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14화 (114/242)

114. 빌런 vs 헌터 (4)

“규칙은 간단해. 모의 던전에 들어가 보스를 잡은 뒤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다. 단, 생존자 중에 헌터가 없으면, 빌런의 승리. 빌런은 미션이 끝나기 전까지 헌터들을 모두 제거하면 돼. 질문 있는 사람?”

- “어? 그럼 헌터의 승리 조건은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 겁니까?”

함 교수가 질문을 허락하자 곳곳에서 손을 드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어. 보스를 잡은 뒤, 단 한 명이라도 게이트 밖으로 나오면, 생존자 중에 빌런이 섞여 있어도 헌터의 승리로 인정할 거야.”

- “저, 교수님, 혹시 공대당 몇 명의 빌런이 배정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번엔 함 교수의 답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학생이 얼른 기회를 잡았다.

“그건 공대마다 달라.”

- “……?!”

공대별로 모여 있던 학생들이 동료들에 대한 의심을 극대화시키는 빌런의 비율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물론 빌런으로 선정되길 희망하는 녀석들에겐 희소식이었지만.

“자신이 헌터인지 빌런인지는 이 고글에 표시될 거야. 차이가 있다면 빌런들끼린 서로의 정체를 공유한다는 정도? 참고로 현실적인 부분을 반영하기 위해 헌터에서 빌런으로 돌변하는 우발적인 케이스도 설정해놨으니까 출발 지점으로 돌아올 때까진 절대 안심하지 마.”

함 교수가 카트에 쌓여 있던 특수 고글 하나를 집어 학생들을 향해 들어 보였다.

- “으음. 어떻게 보면, 팀 안에 팀이 하나 더 있는 거네. 1번 공대에 속한 헌터팀과 빌런팀, 뭐, 이런 식으로.”

- “그나저나 중간에 역할이 바뀔 수도 있다고?”

- “어? 그럼 누가 눈빛을 주고받는지 잘 감시해야겠네.”

- “으음. 뭔가 변형된 마피아 게임 같은데?”

- “그러게. 이거 은근히 긴장되네.”

새로운 규칙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던 학생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술렁였다.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거.”

고글을 내려놓은 함 교수가 두 번째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엔 옷에 부착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원형 스티커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일인당 두 장씩 가져가서 한 장은 배에 나머지 한 장은 등에 붙여.”

함 교수가 상자에서 꺼낸 초록색 스티커를 옆에 있던 조교의 복부와 견갑골 사이에 한 장씩 부착시키며 시범을 보였다.

“다들 눈치 챘겠지만, 이건 너희들의 목숨이야. 둘 중에 하나라도 떨어지면 바로 탈락이지.”

촤악!

함 교수가 조교의 배에 붙어 있던 스티커를 거칠게 떼어내며 말했다.

“물론 레이드 도중에 누적된 대미지가 100%에 도달하면, 빌런이든 헌터든 스티커와 상관없이 그대로 탈락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빌런의 색출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실제론 외부의 적인 몬스터의 공격과 내부의 적인 빌런의 습격 모두를 커버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미션이었다.

“교수님, 설마 이번 시간에도 1분 컷인가요?”

생존 미션 당시 1분 2초 만에 탈락했던 원무가 이번엔 소영이 아닌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니. 생존 미션의 사망률이 100, 아니, 99%였다면, 이번 레이드의 난이도는 최대 사망률이 60% 수준이야.”

모의 던전의 난이도를 설명하던 함 교수가 지난 미션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레코드 브레이커인 태주를 힐끗 쳐다본 뒤 수치를 정정했다.

“어? 그럼 레이드가 진행될수록 공대원의 숫자가 줄어드니까 헌터보다 빌런이 더 많이 남을 수도 있겠네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

함 교수가 확답을 줄 수 없는 원무의 질문엔 말을 아꼈다.

그도 그럴 것이 빌런으로 선정된 공대원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시 말해, 개개인이 지닌 모의 던전에서의 생존력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1조부터 고글이랑 스티커 챙겨서 들어가.”

모든 설명을 마친 함 교수가 통제실을 향해 느긋한 발걸음을 옮겼다.

- “중간에 죽으면, 가까운 비상구를 통해 탈락자 대기실로 이동하시면 돼요.”

함 교수의 빈자리를 채운 조교들이 카트와 스티커를 나눠주며 주의사항을 안내했다.

- “과연 누가 빌런일까?”

- “글쎄. 근데 뽑기가 아니라 고글로 알려주는 거면 뭔가 교수님 마음대로 지목할 수 있다는 건데…….”

- “어? 나도 그게 좀 걸렸는데.”

- “맨날 던전 안에서 죽는 더러운 기분을 체험해보는 게 목표라고 하시니까 어쩌면 생존 미션에서 그나마 오래 버텼던 애들 위주로 빌런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아.”

- “아님, 입학 성적으로 정할 수도 있고.”

- “야, 근데 함 교수님 캐릭터만 보면 그냥 랜덤으로 갈 거 같지 않냐?”

- “하긴, 딱 봐도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인데,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99명이나 되는 수강생들의 자료를 일일이 대조해가면서 빌런 후보를 고를 리 없지.”

- “근데 어차피 헌터들은 몰라도 빌런들끼린 바로 알지 않을까? 솔직히 고글에 리스트가 뜨면 이게 실력으로 뽑은 건지 랜덤으로 뽑은 건지 딱 답이 나오잖아.”

- “으음. 듣고 보니 또 그러네.”

- “야, 나 등에 스티커 좀 붙여줘.”

카트 앞으로 모여든 1조의 공대원들이 빌런의 선정 기준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며 레이드를 준비했다.

- “착용이 다 끝났으면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진행 상황을 체크하던 조교 한 명이 1조의 공대원들을 인솔해 모의 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 “야, 왜 이렇게 안 나오지?”

- “보안 때문에 그런가? 오늘은 모니터도 안 켜주시네.”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입구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설마 헌터들이 몬스터가 아니라 빌런들이랑 싸우고 있는 거 아니야?”

- “그래도 보스는 잡은 다음에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까?”

- “하긴, 헌터들을 초반에 제거해 버리면, 공대의 밸런스가 깨져서 정작 레이드엔 성공할 순 없으니까.”

- “근데 최대 사망률이 60%라는 건 믿을 수 있나? 솔직히 누굴 기준으로 정한 수치인지는 따로 밝히신 적이 없잖아. 막말로 우리들을 방심하게 만들려는 교수님의 함정일 수도 있고.”

- “그러게. 어쩌면 빌런이고 뭐고 보스를 잡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일 수도 있겠네.”

대기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대기실에 있던 학생들이 다양한 추측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아아, 오늘 일찍 가긴 다 틀렸네.”

- “그러게. 1조부터 이러면, 10조까지 돌았을 땐 강의 시간도 빠듯할 것 같은데.”

- “아니, 근데 수업의 형식이 이러면 좀 일찍 오셨어야 되는 거 아니야?”

- “야, 교수님 지금 통제실에 계신 거 몰라. 목소리 좀 낮춰.”

물론 미션과는 관계없는 의외의 포인트에서 참을성이 바닥난 녀석들도 있었지만.

“어! 저기 나온다!”

바닥에 앉아 무기를 손질하고 있던 득구가 닦고 있던 검으로 입구 쪽을 가리키며 제일 먼저 소리쳤다.

- “뭐?! 어디 어디!”

순간, 대기실에 있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생존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한 곳으로 모아졌다.

- “어? 10명이 들어갔는데, 나오는 건 2명이네.”

고글을 쓴 두 명의 남학생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터벅터벅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 “잠깐. 한 명은 호철이고, 나머지 한 명은 승섭인데?”

1번 공대에선 민대엽과 함께 지난 생존 미션에서 공동 2등, 정확히 얘기하면, 탈락자들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래 버틴 A급 어쌔신 김호철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각성 수준과 피지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A급 전사 안승섭이 살아남았다.

- “전사 한 명에 어쌔신 한 명이라……. 뭔가 경쟁자들을 힘으로 제압한 느낌인데?”

- “근데 8명은 너무 많이 죽은 거 아니야?”

- “그러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최대 사망률 60%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치인데?”

- “아니. 60%는 레이드의 난이도만 측정한 거니까 8명 중 몇 명이 몬스터에게 죽고, 몇 명이 빌런에게 제거 됐는지는 모르지. 뭐, 역으로 헌터가 아니라 빌런이 제거된 거 일 수도 있고.”

- “근데 진짜 어느 쪽이 이긴 거지?”

- “글쎄. 다른 애들한테 티를 내지 말라고 따로 지시를 받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던 아이들이 두 사람을 향해 서서히 모여들었다.

바로 그때.

“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생존자 두 명이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했다.

- “뭐야, 이것들이 갑자기 왜 이래?”

- “야,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 “그래. 미친놈들처럼 웃지만 말고 말 좀 해봐.”

두 사람의 앞에 초승달 모양으로 모여든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의 던전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당연히 헌터가 이겼지.”

“그럼. 어디 감히 빌런 따위가.”

1번 공대의 최종 결과는 헌터의 승리였다.

“특히 우리 조는 열 명 중에 빌런이 두 명이었는데, 웃긴 게 헌터인지 빌런인지 알려주자마자 두 명이 동시에 ‘어?’라고 해서 바로 제거했어.”

의기양양해진 두 사람이 질문을 받기도 전에 알아서 무용담을 늘어놨다.

- “뭐야, 완전 허무하네?”

- “어? 그럼 시작부터 빌런 없이 헌터로만 진행한 거야?”

“어. 그래서 던전의 길이는 생각보다 짧았는데, 아무래도 열 명이 해야 될 몫을 여덟 명이 커버해야 되니까 체력 소모도 빠르고, 특히 아군의 희생이 좀 컸지. 보스를 잡을 때도 오래 걸렸고.”

“게다가 우리 조엔 힐러가 딱 한 명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한 명이 빌런이라…….”

“그래서 보스를 잡았을 땐 완전 빨피였어. 둘 다 누적 대미지 90% 이상. 한마디로 스치면 사망.”

생존자들의 구체적인 후기가 공개되자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2조의 공대원들이 황급히 무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빌런 선정 기준은 진짜 랜덤인 거 같아. 솔직히 우리 조에선 호철이가 제일 실력자인데 헌터가 걸렸거든.”

승섭이 곁에 있던 호철의 등을 토닥이며 동기들의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줬다.

- “근데 중간에 헌터에서 빌런으로 바뀐 사람은 없었나 봐?”

“어. 뭐, 처음이라 그랬을 수도 있는데, 일단은 없었어.”

고글을 벗은 호철이 승섭의 등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내며 말했다.

- “근데 이렇게 다 얘기해도 돼?”

- “그러게. 안 그래도 통제실에서 다 지켜보고 계실 텐데.”

두 사람의 천기누설에 묘한 불안감을 느낀 아이들이 곳곳에 설치된 CCTV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시던데? 조교 형들도 그렇고.”

호철을 힐끗 쳐다본 승섭이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함 교수가 스포를 막고 있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오직 태주만이 알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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