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00화 (100/242)

100. 조 편성 (2)

성곽 안의 모습은 중세 시대의 느낌을 지닌 판타지 게임 속 같았다.

“저기요.”

태주가 지나가는 남자에게 길을 물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걸음을 멈춘 남자가 태주의 행색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여기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죠?”

“사람이요? 아무래도 시장이나 광장이지 않을까요?”

“시장이랑 광장……. 그럼 둘 중엔 어디가 더 큰가요?”

“크기는 광장이 큰데, 아무래도 시장이 북적거리긴 하죠.”

“으음. 그럼 시장으로 가는 길을 좀 알 수 있을까요?”

“네. 그냥 이 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다 보면, 조금 전에 얘기한 큰 광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시장의 입구입니다.”

남자가 검지로 방향까지 일러주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아, 광장이랑 시장이 연결되어 있었네요.”

“네. 근데 초행자만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네? 소매치기요?”

도적 클래스를 찾고 있던 터라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든 태주였다.

“네. 특히 그 값비싸 보이는 반지와 팔찌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하는 게 나을 겁니다.”

남자가 태주의 왼손을 장식하고 있는 함 교수의 반지와 티마란의 팔찌를 보며 경고했다.

“네. 알겠습니다.”

물론 도적이 꼬이기 바라는 태주의 입장에선 오히려 좋은 미끼가 준비된 셈이었지만.

*

*

*

잠시 후.

남자가 일러준 방향으로 하염없이 걷던 태주가 마침내 광장에 도착했다.

‘진짜 오른쪽으로 가면 시장이네.’

3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입구에서부터 줄지어 늘어선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이 태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0미터 안에만 있으면 알림이 울리니까 일단 유동인구가 많은 곳부터 돌아봐야겠다.’

발걸음을 돌린 태주가 사람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보며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 안엔 식당, 술집, 여관, 대장간, 무기상점 등 모험가들이 모여 있을 만한 공간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매치기와 마주치기 위해서라도 시장은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 코스였지만.

▶ [알림] 조 편성에 적합한 인물이 반경 10미터 안에 존재합니다.

‘……?!’

알림을 본 태주가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멈춘 이후에도 알림이 그대로라면, 상대가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얼마 못 가 알림이 사라진다면, 상대가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로다.’

상대와의 거리가 10미터 이상 벌어질 만큼 충분한 여유를 두었음에도 알림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지?’

10미터 안이라고만 나왔을 뿐, 후보자를 찾아내는 건 온전히 태주의 몫이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며 모험가가 있을 만한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왼쪽엔 술집, 오른쪽엔 대장간.

하지만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장간 안엔 모험가로 보이는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망치를 든 대장장이가 달궈진 쇠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을 뿐.

‘여긴가?’

반면, 태주의 왼편에 위치한 술집 안에선 다수의 마력이 감지되고 있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주에게 집중됐다.

‘어디 보자.’

남의 시선 따윈 관심 없는 태주가 좌에서 우로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이며 손님들의 클래스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기사 셋에 법사 둘.’

겉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는 녀석은 다섯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주의 시선을 붙잡아 둔 건 구석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허름한 행색의 중년 남성이었다.

‘마력이 심상치 않은데?’

중년 남성의 클래스는 알 수 없었지만, 유력한 조원 후보라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로 갈 동료를 구하고 있습니다.”

조원 후보가 자신과 동일한 목표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태주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김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물론 중년 남성의 반응이 가장 궁금하긴 했지만, 클래스를 확인한 나머지 다섯 명의 의사도 파악할 필요성은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할 의향이 있다면…….”

- “하하하하!”

태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곳곳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 “이보게, 자네 혹시 마시기도 전에 취한 건가?”

대낮부터 취기가 오른 한 손님이 힘없는 손목을 까딱거리며 아서라는 듯이 말했다.

- “무모한 젊음을 위해 건배.”

이번엔 다른 곳에 앉은 손님이 태주를 향해 술잔을 들어 보이며 낄낄거렸다.

- “거, 어차피 죽어서 이고 가지도 못할 거, 가기 전에 쓸 만한 물건이 있으면 좀 나눠주고 가게나.”

태주의 반지와 팔찌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부터.

- “설마 거길 빈손으로 갈 셈이야? 내가 남는 칼이 하나 있는데 이거라도 빌려줄까?”

마른 빵이나 자르던 무딘 칼을 머리 위로 흔들며 조롱하는 사람까지.

- “하하하하!”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을 대하듯 거의 모든 손님들이 태주의 제안에 어리석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태주가 주목하고 있는 중년 남성만큼은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태주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관심을 보였다.’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친 태주가 때 아닌 눈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찰나의 정적.

“…….”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중년 남성이었다.

“잠깐 앉아도 될까요?”

중년 남성의 테이블 앞으로 다가간 태주가 정중하게 물었다.

“나눠 마실 술이 없는데 괜찮겠나?”

중년 남성이 태주를 올려다보며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대화만 나눠도 충분합니다.”

좌판이 반질반질해진 나무 의자를 테이블 밑에서 꺼낸 태주가 중년 남성의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허허, 재미있는 친구군.”

중년 남성이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보르가넨이라고 하네.”

자신을 소개한 중년 남성이 테이블 위로 악수를 청했다.

“신태주입니다.”

태주가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남다른 마력에 법사일 것이란 추측을 해보았다.

“신태주……. 외모만큼이나 이국적인 이름이군. 그래.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로 갈 동료를 구한다고?”

“네.”

“미안하지만, 동료를 구하긴 쉽지 않을 걸세.”

“왜죠?”

“제 발로 찾아가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거든. 뭐, 내 말릴 자격은 없네만, 그대의 선택이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네.”

“그렇게 위험한 곳입니까?”

“떠난 사람은 많아도 돌아온 사람은 없으니 위험하다면 위험한 곳이겠지.”

“정말 돌아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까?”

“그야 모르지. 하지만 비테론 가문의 보물을 찾았다고 자랑하는 놈이 없으니 다 죽은 거 아니겠나?”

보르가넨의 물음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다.

“비테론 가문이요?”

“뭐지, 그 순진한 반응은? 설마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거길 가겠다는 거야?”

보르가넨이 태주의 기초적인 질문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크으.”

대화가 길어질 것이라 여긴 보르가넨이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목부터 축였다.

“그럼 비테론 가문의 보물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겠군.”

“네.”

“어디 보자.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에 빠진 보르가넨이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에 얽힌 이야기를 태주에게 들려주었다.

“그곳의 이름은 원래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가 아니었네. 과거의 이름은 비테론. 비테론 가문이 대대로 지배하고 있던 작은 규모의 성채였지.”

“원래는 이곳처럼 평범한 성채였다는 겁니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 하지만 폭정을 일삼던 비테론 4세는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게 해주겠다는 흑마법사 벨지오스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자신의 정예 기사와 마법사는 물론 궁수와 창병 같은 일반 병사들까지 살육에 미친 벨지오스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렸다네. 한마디로 간악한 벨지오스가 자신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비테론 4세를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든 뒤 성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거듭나게 된 거지.”

‘흑마법?’

순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던 사제의 존재와 신성 공격의 발동 확률을 높여주는 목걸이의 옵션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아, 그래서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라고 불리게 된 거군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은 태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6명으로 공성전이 가능한가?’

상대의 병력 구성을 파악한 태주가 현저한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강구했다.

“근데 비테론 성채 안엔 벨지오스를 막을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겁니까?”

“아니. 비테론 4세의 곁엔 아버지인 비테론 3세 때부터 조언자의 역할을 담당해 온 마법사, 멜라임이 있었네. 그는 언제나 순전했고, 명망이 높았으며, 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었지. 물론 멜라임의 인기를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긴 비테론 4세가 그를 성채 밖으로 쫓아내기 전까지만.”

“으음, 누가 봐도 딱 벨지오스의 등장 타이밍이네요.”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멜라임을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거든. 결국 흑마법에 심취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벨지오스는 비테론 4세의 신임을 얻어 권력의 맛을 보게 되고, 나아가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라도 하듯 자신의 하수인들을 이용해 평화롭던 성채 안을 피로 물들이게 되었지.”

“끔찍하네요. 벨지오스의 하수인이 되기 전엔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텐데.”

“악마로 변한 자신의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를 본 가족들은 삶의 터전을 버린 채 쫓기듯이 성채를 빠져나갔네. 물론 모두가 벨지오스의 광기를 피해 도망치기 바쁠 때 단 한 사람, 멜라임만큼은 벨지오스를 막기 위해 성채로 돌아왔지만.”

“역시 인망이 높았던 인물답게 비테론 4세에 대한 개인적인 서운함보단 질서를 바로잡는 게 우선이었나 보네요. 뭐, 물론 비테론이 아닌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로 남아 있다는 건 결과적으로 벨지오스를 제거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만.”

“맞아. 자네 말대로 결과는 좋지 못했네. 물론 벨지오스만 상대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런 상황을 허용할 만큼 어리석은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벨지오스의 눈엔 적진에 홀로 뛰어든 멜라임의 행동이 어리석고 무모해 보였겠지.”

“글쎄요. 멜라임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봤을 때 그건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이 아니라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비테론을 지키려 했던 멜라임의 숭고한 희생정신 같은데.”

“하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다만 그 용기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

깊은 한숨을 내쉰 보르가넨의 표정에선 씁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성채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알고 계시네요?”

보르가넨의 정보력에 내심 감탄하고 있던 태주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물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태주의 궁금증에 묘한 미소를 지은 보르가넨이 갑자기 자신의 윗옷을 가슴까지 걷어 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