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33화 (133/242)

133. 공성전 (3)

▶ [알림] 팀워크 지수가 변동되었습니다. (70 → 85)

설득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주듯 불안 단계까지 떨어졌던 팀워크 지수가 회복의 수준을 넘어 양호 단계까지 급상승했다.

▶ [알림] 팀워크 지수가 『불안』에서 『양호』 단계로 상승하였습니다.

게르딘의 심경 변화로 인한 갈등의 해소가 조원들의 전체적인 사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원래 적의 적은 동지야.”

태주와의 약속대로 은신을 푼 테테가 눈 주위만 드러낸 반쪽짜리 실물을 노출하며 게르딘에게 말했다.

“……?!”

순간, 테테를 마주한 조원들의 시선이 복면에서 그의 손에 들린 살벌한 단검으로 옮겨졌다.

“그러니까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공동의 적인 벨지오스를 잡을 때까지만 참아. 그리고 나면 있으라고 해도 안 있을 거니까.”

자신의 탈퇴 시점을 명확하게 밝힌 테테가 마차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던 바로 그때.

▶ [독립 과제]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생소한 과제명을 지닌 메시지 창이 연이어 나타났다.

‘독립 과제는 또 뭐지?’

▶ [독립 과제] 늑대 인간 섬멸 (0/30)

‘비테론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늑대 인간을 잡으라는 거구나.’

조원을 모으는 과정에서 이미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라 사냥감의 정체에 대해선 크게 놀랍지 않았다.

‘서른 마리라……. 뭐, 거미들에 비하면 몸풀기 수준이네.’

분명 적지 않은 숫자였지만, 거미 몬스터들의 물량 공세를 한 번 겪기도 했고, 원거리 딜러로서 늑대 인간들의 접근 자체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태주가 느끼는 심적인 부담감도 그리 중하지 않았다.

▶ [독립 과제]의 달성으로 획득한 점수는 [조별 과제]의 점수 산정 시 자동으로 반영됩니다.

‘으음. 한마디로 독립 과제의 수행 여부는 자유인데, 수락을 해서 성공만 하면 장학생 레벨을 올릴 때 추가 점수로 들어간다는 뜻이구나.’

과제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태주가 별다른 고민 없이 Y를 선택했다.

‘뭐, 가는 길이니까. 어차피 레벨 20도 찍어야 되고.’

티마란이 팔찌를 주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이템별 최저 장학생 레벨 정도는 맞춰둘 필요성이 있었다.

“일단 네 분이 먼저 비테론으로 가세요. 전 마차를 타고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까.”

독립 과제를 수락한 태주가 원활한 개별 행동을 위해 조원들의 양해를 구했다.

“뭐야, 그럼 우리더러 지금 마차 하나에 같이 타라는 거야?”

게르딘과의 합석이 편치 않았던 테테가 태주를 돌아보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번엔 또 어딜 가려고 그러십니까?”

태주가 제2의 테테를 데려오려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됐던 피렐레가 근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막연히 걸어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차를 타고 가면, 선발대보다 먼저 도착할 것 같아서요.”

독립 과제의 존재를 숨긴 태주가 내세운 표면적인 명분은 선발대로서의 역할이 모호해진 동료를 조기에 합류시키는 것이었다.

“어? 그럼 가는 길에 태우고 가면 되지 않나?”

보르가넨이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했지만, 오크가 개척한 길로 가겠다던 티마란의 이동 경로엔 늑대 인간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니요. 선발대의 특성상 늑대 인간이 출몰하는 지름길을 택했기 때문에 다 같이 이동하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물론 그 위험이 티마란을 픽업하는 것보다 중요한 추가 미션의 정체였지만.

“근데 마차를 나누는 이유가 적의 기습 때문이라면, 오히려 다 같이 움직이는 게 위험을 부담하는 게 아니라 분산시키는 길 아닐까요?”

피렐레가 운명 공동체적 관점에서 다른 조원들의 공감을 구했다.

“아니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어차피 격파가 아닌 돌파를 택할 생각이라 마차 한 대로 움직이는 편이 기동성면에서 더 유리할 겁니다.”

실제론 돌파가 아닌 격파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동행한 조원들이 활약할 경우 30마리라는 승리 요건을 채 충족시키기도 전에 상대가 섬멸될 수 있었기 때문에 태주의 입장에선 최대한 솔플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동료를 소개하기엔 상황이 급박할 것 같기도 하고요.”

더구나 좋지 못한 타이밍에 티마란과 조우할 경우 오크라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단정, 피아식별이 안 된 조원들이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오인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었다.

“그래. 본게임은 따로 있는데, 다 같이 힘 뺄 거 뭐 있어.”

역시나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테테는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로 태주의 선택을 존중했다.

‘이럴 땐 또 도움이 되네.’

자칫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는 냉정한 태도였지만, 지금으로선 전우애가 느껴지는 피렐레의 협동심을 강조한 대안보다 위험 부담을 꺼려하는 테테의 이기적인 마음이 더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보다 내 마차나 부수지 말고, 멀쩡하게 가져와. 넌 힐로 고치면 되지만, 마차는 당장 고칠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도 돌아올 순 있다고 생각하는 거네.”

태주가 마차 가득 보물을 싣고 갈 생각뿐인 테테의 노골적인 우선순위에 헛웃음을 지었다.

“비테론 근처도 못 가서 죽을 실력이면, 진짜 나가 죽어야지.”

“그래. 절대 안 죽을 테니까 너나 비테론 근처도 못 가서 도망치지 마.”

합류 당시 테테는 자신에게 하찮은 동료애 따윈 기대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실패할 기미가 보이는 순간 바로 이탈할 거라는 무책임한 모습을 예고한 적이 있었다.

“도망? 도망이 어때서. 애초에 책임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한 건 너잖아. 기억 안 나?”

테테가 태주의 당부에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당연히 기억하지. 근데.”

테테의 돌발 행동을 방지할 심리적 족쇄 하나쯤은 준비해두고 있던 태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응수했다.

“베로닌 최고의 암살자인 줄 알았던 테테가 동료들을 버려둔 채 혼자 도망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뭐?”

태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면 너머로 보이던 테테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모르긴 몰라도 비겁한 겁쟁이라는 소문이 도는 순간,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수많은 원수들이 훨씬 더 과감한 방식으로 네 목숨을 위협하기 시작할걸?”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벨지오스를 제거했다는 소문을 통해 신변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의뢰 비용의 상승까지 노리고 있던 테테의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정이었다.

“네 입으로 분명 협박이 아닌 설득만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웃음기가 걷힌 눈빛으로 매섭게 쏘아보던 테테가 태주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물었다.

“네 말대로 협박은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잖아. 거절당할 일도 거의 없고.”

테테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태주가 태연한 얼굴로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근데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은데?”

“아, 이거? 비둘기 조련사한테 들었어.”

테테가 먼저 태주의 태세 전환을 비꼬자 이내 전서구로 의뢰를 받는 테테의 독특한 일 처리 방식을 풍자하며 맞불을 놓는 태주였다.

“아아, 그 비둘기 조련사.”

베로닌 최고의 암살자인 자신을 한낱 비둘기 조련사에 비유한 태주의 겁 없는 농담에 흔쾌히 맞장구를 쳐준 테테가 한 가지 흥미로운 가정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소문이 과연 베로닌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맞아. 여기 모인 사람들, 심지어 저기 있는 마부들까지 싹 다 죽이고 나면 소문이 퍼지려야 퍼질 수 없겠지.”

테테의 속셈을 어렵지 않게 읽어낸 태주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계산이 빠르네.”

“빠르지.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다 손을 써놨으니까.”

“뭐? 손을 써?”

잠시 펴지는 듯싶던 테테의 미간에 다시 깊은 주름이 잡혔다.

“내가 주교님께 네 존재를 말씀드린 건 알고 있지?”

“……?!”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 테테의 두 눈이 태주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번쩍 뜨였다.

“아, 혹시 안 믿을까 봐 아예 증거도 가져왔어.”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편지 한 장을 테테의 코앞에 당당히 들이밀었다.

“뭐야, 이거. 베로닌을 떠난 지 3일 안에 게르딘과 피렐레 중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순교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테테에게 물어 극형에 처하도록 하겠다? 아니, 누구 맘대로!”

편지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던 테테가 태주의 손에 들린 편지를 낚아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건 주교님의 도장이 확실하군.”

바닥에 떨어진 편지 조각을 집어 든 게르딘이 베로닌 교회의 인장을 단번에 알아봤다.

“그렇게 찢어 봤자 소용없어 암살자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신분을 위장한 채 다른 성채로 도망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건 마찬가지고.”

교회의 경우 비테론 소속인 피렐레가 베로닌에 머무르고 있듯 성채만으로는 구분 지을 수 없는 종교적인 결속력과 연락망이 있었기 때문에 평생을 자연인으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이런 씨……. 감히 내 뒤통수를 치고도 무사할 것 같아!”

태주의 치밀함에 발끈한 테테가 언성을 높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말했잖아. 3일 안에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넌 그냥 처음에 합류했던 목적 그대로 벨지오스만 처단한 다음에 보물을 챙겨서 돌아가면 돼. 저기 있는 말들이 달리지 못할 만큼 아주 가득.”

물론 테테의 바람과 달리 태주의 눈빛에서 그 어떤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어때. 어렵지 않지?”

“뭐? 어렵지 않아? 와아, 이제 보니 나보다 협박에 능하구나 너.”

빼앗기는 건 딱 질색인, 더구나 그 대상이 생명일 땐 더더욱 그러하다 했던 테테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제안이었다.

“알았으면, 순순히 협조해. 괜히 딴생각하다 남은 인생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테테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통제에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다.

“으아악!”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분풀이 대상을 찾고 있던 테테가 마차를 향해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며 단검을 던졌다.

탁!

단검이 마차의 문에 박히자 때아닌 충격에 흠칫한, 어쩌면 테테의 괴성에 질겁한 말이 앞발을 허공에 구르며 요란한 울음소리를 냈다.

이히히힝!

“도적이라 그런가? 단검을 던지는 동작도 절도 있네.”

주인 있는 말인 게르딘에 이어 야생마에 속하는 테테마저 길들인 태주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농담까지 던졌다.

“하아. 이 모욕은 조만간 갚아주지.”

한숨을 내쉬어도 쉬이 진정되지 않는 분함을 가까스로 억누른 테테가 마차에 꽂힌 단검을 뽑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마음대로 해. 근데.”

테테의 경고를 한쪽 귀로 흘린 태주가 가소롭다는 말투로 물었다.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진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싹 다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

마차에 오르려던 테테가 질문의 의도를 깨달은 바로 그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표정이 보일 만큼 가깝게 다가간 태주가 누가 암살자인지 알 수 없는 섬뜩한 살기를 발산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내 선에서 해결이 안 돼서 주교님이 나서는 게 아니야.”

“……?!”

세 치 혀에서 비롯된 몇 마디 경고가 마차에 꽂힌 단검보다 더욱 깊게, 그리고 단단히 테테의 뇌리에 박혔다.

“그럼 이따 보자.”

테테의 말문을 막은 태주가 언제 그랬냐는 듯 친근한 인사와 함께 두 번째 마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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