라고 하신 겁니까?!”

태주의 한결같은 대답에 화들짝 놀란 피렐레가 의미 없는 확인을 되풀이했다.

“마차는 멀쩡한 거야?”

태주가 오기 전까진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던 테테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여기까지 잘만 굴러온 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 상대방의 말투에 따라 대화의 태도부터 달라지는 태주였다.

“종종 늑대 인간이 출몰한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마주치진 않았나 보군요.”

떠날 때와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낀 게르딘이 태주의 멀쩡한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그래 보여요? 이래 봬도 서른 마리나 잡고 왔는데.”

게르딘의 빗나간 추측을 칭찬으로 받아들인 태주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뭐?! 서, 서른 마리?!”

늑대 인간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보르가넨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네. 저처럼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저 친구가 잡은 것도 제가 본 것만 여섯 마리예요.”

태주가 등 뒤에 있는 마차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그런 실력자를 왜 마차 안에 숨겨두고 있지?”

자신의 합류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에 합리적인 의심을 품은 테테가 선발대의 정체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마차로 다가갔다.

바로 그때.

“뭐야 이거!”

문을 열기 전, 유리창에 코끝을 댄 채 마차 안을 들여다본 테테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티마란의 눈빛에 놀라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왜 내 마차 안에 오크가 타고 있어!”

테테가 태주를 돌아보며 해명을 요구했다.

“예?! 오크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피렐레마저 테테의 충격적인 폭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 왜 얘기 안 했어!”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호들갑스럽게 놀랐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테테가 보고를 게을리한 마부의 직무 유기를 탓하며 언성을 높였다.

물론 마부의 침묵을 지시한 것이나 테테의 접근을 막지 않은 것 모두 태주의 의지가 반영된 의도적인 연출이었지만.

“그만 나와.”

덜컥!

“……?!”

태주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티마란이 마차의 문을 열고 나오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들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말도 안 돼.”

자신도 모르게 칼자루로 손이 간 게르딘이 티마란의 허벅지 옆으로 드러난 거대한 도끼날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벅저벅.

“너와의 첫 만남과는 달리 하나같이 경계하는 눈빛들뿐이군.”

태주의 곁으로 다가온 티마란이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쪽은 티마란. 보르가넨 씨와 피렐레 사제님처럼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합류한 전사 중의 전사입니다. 그리고 이 녀석은 제 충직한 조력자, 아니, 조력 펫인 꼬꼬로고요.”

▶ 펫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가 오크인 티마란에 이어 멧돼지 몬스터인 꼬꼬로를 공개적으로 소개했다.

▶ 소환이 완료되었습니다.

“헉?!”

꼬꼬로의 독특한 등장 과정을 목격하는 순간, 태주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물론 이들의 실력과 여러분의 안전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결국 메인 과제의 무대인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까지 도달하게 된 태주가 한자리에 모인 동료들을 흐뭇하게 둘러보며 공성전의 시작을 알렸다.

“자, 그럼 이제 벨지오스를 만나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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