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95화 (95/242)

095. 크리에이터 (1)

“그냥 여기 있어 주면 안 돼? 네가 있어야 그나마 덜 불편할 것 같아서.”

원무가 간절한 눈빛으로 태주에게 애원했다.

“그냥 아예 떨어져서 앉거나 하루 정도 빠지면 안 돼?”

태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원무의 손을 떼어냈다.

“태주야, 네가 아직 뭘 모르나 본데 여친이랑 다신 안 볼 것처럼 싸운 뒤에도 이렇게 시야 안에는 들어와 있어야 자연스럽게 화해도 되고 그런 거란다.”

“아니, 대체 뭘 잘못했는데 그래?”

원무의 사연이 궁금했던 태주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어, 그러니까 그게…….”

자신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소영의 옆모습을 힐끗 쳐다본 원무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과제로 업로드 할 영상을 소영이한테 제일 먼저 보여줬는데, 아니, 나더러 정떨어진다고 콘텐츠를 바꾸라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서운했던 감정이 치받친 원무가 흥분한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무슨 콘텐츠를 업로드 했는데?”

“어, 그래. 네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번 판단해 봐.”

휴대폰을 꺼낸 원무가 자신의 윷튜브 채널을 태주에게 자신 있게 보여주었다.

[채널명: 최원무야호TV]

“뭐야, 채널 이름이 최원무야호TV야? 이게 무슨 뜻인데?”

태주가 원무의 작명 센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이거? 이거 그냥 내 이름에 야호를 붙인 거야. 크리에이터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일종의 각오라고나 할까? 왜 그 정상에 오르면 꼭 야호를 하잖아.”

태주의 미적지근한 반응과 달리 크리에이터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원무는 자신의 채널명이 꽤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구독자: 4명]

“근데 야호를 외치기엔 구독자 수가 너무 적은 거 아니야?”

태주가 4명밖에 안 되는 원무의 구독 현황에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일단 소영이를 빼면, 실제 구독자 수는 3명밖에 없잖아.”

“3명이 아니라 4명 맞는데?”

“뭐? 왜?”

“소영이는 나랑 싸우자마자 구독을 취소했거든.”

“아아…….”

원무의 웃픈 고백을 들은 태주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튼 이게 내가 업로드 한 영상인데, 저기 저 먹빵여신인지 뭔지 하는 애가 앉은 자리에서 햄버거 20개를 먹는 햄최몇 영상으로 무려 200만이 넘는 조회수를 찍었다고 해서 나는 그 두 배인 40개에 도전했거든. 이게 내가 올린 영상이야.”

[(햄최몇?) 먹빵여신도 울고 가는 치즈버거 40개 챌린지! 빨리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email protected]]

“으음. A급 힐러지만, 제목에선 S급 어그로가 느껴지는데?”

썸네일엔 햄버거에 파묻힌 채 얼굴만 내놓고 있는 원무의 모습이 편집되어 있었다.

“그렇지 네가 보기에도 사람들이 눌러보고 싶게 생겼지?”

태주의 빈말에 자신감이 붙은 원무가 신이 나서 물었다.

[조회수: 10회]

“어? 조회수 올랐다.”

개인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원무가 미세한 조회수 변동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게 오른 거야?”

“어. 어제보다 거의 두 배 늘었는데, 이런 속도라면, 내일은 20, 모레는 40, 그 다음날엔 80, 4일 뒤엔 160, 와아, 이거 이러다 먹빵여신의 200만 뷰도 금방 뛰어넘겠는데? 아, 그리고 수업과는 별개로 채널은 계속 운영할 거야. 뭔가 떡상의 가능성도 좀 있어 보이고.”

“오오, 그래도 적성에 맞나 보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던 태주가 기울였던 상체를 잠시 등받이에 기댄 뒤 한 칸 건너에 앉아 있던 소영이를 쳐다봤다.

“…….”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던 소영이 태주를 향해 가망이 없다는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 이게 내 첫 번째 영상이야.”

화면에 집중하느라 태주와 소영이 눈빛을 교환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원무가 들뜬 손놀림으로 영상을 스트리밍 했다.

[“안녕하세요. 최원무야호TV의 최원무입니다. 오늘 준비한 영상은 햄최몇인데요.”]

30분 남짓의 영상을 다 보여줄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기준에서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골라 태주에게 보여주는 원무였다.

‘왜 반대했는지 이제야 알겠네.’

물론 영상이 진행될수록 태주의 표정은 소영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었지만.

“야, 이거 다이어트용 영상이야?”

개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보는 이로 하여금 먹고 싶다는 생각보단 식욕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원무의 게걸스러운 먹방에 경악한 태주가 완곡한 표현을 빌려 물었다.

“뭐? 다이어트용? 왜?”

“아니야. 근데 댓글 같은 건 없어?”

점심을 앞두고 있던 태주가 황급히 전체화면을 종료시킨 뒤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는 핑계로 화면을 밀어 올렸다.

[0(모) : 0(윷) : 0(걸) : 1(개) : 3(도)]

윷튜브의 경우 좋아요나 싫어요가 아닌, 도, 개, 걸, 윷, 모로 콘텐츠를 평가했는데, 원무가 올린 첫 번째 영상의 경우 태주의 예상대로 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예지력 폭발이네.”

“뭐? 예지력?”

나지막이 내뱉은 태주의 본심에 원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의외로 도가 좀 많아.”

“의외로?”

태주가 원무의 시무룩한 표정에 말을 아꼈다.

“으음. 그래도 개를 준 사람이 있네.”

최대한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 열심히 포장은 했지만, 근본적인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 그건 소영이가 누른 거야. 영상이 너무 개 같다고.”

“아아…….”

원무의 해맑은 대답에 순간적으로 리액션이 고장 난 태주였다.

물론 그 어떤 야박한 평가도 영상에 달린 댓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 말할 때마다 입 안에 있는 게 다 보여서 극혐. 앞으론 영상 앞에 혐 표시 부탁요. 아, 앞으로 올 일이 없지 ㅋㅋㅋ┗ 햄버거로 촉감 놀이하는 줄;;

- 네. 잘 드시네요. 좋으시겠어요.

-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이 사람 앞에서 밥 먹는 여친이 나보다 더 불쌍함. 뭐, 하는 짓은 딱 모쏠 같지만 ㅋㅋㅋ

“야, 이거 다 고소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인격모독 수준의 악플에 당황한 태주가 원무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안 돼.”

원무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소영이가 남긴 것도 있거든.”

“뭐?”

“여기 이거. 네. 잘 드시네요. 좋으시겠어요. 이거 소영이가 쓴 거야.”

“아아…….”

오늘따라 유독 리액션 고장이 잦은 태주였다.

“근데 힐러라 마상을 덜 받는 거냐? 아님 멘탈이 탱커 수준인 거냐?”

태주가 생각보다 덤덤해 보이는 원무의 쿨한 반응에 경의를 표하며 물었다.

물론 원무의 평정심이 흔들리는 포인트는 따로 있었지만.

“나? 나야 뭐…… 어! 뭐야! 구독자가 한 명 줄었어!”

[구독자: 3명]

워낙 숫자가 적다 보니 한 명만 빠져나가도 마치 100명이 줄어든 것처럼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태주야, 너 아직 내 거 구독 안 했지? 안 했으면, 지금 빨리…….”

조급해진 원무가 태주의 핸드폰을 찾고 있던 바로 그때.

덜컥!

강의실로 들어선 정유진 교수가 학생들에게 밝은 미소를 보내며 강의대로 향했다.

“다들 한 주간 잘 지냈어요?”

- “네.”

계단형 강의실을 가득 채운 100명 이상의 수강생들이 정 교수의 안부 인사에 한목소리로 답했다.

“이번 주가 수강 정정 기간인데, 딱 한 분만 빼고는 채널 주소가 담긴 메일을 오늘 아침까지 보내 주셨더라고요.”

딸깍! 딸깍!

정 교수가 대형 스크린에 강의 게시판을 띄우며 말했다.

“그 말인즉슨, 제 강의를 거부하신 분이 딱 한 분밖에 없다는 뜻이겠죠? 아주 감사하게도?”

한 명만 수강을 포기했다는 말에 학생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아는 사람인지를 확인했다.

“아, 그 한 분이 누군지 몰라서 얘기한 건 아니니까 굳이 찾으려고 하진 마세요.”

정 교수가 학생들의 분주한 눈동자를 귀엽게 바라보며 말했다.

“자, 강의 게시판을 보면 이렇게 여러분들이 보낸 채널의 주소가 메일이 온 순서대로 쭉 정리되어 있으니까 다른 친구들의 영상이 궁금하면 한 번쯤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도록 하세요.”

- “네.”

“좋아요. 그럼 다들 어떤 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했는지 하나씩 살펴볼까요?”

정 교수가 가장 일찍 메일을 보낸 학생의 채널부터 차례대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채널명: 디스COVER리]

[구독자: 22명]

“아, 여긴 경영학과 2학년, 이승택 학생이 개설한 채널인데요.”

[(디스COVER) 네가 이런 식으로 내 원곡을 짓밟으면, 마, 그때는 음색깡패가 진짜 깡패가 되는 거야!]

“평범한 커버곡이 아니라 원곡자를 디스하는 수준으로 부른 음치 커버 영상을 올렸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고요.”

[조회수: 117회]

[3(모) : 7(윷) : 5(걸) : 13(개) : 27(도)]

“으음. 끝까지 듣기엔 좀 무리가 있었지만, 채널명도 그렇고, 나름 반전매력이 있는 콘텐츠라 조회수를 떠나서 시도 자체는 훌륭했던 것 같아요. 잘했어요.”

수업 전에 미리 영상을 보고 왔던 정 교수가 다른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별도의 재생 없이 은근슬쩍 다음 채널로 넘어갔다.

잠시 후.

“드디어 신문방송학과 1학년, 임지수 학생의 채널이 나왔네요.”

[채널명: 먹빵지수1위]

[구독자: 13.7만 명]

30만 윷튜버인 먹빵여신의 부계정으로 들어간 정 교수가 이전에 본 채널들과는 확연히 다른 구독자의 숫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지수는 인기가 많네. 채널을 개설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구독자 수가 10만 명을 넘고……. 이제 곧 본사에서 은색 말판이 오겠는데?”

윷튜브의 경우 구독자의 수가 10만을 넘으면 은색 윷놀이 말판을, 100만이 넘으면 금색 윷놀이 말판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네.”

먹빵여신 지수가 1등을 확신하며 도도한 미소를 지었다.

[(ASMR먹빵) 뚱카롱은 못 참지! 리얼사운드. 팅글주의!]

“아쉽게도 콘텐츠의 구성 자체는 주계정에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래도 익숙한 모습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성적이 좋긴 해.”

[조회수: 21만회]

[6.3만(모) : 4.7만(윷) : 1만(걸) : 7천(개) : 2.1만(도)]

도를 선택한 사람만 2만 명이 넘을 만큼 안티도 많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막강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견제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지수야.”

“네, 교수님.”

“어차피 종강 때까지 널 이길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한 번쯤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먹방이 아닌 의외의 콘텐츠로.”

20명까지 A학점을 줄 수 있는 정 교수의 입장에선 A+가 확정적인 지수가 안전이 아닌 도전을 택하길 원했다.

“네, 교수님.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신을 대적할 자가 강의실 안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던 지수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물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주만은 부러운 기색 하나 없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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