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조별 과제 (3)
잠시 후.
꼬꼬로가 발산하는 불빛과 헤드 랜턴에 의지해 걷고 있던 태주가 발걸음을 붙잡는 기분 나쁜 마력에 미간을 구겼다.
“기다려.”
태주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꼬꼬로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꼬꼬로.”
동행하는 내내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약간의 훈련을 시켜 둔 덕분이었다.
물론 반려동물 한번 키워본 적 없는 태주의 입장에선 첫 번째 펫이 멧돼지 몬스터라는 것 자체가 난감할 따름이었지만.
“네가 상대하긴 좀 무리겠는데?”
마력의 크기로 몬스터의 강함을 가늠해본 태주가 꼬꼬로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이마에 표식을 불러내는 순간 발산한 꼬꼬로의 마력이 어둠 속에 매복하고 있는 녀석들의 마력을 압도하긴 했지만, 돌진 스킬의 파괴력도 그렇고, 아직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꼬꼬로!”
첫 번째 항명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물론 자신의 주인인 태주에게 무언가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조급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조금 전에 있었던 박쥐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주인인 한 절대 죽지 않는다.
태주의 펫이 된 꼬꼬로의 마음속엔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다시 말해, 압도적인 전투 능력을 지닌 주인이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확실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뭐야, 혼자 상대해도 괜찮겠어?”
“꼬꼬로!”
믿는 구석이 있었던 꼬꼬로가 출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장수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으음.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 일단 내가 버스를 태워줄 테니까 넌 그냥 뒤에 빠져 있다가 막타 치고 경험치나 채워”
“꼬꼬로?”
일상적인 대화는 어느 정도 통했지만, 아무래도 게임 속 은어까지는 무리가 있었다.
“버스랑 막타가 무슨 뜻인지 몰라? 그럼 그냥 내가 죽기 직전까지 패면, 가서 마무리만 하고 와. 아, 그리고 이건 작전이자 명령이니까 또 한 번 내 말을 거역하면 손바닥 안으로 회수해 버릴 거야. 알았어?”
펫과의 주종관계를 명확히 하고 싶었던 태주가 표식이 나타난 오른쪽 손바닥을 꼬꼬로의 코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꼬꼬로……”
태주가 가진 힘을 신뢰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꼬꼬로가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한눈팔지 말고, 잘 따라와.”
꼬꼬로 대신 선봉에 나선 태주는 자신이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 역시 자신과 꼬꼬로의 마력을 감지해 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바로 그때.
“이런 씨.”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거미줄 한 가닥이 태주의 얼굴에 붙어 극도의 불쾌감을 유발했다.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으음?!’
얼굴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던 태주가 예상치 못한 대미지 발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 상태 이상(마비)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마비? 설마 거미줄에 닿기만 해도 마비 효과가 오는 건가?’
다행히 저항 스킬과 장신구에 붙은 옵션들이 거미줄의 마비 효과를 가볍게 무력화시켰다.
“꼬꼬로. 거미줄에 마비 효과가 있으니까 거미줄을 제거하기 전까진 함부로 앞서가지 마.”
다시 한 번 파이어 애로우를 장착한 태주가 화염 효과를 이용해 동굴 안에 있는 묵은 거미집들을 말끔히 청소하기로 했다.
쉬이익! 화르르. 쉬이익! 화르르.
특히 화살이 박히는 것보다 동굴 벽을 스치면서 오랫동안 날아가는 것이 거미줄 제거에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헤드 랜턴으로 동굴 구석구석을 비추며 한 발 한 발 정교하게 화살을 발사했다.
‘어? 저기 한 마리 있다.’
산보 수준으로 느긋하게 걷고 있던 태주가 동굴 벽에 붙어 있는 거미 몬스터를 발견했다.
‘눈은 또 왜 이렇게 많아?’
원래도 눈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곤충이 거미였지만, 없던 환공포증도 생길만큼 빼곡히 들어찬 검은 눈알들이 태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꼬꼬로, 준비.”
태주가 꼬꼬로의 경험치를 높여주기 위한 막타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화살의 종류를 아이스 애로우로 바꿨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아까 동굴 벽을 들이받았을 때처럼 몬스터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면 돼. 어때. 어렵지 않지?”
“꼬꼬로.”
첫 레이드를 앞둔 꼬꼬로가 비장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
성공적인 작전을 위한 사전 브리핑을 마친 태주가 동굴 벽에 CCTV처럼 붙어 감시하고 있는 거미 몬스터의 눈을 향해 아이스 애로우 한 발을 발사했다.
쉬이익! 푹!
빙결 효과를 지닌 얼음 화살답게 타격 지점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간 냉기가 거미 몬스터의 얼굴은 물론 앞다리와 몸통까지 얼리고 있었다.
“꼬꼬로, GO!”
앞다리가 얼어붙은 거미 몬스터의 몸이 동굴 벽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목격한 태주가 타이밍 좋게 출격 지시를 내렸다.
“꼬꼬로!”
마치 투우라도 된 양 오른쪽 앞발굽으로 바닥을 긁으며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꼬꼬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돌진 스킬을 발동했다.
물론 꼬꼬로가 도착하기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경우 막타의 의미 자체가 없었지만, 엉덩이에서 뽑아낸 거미줄을 동굴 벽에 붙여 끝까지 버텨보려 한 거미 몬스터의 끈질긴 발악 덕분에 빙결 효과로 무거워진 몸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팍!
황금빛 오러에 휩싸인 꼬꼬로가 힘찬 발 구르기와 함께 목표물을 들이받는 순간.
챙!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난 거미 몬스터의 몸이 유리파편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지!”
부모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태주가 꼬꼬로의 성공적인 막타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꼬꼬로!”
태주가 밥상을 차려주다 못해 떠먹여준 꼴이었지만, 골을 넣은 선수가 감독에게 달려오듯 거미 몬스터를 박살낸 꼬꼬로가 환호성을 지르며 태주에게로 달려왔다.
‘뭐지? 돌진할 때보다 더 빠른 거 같은데?’
태주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꼬꼬로를 칭찬해주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바로 그때.
▶ 펫이 첫 사냥에 성공하였습니다.
▶ 경험치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 상태창이 활성화됩니다.
‘뭐? 상태창?’
정신없이 떠오른 메시지들을 빠르게 읽어 나가던 태주의 시선이 상태창이란 단어에 고정됐다.
【스탯】
[이름: 샤인도저]
“꼬꼬로, 네 이름이 샤인도저였어?”
“꼬꼬로?”
꼬꼬로가 태주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본인 이름도 몰라?”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인 꼬꼬로조차 상태창에 표시된 본인의 이름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럼 그냥 꼬꼬로라고 부를게.”
샤인도저가 몬스터의 종류를 의미한다고 여긴 태주가 꼬꼬로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
“꼬꼬로.”
이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환경 속에서 자라 온 꼬꼬로였지만, 자신의 첫 번째 주인인 태주에 대한 충성심과 경외심으로 인해 울음소리를 따라 지은 성의 없는 이름에도 크게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근데 너나 나나 이름도 모르고 살았던 건 똑같네.”
보육원에서 자라 부모님의 얼굴조차 모르는 태주 역시 원장님의 성에, 원장님이 지어준 이름을 본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역할: 딜탱펫]
‘어? 딜탱이면, 딜러와 탱커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다는 거잖아.’
태주의 해석대로 꼬꼬로는 강인한 체력과 방어력을 바탕으로 한 탱킹, 속칭 몸빵은 물론 근거리 딜러로서의 몫도 감당할 수 있는 준수한 근력을 지니고 있었다.
‘원거리 딜러인 나한테는 꼭 필요한 존재였네.’
[체력: 8000]
[마나: 1500]
[근력: 2500]
[방어력: 5500]
[민첩성: 900]
[지력: 400]
심지어 세부 스탯상으로도 딜탱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으음. 마나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닌데, 아깐 왜 그렇게 마력이 강하게 느껴졌지?’
마나의 양이 크게 중요한 역할은 아니었지만, 태주의 발걸음을 돌릴 만큼 강했던 마력의 출처와 이유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냥 표식이 생기면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인가?’
상태창에 표시되지 않은 정보가 존재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섣부른 단정이 아닌 추측 정도에 그치기로 한 태주였다.
[진화: 1단계 (크기: 소형)]
[진화 경험치: 7/500]
‘어? 지금 보니까 진화 단계에 비해 능력치가 나쁘진 않네.’
특히 크기가 진화 항목에 함께 표시된 것으로 보아 진화 경험치의 획득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꼬꼬로의 몸집 또한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라 판단했다.
‘7은 거미 몬스터를 잡았을 때 받은 건가? 뭐, 몇 단계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엔 타고 다닐 수도 있겠는데?’
이미 점멸이라는 최고의 이동 스킬을 보유한 태주였지만, 거대하게 성장한 꼬꼬로의 등에 올라 적진으로 돌진하는 모습도 크게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속성: 지(地), 광(光)]
‘땅과 빛의 속성이라…… 손전등 기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
[스킬 리스트▼]
‘스킬은 뭐가 있으려나?’
삼각형을 응시하자 숨겨져 있던 기술 목록이 아래로 펼쳐졌다.
[스킬 목록▲]
1. 광휘
2. 돌진
3. 철벽
4. 탐색 (패시브)
‘어? 생각보다 종류가 많은데?’
리스트를 확인한 태주가 제법이라는 눈빛으로 꼬꼬로를 쳐다봤다.
‘광휘는 뭐, 안 봐도 손전등 기능이고, 돌진도 말 그대로 돌진, 철벽은 탱커로서의 스킬을 말하는 건가?’
철벽의 효과가 궁금했던 태주가 꼬꼬로에게 시범을 요구했다.
“꼬꼬로, 손전등이랑 돌진 말고, 철벽 스킬 좀 보여줘 봐.”
“꼬꼬로.”
거미 몬스터와의 승부에서 자신감을 얻은 꼬꼬로가 흔쾌히 승낙을 하며 태주를 등지고 섰다.
그리고 이어진 약간의 정적과 선명하게 느껴지는 마력의 변화.
“꼬꼬로!”
순간, 기합 소리와 함께 코끝까지 힘을 잔뜩 준 꼬꼬로의 몸 주위로 돔 형태의 거대한 방어막이 황금빛을 내며 생성됐다.
“오오, 꼬꼬로.”
기대 이상의 보호 범위를 확인한 태주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보호막이 있으니까 아늑하고 좋은데? 꼭 캠핑장에서 빌려주는 커다란 텐트 같아.”
초기 진화 상태에서 시전한 스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주와 꼬꼬로의 몸을 보호하기엔 공간상 부족함이 없었다.
“꼬꼬로, 앞으로도 잘 부탁해.”
태주가 꼬꼬로의 머리와 등을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패시브 스킬인 탐색인데…….’
마나의 소모나 재사용 대기시간 없이 항상 효과가 유지되는 스킬이라 성능에 대한 기대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꼬꼬로, 근데 탐색 스킬은 뭐야?”
마지막 스킬의 정체가 궁금했던 태주가 꼬꼬로의 등을 한 번 더 쓰다듬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바로 그때.
“…….”
철벽 효과를 해제시킨 꼬꼬로가 아무런 말도 없이 어둠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