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86화 (86/242)

086. 조별 과제 (8)

번쩍!

링을 뽑아내는 순간, 서럽게 울고 있는 오크의 눈에서 초록색 빛이 발산됐다.

‘어?!’

잠시 멈칫했던 태주가 링을 움켜쥔 채 두상으로부터 두세 걸음 물러났다.

번쩍!

이번엔 서럽게 울고 있는 오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오크들의 눈에서 붉은색 빛이 발산됐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꼬꼬로.”

꼬꼬로는 자신의 또 다른 비공식 패시브 스킬인 태주 다리 뒤에 숨기를 시전하며 불안감을 표출했다.

바로 그때.

“어!”

갑자기 붉은색 빛을 발산하고 있던 오크의 두상들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달그락달그락! 달그락달그락!

‘뭐지? 방은 멀쩡한데, 심지어 진열장도 그대로인데, 조각상만 흔들리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에 태주의 경계심이 극대화될 무렵.

푸스스스.

놀랍게도 두상이 흔들릴 때마다 돌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른 모래를 뭉쳐 놨던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어? 반지도 사라졌네?’

심지어 노란 불빛을 발하던 황금색 링들도 한 줌의 재로 변하여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제 진열장에 남은 건 태주가 선택했던 오크의 두상과 움켜쥔 손 안에 든 진짜 링.

‘찾았다.’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편 태주가 표식 위에 놓여 있는 링을 보며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꼬꼬로!”

눈치 빠른 꼬꼬로가 태주의 성공에 뛸 듯이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그때.

반지를 왼손으로 옮긴 태주가 갑자기 꼬꼬로를 향해 오른쪽 손바닥을 펼쳤다.

▶ 펫을 회수하시겠습니까? (Y/N)

“꼬꼬로, 잠깐만 쉬고 있어.”

“꼬꼬로?”

태주가 예스를 선택하기 무섭게 잔뜩 들떠 있던 꼬꼬로의 몸이 표식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 회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등급과 명칭은 물론 장비가 지닌 특성과 세부적인 수치들까지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태주가 꼬꼬로의 반발을 예상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딱 스펙만 확인하고 줄게.’

꼬꼬로를 회수한 태주가 다시 헤드 랜턴을 켰다.

방 안을 밝히고 있던 200개가 조금 넘는 링들과 꼬꼬로의 광휘가 모두 사라지다 보니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숨겨 놨을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좋은…… 어?’

최소한의 빛을 확보한 태주가 왼쪽 중지 끝에 링을 갖다 댔지만, 함 교수가 준 반지와 달리 구멍의 크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왜 이러지?’

마법이 깃든 반지의 경우 착용하는 사람의 손가락 굵기를 고려해 저절로 사이즈가 확장되었다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태주가 찾아낸 링은 그러한 반응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냥 껴볼까?’

반지가 들어맞아야 장비의 스펙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인위적으로라도 손가락에 끼워보기로 했다.

바로 그때.

▶ 착용 대상자가 아닙니다.

‘어?’

반지를 착용하는 순간 떠오른 단호한 거부 메시지에 훔친 반지를 낀 것처럼 손가락이 민망해졌다.

▶ 해당 아이템은 펫 전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뭐야, 꼬꼬로만 낄 수 있다고?’

▶ 펫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주인이 따로 있음을 인정한 태주가 손가락에 끼워진 링을 미련 없이 뺀 뒤 잠시 쉬게 했던 꼬꼬로를 눈앞에 소환했다.

▶ 소환이 완료되었습니다.

“꼬꼬로?”

자신이 회수된 이유를 알 리 없는 꼬꼬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주를 올려다봤다.

“자, 이젠 네 거야.”

실착 사실을 숨긴 태주가 꼬꼬로와 눈을 마주치며 다정하게 링을 건넸다.

“꼬꼬로!”

마냥 신이 난 꼬꼬로가 두상에 꽂혀 있던 방식대로 자신의 오른쪽 송곳니를 태주에게 들이밀었다.

‘어?’

태주가 링을 송곳니 가까이 가져가자 미동도 없던 구멍의 크기가 거짓말처럼 저절로 커졌다.

‘진짜 사람 가려서 받네.’

펫 전용 아이템임을 재확인한 태주가 꼬꼬로의 오른쪽 송곳니에 확장된 링을 걸어주었다.

[용맹한 오크 전사의 빛나는 송곳니 장식]

‘이제야 나오네.’

링의 크기가 꼬꼬로의 송곳니에 맞게 줄어들자 그토록 보고 싶던 장신구의 스펙이 주인인 태주의 눈앞에 떠올랐다.

- 등급: 전설

‘오오, 전설.’

등급을 확인한 태주가 고생한 보람을 느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근력: 150% 증가

- 공격력: 200% 증가

- 치명타 확률: 50% 증가- 치명타 대미지: 200% 증가

- 방어력: 75% 증가

- 민첩성: 50% 증가

‘딜탱펫에게 딱 맞는 옵션들만 골고루 붙어있네.’

송곳니 장식에 부착된 버프들의 리스트를 차근차근 살펴보던 태주가 공격력에 특화되어 있으면서도 방어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균형 잡힌 구성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 착용한 아이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꼬꼬로!”

꼬꼬로가 송곳니 장식의 스탯을 볼 순 없었지만, 전투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근력과 민첩성이 증가하다 보니 괜히 기합도 한번 질러보고, 짧은 거리라도 달려보는 꼬꼬로였다.

‘템빨 제대로 받았네.’

꼬꼬로가 좋아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태주가 효율적인 탈출을 위해 꼬꼬로를 회수했다.

“꼬꼬로, 오늘 수고했어.”

“꼬꼬로.”

태주의 오른쪽 손바닥을 마주한 꼬꼬로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듯 꾸벅 고개를 숙인 뒤 표식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회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자, 이제 나도 슬슬 나가볼까?’

동굴 안에서의 볼일을 모두 마친 태주가 밀실을 나서기 전, 홀로 서럽게 울고 있는 오크의 두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진짜 서럽게 우네.’

달그락달그락!

‘어?’

문을 나서려던 태주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두상의 진동 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달그락달그락!

‘저건 또 왜 저러지?’

눈에선 여전히 초록색 빛을 발하고 있었고, 다른 두상들과 달리 진동이 계속됨에도 무너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주르륵.

갑자기 오크의 눈에서 초록색 액체가 눈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으음?’

4단에 놓인 두상에서 시작된 의문의 물줄기가 한 단, 한 단 아래로 떨어지더니 이내 바닥까지 이르러 고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 하네.’

바닥에 고인 초록색 눈물이 밀물처럼 태주의 발끝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왠지 닿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점점 번지고 있는 초록색 눈물을 피해 한 발짝씩 뒷걸음치던 태주의 두 발이 결국 밀실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여차하면 그냥 올라가…… 어? 그쳤다.’

통로에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태주가 오크의 눈물이 멈춘 것을 발견했다.

푸스스스.

원 없이 울던 오크의 두상이 그제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바로 그때.

‘어! 뭐야?!’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던 초록색 눈물들이 갑자기 밀실의 중앙으로 모이더니 그 안에서 오크의, 정확히 말하면, 석상이 아닌 진짜 오크의 사나운 얼굴이 정수리에서부터 스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송곳니 장식을 훔쳐간 것에 대해 복수하려는 건가?’

웃음기가 사라진 태주가 오크의 얼굴에 아이스 애로우를 겨누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변신 중엔 공격하지 않는 게 국룰이지만, 이건 만화가 아니니까.’

상대의 범상치 않은 포스에 선제공격의 필요성을 느낀 태주가 블리자드 효과가 발동하도록 차징한 아이스 애로우 한 발을 흉부까지 올라온 오크의 얼굴에 주저 없이 발사했다.

쉬이익! 팅!

‘어?!’

눈보라를 일으키며 날아간 아이스 애로우의 화살촉이 오크의 이마를 관통하기 직전,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불규칙하게 튕겨 나갔다.

‘뭐지? 지금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태주가 이번엔 바닥에 고인 초록색 눈물을 얼려 소환 자체를 멈추려 했다.

쉬이익! 팅!

‘또?!’

이번에도 역시 투명한 방어벽이 태주의 화살을 가볍게 튕겨내며 오크의 소환을 돕고 있었다.

‘시스템의 짓인가?’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본 태주가 일단은 소환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약 30초 후.

“…….”

소환은 마쳤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정교하게 만든 대형 피규어처럼 움직임은 없어도 그 압도적인 존재감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진짜 살벌하게 생겼네.’

약 2.5미터 높이의 천장이 낮아 보일 만큼 불쑥 솟아오른 오크는 초록색 근육질 몸과 아래턱에서 자란 거대한 송곳니가 특징이었는데, 서럽게 울고 있던 기존의 모습과 달리 상당히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기는 양손 도끼구나.’

오른손엔 양손으로 휘둘러야 할 만큼 거대한 날을 가진 도끼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바로 그때.

▶ [메인 과제] 간악한 벨지오스의 성채 함락.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인 과제의 알림이 태주의 눈앞에 떠올랐다.

‘오프닝 한번 거창하게 했네.’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 태주가 공성전이 예상되는 과제명을 보는 순간, 쉽지 않은 미션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하긴, 그래도 명색이 조별 과제인데, 성채 하나 정도는 쓸어줘야지.’

물론 난관이 예상된다고 해서 자신감마저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 [서브 과제1] 조 편성 (1/6)

‘뭐야, 서브 과제1?’

메인 과제가 하달되기 무섭게 서브 과제가,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주듯 1이라는 숫자가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게다가 조 편성 진행도가 6분의 1이면, 아직 나밖에 없다는 거잖아.’

메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선 무려 5명의 팀원을 더 모아야 했는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조 편성의 숫자가 1인 것으로 보아 꼬꼬로와 같은 펫은 조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조별 과제의 평가는 개개인의 기여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단, 조장에게는 리더십에 의거한 가산점이 주어집니다.

‘점수 산정 기준에 기여도가 들어가면, 그나마 먹튀를 하거나 버스를 타는 경우가 줄어들겠네.’

조장에게 주어지는 가산점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보다 팀원들의 수고에 무임승차를 하려는 몰염치한 조원들을 가려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 조원의 2/3 이상이 사망 시 과제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 F학점 처리와 함께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3분의 2면 6명 중 4명이고, 나를 제외하면, 5명 중 4명이라는 소리인데, 설마 그렇게까지 막장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을까?’

미션 실패의 기준을 확인한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조 편성을 마치기 전까진 메인 과제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절차를 무시하고 솔플을 할까 봐 아예 인원 제한을 걸어놨네.’

▶ 조원들과 힘을 합쳐 메인 과제를 달성하세요.

‘그나저나 5명을 언제 다 찾지?’

태주가 막연한 서브 미션의 내용에 난감해하던 바로 그때.

▶ [알림] 조 편성에 적합한 인물이 반경 10미터 안에 존재합니다.

반가우면서도 께름칙한 내용의 메시지가 태주의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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