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09화 (109/242)

109. 조 편성 (11)

알림도 알림이지만, 무엇보다 테테의 악명에 비해 마력의 크기가 미약했다.

물론 베로닌 최고의 암살자가 얼굴도 가리지 않은 채 비둘기만 보고 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의뢰 내용을 빈칸으로 남겨둬서 간을 보나?’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리인을 보낸 것이라 추측한 태주가 다시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푸드득! 푸드득!

- “……?”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남자가 인기척을 알리는 비둘기들의 날갯짓에 태주를 올려다봤다.

- “아아.”

대장장이의 설명대로 인상착의를 적어 보낸 덕분에 남자는 태주가 의뢰인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 “의뢰인?”

초면에 말이 짧았지만, 존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외모라 크게 문제를 삼진 않았다.

“네. 그럼 당신이 테테입니까?”

- “보시다시피.”

남자는 자신을 테테라 소개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죠?”

- “아니, 어떤 미친놈이 발목에 묶어둔 끈을 싹 다 갖다 버려서 뭐가 내 비둘기인지 찾고 있는 중이야. 아, 근데 이거 아까도 이랬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늘어놓던 자칭 테테가 태주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물었다.

“아니요. 그랬으면 아예 의뢰를 못했겠죠.”

- “아, 그런가?”

태주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한 자칭 테테가 굽혔던 무릎을 천천히 펴며 일어났다.

- “근데 의뢰 내용은 왜 비워 놨어? 혹시 까다로운 상대면 내가 거절할까 봐?”

자칭 테테가 태주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까다로운 상대의 기준이 뭡니까?”

- “그야 당연히 베로닌의 성주와 그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지.”

“그럼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네요.”

- “아, 그래? 그럼 그냥 편하게 말해. 어차피 의뢰인의 정보가 발설될 일은 전혀 없으니까. 참고로 수고비는 제거 대상의 사회적 신분과 난이도에 따라 달라.”

태주의 말에 안심한 자칭 테테가 돈 얘기를 꺼내며 제거 대상을 물어보던 바로 그때.

“네. 그럼 지금 당장 비테론으로 가서 벨지오스와 그의 하수인들을 모두 제거해 주세요.”

- “……?!”

순간, 웃음기가 사라진 테테의 얼굴이 마비가 온 것처럼 경직됐다.

“역시나 까다로운 상대입니까?”

- “이봐, 지금 바쁜 사람 불러놓고 장난해?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

자칭 테테가 태주의 현실성 없는 의뢰를 대놓고 비판했다.

“으음. 역시 의뢰 내용을 적었으면 안 나왔겠네요. 베로닌 최고의 암살자라고 해서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거 상당히 실망스러운데요? 무슨 편식하는 것도 아니고.”

대리인을 보낸 테테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태주가 진짜를 등판시키기 위해 사소한 분쟁을 일으켰다.

- “뭐?! 실, 실망?!”

“의뢰는 없던 일로 할 테니까 가서 하던 일이나 마저 하세요.”

태주가 턱 끝으로 비둘기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뭐, 비둘기를 상대하는 것도 까다롭겠지만.”

진짜 테테의 시선을 의식하며 발걸음을 돌린 태주가 자칭 테테에게 등을 보이던 바로 그때.

- “이런 씨.”

뒤에서 달려든 자칭 테테가 왼손으로 태주의 이마를 당겨 제압한 뒤, 오른손에 쥔 단검을 턱밑에 밀착시켰다.

- “미안하지만, 수고비는 없어도 출장비는 받아가야겠는데?”

“얼마나.”

섬뜩한 협박과 함께 목에 칼이 들어온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태주의 얼굴에선 그 어떤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얼마? 그건 네 목숨이 얼마나 질기냐에 따라 다르겠지.”

오히려 광장을 지나던 사람들만 못 본 척 황급히 자리를 피했는데, 애초에 도움을 청할 생각이 없던 터라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없어? 앞으론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올 수도 있어서 말이야.”

자칭 테테가 대단한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생색을 내며 물었다.

“하고 싶은 얘기? 있지. 딱 하나.”

- “그래? 그럼 그것까진 들어줄 테니까 빨리 말해 봐.”

상대방의 명줄을 쥐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의 끈을 놓은 자칭 테테가 거만한 말투로 대답을 재촉하던 바로 그때.

“너 테테 아니지?”

- “……?!”

“아니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점멸을 이용해 상대의 등 뒤로 순식간에 이동한 태주가 빠르게 활을 꺼내든 뒤 노멀 애로우의 화살촉을 자칭 테테의 뻣뻣한 목덜미에 들이밀었다.

- “너 누, 누구야?!”

“그 질문은 내가 먼저 했을 텐데.”

- “크흡!”

화살촉의 따끔한 경고에 당황한 자칭 테테의 몸이 태주를 협박하던 자세 그대로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없어? 앞으론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올 수도 있어서 말이야.”

조금 전에 들었던 모욕적인 언사를 그대로 되갚아준 태주가 자칭 테테의 오금을 발로 밀어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 [알림] 조 편성에 적합한 인물이 반경 10미터 안에 존재합니다.

태주의 예상대로 대리인이 제압되기 무섭게 알림이 떠올랐다.

‘드디어 등판인가?’

동상 주위엔 비둘기들만 서성일 뿐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예사롭지 않은 마력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오지 그래. 테테.”

상대가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고 판단한 태주가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을 돌아보며 경고하듯이 말했다.

바로 그때.

“참으로 무례한 손님이군.”

비테론 1세의 동상 뒤편에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영 엉망이었거든.”

퍽!

태주가 가짜 테테의 등을 발로 밀어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 “으악!”

철퍼덕!

물론 발바닥에 진심을 담았다면 척추가 으스러져 두 번 다신 일어나지 못했겠지만.

“좋아. 그 부분에 대해선 내가 사과하도록 하지.”

접선 과정 전체를 멀리서 지켜봤던 테테는 의뢰인보다 대리인의 위협이 먼저였다는 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물론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어떠한 연유로 마찰이 빚어졌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쇼!”

간신히 몸을 일으킨 가짜 테테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 뒤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용서? 용서는 내 칼에게 구해야지.”

- “예?!”

샥!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가짜 테테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 “헉!”

풍성했던 윗머리가 시원하게 날아간 가짜 테테가 허전해진 두피를 손으로 더듬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다음엔 머리다.”

- “예?! 아, 감, 감사합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가짜 테테가 힘이 풀린 다리로 기어가듯이 도망쳤다.

‘칼끝은 대리인을 향해도 눈으론 내 표정을 살피고 있는 거 아니야?’

은신 상태를 유지한 탓에 따로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태주의 입장에선 테테의 돌발 행동이 대리인의 실수에 대한 경고의 의미이자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적인 퍼포먼스로 느껴졌다.

“자, 그럼 이제 일 얘기를 해볼까?”

여전히 목소리만 허락하고 있는 테테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뭐, 대화가 어디까지 진행되다 어그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의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암살 대상만 비어 있어서 몹시 궁금했거든.”

“근데 궁금해 봤자 어차피 까다로운 상대면 거절할 거잖아.”

목소리는 들려도 대화 상대가 보이지 않다 보니 허공에다 대고 혼잣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거절? 왜 그렇게 생각하지?”

포커페이스가 필요 없는 테테가 대놓고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물론 테테의 표정이나 몸짓 같은 비언어적인 의사 표현을 포착할 수 없는 태주의 입장에선 상대의 말투나 어조를 통해서만 현재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었지만.

“네 대역이 그러던데? 베로닌의 성주와 그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의뢰 대상에서 제외라고.”

“으음.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그 녀석이 말한 제외의 기준은 뒷감당이 힘들어진다는 거지 죽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야.”

자신의 암살 실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테테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즉시 반박하고 나섰다.

“아아, 그래? 그럼 잘됐네.”

“뭐야, 진짜 베로닌 가문을 노리는 거야?”

태주의 반응에 흠칫한 테테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일단 여기 사람은 아니야.”

“여기 사람이 아니라……. 참고로 원정 암살의 경우 수고비가 3배라는 것만 알아둬.”

“3배? 원래는 얼마를 받는데?”

“그야 당연히 암살의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 뭐, 가끔 흥미로운 의뢰가 들어올 땐 공짜로 해주기도 하지만.”

“흥미로운 의뢰?”

“특별한 기준은 없어. 그냥 내 몸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지.”

“그래? 그럼 벨지오스 정도면 흥미가 생기려나?”

“…….”

가짜 테테가 그랬듯 진짜 테테 역시 태주의 의뢰 내용에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의뢰는 못 들은 걸로 하지.”

고심 끝에 열린 테테의 입에선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왜. 내 의뢰가 별로 흥미롭지 않아?”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적잖이 당황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직접 해보는 게 어때? 조금 전에 보니 보통 실력이 아니던데.”

“어. 안 그래도 갈 거야.”

“뭐?”

태주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에 아무 말이나 던져 본 테테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두 귀를 의심했다.

“나 말고 4명이 더 있긴 한데 소개는 나중에 시켜줄게.”

“소개? 내가 왜?”

“우린 네가 꼭 필요하거든.”

조 편성의 마지막 퍼즐을 발견한 태주가 테테를 향한 영입 의지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필요고 뭐고, 거긴 저주 받은 곳이야.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고.”

테테가 비관적인 태도로 태주의 실패를 단언했다.

“설마 비테론 가문의 보물 때문에 그래? 하긴, 나도 얼마 전까진 그 막대한 재산에 눈이 멀어 벨지오스의 목을 노린 적도 있었지.”

조원 후보에겐 동일한 목표가 부여되어 있다는 시스템의 설명대로 비테론과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였던 테테 역시 벨지오스를 제거해야 하는 나름의 사연을 품고 있었다.

“물론 죽음을 재촉하는 과한 욕심을 버린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겠지만.”

“도적이 보물을 마다하는 건 또 처음이네.”

태주가 테테의 고백에 헛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보물은 없거든.”

“글쎄. 남의 재물로도 모자라 생명까지 빼앗는 네가 할 소린 아닌 거 같은데?”

“빼앗는 건 좋아해도 빼앗기는 건 딱 질색이거든. 특히 그 대상이 생명일 땐 더더욱 그렇고.”

“그래? 그럼 내가 무조건 살려줄 테니까 같이 가자.”

“나를 살리겠다고? 하하하하. 교만이 지나치군.”

태주의 실력을 알 리 없는 테테가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미안하지만, 갈 거면 너희들끼리 가. 이제 난 벨지오스가 죽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까.”

태주의 거듭된 제안을 일축한 테테가 동상 앞을 벗어나려던 바로 그때.

“그래? 근데 이제부터는 관심을 가져야 될걸?”

테테의 거절 의사가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도적 클래스의 합류를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뭐?”

“지금 너에게 복수하겠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있지? 피해자 가족들이 내건 현상금의 액수도 어마어마하고.”

태주가 대장간에서 듣고 온 이야기를 토대로 테테가 느끼고 있는 현실적인 위기감을 압박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태주의 지적 아닌 지적에 불쾌함을 느낀 테테가 섬뜩하리만큼 차분해진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

“아니. 협조하겠다는 거야.”

태주가 테테의 얼굴이 있을 법한 곳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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