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조 편성 (12)
“협조?”
자신 이외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테테가 협조라는 단어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대체 날 왜 도와주려는 거지?”
이유를 묻는 말투에서 강한 경계심이 묻어났다.
“솔직히 누가 나한테 복수를 하든 말든 너랑은 아무 상관도 없잖아.”
태생은 도적이지만, 아무 때나 도둑놈 심보를 부릴 만큼 경솔한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보물에 목숨을 걸 만큼 탐욕스러운 얼굴도 아닌데 말이야.”
“목적은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우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일치하는 거지 목적이 같아서 모인 건 아니거든.”
“설마 그 수단이란 게 벨지오스를 제거하는 거야?”
“맞아. 그리고 네가 벨지오스를 제거했다는 소문이 도는 순간, 복수를 계획했던 이들의 심경에도 변화가 생기겠지.”
“심경의 변화?”
“공포심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 쉽게 말해, 단순한 악명을 넘어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사신의 이미지를 얻게 되는 거지. 네 목숨을 노리고 있는 녀석들이 함부로 허튼짓을 못 하게.”
“으음. 그럼 확실히 신변의 위협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되고, 내 몸값도 부르는 게 값이 되겠군. 물론 의뢰 비용과 현상금 모두가.”
벨지오스를 제거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를 찾은 테테가 태주의 제안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상금의 액수를 아무리 올려도 널 제거하겠다는 지원자가 쉽게 나타나진 않을걸?”
도적 클래스의 영입을 위한 마지막 카드가 먹혔다고 판단한 태주가 맞춤형 명분을 통한 합리적인 설득을 이어갔다.
“더구나 빼앗기는 건 딱 질색인 너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까?”
“목숨을 건 대가로 목숨을 얻는다라…….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지?”
비테론 원정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테테가 처음으로 벨지오스의 제거와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100%.”
“뭐? 100%?”
비테론 공략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던 테테가 태주의 입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수치에 두 귀를 의심했다.
“참고로 우린 잠시 후에 베로닌을 떠날 거야. 선발대로 보낸 동료와는 비테론 인근에서 내일 새벽까지 만나기로 했고.”
“대체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이유가 뭐지?”
“성공 확률이 100%인데 굳이 미룰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
벨지오스에 대한 제안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테테지만, 어째서인지 태주가 보이는 강한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 본능적인 흥미.
테테를 물질이 아닌 본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차원적인 흥미가 의외의 포인트에서 유발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제안을 수락해도 실패할 기미가 보이는 순간 바로 빠질 거니까 하찮은 동료애 따윈 기대하지 마.”
조 편성을 마치기 전까진 메인 과제를 진행할 수 없는 태주의 입장에선 일단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기도 했다.
“말했잖아. 우린 수단이 같을 뿐이라고. 그럼 수단조차 불확실해졌을 땐 당연히 각자의 길을 가야지.”
또한 자신을 포함한 조원의 3분의 2 이상, 다시 말해, 6명 중 4명 이상만 죽지 않으면 F학점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중도 이탈을 암시하는 테테의 이기적인 언질에도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책임을 강요하지 않는 건 마음에 드네.”
어딘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테테가 태주의 공대 운영 방침에 동조했다.
“자, 그럼 이제 난 뭘 준비하면 되지?”
“어차피 하루 안에 승부를 볼 거니까 뭐가 됐든 짐이 되지 않는 선에서만 적당히 챙겨 와.”
테테의 우호적인 태도를 확인한 태주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쥐고 있던 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으음. 그나저나 지금 그 능력은 보면 볼수록 탐나는데? 할 수만 있다면 훔치고 싶을 정도야.”
태주의 눈엔 보이지 않았지만, 인벤토리 능력을 본 테테의 눈빛은 금은보화를 마주했을 때처럼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더 훔치고 싶어도 들고 갈 수가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꽤 많거든.”
“같은 말이라도 도적에게 들으니까 좀 불안한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서로에 대한 경계심은 무뎌졌지만, 기존의 손버릇까지 간과할 순 없었기 때문에 함 교수의 반지나 티마란의 팔찌 등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미리미리 경고해둘 필요성은 있었다.
“죽음을 재촉하는 과한 욕심을 버린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라고 그랬지? 그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태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을 폭발적으로 발산시켜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와아, 이거 까닥하면 벨지오스가 아니라 네 손에 먼저 죽겠는데?”
겉으론 태주의 경고를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살기등등한 마력이 베테랑 암살자의 심장마저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료들 중에 사제랑 성기사가 한 명씩 있는데, 그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암살을 일삼는 도적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내가 두 사람을 설득할 때까진 지금처럼 몸을 숨긴 채 조용히 따라 와. 대신 적당한 시기가 되면, 내가 알아서 신호를 줄 테니까.”
힘들게 모은 조가 사분오열되는 것을 막고 싶었던 태주가 티마란과 꼬꼬로에게 그랬듯 테테에게도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이상적인 합류 시점을 지정해주었다.
“마음대로 해. 나도 내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테테가 다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근데 그 안 보이는 능력은 하루 종일 쓸 수 있는 거야?”
태주가 전략적인 용도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은신 스킬의 지속 시간에 대해 물었다.
“지속 시간은 마나의 여유에 따라 다르긴 한데, 발동에 소요되는 마나의 양도 많고, 마나가 줄어드는 속도도 워낙 빨라서 주로 침투할 때나 도주하는 경우에만 사용하는 편이야.”
“으음. 그럼 비테론에서도 꼭 필요할 때만 써야겠네.”
“그건 네가 성직자들을 얼마나 빨리 설득하느냐에 달렸겠지.”
테테의 말대로 동료들에 대한 소개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은신의 사용 시간이 길어져 최악의 경우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이 제한될 수도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태주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드러내며 테테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한 배를 탔는데, 최소한 얼굴 정도는 알아야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면 알 수밖에 없을 텐데. 뭐,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거면 어쩔 수…… 어?”
아무도 얼굴을 모른다는 대장장이의 말이 태주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바로 그때.
“됐냐?”
은신을 푼 테테가 태주의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눈 주위만 드러냈을 뿐, 얼굴 전체는 복면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으음. 그래. 뭐, 일단 눈이라도 마주쳤으니까. 앞으로 잘해보자.”
테테의 실체를 마주한 것에 만족한 태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청했다.
“그래. 근데 악수는 거절할게.”
태주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테테가 헛웃음을 지으며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미안하지만, 손에 피를 묻힌 이후부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지 않았거든.”
“그럼 이건 어때?”
태주가 민망해진 손으로 주먹을 말아 쥔 뒤 테테를 향해 뻗었다.
“이게 뭔데?”
테테가 의아한 눈으로 주먹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피스트 범프.”
“피스트 범프?”
“쉽게 말해, 주먹을 맞대는 걸로 악수를 대신하는 거야.”
“주먹으로?”
“그래. 한번 따라 해봐.”
“…….”
생소한 인사법에 잠시 머뭇거리던 테테가 손을 맞잡을 필요가 없다는 태주의 말에 슬그머니 주먹을 내밀었다.
툭.
순간, 주먹과 주먹이 부딪히는 작은 울림이 마음의 문을 여는 노크처럼 태주에 대한 테테의 모든 의심과 경계심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바로 그때.
▶ 새로운 멤버가 조원으로 합류하였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마지막 조원의 합류 소식이 태주의 눈앞에 번쩍 떠올랐다.
【조원 리스트】 (6/6)
1. 전사 (티마란)
2. 기사 (게르딘)
3. 법사 (보르가넨)
4. 궁수 (신태주)
5. 사제 (피렐레)
6. 도적 (테테)
‘됐다!’
테테가 보고 있어 마음 놓고 좋아하진 못했지만, 리스트를 보는 순간, 조원 한 명 한 명과의 특별했던 만남이 태주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 [서브 과제1]인 『조 편성(6/6)』을 달성하였습니다.
▶ [조별 과제] 『혼돈의 파티』의 [메인 과제]인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 함락』을 진행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드디어 메인 과제구나.’
과제상으론 고작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꼬꼬로와 만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워낙 다양한 일들을 겪은 터라 체감상으로는 실제로 흐른 시간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다.
▶ [서브 과제2]가 주어집니다.
▶ [서브 과제2] 의견 조율
‘뭐야, 의견 조율?’
서브 과제1을 마치기 무섭게 나타난 새로운 과제가 태주로 하여금 마른침을 삼키게 했다.
▶ 조원들 간의 분쟁과 불신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 신뢰도와 사기를 바탕으로 한 『팀워크 지수』가 『분열』 단계로 내려가 일정 시간 지속될 경우 과제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 F학점 처리와 함께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팀워크 지수? 한마디로 모으는 게 다가 아니라 관리도 잘해야 된다는 뜻이네.’
순간, 성직자와 도적, 그리고 인간과 오크 등 마음에 걸리는 관계들이 태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겠는데?’
【팀워크 지수】 (75/100)
1. 최상 (100~91)
2. 양호 (90~81)
3. 안정 (80~71) [◀]
4. 불안 (70~61)
5. 위기 (60~51)
6. 적대 (50~41)
7. 분열 (40이하)
‘으음. 일단 75가 기본인가 보네.’
▶ 단, 팀워크 지수가 『분열』 단계로 내려갈 경우 조장에겐 조원들의 사기와 능력을 약 5분간 『최상』의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강제 각성 버프인 『마지막 불꽃』의 발동권이 한 차례 주어지게 됩니다.
‘마지막 불꽃이라……. 웬만하면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 [알림] 조별 과제의 새로운 웨이포인트에 도달하였습니다.
▶ [알림]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과제 수행은 집중력과 판단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티마란과 정글을 빠져나왔을 때처럼 휴식을 권하는 시스템의 안내 메시지가 또 한 번 친절하게 등장했다.
▶ 조별 과제를 중단하고 현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 (Y/N)
‘으음.’
시스템의 질문을 조용히 응시하던 태주의 시선이 이전과 달리 N으로 옮겨졌다.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