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크리에이터 (2)
“와아, 디스COVER리까지는 어떻게 비벼볼 만했는데, 먹빵지수1위는 아무리 봐도 넘사벽이네. 거의 크리에이터계의 신태주 정도?”
근자감의 아이콘인 원무마저도 질투의 수준을 넘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수의 압도적인 인기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그럼 사람들이 왜 지수의 영상에 열광을 하는지 한번 확인해볼까요?”
ASMR이란 콘텐츠답게 볼륨을 키운 정 교수가 지수의 먹방 영상을 플레이했다.
[“먹빵지수의 ASMR…….”]
강의실 안에 울려퍼진 지수의 나른한 목소리에 학생들이 설명할 수 없는 찌릿함을 느꼈다.
- “오오, 뭐야 이거. 완전 소름.”
- “ASMR이 이런 거였어?”
자율감각쾌락반응 영상을 처음 접한 아이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팔뚝에 돋은 닭살을 매만졌고.
- “와아, 진짜 팅글 미쳤다.”
- “아아, 이런 건 침대에 누워서 이어폰으로 들어야 되는데.”
- “난 이거 듣다 아예 본계정에 있는 영상까지 싹 다 들었잖아.”
소위 말하는 ASMR 고인물들은 지수의 영상을 극찬하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
지수가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물자 평소엔 의식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소리들이 학생들의 고막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이야, 역시 네임드는 다르네. 확실히 배울 점이 있어.”
지수의 영상에 집중하던 원무가 깨달음을 얻은 비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다음엔 ASMR 먹방을 해볼까? ASMR 햄최몇 뭐 이런 걸로?”
“아니야. B라도 받고 싶으면, 제발 하고 싶은 거 그만하고, 일단 소영이가 시키는 대로 해.”
보다 못한 태주가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원무의 등을 토닥이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어? 이렇게나 반응이 폭발적이면 다음 영상을 준비한 학생들이 너무 부담스럽겠는데?”
최대한 균등하게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던 정 교수가 지수의 영상을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 3:42 킬링 파트라 무한 반복 중- 내가 보려고 만든 탐라▼
1. 0:01~0:09 오프닝
2. 0:10~0:27 인사말
3. 0:28~1:41 메뉴 소개
...
- 민초가 섞여 있는 걸 보니 역시 배우신 분 ㅋㅋㅋ
┗ 민초단: 정상
반민초단: 정상
민초단 비하: 비정상
- 이거 본계정에도 올려주세요ㅠㅠ
“댓글들이 되게 많네. 타임라인도 팬들이 대신 정리해주고 있고……. 아아, 하이라이트 부분은 아예 바로가기처럼 댓글에 표시해 놓은 거야? 와아, 진짜 지극정성이다.”
일일이 다 읽어볼 수도 없는 수백 개의 댓글들을 겉핥기식으로 스크롤하던 정 교수가 팬들의 화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근데 태주야, 네 거는 언제 나와? 지금 보니까 아직 강의 게시판에 안 올라온 것 같은데.”
자신의 순서를 가늠해보기 위해 강의 게시판을 살펴보던 원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영상은 미리 찍어 놨는데, 편집이 좀 늦어져서 수업 들어오기 직전에 겨우 보냈어.”
원무에겐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둘러대긴 했지만, 실상은 드라마틱한 역전으로 주목받기 위한 의도적인 지각이었다.
“어? 그럼 채널을 조금 전에 개설한 거야?”
태주의 의도를 알 리 없는 원무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럼 조회수를 뽑을 시간이 부족하지 않아?”
입학식 때 이미 태주의 인기를 실감했던 원무지만, 제아무리 1500만 명이 넘는 인수다 팔로워를 지닌 국제적인 영향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첫날인데.”
채널의 성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태평하게 말하긴 했지만, 홍보와 관련된 형평성 논란은 지난 시간에 이미 먹빵여신의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에 수업에 들어오기 전, 인수다와 비공식 팬클럽을 통해 채널 개설 사실을 당당히 밝힌 태주였다.
“하긴, 이번 영상 하나로 학점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최소 3달 이상은 계속 업로드를 해야 되니까.”
원무의 말대로 처음부터 조급할 필요는 없었지만, 기세와 흐름의 무서움을 아는 태주는 첫 번째 영상에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하고 싶었다.
*
*
*
그로부터 약 1시간 후.
“자, 이제 수업을 다시 시작할까요?”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졌던 정 교수가 강의대로 돌아와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네.”
커피를 마시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학생들이 정 교수의 목소리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태주야, 네 거는 메일을 늦게 보내서 맨 마지막에 나오겠다.”
소영이 혹평의 충격에 엎드려 있는 원무를 대신해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참고로 ‘나 진짜 마법소영’이란 채널을 개설한 A급 법사 소영은 마술사인 척하는 마법사의 설정으로 ‘나 진짜 마법사야’라는 시그니처 멘트까지 준비, 깜빡 속아 넘어간 사람들의 유쾌한 모습을 담은 몰래카메라 형식의 콘텐츠로 정 교수와 학생들의 호평을 받았다.
“아마도 그렇겠지?”
물론 지수를 벤치마킹했던 햄최몇 영상은 태주와 소영의 우려대로 공개 직후 쏟아진 학생들의 싸늘한 반응에 황급히 종료된 상태였지만.
“와아, 수강생이 100명이 넘어서 그런가? 채널당 고작 1~2분밖에 안 쓴 것 같은데 시간이 정말 빨리 빨리 가네요.”
모니터 우측 하단에 위치한 시계를 슬쩍 확인한 정 교수가 강의 게시판을 스크롤하며 남은 채널의 숫자를 확인했다.
“아, 그리고 제가 아침까지만 메일을 확인해서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었는데요. 놀랍게도 제 강의를 포기하신 줄 알았던 마지막 한 분의 메일이 수업 시작 직전에 도착했었다는 걸 당사자의 제보로 뒤늦게 파악했어요.”
정 교수의 말대로 태주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채널 개설 사실을 알렸는데, 수업 종료 직전이 아닌, 첫 번째 쉬는 시간을 적기로 삼은 건 약 1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더 큰 놀라움을 자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상 편집이 늦어지는 바람에 수업 시작 10분 전까지만 해도 채널을 오픈하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더 놀라운 것은……. 아니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낫겠다.”
딸깍! 딸깍!
입 대신 마우스를 움직이기로 한 정 교수가 강의 게시판이 아닌 메일함을 열어 태주가 보낸 링크를 클릭했다.
바로 그때.
[채널명: S급의 재능 낭비]
[구독자: 142만 명]
- “뭐?! 142만 명?!”
먹빵여신이 3개월에 걸쳐 확보한 30만 구독자를 단 하루 만에 찍어주겠다던 태주의 각오가 한낱 허풍이 아니었음을 똑똑히 증명하는 수치였다.
- “어? 분명 수업 시작 10분 전까지만 해도 개설을 못 했다고 그랬는데.”
- “뭐야, 그럼 기껏해야 1시간이 조금 넘은 거잖아. 이게 말이 돼?”
- “우와, 구독자 수만 봐도 먹빵지수1위보다 10배는 더 많은데?”
- “그러게. 개설 일주일 만에 은색 말판이라고 부러워했는데, 이건 뭐, 황금 말판을 1시간 컷으로 뚫어버리네.”
태주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믿을 수 없는 수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으음. 저도 여러분과 같은 반응이었는데요. 어? 그새 또 구독자 수가 늘었네요. 제가 확인했을 땐 130만이 조금 넘었었는데.”
마이크를 든 정 교수의 목소리가 묻힐 만큼 학생들의 웅성거림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건 헌터학과 1학년인 신태주 학생의 채널이에요.”
마우스에서 손을 뗀 정 교수가 태주를 향해 팔을 뻗자 약속이라도 한 듯 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 “야, 신태주면 걔 아니야?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
- “와아, 대충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였어?”
워낙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름이라 헌터에 관심이 없는 비각성자 학생들도 태주의 존재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야, 태주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142만?”
책상에 엎드려 있던 원무가 미어캣처럼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우와, 입학식 때 대충 눈치는 챘지만, 너 진짜 장난 아니다.”
이번엔 소영이 태주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태주야, 다음 영상은 나랑 합방하면 안 돼? 어?”
3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원무가 속칭 빨대를 꼽기 위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태주의 팔을 붙잡았다.
“왜? 태주랑도 햄버거 먹게?”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원무의 얄팍한 속셈에 눈살을 찌푸린 소영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비꼬듯이 말했다.
[(SUB) 첫 번째 재능 낭비, 여배우 매니저 (feat. ㅅㅎㄹ) 추노 엔딩!]
태주가 준비한 콘텐츠는 채널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최고의 재능이라 평가 받고 있는 S급 매직 아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 도전, 재능을 낭비한다는 설정의 직업 체험형 관찰 예능이었다.
[조회수: 385만회]
[112만(모) : 87만(윷) : 2만(걸) : 1천(개) : 3천(도)]
- “우와! 조회수 미쳤다!”
- “무슨 모가 저렇게 많지?”
- “심지어 개나 도도 거의 없어.”
학생들의 반응은 영상을 보기 전부터 이미 폭발적이었다.
- “쟤도 먹빵여신처럼 해외 팬들이 많나? 제목 앞에 아예 SUB이라고 표시해놨네.”
- “여배우 매니저? 근데 ㅅㅎㄹ이 누구지?”
- “글쎄. 지금 딱 떠오르는 건 서혜린밖에 없는데.”
- “에이, 서혜린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영상에 나와. 그냥 서혜린인 척 제목으로 낚는 거지.”
- “하긴, 서혜린 출연료가 얼만데, 고작 과제용 영상에 얼굴을 비치겠어.”
특히 초성으로만 표시된 여배우의 정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는데, 헌터학과가 아닌 이상 새터 때 있었던 태주와 서혜린의 만남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제목에 언급된 피처링을 단순한 어그로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이미 영상을 확인하고 온 정 교수는 댓글을 통한 스포가 발생하지 않도록 화면의 위치를 교묘히 조정하고 있었지만.
- “뭐야, 추노 엔딩이면 하다가 힘들어서 도망갔다는 거 아니야?”
- “어? 그럼 재능 낭비라는 표현은 반어법인가 본데?”
- “근데 일단 콘텐츠 자체는 신선하지 않아? 솔직히 먹방 같은 건 벌써 10명도 넘게 나왔잖아. 심지어 메뉴까지 겹친 사람도 있었고.”
- “교수님이 먹빵여신한테 원했던 새로운 시도가 이런 건가?”
먹방에 대한 인기가 식은 건 아니었지만, 보는 입장에선 같은 형태의 콘텐츠를 계속 시청하는 것이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었다.
“…….”
모두가 태주의 채널로 술렁이는 사이, 도도한 미소로 1등을 장담했던 지수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자, 그럼 신태주 학생이 어떤 영상을 올렸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요?”
태주의 섭외력에 놀라워하고 있던 정 교수가 드디어 전체화면으로 전환된 태주의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