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조별 과제 (6)
‘어딜 감히.’
아무런 대미지도 입지 않은 100% 상태의 거미 몬스터를 1대1로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태주가 보스의 눈을 겨누고 있던 체이싱 애로우의 방향을 꼬꼬로가 있는 비밀 구멍 쪽으로 황급히 틀었다.
쉬이익! 푹!
노멀 애로우였다면, 날아가는 과정에서 거미줄의 영향을 받아 속도를 잃고 떨어지거나 그대로 걸려버렸겠지만, 조준된 목표물을 끝까지 따라가 명중시켜 버리는 체이싱 애로우의 집요함 덕분에 구멍 안으로 들어가려 했던 거미 몬스터를 한 방에 관통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
침입자를 처단한 태주가 다시 보스전에 집중하려던 바로 그때.
태주를 피해 있던 거미 몬스터들이 화살에 박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동족의 사체를 발견하곤 꼬꼬로가 있는 구멍 근처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론 꼬꼬로의 존재에 대해선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거미줄이 끊어지는 진동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일단 회수할까?’
태주가 표식이 있는 손바닥이 꼬꼬로를 향하도록 뻗었다.
▶ 펫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회수가 불가능합니다.
‘이래서 황금 호각이 있는 거구나.’
회수와 소환에 대한 별도의 거리 제한을 따로 안내받은 적은 없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펫을 거리와 상관없이 주인의 앞으로 단숨에 이동시킬 수 있는 황금 호각의 존재 이유에 대해선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슈우욱!
꼬꼬로에게 시선을 빼앗긴 태주에게 네 상대는 나니까 다른 곳에 한눈팔지 말라고 시위라도 하듯 초대형 거미 몬스터의 뾰족한 앞다리가 또 한 번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아직 보인다 이거지?’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태주가 공격적인 앞점멸을 활용해 초대형 거미 몬스터의 다리 밑으로 단숨에 파고들었다.
쿵!
이번에도 헛다리를 짚은 대왕거미가 바닥에 박힌 다리를 채 빼기도 전에 반대쪽 다리로 다시 한 번 태주를 공격했다.
슈우욱!
‘느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두 번째 앞점멸로 대왕거미의 가슴판 바로 밑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한 태주가 마디와 마디를 연결하는, 쉽게 말해 구부렸다 폈다 할 수 있는 관절 부위 중 몸통과 가장 가까운 곳을 노려 아이스 애로우를 발사했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물론 간파로 알아낸 급소는 다리가 아닌 눈이었지만, 녀석의 움직임을 확실히 묶어 두지 못할 경우 처음 파이어 애로우를 맞았을 때처럼 또다시 거대한 구멍 안으로 들어가 완전히 숨어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푹! 푹! 푹! 푹!
8개의 다리에 각각 한 발씩 사이좋게 꽂힌 아이스 애로우가 팔팔했던 녀석의 관절을 빠른 속도로 얼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쩌저적! 팡! 쩌저적! 팡!
무리한 움직임을 견디지 못한 대왕거미의 얼어붙은 관절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빙하가 쪼개지는 소리를 내며 하나둘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쾅!
제일 처음 부서진 왼쪽 네 번째 다리가 바닥으로 쓰러지며 동굴 전체를 울렸다.
쾅! 쾅!
다음은 오른쪽 두 번째, 그 다음은 오른쪽 첫 번째.
다리를 잃고 당황한 대왕거미가 중심을 잡기 위해 발버둥 칠 때마다 과부하가 걸린 관절은 속절없이 깨져버렸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태주가 거미 다리의 추락 지점을 예측해 신속히 몸을 피했다.
팡! 팡! 팡! 팡!
결국 화살이 꽂힌 8개의 관절이 채 다 부서지기도 전에 육중한 무게를 견디지 못한 대왕거미의 나머지 다리들이 동시에 터져 나갔다.
콰과광!
거대한 몸통이, 특히 초대형 거미 몬스터의 뚱뚱한 배가 지면으로 떨어지자 다리가 떨어졌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울림이 태주의 발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자, 이제 밥상도 차렸으니 꼬꼬로나 부르러 가볼까?’
대왕거미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태주가 위기에 빠진 꼬꼬로를 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체이싱 애로우를 장착했다.
바로 그때.
퍽!
꼬꼬로가 구멍 안으로 들어온 거미 몬스터를 돌진 스킬로 밀어내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어?!”
자신이 구하러 갈 때까지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꼬꼬로의 예상치 못한 용기에 놀란 태주가 활시위를 당긴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꼬꼬로!”
기합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요란한 울음소리와 함께 구멍 밖으로 몸을 날린 꼬꼬로가 끈끈하다 못해 찐득한 거미줄 위로 자유낙하를 했다.
‘그래도 제 발로 나오긴 했네. 뭐, 물론 거미 몬스터랑 부딪치기만 했지 제대로 잡은 건 아니지만.’
자신을 구하진 못해도 도우러 오게는 만들겠다던 태주였지만, 그나마 꼬꼬로 본인의 몸이라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냈다는 것 자체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판단, 펫으로서의 자격 테스트를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으음. 마무리가 좀 아쉬우니까 학점으로 따지면 C+ 정도? 아니다. 거미줄에 걸린 것까지 따지면 이것도 너무 후한가?’
생각보다 깐깐한 교수님 스타일이었던 태주가 꼬꼬로가 걸려 있는 거미줄을 끊어주기 위해 화살의 종류를 파이어 애로우로 교체했다.
좌우, 위아래.
태주는 거미 몬스터들이 몰려오기 전에 꼬꼬로의 주위에 있는 거미줄들을 싹 다 태워버릴 작정이었다.
거미 몬스터를 타지 않는 이상 높은 곳에 들러붙어 있는 꼬꼬로에게 접근할 방법도 없었지만, 거미줄 자체가 워낙 질기고 접착력이 강해 완전히 태워버리지 않는 한 접근에 성공한다고 해도 꼬꼬로를 깔끔하게 떼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님이 구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꼬꼬로의 새하얀 털이 검게 그을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조준을 한 태주가 화염 효과를 발동시켜 거미들의 접근을 막음과 동시에 더 넓은 범위의 거미줄을 한꺼번에 제거하려 했다.
쉬이익! 화르르. 쉬이익! 화르르.
불기둥을 형성하며 날아간 파이어 애로우가 꼬꼬로가 걸려 있는 거미줄을 제거하러 가는 과정에서 그 밑에 있던 여러 겹의 거미집들을 순차적으로 태워버렸다.
“꼬꼬로!”
천장을 보고 대자로 붙어 있던 꼬꼬로가 자신의 주위에서 솟구치는 커다란 불기둥에 놀라 격하게 바동거리며 소리쳤다.
‘됐다.’
네 번째 화살을 발사하자마자 활을 거둔 태주가 꼬꼬로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 정확한 낙하 지점을 예측해 신속하게 이동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꼬꼬로!”
이번만큼은 기합인지 비명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근데 탱커면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도 괜찮지 않나?’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본 태주가 꼬꼬로와의 원활한 주종 관계를 위해 얼른 두 팔을 뻗었다.
척!
“나이스 캐치.”
정확한 낙하지점을 선점하고 있던 태주가 추락하는 꼬꼬로를 가볍게 받아냈다.
“근데 이 거미줄을 다 어떡하지?”
꼬꼬로를 바닥에 내려놓은 태주가 마비 효과를 풀어주기 위해 온몸에 엉켜 있는 거미줄들을 일일이 뜯어내기 시작했다.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거참 더럽게 안 뜯기네.’
▶ 상태 이상(마비)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차라리 밀고 다시 기르라고 할까?’
태주와 달리 피부 전체가 털로 덮여 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설상가상으로 털의 색깔마저 거미줄과 흡사해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
번쩍!
“아, 뭐야!”
꼬꼬로의 갑작스러운 광휘 스킬에 놀란 태주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야, 너 갑자기 왜 그…… 어? 야, 너 어떻게 움직였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마디 해주려 했던 태주가 조금 전과 달리 네 발로 서 있는 꼬꼬로의 멀쩡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어? 설마…….”
태주가 손전등 정도로 치부하고 있던 광휘 스킬의 놀라운 치유 기능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광휘가 일종의 저항 스킬 같은 거구나.’
차이가 있다면, 패시브 스킬로서 위협이 감지되는 순간 저절로 발동되는 저항과 달리, 광휘는 시전자의 의지와 마나의 소모를 요하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뭐, 거미줄까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비 효과만 없으면, 한가할 때 제거해도 되니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수고를 덜게 된 태주가 꼬꼬로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돌진의 이유에 대해 물었다.
“꼬꼬로, 조금 전에 진짜 거미 몬스터랑 싸우다 떨어진 거야?”
“꼬꼬로.”
한껏 턱을 치켜든 꼬꼬로가 우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놀라서 후진하려다 급발진 한 건 아니고?”
“꼬꼬로.”
꼬꼬로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연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그래. 뭐, 잘했어. 그럼 가서 저것도 좀 마무리하고 와.”
태주가 꼬꼬로의 엉덩이를 대왕거미가 있는 쪽으로 슬쩍 밀어냈다.
“…….”
순간, 다리를 못 쓰게 된 대왕거미의 광분한 얼굴을 마주한 꼬꼬로의 몸과 혀가 광휘를 쓰기 전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왜. 입속으로 돌진할까 봐 쫄았어?”
장난기가 발동한 태주가 꼬꼬로의 엉덩이를 한 번 더 밀어내며 물었다.
“꼬꼬로!”
태주의 장난에 소스라치게 놀란 꼬꼬로가 돌진 스킬을 사용했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태주의 다리 뒤에 숨었다.
“꼬꼬로, 펫으로서 주인한테 의지하는 건 좋은데, 최소한 주인 말은 들으면서 의지해야 되는 거 아니야?”
“꼬꼬로…….”
태주의 일침에 머쓱해진 꼬꼬로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앞으로 내가 돌진하라면 돌진하고, 점프하라면 점프하는 거야. 알았어?”
“꼬꼬로…….”
“목소리 크게.”
“꼬꼬로!”
“좋아. 그럼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번 볼까?”
아이스 애로우의 블리자드 효과를 발동시킨 태주가 보스의 약점인 눈을 노려보며 활시위를 놓았다.
쉬이익! 푹!
화살을 맞은 눈은 하나였지만, 주변에 분포된 다른 눈들은 물론 화살촉이 박힌 대왕거미의 머릿속까지 빠른 속도로 얼어붙고 있었다.
바로 그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의식이 흐려지고 있는 대왕거미에게 앞점멸로 다가간 태주가 마치 적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듯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태주가 무릎을 꿇은 건 어디까지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지만.
“꼬꼬로! 돌진!”
“…….”
태주의 외침을 들은 꼬꼬로가 얼어붙어도 무서운 대왕거미의 흉측한 얼굴에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자의든 타의든 태주를 태운 채 적진을 누볐던 거미 몬스터의 눈부신 활약에 대한 묘한 질투심과 주인의 칭찬을 받고 싶다는 딜탱펫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바람 등이 요지부동이던 꼬꼬로의 다리를 결국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렇지.’
꼬꼬로를 등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힘찬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태주였다.
“꼬꼬로! 점프!”
탁!
다시 한 번 두려움을 극복한 꼬꼬로가 태주의 등을 구름판 삼아 힘차게 날아올랐다.
“막타 가즈아!”
“꼬꼬로!”
황금빛 오러에 휩싸인 꼬꼬로가 대왕거미의 눈을 세차게 들이 받으며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