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25화 (125/242)

125. 도전자 (2)

[학과 사무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이종도 교수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던전 실습1의 강의 시작 시간이 30분 늦춰졌습니다. 단, 끝나는 시각은 동일하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아아, 피방에서 한 판 더 하다 올걸.”

- “그러게. 괜히 일찍 왔네.”

- “하여간 휴강 공지 같은 건 꼭 학교를 나와야 연락이 와요.”

이종도 교수의 때 아닌 지각 소식에 학생들의 불평이 이어졌다.

‘어? 이종도 교수님께서 웬일이시지?’

함 교수와 다르게, 평소, 예고 없는 지각이 거의 없었던 이 교수라 학과 사무실에서 언급한 개인적인 사정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30분 동안 뭐 하고 있지?’

이 교수의 배려로 5분 늦게 도착했던 지난 시간과 달리, 바로 수업이 시작되지 않아 대화 상대가 없는 태주의 입장에선 상당히 어색한 휴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민주엽도 말을 안 거네.’

세종과 성규의 견제에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던 주엽은 태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론 주엽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배들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태주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한 번씩 힐끗거리고 있었지만.

‘저것들 아직도 붙어 있네.’

주위를 둘러보던 태주가 성규와 세종의 대화 장면을 목격했다.

‘벌써 화해한 건가?’

세종이 성규의 화를 풀어 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성규의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예 반삭을 하고 왔네. 한 12미리 정도 되려나?’

태주로 인해 애지중지하던 앞머리를 잃은 성규는 본인의 거침없는 성격대로 머리 전체를 짧게 밀고 나타났다.

‘근데 두상이 참 안 예쁘네.’

태주가 본의 아니게 삭발 투혼을 한 성규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로 그때.

- “저기.”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선배 한 명이 태주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

- “아, 뭐, 별건 아닌데, 혹시 국대라이프에 올라온 성규 얘기, 그거 네가 쓴 거야?”

폭로글의 작성자로 의심을 받을 것이란 태주의 예상대로 모두의 조롱거리가 된 성규의 멘탈을 걱정하는 일부 동기들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 “어? 나도 누가 썼는지 궁금했는데.”

- “근데 본인이 썼어도 썼다고 하겠어? 어차피 익명 게시글이라 끝까지 잡아떼면 그만인데? 아, 물론 네가 썼다고 확신하는 건 아니야.”

물론 이러한 순간을 예견하고 있던 태주에겐 그리 당혹스러운 상황도 아니었지만.

“아니요. 그런 적 없습니다. 아, 궁금하시면 접속 기록이라도 보여드릴까요?”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차분하게 해명한 태주가 휴대폰을 꺼내는 액션을 취했다.

- “아, 아니야. 그냥 혹시나 해서 한 번 물어봤어. 의심해서 미안.”

제일 처음 말을 걸었던 선배가 태주의 당당한 대처에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 “그럼 누구지? 솔직히 박성규 본인 빼고는 다 가능성이 있잖아.”

- “하긴, 박성규 성격에 안티 한 명 없겠어?”

- “태주야, 네가 생각했을 땐 누구 같아?”

선배들의 의견은 여전히 분분했다.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의외로 안티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태주의 심증은 장세종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또한 증거 없는 추측에 불과했다.

- “태주야, 근데 네가 그렇게 힘이 세다며?”

국대라이프에 대한 떡밥이 식자 이번엔 태주의 소문에 대한 질문들이 줄을 이었다.

- “뭐야, 힘도 세?”

- “새터 때 참석했던 2학년 후배들이 그러던데? 학과장님이 만든 결계도 한 방에 깼다고.”

- “그 빡센 걸 한 방에? 우리 땐 1등이 열여섯인가 열일곱 방 아니었어?”

- “나는 1학년 중에 고등학교 후배가 있어서 알게 됐는데, 수업 시간에 1톤이 넘는 상자도 혼자 가뿐하게 들고, 엄승준 교수님이랑은 무슨 버티기 시합을 했는데, 심지어 태주가 이겼대.”

- “태주야, 우리가 들은 게 다 진짜야?”

소문의 진상이 궁금했던 선배들의 모습은 마치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 전학생 주위로 몰려든 같은 반 학생들 같았다.

“네. 뭐.”

지난주에 있었던 직업 탐구 시간을 떠올린 태주가 본인의 입으로 직접 헛소문이 아님을 인정했다.

- “어? MSG가 아니라 팩트였네?”

- “와아, 엄 교수님이면, 완전 벌크업 끝판왕이잖아.”

- “그러게. 그냥 딱 봐도 체급이 안 맞는데 그걸 극복했다고?”

- “대체 힘이 얼마나 센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알게 되니 이번엔 실체가 궁금해졌다.

- “태주야, 나랑 팔씨름 한 번만 할래?”

힘 하나는 자신 있었던 전사 클래스 선배 한 명이 양쪽 손목을 돌리며 겁도 없이 다가왔다.

태주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엄 교수의 패배 소식을 듣는 순간, 이기면 대박이고, 져도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 신입생 귀찮게 뭘 그런 것까지 확인하고 그래.”

줄곧 말을 아끼고 있던 주엽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숨기고 싶은 진실.

태주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걸 원치 않았던 주엽은 스트레칭 과정에서 느낀 힘의 차이를 다른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뜬금없이 팔씨름은 무슨 팔씨름이야.”

물론 또 다른 유경험자인 장세종 역시 태주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도록 주엽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지만.

- “내가 지금까지 팔씨름을 져본 적이 없거든.”

두 사람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린 도전자가 다짜고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우며 팔씨름 자세를 취했다.

‘뭐야 이거.’

제안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 태주가 자신의 발 앞에 납작 엎드린 채 고개만 바짝 치켜들고 있는 선배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오른손으로 할래 왼손으로 할래?”

“그럼 오른손으로 하겠습니다.”

적당히 하는 대신 봐줄 생각은 없었던 태주가 선배의 도전을 받아들이며 천천히 바닥에 엎드렸다.

- “오오.”

기다림에 지루했던 아이들이 뜻밖의 구경거리에 환호하며 동그랗게 모여들었다.

- “손목을 꺾거나 몸으로 누르면 반칙인 거 알지?”

프로의 세계에선 각각 훅과 프레스란 이름이 붙은 정식 기술이었지만, 아마추어 대결에선 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었다.

“네.”

기술 따윈 필요 없었던 태주가 덤덤한 얼굴로 상대방의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 “……?!”

손을 잡는 순간 패배를 직감한 도전자의 두 눈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력한 악력에 번쩍 뜨였다.

“시작할까요?”

상대방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태주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어? 어, 그래. 내가 시작할게.”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당황한 도전자가 말까지 더듬어 가며 쫓기듯이 대답했다.

- “자, 시……. 작!”

쿵!

‘시’를 늘려 타이밍을 뺏으려 했던 도전자의 손등이 ‘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닿아 있었다.

- “…….”

그리고 이어진 찰나의 정적.

나름의 박빙을 예상했던 동기들이 응원할 틈도 없이 끝난 허무한 승부에 말문이 막혔다.

- “잘, 잘하네.”

바닥에 붙어 있는 손을 조심스럽게 빼낸 도전자가 뒤늦게 밀려든 민망함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 “뭐야, 1초 컷이 아니라 0.1초 컷인데?”

- “표정도 너무 평온해 보여.”

- “야, 바닥 파인 거 아니야?”

폭주 스킬은커녕 상대방의 뼈가 으스러질까 제대로 힘도 주지 않았지만, 선배들이 받은 충격은 주엽과 세종이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늦어서 미안. 갑자기 손님이 오시는 바람에.”

개인적인 볼일을 마치고 나타난 이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손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수업을 늦출 만큼 중요한 인물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문자에 나온 것보단 일찍 왔지?”

다른 교수들에 비해 학생들과 친근한 대화를 주고받는 이 교수가 휴대폰을 확인하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 잠깐. 태주야, 너 거기서 뭐해?”

바닥에 엎드려 있는 태주와 그런 태주를 둘러싼 여러 명의 선배들.

설상가상으로 도전자가 먼저 자리를 피한 상황이라 지금 막 나타난 이 교수의 입장에선 오해하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뭐야, 또 신입생 괴롭히는 거야?”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 이 교수가 두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치듯이 물었다.

- “아니요. 오히려 신입생이 선배를 괴롭혔는데요.”

- “풉!”

“뭔 소리야? 태주야, 괜찮아?”

학생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해진 이 교수가 당사자인 태주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네. 그냥 팔씨름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바닥에서 일어난 태주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이 교수를 안심시켰다.

“아, 그래?”

다른 학생들의 대답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 교수가 태주의 설명엔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뭐, 아무튼 지난 시간에 얘기한 대로 오늘부턴 실제 시험과 동일하게 모의 던전을 진행할 거야.”

숨 돌릴 틈도 없이 수업을 시작한 이 교수가 테스트와 관련된 세부 사항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특히, 나 말고도 10명의 조교들이 평가에 관여할 거니까 결과적으론 참가자 101명을 포함해서 도합 112명의 인원이 함께 움직이는 거겠지?”

생각보다 적은 조교들의 숫자에 대기실 안이 술렁였다.

- “야, 근데 100명, 아니, 101명을 고작 11명이서, 그것도 실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 “그러게. 적어도 20명은 있어야 될 것 같긴 한데…….”

물론 던전 실습 자체가 처음이 아닌 태주와 주엽처럼 졸업한 선배들로부터 미리 평가 방식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일부 학생들의 경우 별다른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실수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사실, 심사 인원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있는 대다수의 우려와 달리 이 교수와 조교들은 던전 실습의 채점 방식으로 감점법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만점으로 시작하되 실수를 할 때마다 점수가 차감되는 감점법의 경우 잘한다고 해서 점수가 회복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선 자신이 배정받은 학생들 중 실수를 범한 인원만 체크하면 그만이었다.

“자, 여기까지 질문 있는 사람?”

- “없습니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 없으면, 이제 비밀 평가지를 나눠줄 건데, 필체까진 어쩔 수 없어도 최소한 필기구 정도는 통일해야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 카트 위에 놓인 작은 볼펜들도 잊지 말고 하나씩 챙겨 가. 아, 물론 다음 시간에도 써야 되니까 끝나고 반납하는 것도 잊지 말고.”

- “네.”

“자, 그럼 슬슬 장비들 챙겨서 이동해볼까?”

- “넵!”

태주가 있는 곳을 슬쩍 바라본 이 교수가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걸음을 재촉하자 101명의 수강생들이 힘찬 대답 소리와 함께 모의 던전의 입구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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