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크리에이터 (3)
[“안녕하세요. 오늘 매니저 면접 때문에 왔는데요?”]
영상 속 태주는 서혜린이 속한 다이아 엔터테인먼트의 건물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 “어? 진짜로 기획사를 찾아갔네?”
- “근데 자막도 그렇고, 편집이랑 연출이 심상치 않은데? 뭔가 프로의 냄새가 나.”
- “그러게. 그냥 우리처럼 휴대폰이나 하나 세워 놓고 찍은 느낌이 아니야.”
학생들의 추측대로 태주는 지상파와 케이블 예능의 외주 제작 경험이 있는 실력 있는 스텝들을 고용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그래 봤자 3학점짜리 교양 수업 과제인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5명 중 1명꼴로 받는 A인데.”
- “하긴, 이미 구독자로 압살한 상황에서 굳이 퀄리티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과제만을 위한 투자라고 봤을 땐 가성비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과도한 지출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태주는 수업과 관계없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계속 채널을 운영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제작비 문제에 대해선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물론 현재의 구독 수와 조회수, 거기에 광고를 비롯한 각종 수익 모델이 추가된다고 봤을 땐 손해를 보는 구조가 전혀 아니었지만.
[“매니저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픽업인데, 혹시 면허는 있으세요?”]
곧이어 다이아 엔터테인먼트의 실장급 매니저가 태주에게 매니저로서의 자격을 묻는 장면이 나왔다.
[“네. 근데 아직 차가 없어서 장롱면허예요.”]
- “풉! 매니저에 지원했는데 장롱면허래.”
- “뭐야, 그럼 연예인이 직접 운전하고 매니저가 뒤에 타는 거야?”
- “벌써부터 추노 엔딩 플래그가 보이는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실소가 터진 아이들이 태주의 영상에 점점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아, 네……. 그럼 혹시 잘하는 게 뭐예요?”]
살짝 당황했던 실장이 태주의 이력서를 훑어보며 물었다.
[“활을 좀 쏘고요. 무거운 거 잘 들고, 남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어요.”]
[“아아, 활이요……. 으음. 그래도 힘이 센 거랑 빠릿빠릿한 거는 마음에 드네요.”]
- “큭큭큭큭. 지금 찐으로 당황한 거 봤어?”
- “눈으로 심한 욕한 거 같은데?”
- “아니, 매니저가 활을 왜 쏘는데.”
- “왜긴, 활이 있으면 사생팬도 쫓아내고 좋잖아.”
- “그 정도면 매니저가 아니라 경호원, 아니, 킬러 아니야?”
- “이거 다큐인 줄 알았더니 완전 콩트네.”
- “뭐지?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이들마저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채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똑똑똑!]
비밀 게스트인 서혜린이 경쾌한 노크 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틈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 “어! 진짜 서혜린이다!”
- “뭐야! ㅅㅎㄹ이 진짜 서혜린이었어?”
- “서혜린이 왜 저기서 나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20대 여배우인 서혜린의 등장에 강의실 안은 이미 팬미팅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 “오오, 대박! 서혜린을 어떻게 섭외했지?”
- “근데 서혜린 매니저 정도면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내면서 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잠깐. 그럼 매니저가 장롱면허니까 서혜린이 직접 운전하는 거야? 완전 미쳤네?”
개인 방송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방송사급 섭외력에 놀란 학생들의 고개가 또 한 번 태주를 향해 돌아갔다.
물론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정 교수는 서프라이즈에 동참한 사람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태주야, 너 서혜린이랑 또 만났어?”
휴게소에서의 일화를 알고 있는 원무가 태주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며 부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어. 전에 연락처를 받은 게 있어서 그냥 제안만 해봤는데, 흔쾌히 허락을 해줘서 같이 촬영하게 됐어.”
“언제?”
“연락은 과제가 나오자마자 했고, 촬영은 토요일에.”
“와아, 그럼 하루 종일 서혜린이랑 있었던 거야? 난 그날 방구석에서 서혜린이 나온 드라마만 정주행하고 있었는데?”
소영이 자신을 째려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원무가 눈치 없는 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태주야,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나도 좀 같이…… 헉!”
합방을 핑계로 사심을 채워보려던 원무가 뒤늦게 발견한 소영의 매서운 눈빛에 화들짝 놀랐다.
“소, 소영아, 잠깐 내 말 좀…….”
냉전의 장기화를 직감한 원무가 말까지 더듬어가며 상황을 수습해보려 했지만, 등받이 뒤로 넘긴 소영의 오른쪽 손바닥 위엔 이미 현재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파이어볼의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태주의 영상을 보고 있던 거의 모든 CC들이 두 사람과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었지만.
[“태주야, 안녕. 그새 더 멋있어졌네?”]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혜린이 실장의 옆자리에 앉으며 CF 속에서나 볼 법한 환한 미소를 보냈다.
- “뭐? 그새? 내가 지금 잘못 들었냐?”
언어영역 만점자가 널려 있는 한국대 학생들의 귀에 ‘그새’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꽂혔다.
- “아니야. 나도 들었어.”
- “뭐야, 설마 초면이 아니라는 거야? 어떻게?”
- “솔직히 난 구면인 것보다 반말을 했다는 게 더 충격적인데? 두 사람이 그 정도로 가깝다고?”
- “와아, 인맥 미쳤네.”
- “일단 재수가 아니라 현역으로 들어왔으면, 서혜린이 누나가 맞는데, 으음. 우리끼리 이걸 따져서 뭐하지? 갑자기 현타 오네.”
- “감히 나의 서혜린을……. 오늘부터 대한민국 최악의 헌터는 신태주다.”
- “야, 얜 또 왜 이렇게 부들거리냐?”
- “공부로 성공해서 서혜린 만나겠다고 한 애라 그래.”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부러움과 질투심으로 인해 영상을 보면 볼수록 태주를 돌아보는 횟수가 눈에 띄게 많아진 남학생들이었다.
[“일일 매니저로 온 건데, 왜 내가 더 떨리지? 아, 이런 걸 성덕이라고 하나? 사실 어렸을 땐 나도 헌터가 되고 싶었거든. 특히 궁수가.”]
두 손을 심장이 있는 위치에 포갠 혜린이 태주를 향한 팬심을 드러냈다.
- “뭐?! 떨려?! 천하의 서혜린이 일반인한테?!”
- “뭐,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외모나 비율은 나쁘지 않잖아. 생각보다 화면발도 잘 받고.”
- “우와, 서혜린이 신태주의 성덕이라고? 신태주가 성덕이 아니라?”
- “근데 서혜린이 헌터를 꿈꿨다는 건 좀 의외다. 그것도 궁수를.”
- “크윽. 오늘부터 신태주는 단군 이래 최악의 헌터다.”
- “야, 얘 이러다 빌런 되는 거 아니야? 지금도 거의 흑화 수준인데?”
- “그래도 수학과면 분수는 알겠지. 그냥 모른 척해.”
태주의 영상이 수업의 일부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일부 학생들이 친구들과 TV를 보며 떠드는 것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그때.
딸깍! 딸깍!
시간 안배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정 교수가 지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태주의 영상을 임의적으로 멈췄다.
- “어! 뭐야!”
- “아아!”
그러자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하기 위해 PC방의 전원을 내렸을 때처럼 하이라이트 부분을 놓친 학생들의 원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미안하지만, 100개가 넘는 채널을 한 번씩이라도 소개하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정 교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양해를 구했다.
- “교수님, 제 거 안 보여 주셔도 되니까 그냥 틀어 주세요.”
- “맞아요. 본격적인 재능 낭비는 지금부턴데.”
- “어차피 다른 영상 틀어봤자 책상 밑에서 볼걸요?”
- “전 벌써 구독까지 눌렀어요.”
처음엔 메일이 도착한 순서를 무시하면서까지 태주의 영상부터 틀어줬던 정 교수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학생들이 더 태주의 영상에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 “교수님, 벌써 기사도 났어요. 서혜린이 100만 윷튜버의 개인 방송에 출연했다고.”
한 학생이 포털사이트에 실린 기사 화면을 정 교수에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 “댓글 수도 장난 아니네. 오픈한지 1시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10000개가 넘어갔어.”
- “우와, 10000개면 채널 주인도 다 못 읽겠는데?”
- “뭐야, 거의 다 서혜린 댓글 아니야?”
- “아니야. 지금 위에서부터 인기순으로 정렬했는데, 댓글 지분의 90% 이상이 신태주 얘기야.”
- “팬덤 화력 미쳤네. 지금 검색해보니까 인수다 팔로워도 1500만 명이 넘는데? 팬카페도 여러 개 있고.”
- “1500만? 와아, 난 지금 팔로워 늘려주겠다는 광고 계정까지 포함해서 15명인데.”
영상이 멈춰 있는 동안 휴대폰을 꺼내든 학생들이 태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알겠어요. 대신, 영상의 길이가 거의 20분이니까 이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다시 말해, 아직 채널이 소개되지 않은 학생들의 의사부터 확인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합의점을 모색하던 정 교수가 전체가 아닌 특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자, 그럼 아직 영상이 공개되지 않은 분들만 손들어 주세요.”
정 교수가 오른손을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묻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수많은 학생들이 하나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자신의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분들만 빼고, 나머지는 손을 내려 주세요. 아,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니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는 전혀 없어요.”
정 교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장을 향하고 있던 학생들의 손이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인원은 단 한 명.
바로 태주를 단군 이래 최악의 헌터라 칭했던 질투의 화신이었다.
- “아, 뭐야, 눈치 없게.”
- “아아, 저 수학과 새끼 진짜 사회성이 난제네. 답이 없어.”
- “본인은 내리고 싶은데 순간적으로 팔에 마비가 온 건 아닐까?”
- “뭐, 다수결이 꼭 옳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분위기면 눈치껏 내려야지.”
- “그러게. 오히려 쟤가 더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것 같은데?”
사방에서 빗발치는 야유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질투의 화신은 꿋꿋하게 손을 들고 있었다.
“혹시 반대의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정 교수가 질투의 화신과 눈을 마주치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제 시간을 양보하면서까지 관심 없는 영상을 보고 싶진 않아서요.”
영상 속 혜린의 얼굴은 계속 보고 싶었지만, 태주가 다른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으음. 그럼 나머지 학생들은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용감한 1인의 대답을 들은 정 교수가 이번엔 다수의 의견을 물었다.
- “네!”
학생들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마치 눈치 없는 1인을 향해 화를 내는 것처럼 들렸다.
“좋아요. 그럼 소수의 의견이 희생되면 안 되니까 일단 영상은 다 보는 것으로 하고, 대신, 저 학생의 채널을 바로 뒤에 소개하면 되겠네요.”
- “네?!”
태주와 제대로 비교 당할 위기에 처한 질투의 화신이 정 교수의 현명한 판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