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91화 (91/242)

091. 개강 2주차 (2)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는구나.’

2회차 신입생인 태주에겐 이번 미션은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엔 단 한 사람도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10000점을 채우지 못했는데, 심지어 임세준에게도 밀려 12명 중 꼴찌를 차지했었다.

특히 엄 교수가 대답을 미루긴 했지만, 미션에 통과하지 못하는 순간, 다음 수업 때까지 날마다 궁수 훈련장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는데, 주말을 포함해 똑같이 10000점씩을, 그것도 몇 시간이 걸리든 무조건 채워야 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선 지옥주라는 별명까지 생기곤 했었다.

물론 미션 첫 날, 수업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10000점을 찍을 경우 나머지 훈련이 면제된다는 의미 없는 조건이 붙어 있긴 했지만.

“지난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난 눈높이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입생이라고 적당히 훈련하고, 적당히 미숙한 거? 어중간한 헌터로 어중간하게 살고 싶지 않으면, 10000점을 채우라고 한 날 원망할 시간에 10000점도 버거워하는 본인의 실력을 탓하길 바란다. 또 질문.”

- “…….”

엄 교수의 쓴소리에 뜨끔한 아이들이 불만을 늘어놓던 입을 조용히 닫았다.

“없으면, 발사선으로 이동해서 학번을 입력한 뒤, 카운트 업 모드로 들어간다. 실시.”

카운트 업 모드는 도전자가 설정한 목표 점수에 도달할 때까지 스코어가 합산되는 방식으로 소요 시간과 발사 횟수는 물론 그에 따른 평균 점수까지 꼼꼼히 체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훈련을 넘어 개개인의 기량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 “실시!”

태주를 제외한 11명의 학생들이 복명복창과 함께 원하는 위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딱 1000번 만에 끝낸다.’

반면 지난 시간과 마찬가지로 비어 있는 발사선을 찾아 느긋하게 들어선 태주가 허전했던 왼손에 활을 소환했다.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엄 교수의 예상을 깨뜨리기 위한 최적의 화살을 고른 태주가 발사선 바닥에 설치된 화면을 능숙하게 터치했다.

“아직 카운트 업 모드로 못 들어간 사람?”

- “없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어디를 밟아야 될지 몰라 버벅대던 학생들이 제법 적응된 모습을 보였다.

“좋아. 그럼 목표 점수를 10000으로 설정한 뒤, 바로 시작하도록. 이상.”

학생들의 훈련 습관을 기르기 위한 다소 무리한 숙제를 던져준 엄 교수가 수업 시작 20분 만에 궁수 훈련장을 떠났다.

물론 태주는 엄 교수가 교수실이 아닌 통제실로 향할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실 미션에 실패한 사람의 명단을 정리해서 교수실로 가져오라고 한 건 자신이 현장에 없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한 엄 교수의 의도적인 지시였다.

담임이 교탁 앞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자습 분위기가 다르듯 테스트의 수행 과정을 자율에 맡겨 학생들의 평소 태도를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표적을 생성합니다.]

위이잉!

설정을 마친 아이들이 확인 버튼을 밟는 순서대로 과녁이 올라왔다.

쉬는 시간을 포함한 직업 탐구1의 수업 시간은 약 3시간.

점수와 상관없이 쏘는 행위에만 집중할 경우 개개인의 체력 수준에 따라 1000발을 채우는 것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발사 횟수가 아닌 10000점이라는 통과 기준이었다.

물론 표적과의 거리인 30미터가 그리 멀다고 볼 순 없지만, 10점에만 집착하다 보면, 자연스레 발사 시간이 길어지고, 이는 곧 한정된 시간 동안 당길 수 있는 활시위의 절대량 자체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 “최소 1000번은 쏴야 돼서 그런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지치네.”

- “어? 너도? 아아, 이 많은 점수를 언제 다 채우지?”

엄 교수가 자리를 떠나기 무섭게 학생들의 불만이 습관처럼 터져 나왔다.

바로 그때.

“야, 뭘 이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래. 어차피 통과하라고 주신 미션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대충대충 해.”

궁수 클래스의 유일한 재수생이자 A급 궁수인 최희범이 때 아닌 허세를 부리며 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 “그러게. 솔직히 다 같이 실패하면 덜 민망하잖아.”

곧이어 희범의 말에 동조하는 이가 등장했다.

엄 교수가 경계한 대로 아이들의 생각이 몸이 편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얘들아, 우리 그냥 한 3000점 정도로 통일할까? 그럼 그냥 단체 기합 정도로 끝날 거 아니야.”

희범의 나태함은 자기합리화에 그치지 않았다.

누군가의 공감으로 힘을 얻게 된 경솔한 아이디어가 위험한 선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 “근데 3000점도 은근히 빡세지 않아? 난 그냥 2000점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어느새 담합으로까지 발전된 희범의 허세는 훈련장의 분위기를 급격하게 흐렸고, 더 양심이 없는 의견마저 서슴없이 제안하게 만들었다.

“야, 그럼 클래스 리더인 태주만 곤란해지잖아. 안 그래도 우리 때문에 싫은 소리까지 들었는데.”

발사선을 벗어난 세준이 아이들의 이기적인 판단을 비판하고 나서며 태주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태주가 있는데 뭘 다 같이 실패를 해. 그냥 너희들이 못하는 거지.”

“뭐? 너희들이 못해? 그런 넌 잘해서 97등으로 들어왔냐?”

세준의 팩트 폭행에 발끈한 희범이 결국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선을 넘어버렸다.

“아니, 희범이 형, 이 타이밍에 등수 얘기가 왜 나와! 그리고 97등이라도 한 번에 들어온 게 더 대단한 거 아니야?”

나이는 세준이 한 살 어렸지만, 기수를 중시하는 헌터학과의 분위기상 동기들끼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말을 놓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호칭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금지시킨 건 아니었다.

“야, 너 지금 나 재수했다고 무시하냐! 어!”

순식간에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단단한 줄 알았던 궁수 모임의 우정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모든 광경은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통제실에 있는 엄 교수에게도 고스란히 생중계되고 있었지만.

“무시?! 97등이라고 누가 먼저 그랬는데!”

아버지에게 졸업 선물로 받은 활까지 바닥에 내팽개친 세준이 희범을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그러니까 그냥 교수님 없을 때 쉽게 쉽게 가자고!”

똑같이 활을 내던진 희범이 당장이라도 한 방 먹일 기세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그때.

쉬이익! 탁!

모두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태주의 손끝을 떠난 체이싱 애로우가 과녁의 정중앙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꽂혔다.

[X]

10점 안에 들어 있는 더 작은 동심원을 맞혀야 인정되는 엑스텐이 발사선 바닥에 위치한 터치스크린에 표시됐다.

【카운트 업 모드】

[도전자: 신태주]

[목표 점수: 10/10000]

[소요 시간: 00시간 01분 22초]

[발사 횟수: 1회]

[평균 점수: 10점]

[X10(엑스텐): 1회 = 10점]

[10점: 0회 = 0점]

[9점: 0회 = 0점]

[8점: 0회 = 0점]

[7점: 0회 = 0점]

[6점: 0회 = 0점]

[5점: 0회 = 0점]

[4점: 0회 = 0점]

[3점: 0회 = 0점]

[2점: 0회 = 0점]

[1점: 0회 = 0점]

[M(미스): 0회 = 0점]

싸움을 말리기보단 모범을 보이는 쪽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한 태주가 흐트러진 아이들을 향해 무력시위를 하듯 첫 번째 화살부터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여줬다.

“궁수면 말이 아니라 활로 붙어야지.”

클래스 리더의 품격을 몸소 증명한 태주가 싸움의 당사자들이 아닌 과녁을 응시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

순간, 주먹다짐도 불사하려던 세준과 희범이 궁수 모임의 회장이자 클래스 리더인 태주의 묵직한 일침에 서로를 향한 걸음을 멈췄다.

“야, 임세준.”

“어?”

세준이 태주의 차가운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오늘 점수가 가장 낮은 사람한테는 회비 돌려주고, 궁수 모임에서 제명시켜.”

두 번째 활시위를 당긴 태주가 궁수 모임의 총무인 세준에게 파격적인 지시를 내렸다.

- “……?!”

그러자 희범을 따라 꼼수를 부리려던 일부 가담자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태주야, 그래도 그건 좀…….”

태주의 강경책에 당황한 세준이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쉬이익! 탁!

[X]

여전히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는 태주가 세준의 우려를 한쪽 귀로 흘린 뒤 두 번째 화살마저 엑스텐에 꽂아버렸다.

“저기, 태주야, 네가 회장이고, 클래스 리더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네 맘대로 정한 기준에 따라 회원을 자르는 건 일종의 월권행위 아니야?”

사건의 발단이자 담합의 주동자인 희범이 자신을 저격하는 듯한 태주의 일방적인 결정에 강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월권행위이라…….”

세 번째 활시위를 당기려던 태주가 희범의 불쾌한 단어 선택에 헛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럼 나한테 그럴만한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네.”

활을 내린 태주가 희범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

평소와 다른 태주의 단호한 태도에 살짝 당황한 희범이었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엔 형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1000발에 10000점. 어때, 이 정도면 월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겠어?”

“뭐?! 10000점을 1000번 만에 끝내겠다고?!”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한 태주의 비현실적인 제안에 세준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야, 설마 진심이야?”

두 귀를 의심한 건 희범도 마찬가지였다.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건데?”

태주가 자충수를 뒀다고 여긴 희범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월권행위를 했으니 당연히 궁수 모임의 회장직과 클래스 리더에서 물러나야지.”

태주의 사퇴 의사를 접한 아이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 “야, 이러다 진짜 그만두는 거 아니야? 인간적으로 1000번 연속 10점은 말이 안 되잖아. 태주가 무슨 기계도 아니고.”

- “그러게. 내가 봤을 때도 이번 건 좀 무리일 것 같은데.”

- “근데 이러다 진짜 1000번 만에 끝내는 거 아니야? 솔직히 태주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던 게 한두 번은 아니잖아. 봐 봐. 벌써 엑스텐만 두 번 연속으로 맞혔어.”

- “하긴, 입시 때부터 따지면, 뭐……. 당장 레이드의 기초 때만 봐도 유일한 생존자였잖아. 공대도 아닌 개인이 레드 드래곤을, 그것도 고작 27초 만에 잡고,”

- “그래도 지금처럼 호흡이 긴 도전을 하면 좀 흔들리지 않을까?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집중력도 떨어지고.”

태주의 확신과 달리 아이들의 의견은 여전히 분분했다.

“그래. 대신 네가 이기면, 내가 궁수 모임에서 나갈게,”

승리를 확신한 희범이 여유가 묻어나는 얼굴로 선심을 쓰듯이 말하던 바로 그때.

“에이, 겨우 그 정도로 끝내면 계산이 안 맞지.”

최 총장과의 거래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을 만큼 셈이 정확한 태주가 희범이 내건 패배의 대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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