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13화 (113/242)

113. 빌런 vs 헌터 (3)

“빌런이 무서운 이유는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진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거야. 쉽게 말해, 공대장 또는 공대원이었던 녀석들이 갑자기 내 등에 칼을 꼽는 거지.”

상자 안에 넣은 손을 시계 방향으로 휘젓던 함 교수가 못 다한 설명을 이어갔다.

“빌런이 되는 이유도 다양해. 뭐, 90% 이상은 이득을 독차지하기 위한 거지만, 간혹 입막음을 위해, 혹은 누군가의 청부를 받아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 물론 행위 자체에 집착한 나머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들도 있지만.”

- “…….”

함 교수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던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 교수님.”

갑자기 손을 든 세준이 의아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근데 막공이면 몰라도 정식 길드에선 빌런이 활동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세준의 말대로 까다로운 채용 과정을 거친 길드원들로만 구성된 정규 공격대, 일명 정공의 경우 그때그때 모인 사람들로 공대를 꾸린 막공에 비해 정체를 숨기는 것이 어려웠다.

물론 세준이 길드 내에 숨어든 빌런의 존재에 대해 선을 그으며 길드의 입장을 대변한 데에는 풍림의 후계자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누가 끼어들라고 그랬지?”

질문의 내용이 아닌 타이밍을 문제 삼은 함 교수가 허락도 없이 흐름을 끊은 세준을 불쾌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예? 아, 죄, 죄송합니다.”

함 교수의 싸늘한 반응에 당황한 세준이 말까지 더듬어가며 황급히 잘못을 인정했다.

“그래도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대답은 해줘야겠지?”

함 교수가 절차를 무시한 것에 대해 무안을 준 것과는 별개로 빌런의 존재 확률에 대한 세준의 의견을 짧게나마 짚고 넘어갔다.

“아, 감사합니다 교수님.”

예상치 못한 지적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세준이 그제야 한시름을 놓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막공이 정공에 비해 빌런의 출현이 잦은 건 사실이지만, 가끔은 길드 내에서도 조직적인 범죄 행위가 일어나기도 해. 사실 빌런이 꼭 한 명이란 법은 없거든.”

세준의 의견을 일부 인정한 함 교수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예외적인 사례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두 개의 길드가 연합해 게이트 입장권을 낙찰 받은 다음, 보스를 잡자마자 돌변해 상대 길드를 몰살시킨다든지, 같은 길드지만, 길드의 치부를 알고 있는 녀석을 입막음하기 위해 나머지 길드원들과 짜고 사고사로 위장하는 경우처럼 말이야.”

자살이든 타살이든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부검을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그마저도 시신의 수습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정확한 사인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수사를 방해하는 입장에선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 최대한 외부인의 접근을 막아야 했다.

“게다가 보스를 잡으면, 짧게는 몇 시간, 길어도 하루 안엔 게이트가 닫혀. 그 말인즉슨,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고 적당히 둘러대면, 알아서 증거가 인멸되는 거지. 물론 그보다 가증스러운 건 사고사로 위장된 피해자의 장례식장에 가해자들이 나타나 비통한 표정을 짓는 거지만.”

물론 길드와의 계약을 통해 던전 안에서 확보한 각종 전리품들을 게이트 밖으로 옮기는 채굴 회사에게만큼은 어쩔 수 없이 입장을 허락해야 했지만.

- “아니, 이게 진짜 두 번 죽이는 거 아니야? 막말로 죽는 것도 억울한데, 사고사로 위장당하면…….”

- “그러게. 아무것도 모르는 유가족들은 와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육개장까지 갖다 바칠 거 아니야. 속으론 낄낄거리고 있을 텐데.”

- “왜 레이드 중에 배신을 당하면 복수가 어렵다고 하셨는지 이제야 알겠네.”

- “야, 나 이러다 의심병 도지면 어떡하지? 이 수업은 뭔가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거 같아.”

- “나도 지난 시간엔 희생을 바탕으로 한 동료애보다 개인의 생존 본능을 더 강조하셔서 납득이 안 됐는데, 그 희생양이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경험담과는 차원이 다른 악랄하고 잔혹한 배신의 수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교수님, 혹시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세준의 사례로 학습 효과를 얻은 원무가 함 교수의 허락을 구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해 봐.”

함 교수가 양해부터 구하는 원무의 눈치 빠른 처세술에 흔쾌히 기회를 주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사전에, 그러니까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빌런을 색출하는 방법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질문의 밑바탕엔 빌런의 위험에 노출될지도 모르는 소영이에 대한 남자친구로서의 앞선 걱정이 깔려 있었지만.

“색출?”

원무의 질문을 들은 함 교수가 대답도 하기 전에 헛웃음부터 지었다.

“일단 질문의 전제부터가 틀렸어.”

“네?”

세준과 달리 신중했다고 자부했던 원무가 뜻밖의 지적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 질문은 던전 안에서 빌런이 된 케이스를 제외하고 있거든. 견물생심으로 인한 우발적 범죄……. 원래 헌터가 빌런으로 돌변하는 건 한순간이야. 네가 아무리 조심하고, 의심하고,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아도, 눈앞에 놓인 이득에 갈등하던 동료가 결단을 내리는 타이밍까진 예측할 순 없으니까.”

함 교수의 말대로 범의를 품는 시점과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점은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함부로 의심할 수도,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안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 그럼 빌런의 습격에 당할 수밖에 없는 겁니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원무가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현재로선 그래.”

물론 지극히 현실적인 함 교수의 입에서 하얀 거짓말을 기대하긴 어려웠지만.

“하지만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낳는 법. 아무리 철저하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했다고 해도 결국엔 이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지거나 누군가의 양심 고백으로 인해 대부분이 검거되거든. 뭐, 그래 봤자 억울한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근데 그건 단독 범행의 경우엔 해당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대신 단독 범행은 공범이 있을 때보다 성공 확률이 떨어져. 한마디로 미수에 그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답변을 마친 함 교수가 상자 속에 집어넣던 손을 빼낸 뒤 학생들을 향해 들어보였다.

“이거 보여?”

- “네.”

학생들이 함 교수의 손에 들린 쪽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상자 안엔 1부터 10까지 적힌 종이가 각각 10개씩 들어 있어. 당연히 숫자가 의미하는 건 공대 번호고.”

함 교수가 뽑은 종이엔 숫자 6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이 자리에 없는 하재룡의 공대 번호를 내가 대신 뽑은 거야. 다시 말해, 6조는 10명이 아닌 9명으로 레이드를 진행하게 되는 거지.”

손에 든 종이를 구겨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은 함 교수가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기 전, 공대 편성을 위한 추첨부터 진행했다.

“일단 앞에서부터 한 명씩 나와. 같은 번호를 뽑은 사람끼린 알아서 모이고.”

- “네.”

함 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렬로 늘어선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상자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 “야, 우린 전사의 비율이 너무 높은데?”

- “그러게 어떻게 10명 중에 6명이 전사 클래스지?”

- “어? 난 지난 시간에 들어갔던 조 보다 훨씬 잘 나왔는데. 전사 셋, 법사 둘, 힐러 둘, 궁수 하나, 어쌔신 하나, 무투가 하나. 뭐,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하지 않냐?”

- “근데 오늘은 멤버 트레이드가 안 되나? 빌런이고 뭐고, 밸런스 자체가 너무 별로라…….”

추첨을 통해 공대 편성을 마친 학생들이 10명씩, 혹은 9명씩 모여 클래스의 구성을 체크하고 있었다.

- “그나저나 빌런이랑 헌터는 어떻게 뽑지? 이것도 추첨으로 정하나?”

- “아아, 이러다 빌런으로 뽑히면 어떡하지? 나 완전 쫄보라 얼굴만 봐도 바로 티가 나는데.”

- “어? 오히려 빌런이 더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헌터로 뽑힌 애들이 눈치 보는 맛도 있고.”

- “나도 이왕이면 빌런에 한 표.”

- “아니, 이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다 빌런 타령이야.”

- “근데 반대로 빌런이 발각되면 헌터가 죽일 수 있는 거 아니야?”

- “당연하지. 안 그러면 헌터가 죽는 건데.”

수업이 아닌 역할 놀이를 즐기는 심정으로 가볍게 접근하다 보니 빌런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까진 심각했던 학생들의 표정이 테스트를 앞둔 시점에서 오히려 평온함을 되찾고 있었다.

- “근데 어떤 식으로 상대를 제거하지? 아무래도 실제 무기를 사용하기엔 좀 위험할 것 같은데.”

- “글쎄. 뭐, 이름표를 뜯거나 상대방의 옷에 잉크 같은 걸 묻히면 죽은 걸로 치지 않을까?”

- “하긴, 역할에 몰입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감정도 상하고, 심하면 부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까.”

테스트의 방식과 전개 양상에 대해 논의하던 학생들이 이번엔 태주가 속한 조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그건 그렇고, 태주는 몇 조야?”

- “태주? 아까 보니까 6번을 뽑았던데?”

- “어? 6번이면, 유일하게 9명인 조잖아.”

- “뭐, 재룡이가 아예 결석을 하면 모르는데, 일단 좀 늦는다고 했다니까 모의 던전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안 오면 그냥 9명으로 하겠지.”

- “야, 근데 태주는 진짜 양날의 검 아니냐?”

- “어?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사실 나도 태주랑 같은 조가 안 된 게 은근히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

생존 미션의 유일한 생존자인 태주의 실력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그 압도적인 실력이 오히려 테스트를 앞둔 동기들에겐 묘한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 “양날의 검이라……. 솔직히 태주가 헌터면, 누가 빌런이 됐든 1등은 확정인데, 만에 하나 태주가 빌런이면, 그 조는 그냥 몰살각이 나오는 거잖아.”

- “뭐, 창민이도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래도 태주만큼은 아니니까.”

- “그건 그런데, 어차피 교수님 말씀대로 나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야? 어찌 됐건 우린 태주나 창민이랑 같은 조가 아니잖아.”

- “하긴, 일단 우리 조도 두 사람은 피했으니까.”

나머지 9개의 조가 태주를 적으로 돌릴 가능성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사이, 태주가 속한 6조에선 어색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조용.”

- “…….”

잠깐의 토론 시간을 부여했던 함 교수의 한마디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규칙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조교.”

- “네, 교수님.”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함 교수가 신호를 보내자 잠시 자리를 비웠던 조교 한 명이 또 다른 상자를 들고 와 카트 위에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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