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85화 (85/242)

085. 조별 과제 (7)

팍!

순간, 일명 오함마라 불리는 슬레지 해머로 거대한 얼음조각상을 후려친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제법인데?’

태주의 머리 위로 산산조각이 난 대왕거미의 얼어붙은 파편들이 우박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바로 그때.

▶ 펫이 보스 사냥에 성공하였습니다.

▶ 레이드 기여도에 따라 경험치가 분배됩니다.

정작 성장의 당사자인 꼬꼬로에게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 창이 태주의 눈앞에 떠올랐다.

▶ 진화 경험치(557/500)가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그렇지!’

태주의 예상대로 진화에 필요한 경험치는 보스 한 마리로도 충분했다.

▶ 진화(1단계→2단계)를 시작합니다.

진화가 시작되자 꼬꼬로의 몸 전체가 보라색 빛에 휩싸였다.

▶ 펫의 크기가(소형→중소형) 증가합니다.

꼬꼬로의 몸집이 커졌다는 건 태주에게 희소식이었지만, 여전히 소(小)자라는 글자를 못 떼어낸 것으로 보아 타고 다닐 만한 수준은 아닌 듯했다.

▶ 펫의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 스킬의 능력이 진화 단계에 맞추어 상승하였습니다.

스탯도 스탯이었지만, 스킬의 성능이 향상 되었다는 건 광휘의 치유 기능과 돌진의 파괴력, 그리고 철벽의 보호 범위와 강도가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탐색의 업그레이드도 앞으로의 레이드와 파밍 과정을 수월하게 해줄 핵심적인 스킬이었지만.

파앗!

꼬꼬로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강렬해진 빛이 플래시처럼 터지며 태주의 시선을 거부했다.

‘어떻게 변했을까?’

강렬한 빛에 눈을 질끈 감은 태주가 선물을 확인하기 직전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오오.”

꼬꼬로의 변화된 모습을 목격한 태주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벌크업이 제대로 됐는데?”

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1.5배 정도 커진 몸집이었다.

“꼬꼬로.”

따로 거울에 비추어 보진 않았지만, 꼬꼬로 스스로도 본인에게 생긴 신체적 변화를 정확히 느끼고 있는 눈치였다.

“진화 과정에서 거미줄도 다 사라졌어.”

꼬꼬로의 등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던 태주가 새하얀 털 안에 감춰진 탄력 있는 근육의 꿈틀거림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 멧돼지가 말 근육이 있네?”

진화 전에 쓰다듬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빨도 많이 자랐고.”

태주가 멧돼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어금니의 크기를 자신의 검지와 비교해보며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이제야 좀 같이 다닐 맛이 나겠네.”

아직 최종 진화 단계는 아니었지만, 태주는 물론 꼬꼬로의 입장에선 충분히 만족스러운 외형이었다.

“꼬꼬로, 진화 축하해.”

태주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꼬꼬로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하던 바로 그때.

“꼬꼬로.”

목소리마저 의젓해진 꼬꼬로가 갑자기 두 발로 벌떡 일어난 뒤, 앞발로 태주의 허벅지를 디뎠다.

“뭐야, 갑자기.”

덩치가 커진 탓에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애교나 부리자고 이족보행을 할 꼬꼬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슨 이유에서 적극성을 보이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태주였다.

톡톡!

아니나 다를까, 태주의 얼굴을 쓰윽 한번 올려다 본 꼬꼬로가 태주의 왼쪽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오른쪽 앞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아아, 반지?”

비밀 구멍 안에 함께 엎드려 있을 때부터 어필했던 터라 꼬꼬로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근데 그게 어디 있는데?”

보스를 잡았음에도 별도의 보상은 없었다.

원래 실제 던전에서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마정석을 얻을 수 있었고, 보스를 잡으면 게이트의 등급에 따라 아주 희박한 확률로 전설 또는 재앙 등급의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일일 과제의 경우 장학생 레벨의 상승을 위한 과제 점수와 시스템이 정한 보상이 별도로 주어졌기 때문에 메시지 창이 언급한 적 없는 히든 피스를 얻는다는 건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물론 태주 역시 메인 과제가 아닌 번외 이벤트의 성격이 강한 도전을 진행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펫이라는 생소한 조력자를 얻었을 때처럼 뜻밖의 보상을 발견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지만.

“꼬꼬로.”

다시 사족보행으로 돌아온 꼬꼬로가 태주의 물음에 대한 답이 있는 곳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갔다.

‘탐색 스킬을 사용해서 그런가?’

스킬의 능력이 진화 단계에 맞추어 상승하였다는 메시지를 떠올린 태주가 꼬꼬로의 뒤를 의심 없이 따라갔다.

바로 그때.

“…….”

꼬꼬로가 갑자기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다.

“어! 꼬꼬로, 거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꼬꼬로의 무모하고도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태주가 황급히 달려가 발밑을 내려다봤다.

‘어?!’

놀랍게도 꼬꼬로가 서 있는 곳은 한 사람만 겨우 내려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이었다.

‘이런 곳에 계단이?’

구멍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도 없었지만, 계단 자체가 워낙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탐색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꼬꼬로, 조심해서 내려가.”

벽을 따라 이어진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던 태주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활시위에 손을 얹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꼬꼬로의 광휘 스킬에 의존해 계단을 내려가던 태주가 벽 안으로 뚫린 의문의 통로 앞에 도착했다.

“여기야?”

“꼬꼬로.”

태주를 기다리던 꼬꼬로가 고개를 끄덕인 뒤 걸음을 재촉했다.

‘자기 거라고 아주 신났네.’

설렘이 느껴지는 꼬꼬로의 뒷모습에 태주가 헛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때.

‘으음?’

마력을 감지한 태주의 손이 저절로 활시위에 얹어졌다.

‘꼬꼬로가 말한 그 반지에서 나오는 마력인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보스도 잡고 진화까지 마친 상태라 단순한 경계 정도의 의미에서 활을 든 태주였다.

탁탁!

그사이,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문 앞에 도착한 꼬꼬로가 앞발로 문의 아래쪽을 두어 번 두드린 뒤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표정으로 태주를 돌아봤다.

“알았으니까 일단 나와 봐.”

꼬꼬로를 뒤로 물러서게 한 태주가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

내부를 확인한 태주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심지어 문이 열림과 동시에 새치기를 하듯이 들어갔던 꼬꼬로 역시 방 안에 펼쳐진 기괴한 광경에 놀라 태주의 다리 뒤로 황급히 숨었다.

‘이게 무슨 인테리어지?’

교실만 한 크기의 밀실 안엔 격자의 형태로 만들어진 6단짜리 나무 책장이 벽면 전체를 두르고 있었는데, 수납 공간마다 돌로 만든 오크의 머리들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특히 실존하는 오크를 바탕으로 조각된 것처럼 각각의 두상들은 차별화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정교한지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마력도 노란 불빛도 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오크 역시 멧돼지처럼 아래턱에서 자란 거대한 송곳니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각각의 두상엔 노란 불빛을 발하고 있는 황금색 링이 오른쪽 송곳니마다 끼워져 있었다.

“꼬꼬로, 근데 반지로 보이는 게 너무 많은데?”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우려해 섣불리 손을 대진 않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링의 모양이 전부 일치하고 있어 어떤 것이 꼬꼬로가 찾고 있는 것인지 육안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꼬꼬로…….”

탐색 스킬을 통해 거침없이 나아갔던 꼬꼬로가 어찌된 영문인지 자신 없는 표정으로 선택을 망설였다.

‘2단계 수준의 진화로는 가려낼 수 없다는 건가?’

태주의 추측대로 꼬꼬로의 탐색 능력은 아직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링이 있는 곳까진 쉽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마력을 내뿜고 있는, 심지어 똑같이 생긴 수십 개의 링들 중에서 진짜를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운에 더 가까웠다.

‘어쩌면 링이 아니라 오크의 얼굴에 집중하는 게 더 낫겠는데?’

태주는 거푸집에서 찍어낸 것 같은 링이 아닌, 오크의 두상에서 힌트를 얻으려 했다.

“…….”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꼬꼬로가 방 안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눈높이에 있는 링들을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꼬꼬로, 뭐가 진짜인지 아직도 감이 안 와?”

“꼬꼬로…….”

벌써 두 바퀴째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성과 없는 시도만 계속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잠깐.’

태주가 오크들의 두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혹시 표정에 드러난 감정에 해답이 있나?’

오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본 결과 대부분의 표정에선 분노가 드러나고 있었다.

‘분노는 너무 흔해. 아예 무표정하거나 전투를 앞둔 것처럼 비장한 표정들도 분노 못지않게 많고.’

소거법을 이용해 찍기의 확률을 높이듯 가설에 불과한 접근이라도 일정한 기준에 따라 후보군을 좁혀 나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잠시 후.

200개가 조금 넘는 오크의 두상들을 주된 감정에 따라 일일이 분류해 나가던 태주가 마침내 인상적인 표정을 지닌 3개의 선택지를 최종 후보로 낙점했다.

‘이 중에 하나가 진짜다.’

다른 두상들과 감정의 유형이 겹치지 않는 건 단 세 개.

첫 번째는 문을 등지고 섰을 때 정면에 있는, 다시 말해, 12시 방향에 있는 서럽게 울고 있는 오크의 두상, 두 번째는 9시 방향에 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호탕하게 웃고 있는 오크의 두상, 마지막 세 번째는 문이 달려 있는 벽면인 6시 방향에 위치한, 무언가에 화들짝 놀란 오크의 두상이었다.

‘웃고, 울고, 놀라고……. 으음.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링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니까 9시 방향이 맞는 것 같긴 한데, 또 어떻게 보면, 꼬꼬로가 2단계로 진화했을 때처럼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는 거니까 6시 방향에 있는 표정도 맞는 것 같고.’

후보를 3개로 압축했음에도, 태주의 머릿속은 개운하지 않았다.

‘근데 이거 역으로 울고 있는 게 진짜 아니야? 만약에 내가 송곳니에 있는 링을 가져가면, 이 방에 있는 오크들 중에서 유일하게 링이 없는 두상이 될 거고, 그럼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서럽게 울고 있는 오크의 표정이 현재의 심정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모습이 될 거 아니야.’

발상을 전환한 태주가 서럽게 울고 있는 오크의 두상 앞으로 신중하게 다가갔다.

“꼬꼬로?”

반시계 방향으로 뚜렷한 성과가 없자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던 꼬꼬로가 태주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면 어떡하지?’

어차피 실제 던전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으로 목숨을 잃어도 F학점에 의한 페널티 정도로 끝나겠지만, 지금껏 C학점 한 번 뜬 적이 없이 4.0(A0) 이상의 평점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태주의 입장에선 단 한 번의 실수로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흔들리지 말자.’

최종 선택을 앞두고 잠시 고민에 빠진 듯했던 태주가 비장한 표정으로 송곳니에 끼워진 링을 뽑아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