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76화 (76/242)

076. 던전 실습1 (4)

“……?!”

이름 모를 선배의 안내에 발걸음을 돌렸던 태주가 주엽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맨 앞줄을 돌아봤다.

“그래. 쟤가 장세종이야. 너한테 뒤로 가라고 했던 사람.”

결정적인 힌트를 흘린 뒤 반응을 지켜보던 주엽이 태주의 시선이 고정된 곳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장세종 선배에게 일부러 부탁한 겁니까? 피차 마주쳐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선배님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요.”

태주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어. 그래서 조금 전에 따로 부탁한 거야. 최소한 얼굴이라도 익혀 두라고.”

태주의 추궁에 대한 주엽의 해명은 태연하다 못해 당당했다.

“피아식별을 위해서 말입니까?”

“어. 피아식별…… 사실 박성규랑 장세종이 절친이긴 해도 성격이나 일처리 방식은 완전 딴판이거든.”

시선이 바닥을 향하는 자세라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동작을 풀었음에도 이 교수의 지적을 피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다짜고짜 화살부터 들이밀 때 알아봤겠지만, A급 궁수인 박성규는 매사에 즉흥적인 스타일이야. 일단 갈구고 싶은 후배가 보이면, 빌드업이고 뭐고, 싫은 티부터 팍팍 내는 거지. 한마디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 타인의 공감을 구할 마음도 없고.”

“네. 그건 뭐…….”

주엽의 설명이 박성규와의 신경전을 통해 파악한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자 말끝을 흐리며 장세종의 정보를 재촉하는 태주였다.

“그에 반해 A급 무투가인 장세종은 후배를 갈굴 때 직접 나서지 않아. 조용히 동기들을 포섭해서 여론 몰이를 하지…… 일종의 네거티브 전략이라고나 할까?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해명에는 엄청난 양의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해명하려고 할 때 이미 사람들은 선동되어 있다.”

주엽의 뒷말을 가로챈 태주가 차분한 목소리로 나머지 문장을 완성시켰다.

“오오, 알고 있네?”

“알고 있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선동을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회귀 전, 동기들과 교수들의 노골적인 냉대를 무려 4년씩이나 버틴 태주가 고작 한 명의 중상모략에 흔들릴 리 없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까.’

태주에 대한 전체적인 호감도와 신뢰도가 상승한 것도 있었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선 태주의 이미지 실추에 가장 민감한 최 총장이 직접 음모론의 진화에 나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 총장까지 갈 것도 없이 이종도 교수와 태주의 화려한 움직임에 매료된 일부 4학년 선배들의 믿음과 지지가 장세종의 음해 시도를 알아서 무력화시키겠지만.

“그래. 그런 자신감이면 뭐…….”

신입생답지 않은 태주의 담대한 반응을 확인한 주엽이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핑곗거리를 제공하기 싫으면, 차라리 선배님이 나서서 직접 다른 선배들의 견제를 막아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런 방법도 있긴 한데, 한편으론 네가 선배들의 견제를 어떤 식으로 극복할까 궁금하기도 하거든. 조금 전, 박성규의 앞머리를 시원하게 날린 것처럼.”

중립적인 입장임을 밝힌 주엽이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태주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박성규나 장세종처럼 견제의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너에 대한 경계심을 품고 있는 동기들은 꽤 많거든. 특히 학점. 4학년이라, 게다가 실습 과목이라 다들 점수에 예민해져 있는 상황인데, 너처럼 잘나가는 후배가 불쑥 나타나서 A가 뜰 게 B가 뜨고, B가 뜰 게 C가 뜨면 어떻게 될까? 물론 실력으로 밀린 게 팩트지만, 네 점수가 D나 F가 아닌 이상 무조건 널 원망하게 될 걸?”

10명 이상의 수강으로 상대 평가가 이루어질 경우 A학점은 전체의 20%, B학점은 30%, 그리고 C학점 이하는 무려 50%로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로 학점이 세분화 된다고 해도 경계선에 걸친 아이들의 입장에선 태주 한 명의 등장만으로도 학점이 뒤바뀔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제가 공공의 적인 셈이네요.”

“정확히 말하면, 네가 공공의 적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겠지. 누가? 장세종이. 피해를 받은 적이 없는데, 피해자가 된 것 같은 찝찝한 기분. 원래 여론몰이의 핵심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잖아. 학점에 대한 불안감, 교수님의 편애, 잘나가는 후배에 대한 질투심. 네가 들어도 딱 느낌이 오지 않아?”

“네. 느낌이 오네요.”

주엽의 물음에 건성으로 답한 태주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장세종이 있는 곳을 다시 한 번 노려봤다.

*

*

*

잠시 후.

스트레칭을 마친 학생들이 다시금 좁은 간격으로 모여들었다.

“어때. 한결 몸이 가벼워졌지?”

상쾌한 표정의 이 교수가 학생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며 물었다.

- “네.”

아이들의 기계적인 대답이 한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좋아. 그럼 수업 첫날인 만큼 던전 실습1의 목표와 평가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5대 길드를 노리는 학생들의 입장에선 부족한 평점을 만회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학기라 스트레칭을 진행할 때와는 눈빛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다들 강의 계획서를 봐서 알겠지만, 일단 던전 실습1의 평가는 E급 게이트 안에서 이루어질 거야. 뭐, 이중엔 이미 3학년 때 인턴십을 지원해서 E급 게이트에 들어가 본 사람들도 있지만, 등급이 같아도 세상에 똑같은 던전은 하나도 없으니까 경험이 있든 없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는 게 좋을 거야.”

- “네.”

“좋아. 근데 이 수업엔 딱 한 가지 불가항력적인 단점이 있어. 뭘까?”

“…….”

이 교수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맨 앞줄에 있던 S급 법사 공슬아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어, 그래, 슬아야.”

“E급 게이트가 언제 어디서 열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과목들과 달리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날짜를 임의로 정할 수 없습니다.”

이 교수의 지목을 받은 슬아가 덤덤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퍼펙트. 역시 슬아는 모르는 게 없어.”

이 교수가 흡족한 표정으로 슬아를 칭찬했다.

“자, 슬아가 말했듯이 게이트는 언제 어디서 열릴지 아무도 몰라. 때문에 우린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 사이에 발생한 E급 게이트 중 한 곳에서, 수강생 전원의 참석 하에, 중간·기말 구분 없이 단 한 번의 레이드로 1학기 성적을 평가할 거야.”

- “네? 딱 한 번이요? 그래도 최소한 두 번은 들어가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맞아요 교수님. 특히 부득이한 사유로 참석할 수 없는 경우엔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지는 거잖아요.”

자신의 실력이 단 한 번의 테스트로 결정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낀 아이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평가 횟수에 대한 수정을 건의했다.

물론 졸업한 선배들로부터 수업 진행 및 평가 방식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전해들은 몇몇 치밀한 아이들과 던전 실습1의 유일한 경험자인 태주는 별다른 동요 없이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탓에 선배들과의 관계가 썩 매끄럽지 못했던 슬아와 달리 졸업을 한 선배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대인관계가 원만한 주엽은 던전 실습1에 대한 선배들의 수강 후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정보의 우위가 태주와의 승부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승화된 상태였다.

물론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 주엽의 귀동냥이 태주의 경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아니. 4학년 정도 됐으면 한 번으로도 충분해.”

이 교수가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교수 회의를 통해 내린 공통적인 결론이야.”

- “교수님, 그럼 혹시 재시험 말고, 불참자를 위한 추가 시험은 없어요?”

한 학생이 모두의 궁금증을 대변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불참자를 위한 추가 시험? 글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시점이 게이트 생성 후 최소 72시간인데, 그 정도 여유면 못 오는 게 더 어렵지 않나?”

블랙홀 게이트처럼 일정 시간이 경과하는 순간 사라지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게이트의 경우 등급과 던전의 크기에 따라 짧게는 72시간, 길게는 생성 후 30일이 경과하는 시점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것으로 업계에 보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불참자들을 위한 개별적인 재시험 여부는 어디까지나 교수의 재량이지 너희들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야. 테스트 불참으로 F가 뜨는 건 매정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고.”

게이트의 특성상 태주를 비롯한 101명의 개인적인 사정을 일일이 봐주면서 일정을 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헌터학과가 아닌 일반학과 역시 시험을 치르지 않은 학생에게 재시험의 기회를 주는 경우가 흔치 않았을 뿐더러,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기 때문에 이 교수의 입장에선 태도를 확고히 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최소 90퍼센트 이상의 학생들이 출석할 수 있는 경우에만 테스트를 진행할 거니까 학과사무실에서 연락이 가면 읽씹하지 말고, 바로바로 답장을 해. 뭐, 배터리가 없었네, 무음이라 못 들었네, 하면서 둘러대 봤자 딱히 구제 받을 가능성도 없고, 나중에 취업할 때도 던전 실습 과목이 F면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려우니까.”

- “어? 근데 E급 게이트 정도면, 다른 등급에 비해 꽤 자주 열리는 편인데 꼭 10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한 번에 다 끝내야 돼요?”

E급 게이트의 경우 발생 빈도가 높은 반면 길드의 선호도는 낮았기 때문에 학부생들의 수업이나 인턴쉽의 용도로 종종 이용되곤 했다.

“전국에 있는 헌터학과의 수는 총 30곳.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15곳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서울엔 한국대를 비롯한 무려 12곳의 헌터학과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말해, 강의명은 달라도 던전 실습1과 같은 실전 평가를 계획 중인 대학들이 우리 말고도 11곳이나 더 있다는 뜻이지.”

- “어? 그럼 서울에 E급 게이트가 열려도 다른 학교들이랑 상의를 해서 들어가야겠네요?”

“어. 근데 레이드는 협회의 허가를 받아야 되는 거라 일단은 협회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우선권이 부여되는데, 일차적으론 게이트가 어느 대학과 더 가까운지를 따져보고, 그 차이가 미미할 때 비로소 경합 중인 대학들끼리 협의에 들어가게 돼.”

- “그래도 결론이 안 나면요?”

“그럴 땐 협회가 개입을 해서 중재하도록 되어 있는데, 대부분 첫 번째 기준에서 결론이 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

일회성 평가의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납득한 아이들이 질문을 멈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문제는 세부적인 평가 방식인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따로 공대를 구성하지 않고 전체 인원이 동시에 레이드를 진행할 거야.”

- “교수님, 근데 그렇게 되면 서로 몬스터를 잡겠다고 경쟁하지 않을까요? 막말로 S급들이 치고 나가서 보스몹까지 싹 다 쓸어버리면 테스트의 의미 자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클래스에 따른 역할 분담도 모호해지고요.”

- “맞아요. 그냥 한 10명씩 끊어서 따로따로 진행해요.”

주엽과 슬아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기들이 몬스터 독식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물론 경험 많은 이 교수가 아이들의 이런 뻔한 불만들을 간과하고 있을 리 만무했지만.

“굿 퀘스천. 그래서 난 너희들이 가진 그 학점에 대한 욕심과 걱정을 평가에 반영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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