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22화 (122/242)

122. 공대원 모임 (2)

“뭐? 초대받지 않은 손님?”

곱창집에서 있었던 민주엽과의 석연치 않은 만남이 떠오른 태주가 불길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나도 아는 사람이야?”

“어. 완전.”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던 재룡이 태주의 물음에 긍정하며 빙그레 웃었다.

*

*

*

-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종업원 한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태주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일행이에요.”

뒤따라 들어오던 재룡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는 종업원의 질문에 대신 대답했다.

“어, 태주야, 여기.”

홀이 아닌 방 안에 앉아 있던 세준이 열린 문을 통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방으로 잡았는데 괜찮지?”

친목을 다지기 위한 공대원 모임인 만큼 각기 다른 테이블에서 등을 지고 마시는 것보다 긴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는 편이 더 의미 있다고 여긴 재룡의 판단이었다.

“어. 예약하느라 수고했어.”

세준에게 간단한 손인사를 건넨 태주가 장소 섭외를 담당했던 재룡의 노고를 잊지 않고 알아주었다.

바로 그때.

“어?”

신발을 벗고 방으로 올라선 태주가 재룡이 언급했던 불청객인 류정웅과 시선을 맞닥뜨렸다.

“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뭐, 그렇게 됐어.”

무리 중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던 정웅이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태주가 도착하기 전에 일어난 모든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세준이 정웅의 합석 계기를 설명했다.

“우리가 여기에 한 5분 전에 도착했었는데, 저기 저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보이는 거야.”

세준이 홀의 가장자리에 있는 테이블을 과장된 동작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하려고 다가갔는데, 어? 젓가락이 한 사람 것만 놓여 있는 거야. 다른 메뉴도 아니고 삼겹살을, 그것도 혼밥으로. 와아, 진짜 대단하지 않냐? 그러니 어떻게 합석을 하자고 안 하겠어.”

신나게 떠들어대던 세준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정웅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근데 그거 혼밥에도 등급이 있지 않아?”

조용히 밑반찬을 집어먹고 있던 득구가 입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뭐, 학식이나 패스트푸드 정도는 초급인데, 술집, 뷔페, 그리고 지금처럼 고기집에 혼자 오는 건 거의 최상급 난이도지.”

어깨동무를 푼 세준이 정웅의 시그니처 동작인 브리지 밀어 올리기를 안경도 없이 흉내 내며 말했다.

“야, 취했냐? 이 활쟁이 새끼 이거 오늘 왜 이렇게 들떴어?”

가만히 듣고 있던 정웅이 자신을 따라하는 세준의 히죽거리는 얼굴을 활짝 편 손으로 갈퀴처럼 쓸어내렸다.

물론 합석을 하게 된 것을 떠나 정웅의 혼밥 사실 자체는 태주에게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사실 회귀 전, 4년 내내 혼밥을 했던 태주는 학교나 대학가에 있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정웅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했었다.

차이가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혼밥을 하게 된 태주와는 다르게 자발적인 아싸를 택했다는 정도.

냉소적인 성격 탓에 교우관계가 그리 원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법사들 중에선 늘 상위권을 유지했었기 때문에 태주처럼 동기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으음. 내가 아는 류정웅은 나가면 나갔지 합석을 할 성격은 아닌데…….’

문을 등지고 앉은 태주가 평소와 다른 정웅의 선택에 의아함을 느꼈다.

- “얘들아 안녕.”

- “야, 왜 이렇게 다들 빨리 왔어?”

- “그러게. 아직 1분 정도 남았는데.”

- “어? 뭐야, 류정웅도 있네?”

재룡의 걱정과 달리 약속 장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낸 나머지 4명의 전사 클래스 공대원들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시끌벅적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태주야, 그럼 다 왔으니까 이제 고기 올릴까?”

가스불을 켠 재룡이 스테인리스 그릇에 수북이 쌓여 있는 냉동 삼겹살을 집게로 집으며 물었다.

“그래.”

선후배사이가 아닌 동기였지만, 모임의 성격으로 인해 작은 결정 하나까지도 태주의 의견을 묻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치이익!

태주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집게를 든 아이들이 달궈진 불판 위에 고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1차라 간단하게 냉삼에 소주나 한 잔하려고 그런 건데,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네. 그냥 생삼으로 갈 걸 그랬나?”

예약을 담당했던 재룡이 소주병을 흔들며 태주에게 물었다.

“아니야. 잘했어.”

“아, 그래? 그럼 다행이네. 자, 한 잔 받아.”

태주의 곁에 앉아 있던 재룡이 뿌듯한 얼굴로 태주의 잔을 채워 주었다.

“두께가 얇아서 그런지 생삼겹살보다 확실히 빨리 익네.”

득구가 신속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뭐, 얇아도 생삼보다 비싼 데도 있는데, 그래도 여긴 학교 앞이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야.”

주변 사람들의 잔을 채워주고 있던 재룡이 벽에 붙은 메뉴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야, 냉삼이든 생삼이든 일단 짠부터 하자.”

태주의 맞은편에 앉은 세준이 술잔을 들며 건배를 제안했다.

“태주야, 뭐, 한마디 할래?”

빈 잔이 없나 두리번거리던 세준이 모임의 주인공인 태주에게 물었다.

“한마디는 무슨. 그냥 깔끔하게 건배나 해.”

건배사에 익숙지 않았던 태주가 민망함에 몸서리를 쳤다.

“에이, 그래도 다 네 덕분에 모인 건데 대충대충 넘어가면 안 되지. 안 그래?”

뭔가 아쉬웠던 세준이 다른 공대원들에게 눈짓을 하며 한 번 더 태주를 부추겼다.

- “태주야,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마디 해.”

- “그래. 대신 팔 아프니까 짧게 해야 돼.”

- “짧게? 제가 LA에 있을 때는, 뭐, 이렇게?”

- “야, 고기 타니까 왼손으로 뒤집고 있어.”

- “설마 교수님들처럼 청바지나 이 멤버 리멤버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나 그냥 바로 나간다.”

테이블 위로 이런저런 농담들이 오가는 사이, 10개의 술잔과 열 사람의 마음이 태주를 향해 모여 있었다.

“알았어. 오케이.”

- “…….”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던 태주가 왼손을 반쯤 들자 방 안에 있던 동기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어어, 일단 한 명도 빠짐없이, 심지어 더 많이 와 줘서 너무 고맙고.”

정웅을 염두에 둔 태주의 농담에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참고로 오늘 주사 부리는 사람은 방출이야.”

- “태주야, 제발 방출만은!”

- “와아, 순간, 날 버린 공대원들의 눈빛이 떠올랐어.”

- “아아, PTSD…….”

이번엔 방출이란 단어에 절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정웅이 키득거렸다.

“자, 건배.”

- “건배!”

챙! 챙! 챙! 챙!

과한 멘트나 이렇다 할 선창 후창은 없었지만, 술잔들이 부딪치며 나는 청아한 소리만으로도 술자리의 흥은 충분히 배가되어 있었다.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술잔을 비우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영영 취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섭섭해지는 저항 스킬의 활성화 메시지가 어김없이 떠올랐다.

▶ 상태 이상(중독, 마비, 기절, 혼란, 수면)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 “크으. 좋다.”

- “야, 잔 비었다. 빨리 채워.”

- “으음. 고기는 뭔가 집에서 먹던 맛인데?”

- “여긴 삼겹살이 아니라 파무침 맛집이네.”

- “태주야, 오늘은 우리가 사는 거니까 많이 먹어.”

- “근데 N분의 1 할 때 재룡이는 우리보다 더 많이 내야 되는 거 아니야?”

- “그러게. 오늘도 태주 덕분에 두 번이나 구제받았는데.”

- “아니, 그건 그렇고, 하재룡 지금 쌈 쌀 때 고기 4장 넣은 거야?”

- “뭐야, 혼자 먹방 찍어?”

- “그럼 한 점씩 집어먹는 우리보다 네 배는 더 내야겠네.”

- “야, 그래도 태주 먹을 거는 좀 남겨.”

여러 가지 의미로 입을 쉬지 않던 아이들이 바쁘게 젓가락질을 하는 와중에도 재룡을 몰아가며 장난을 그치지 않았다.

“야, 태주한테 고마우면, 태주한테만 쏴야지 왜 너희들 밥값까지 내가 내.”

입에 반쯤 들어갔던 쌈을 다시 꺼낸 재룡이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따지듯이 말했다.

“그리고 태주한테는 내가 알아서 보답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N분의 1로 가…… 아, 아니다. 우리 심심한데 카드 뽑기로 할래? 9명 중에 걸리는 사람 3명이 나눠서 내는 걸로.”

따로 생각해둔 선물이 있었던 재룡이 한 가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 “오오, 그거 재밌겠는데?”

- “나도 콜.”

- “대신 엄카 찬스 써도 돼?”

- “어? 카드를 따로 들고 다녀? 요즘엔 거의 폰에 등록해서 쓰지 않나?”

- “저기, 미안한데, 카드 자체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돼?”

- “나도 현금밖에 없어.”

- “없으면, 교통카드나 학생증이라도 꺼내. 어차피 걸리고 나서 현금으로 내면 되니까.”

- “뭐야, 지금 당장 뽑는 거야?”

- “아니지. 그랬다간 안 걸린 애들이 자기 돈 아니라고 막 시킬 수도 있잖아.”

- “하긴, 그건 또 그러네.”

- “야, 이런 건 원래 카운터에 있는 사람이 뽑는 거야. 말 그대로 복불복.”

- “후우, 이거 은근히 떨리는데?”

- “근데 류정웅은 열외야?”

- “에이, 합석은 한 번 봐줘.”

게임에 동참하기로 한 아이들이 홀이 아닌 방을 택한 재룡의 의도대로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주섬주섬 지갑을 확인했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헉!”

“아아…….”

“이런 씨.”

던전 안에서도 내뱉은 적 없는 탄식과 신음이 선택받은 자들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 “야, 누가 걸렸어?”

- “하재룡, 임세준, 엄득구.”

- “풉! 왜 이런 건 꼭 제안한 사람이 걸리지?”

- “재룡이는 결국 3~4명 몫을 내야 되네.”

- “사장님이 센스 있게 학생증이랑 교통카드는 거르신 거 같은데?

- “뭐지? 뭔가 빌런에 걸렸을 때보다 더 당황한 눈치야.”

- “뭐, 어찌 됐든 함 교수님 말씀처럼 나만 아니면 돼.”

- “자, 그럼 셋이서 천천히 계산하고 나와.”

- “잘 먹었어.”

- “으음. 2차는 어디로 가지?”

벌칙에 당첨된 세 사람이 망연자실하고 있는 사이 카운터에 놓인 사탕을 집어든 아이들이 하나둘 삼겹살집을 나섰다.

바로 그때.

“저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던 정웅이 태주를 비롯한 동기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타이밍이 먹튀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난 1차에서 빠질게.”

- “어? 왜 벌써 가. 아직 9시도 안 됐는데.”

- “그래. N분의 1 하자고 안 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끝까지 가자.”

기분 좋게 취한 아이들이 정웅의 팔을 잡아끌며 못 가게 말렸다.

“어? 오늘 주사 부리는 사람 방출인데.”

정웅의 성격을 아는 태주가 건배사 때 했던 경고를 되풀이하며 질척거리는 동기들을 대신 떼어 주었다.

- “아참, 그렇지.”

- “아이고, 미안하게 됐습니다.”

- “아니, 요즘이 어느 때인데 2차를 강요해.”

태주의 한마디에 황급히 태세 전환을 한 아이들이 정웅을 붙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내일 학과장님 수업 때 보자.”

태주가 정웅의 팔뚝을 가볍게 터치하며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기, 태주야.”

“어, 왜.”

“가기 전에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한 1분이면 돼.”

거침없이 말하는 편인 정웅이 어찌된 영문인지 조심스럽게 대화를 청했다.

“그래.”

합석의 이유에 의문을 품고 있던 태주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웅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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