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99화 (99/242)

099. 조 편성 (1)

“네.”

태주가 달갑지 않은 상대의 접근에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하시죠.”

“……. 아니요. 좀 사적인 얘기라.”

태주의 곁에 있는 지수와 원무, 그리고 소영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현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럼 어디서 얘기할까요?”

“으음. 혹시 담배 피우세요?”

현철이 브이자로 만든 손가락을 입 앞에 갖다 대며 물었다.

“아니요.”

“아아, 비흡연자……. 그럼 그냥 복도에서 말씀드리죠 뭐.”

검지로 정수리를 긁적인 현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 쪽을 향해 팔을 뻗었다.

“네. 그러시죠.”

자리 배치 상 현철이 혜린의 팬이란 사실을 들을 수 없었던 태주의 입장에선 대화의 용건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조금 전 상황에 대해 사과를 하거나 지수처럼 팬심을 드러낼 것이란 추측 정도?

“그럼 둘은 먼저 가. 난 어차피 이게 마지막 수업이라 바로 집에 갈 거야.”

태주가 원무와 지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일 전공 시간에 보자.”

함 교수의 수업을 앞둔 원무가 화해의 신호를 보내듯 소영의 손을 은근슬쩍 잡으며 말했다.

“태주야, 빠이.”

원무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해맑게 흔든 소영이 싸운 적이 없는 커플처럼 서로의 옆구리를 밀착시킨 채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저도 이만 가 볼게요.”

눈치 빠른 지수가 자리를 피해 주기 위해 원무와 소영의 뒤를 따랐다.

“어? 이러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겠네요.”

주변이 한산해진 것을 확인한 현철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

“어어, 일단 그쪽, 아니, 신태주 씨 영상을 소개할 때 방해해서 미안해요.”

입으론 사과를 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현철이었다.

“아니요. 교수님 말씀처럼 소수의 의견이 희생되면 안 되죠.”

태주가 진정성이 의심되는 현철의 갑작스러운 사과를 무심하게 받아줬다.

“이야, 역시 성격도 시원시원하시네요.”

태주의 눈치를 살피던 현철이 감사의 인사와 함께 본색을 드러냈다.

“저, 그래서 말인데, 서혜린 씨 하고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예요?”

“그게 왜 궁금하죠?”

대화의 목적이 다른 곳에 있음을 직감한 태주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아니, 뭐, 제가 개인적으로 팬인데, 혹시 통화라도 한번 할 수 있을까 해서요.”

“하아……. 되겠어요?”

태주가 현철의 황당한 제안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예?”

“차라리 팬미팅을 가세요. 목소리만 듣는 것보다 그게 더 낫잖아요. 이참에 실물도 영접하고.”

대화의 필요성을 못 느낀 태주가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씁쓸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아니, 저, 그래도……. 어! 어디 갔어?!”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는 현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태주를 찾아 바쁘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

*

*

잠시 후.

▶ 조별 과제를 이어서 하시겠습니까? (Y/N)

일일 과제를 가뿐히 소화해낸 태주가 잠시 미뤄 뒀던 조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이어하기를 선택했다.

▶ 과제 수행을 위해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강렬한 빛이 시야에서 걷히자 세이브 당시로 돌아온 것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탐색 스킬을 활용해 목적지로 안내하고 있는 꼬꼬로의 뒷모습과 적응이 쉽지 않은 티마란의 험상궂은 얼굴까지.

물론 리스트에 포함된 클래스들을 찾아 조 편성을 마치는 게 우선이라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로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지만, 티마란이 그랬듯 나머지 멤버들 역시 시스템으로부터 동일한 목표를 부여받은 상황이라면,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원 리스트】 (2/6)

1. 전사 (티마란)

2. 기사 (???)

3. 법사 (???)

4. 궁수 (신태주)

5. 사제 (???)

6. 도적 (???)

조원 리스트를 연 태주가 남은 멤버들의 구성을 유심히 살펴봤다.

‘알림 없이도 딱 보면 알 것 같긴 한데.’

막연하게 느낄 수 있는 서브 과제였지만, 다행히 옷차림만으로도 구분 지을 수 있을 만큼 외적인 특징이 뚜렷한 클래스들이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울창한 정글을 벗어나기 위해선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티마란의 우려와 달리 꼬꼬로의 도움으로 미로와 같은 위험 지역을 무탈하게 빠져나온 태주였다.

‘확실히 상식적인 장소는 아니네.’

정글 지대를 벗어나자 스테이지가 바뀐 것처럼 지평선을 따라 끝없이 늘어선 거대한 성곽이 태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꼬꼬로. 저기가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야?”

손으로 햇볕을 가린 태주가 가늘게 눈을 뜬 채 아득한 거리에 있는 성문을 바라봤다.

“꼬꼬로.”

꼬꼬로가 태주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저길 통과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

“꼬꼬로.”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가로젓는 꼬꼬로였다.

“그럼 다른 길도 있지만, 저기로 가는 게 가장 빠르면서도 안전하다는 거야?”

“꼬꼬로!”

그제야 꼬꼬로의 고개가 아래위로 움직였다.

‘여기서 팀원들을 모으는 거구나.’

조 편성을 위한 최적의 장소를 발견한 태주가 꼬꼬로의 고갯짓에 확신을 얻었다.

바로 그때.

“으음. 내가 아는 길이 아니군.”

티마란이 팔짱을 낀 채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전사이기 이전에 오크다. 너와는 특별한 언약을 맺었지만, 다른 인간들에겐 여전히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지.”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로 가는 길은 티마란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꼬꼬로가 추천한 최단 경로가 아닌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최대한 인간과 마주치지 않는 루트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면 이쯤에서 따로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다. 쉽게 말해, 난 오크가 개척한 길로, 넌 인간이 닦아 놓은 길로 각각 이동한 뒤 목적지에서 합류하는 거지.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다는 가정 하에.”

가만히 있어도 심각해 보이는 티마란의 얼굴이 더욱 비장해졌다.

“으음. 안 그래도 지금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하려고 그랬는데, 이렇게 먼저 얘기해 주니 고맙네.”

조 편성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 우선인 태주의 입장에선 신중한 행보로 변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물론 마지막 멘트가 좀 마음에 걸리지만.”

태주는 죽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티마란의 마지막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만약 티마란이 합류 전에 목숨을 잃을 경우 메인 과제의 도전 시기가 미루어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전사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글쎄. 훼방꾼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르면 오늘밤, 늦어도 내일 새벽까진 도달할 수 있을 거다.”

“훼방꾼? 다른 종족도 아니고, 오크가 개척한 길인데 겁도 없네.”

“듣기론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에 가까워질수록 늑대 인간들의 출몰이 잦아진다 하더군.”

“아아, 늑대 인간.”

순간, 준비되지 않은 자에겐 늑대 인간의 뱃속이 마지막 목적지라고 했던 티마란의 섬뜩한 경고가 떠올랐다.

“그럼 내가 지름길로 가니까 먼저 도착해서 싹 다 쓸어 버릴게.”

태주가 활을 쏘는 제스처를 취하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태주의 활솜씨를 아는 티마란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부탁?”

“내 팔찌를 잠시 돌려줄 수 없겠나?”

“팔찌? 내가 분명 성채를 함락시킨 뒤에 돌려준다고 했을 텐데.”

“물론 오크 전사의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은 잊지 않았다. 다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려는 것뿐이니 부디 이해해주기 바란다.”

“으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받아둔 팔찌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받아가겠다? 그럼 애초에 팔찌가 아닌 다른 걸 맡겼어야지.”

다른 상황도 아니고, 따로따로 이동할 때 팔찌를 넘긴다는 것은 수갑을 찬 죄수에게 열쇠를 넘기는 꼴이었기 때문에 태주의 입장에선 티마란에 대한 믿음을 떠나 협상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아, 대신 이걸 줄게.”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가 새터 때 획득한 최고급 회복 포션인 파이안 한 병을 티마란에게 내밀었다.

“그게 뭐지?”

티마란이 태주의 손바닥 위에 놓인 자그마한 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태주가 티마란의 두툼한 손에 파이안을 쥐여 주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 말도 안 돼. 고작 이런 액체 따위가 내 팔찌를 대신할 수 있다고?”

티마란이 태주의 대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파이안을 돌려주려 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내가 원하는 건 오직 용맹함을 증명한 오크 전사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러운 팔찌다.”

“그래?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근데 너.”

티마란의 손에서 파이안을 낚아챈 태주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변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당당하지?”

티마란의 콧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바짝 다가선 태주가 심장이 위치한 가슴팍을 검지로 지그시 누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네 묏자리 정도는 내가 얼마든지 정할 수 있는데 말이야.”

위계질서의 필요성을 느낀 태주가 지금 당장이라도 널 제거할 수 있다는 섬뜩한 뉘앙스를 풍기며 티마란을 압박했다.

“크흡!”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티마란에겐 태주의 검지가 마치 자신의 심장을 관통할 화살촉처럼 느껴졌다.

“착각하지 마. 약속을 정할 수 있는 것도 나고, 바꿀 수 있는 것도 나야. 알겠어?”

“…….”

태주와의 첫 만남에서도 그랬듯 전사로서의 자존심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지만,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반항의 비참한 결말이 티마란으로 하여금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 할 얘기 없으면, 먼저 출발해. 난 필요한 인원이 모이는 대로 따라갈 테니까.”

냉정하게 발걸음을 돌린 태주가 꼬꼬로와 함께 성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그럼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더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포기한 티마란이 태주의 뒷모습을 향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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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 착용한 아이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티마란과 떨어진 태주가 영웅 오크의 혼이 담긴 포효의 팔찌를 착용했다.

‘공격력에 버프가 집중돼서 그런가? 확실히 주먹만 쥐어도 느낌이 다르네.’

아티팩트의 성능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팔찌를 돌려받기 원했던 티마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개인적인 공감과는 별개로 과제를 완수하기 전까진 팔찌를 돌려줄 생각이 없었지만.

“꼬꼬로, 잠깐만 쉬고 있어.”

티마란 정도는 아니었지만, 꼬꼬로 역시 몬스터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어 좋을 것은 없었다.

▶ 회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조원들을 모아볼까?’

온전히 혼자가 된 태주가 웅장한 성문 안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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