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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94화 (94/242)

094. 개강 2주차 (5)

- “어! 뭐야!”

- “야, 이거 교수님 목소리 아니야?”

- “어? 이상하다. 태주한테 분명 교수실로 오라고 하셨는데?”

태주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엄 교수의 목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최희범.”]

“예! 교수님.”

이제 막 첫 번째 화살을 발사하려던 희범이 엄 교수의 부름에 놀라 CCTV가 있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임세준.”]

“예? 저도요?”

제 손으로 내팽개쳤던 활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던 세준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희범을 돌아봤다.

[“두 사람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순간적인 감정에 못 이겨 목숨과도 같은 활을 집어던졌다. 죽는 순간까지 쥐고 있어야 할 활을 스스로 버렸다는 건 궁수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뜻이지.”]

“…….”

희범과 세준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엄 교수의 일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또한 너희 둘은 동기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동료애마저 보여주지 못했다.”]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엄 교수의 입장에선 희범과 세준의 다툼이 달가울 리 없었다.

- “교수님이 저 상황을 어떻게 아시지? 설마 처음부터 보고 계셨나?”

- “아아, 이거 뭔가 제대로 당한 느낌인데?”

- “어? 그럼 태주가 10000점을 찍은 것도 다 보셨겠네?”

- “그 말인즉슨 우리가 100점밖에 못 찍은 것도 다 보셨다는 뜻이지.”

- “그럼 우리도 곧 혼나겠지?”

-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쏘면서 볼걸.”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친 아이들이 엄 교수의 노여움에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신태주.”]

희범과 세준에 대한 혹평을 쏟아낸 엄 교수가 이번엔 태주를 호명했다.

“네.”

발사선을 벗어나 있던 태주가 반쯤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이번 미션의 유일한 합격자인 태주는 팀원들 간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것은 물론 자발적인 훈련 분위기를 유도, 클래스 리더로서의 모범을 보였다.”]

- “오오, 역시.”

- “초반엔 태주만 혼났는데, 이젠 태주만 칭찬을 받네.”

- “정확히 얘기하면, 우리가 훈련을 안 해 와서 대표로 혼났던 거지. 태주는 그걸 실력으로 극복한 거고.”

도전을 멈춘 채 혼날 차례만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엄 교수의 극찬을 독차지한 태주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10000점을 고작 1000번 만에 달성하다니……. 마음 같아선 너의 한계를 더 시험해보고 싶지만, 직업 탐구가 한 사람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수업의 강도는 앞으로도 평균적인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정해질 것이다.”]

- “뭐야, 평균적인 수행 능력이 기준이라고? 전혀 아닌 거 같은데?”

- “그러게. 솔직히 저번 시간부터 태주만 통과하고 있잖아. 무게 추 걸기도 그렇고, 급소 맞히기도 그렇고.”

- “그냥 교수님의 기준 자체는 높은데, 태주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거야. 워낙 쉽게 성공을 해서.”

10000점 채우기의 경우 페널티의 성격이 강해 논외로 하더라도 엄 교수의 수업 강도가 평균적인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에 대해선 대다수가 동의할 수 없었다.

[“으음. 나머지 인원의 점수를 모두 합쳐봤자 10000점은커녕 1000점도 겨우 넘는군.”]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엄 교수가 0점부터 124점까지 다양하게 분포된 학생들의 민망한 점수 현황에 판단을 유보했다.

[“물론 태주의 과녁에 시선을 빼앗긴 탓이겠지만, 다음부턴 보는 입장이 아닌 보게 만드는 실력을 갖추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 “어? 설마 이대로 끝내주시는 건가?”

- “태주가 성공해서 기분이 좋아지셨나 본데?”

- “제발 일찍 끝나라. 제발.”

다음부터라는 표현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학생들이 한마음으로 강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지옥주의 존재를 아는 태주의 눈엔 아이들의 헛된 기대가 안쓰러울 따름이었지만.

[“자, 그럼 그런 의미에서 태주를 제외한 나머지 11명은 다음 시간까지, 평일이든 주말이든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10000점씩을 채워 클래스 리더에게 인증샷을 보내고, 클래스 리더는 그날의 성과를 모아 자정이 되기 전까지 메일로 보고하기 바란다.”]

- “네?!”

행복회로를 채 돌리기도 전에 떨어진 엄 교수의 추가 훈련 지시에 학생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뭐야, 그럼 이 짓을 매일 해야 되는 거야?”

- “못 들었어? 태주만 빼고 다 하라잖아.”

- “아아, 나 이번 주말에 소개팅 있는데.”

절망에 빠진 아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저마다의 고충에 빠졌다.

[“질문 있는 사람?”]

“저, 교수님, 혹시 오늘 안으로도 10000점을 채워야 되나요?”

조용히 손을 든 세준이 CCTV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네? 어, 저, 그게…….”

엄 교수의 반문에 당황한 세준이 선뜻 입을 열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물론 입안에선 내일부터 하고 싶다는 대답이 맴돌고 있었지만.

[“정답을 알 수 없을 땐 머리와 몸이 아닌, 양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길 바란다. 그럼 적어도 잠자리에 누웠을 때 후회스러운 하루로 기억되진 않을 테니까.”]

“…….”

훈련 일수를 하루라도 줄여보려던 세준이 자신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어 본 듯한 엄 교수의 뼈를 때리는 가르침에 침묵으로 수긍했다.

[“남의 눈치를 보며 하는 훈련은 쇼에 불과하다. 그리고 쇼에 그친 훈련으로 느는 건 실력이 아닌 눈치와 훈련을 했다는 착각뿐이지.”]

학생들에게 자발적인 훈련 습관을 길러주고 싶었던 엄 교수가 스승으로서의 안타까움을 담아 10000점을 채우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타협을 경계했다.

[“난 원래 신입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미숙한 것도 있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같잖은 해방감에 취해 긴장의 끈을 놓는 것도 꼴불견이고, 고작 헌터학과에 들어온 주제에 마음만은 이미 프로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 또한 눈꼴이 시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너희들의 선배도, 그 선배의 선배도, 심지어 너희들의 후배 기수에서도 나타날 아주 고질적인 문제점이지.”]

- “…….”

경험에서 우러난 엄 교수의 날카로운 지적에 뜨끔했던 아이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 기수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좋은 클래스 리더가 너희들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순간, 고개를 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주에게로 집중됐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오늘로써 또 한 번 증명이 되었지. 신태주.”]

클래스 리더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낸 엄 교수가 개인적인 소감의 말미에 태주를 호명했다.

“네, 교수님.”

[“던전 실습에서 아주 흥미로운 신고식을 치렀더구나.”]

엄 교수가 금요일에 있었던 박성규와의 신경전을 언급했다.

[“같은 날 오전엔 해외 길드로부터 러브콜도 잇따랐고.”]

“네.”

[“기분이 어떤가?”]

“둘 다 크게 개의치는 않고 있습니다.”

태주가 엄 교수의 물음에 덤덤하게 답했다.

[“하하하하! 역시 그 정도 일엔 일희일비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엄 교수가 호탕한 웃음과 함께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물론 기사의 머리에 씌워진 투구의 무게도 만만치는 않지만, 왕관의 무게가 비단 물리적인 질량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닐 터, 네가 진정 대한민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헌터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그 왕관 위에 얹어질 무거운 기대감과 부담감마저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엄 교수의 당부는 오직 태주에게만 해줄 수 있는, 그리고 태주에게만 해당하는 교수로서의 가르침이자 선배로서의 조언이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엄 교수의 비유가 뜻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한 태주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고, 10000점을 통과하지 못한 인원은 부디 떳떳한 모습으로 다음 수업에 임하길 바란다. 이상.”]

- “수고하셨습니다!”

엄 교수의 마지막 전달사항을 들은 학생들이 자신을 비추고 있는 CCTV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물론 마이크가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라는 엄 교수의 가르침이 아이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붙잡고 있었지만.

- “오늘도 10000점을 채우고 가야겠지?”

- “그럼 어쩌겠냐? 머리와 몸이 아닌, 양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라고 그렇게 강조를 하시는데.”

- “그래? 난 교수님 말씀보다 태주의 눈치가 더 보이던데.”

- “어? 나도.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안 하면 또 애꿎은 태주만 대표로 혼날 거 아니야.”

- “나는 다른 수업 때문에 바로는 못 하고, 아마 저녁 먹고 한 7시쯤에나 올 수 있을 것 같아.”

- “하아……. 어찌 됐건 일찍 가긴 글렀네.”

결국 태주를 제외한 11명의 아이들 모두 자정을 넘기기 전까지 10000점이란 목표 점수를 채우기로 합의가 되었다.

“태주야, 그럼 우린 10000점을 채웠다는 인증샷만 너한테 보내면 되는 거야?”

갈 길이 구만리인 세준이 태주에게 확인 차 물었다.

“아니. 앞으로 인증샷은 희범이 형한테 보내. 그럼 희범이 형이 모아준 내용을 토대로 교수님에게 보고할 테니까.”

“뭐? 나한테? 난 클래스 리더가 아닌데?”

희범이 태주의 예상치 못한 지시에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오늘부터 내 비공식 서포터잖아.”

11명의 미션 통과 여부를 수시로 보고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에 태주는 비공식 서포터인 희범을 이용, 인증샷의 취합을 맡긴 뒤 메일을 통한 최종적인 보고만 자신이 처리할 계획이었다.

“어? 아아…….”

태주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희범이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다들 수고하고, 내일모레 있을 레이드의 기초 시간에 보자.”

두 번째 직업 탐구 시간도 성공적으로 마친 태주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궁수 훈련장을 떠났다.

*

*

*

다음 날.

콘텐츠 제작의 이해를 들으러 온 태주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맨 뒷줄에 앉아 있는 원무와 소영의 뒤통수를 발견했다.

차이가 있다면, 늘 붙어 있던 두 사람이 무려 3칸이나 떨어져 앉았다는 것.

“뭐야, 둘이 싸웠어?”

두 사람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태주가 원무와 소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

태주의 물음에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냉랭한 기운의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잠시 흘겨본 뒤 동시에 외면했다.

“아아, 이거 불편해서 못 앉아 있겠네.”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분위기임을 직감한 태주가 불똥이 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바로 그때.

“저기, 태주야.”

입술을 달싹이던 원무가 갑자기 자리를 옮기려던 태주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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