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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74화 (74/242)

074. 던전 실습1 (2)

대엽의 충고 덕분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온 태주가 점멸을 사용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춘 바로 그때.

“피유우웅!”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박성규가 입으로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를 내며 낄낄거렸다.

“뭐야, 쫄았냐?”

태주가 당황해서 멈춘 것으로 착각한 성규가 활을 거두며 비아냥거렸다.

같은 클래스끼리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질투심과 부러움.

궁수가 아닌 슬아에겐 와 닿지 않는 그 복잡 미묘한 혼자만의 괴로움이 성규로 하여금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태주의 존재 자체를 더욱 미워하게 만들었다.

‘비유우웅신.’

물론 태주가 받은 정신적인 데미지는 1도 없었지만.

“야! 박성규! 너 위험하게 뭐하는 거야 인마!”

이러한 상황을 우려했던 이 교수가 버럭 화를 내며 성규를 질타했다.

‘아아, 네가 성규구나.’

왕따를 모의한 주동자 2명 중 한 명을 발견한 태주가 박성규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에이, 교수님, 장난이에요. 장난.”

“장난? 그럼 태주한테도 장난 한번 쳐보라고 할까?”

“네. 그러죠 뭐.”

성규가 이 교수의 훈계를 웃어넘길 수 있는 건 궁수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이 1학년 때부터 쭉 사제지간을 유지해 온 애증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야, 너도 나한테 해봐.”

까마득한 후배가 감히 자신에게 활을 겨눌 리 없다고 확신한 성규가 두 팔을 벌린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물론 본인이 태주에게 평범한 선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어리석은 판단이었지만.

“…….”

하극상의 명분이 필요했던 태주가 난감한 척 이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야, 교수님 쪽 쳐다보지 말고 그냥 해.”

무방비상태인 성규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가슴을 내밀며 태주를 도발했다.

“아니, 근데 저 자식이 진짜……. 야, 태주야, 본인이 괜찮다니까 너도 똑같이 해버려.”

성규의 깐족거림이 못마땅했던 이 교수가 홧김에 내뱉은 농담이 태주의 고막을 때리던 바로 그때.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엄 교수에게 받은 활을 빛의 속도로 꺼내든 태주가.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치를 5배로 증폭시키며 폭발적인 마력을 발산함과 동시에.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박성규의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불이 붙은 화살촉이 상대의 이마를 향하도록 활시위를 당긴 채 그대로 멈췄다.

- “…….”

순간, 대기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태주의 믿을 수 없는 움직임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물론 그 어떤 개인적인 감상도 성규가 느낀 충격과 공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컥…….”

던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다시 말해,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성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극한의 공포심, 살기.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의 사냥감 신세로 전락한 성규의 사지를 마비시킨 건 놀랍게도 이마를 겨눈 화살도, 압도적인 마력도 아닌. 태주의 살기 어린 눈빛이었다.

최 총장이 들여다본 바로 그 맹수의 눈빛이…….

‘뭐야, 쫄았냐?’

사색이 된 성규의 몰골을 고압적인 시선으로 마음껏 비웃어주던 태주가 속으로 5초의 시간을 셌다.

‘……3, 2…….’

발칙한 도발에 종지부를 찍는 복수의 불꽃.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태주는 파이어 애로우의 차징 기술인 화염 효과를 발동시켜 성규의 반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을 작정이었다.

‘……1.’

5초의 시간이 흐르기 무섭게 화살촉을 달구고 있던 불이 횃불처럼 커졌다.

화르르!

물론 엄 교수에게 받은 슈팅 글러브까지 착용했다면 더 큰 불길이 일었겠지만, 활에 붙은 속성 대미지 버프만으로도 성규를 굴복시키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치-익.

“으아아악!”

화염 효과에 놀란 성규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꼴사납게 나자빠졌다.

쿵!

바닥이 울릴 만큼 세차게 엉덩방아를 찧은 성규가 코끝을 자극하는 오징어 굽는 냄새에 놀라 엉치뼈를 문지를 틈도 없이 황급히 얼굴을 매만졌다.

“어!”

앞머리는 물론 눈썹에 속눈썹까지 시원하게 타버린 성규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태주를 올려다봤다.

“장난이에요. 장난.”

성규의 조롱

섞인 멘트를 그대로 되갚아 준 태주가 폭주 스킬을 사전 종료시키며 인벤토리에 활을 집어넣었다.

- “맞네. 이번 기수 최고의 신입생……. 역시 퀸스맨이랑 캘리포니아 불리스가 보는 눈이 있어.”

- “근데 코앞에서 봐서 그런가? 입시 때 올라온 영상보다 더 빨라진 것 같은데?”

- “개강 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진짜 개강하네……. 성장 속도가 거의 대나무 수준이야.”

선배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궁수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태주의 경이로운 움직임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재능의 위엄을 한 장면으로 요약하고 있었다.

- “뭐야, 성규 쟤 며칠 전부터 선배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매직 아처든 뭐든 자기 선에서 다 정리된다고?”

- “그러게. 궁수 짬밥이 어쩌고, 활시위를 당긴 횟수가 어쩌고 하면서 온갖 설레발은 다 치더니 아주 제대로 발렸네.”

- “와아, 이거 신고식은 태주가 아니라 성규가 당한 것 같은데?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앞머리에 눈썹까지 홀라당 타버리고?”

- “야, 그건 그렇고 일단 성규 바지 상태부터 확인해야 되는 거 아니야? 저 정도 서프라이즈에 불장난까지 했으면 뽀송뽀송할 리가 없는……. 풉!”

- “바지도 바지지만, 앞으로 한 학기 동안 태주 얼굴을 어떻게 보지? 성규 성적으론 조기 졸업도 이미 물 건너갔고, 던전 실습2까지 같이 들으면 거의 1년 동안 마주쳐야 된다는 소린데……. 으으. 정말 내가 다 쪽팔린다.”

- “한마디로 성규의 흑역사는 이제 태주의 연관 검색어로 박제되는 거지. ‘4학년 선배 앞머리 태운 신입생 썰 푼다’ 뭐 이런 식으로.”

- “어이, 아까 선배 노릇 좀 해야겠다던 애들은 다 집에 갔냐? 당한 건 성규인데 덩달아 조용해졌네?”

-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닥치고 있는 게 정상이긴 하지.”

수업 전부터 큰소리를 쳤던 성규에 대한 실망감과 태주에 대한 호감도 상승의 영향으로 선배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여론이 한결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 “역시 S급은 클래스가 다르네. 확실히 교수님께서 아끼실 만해. 그렇지 슬아야.”

“…….”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슬아가 태주가 선보인 화려한 퍼포먼스의 여운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 “슬아야?”

본의 아니게 혼잣말을 하게 된 동기가 슬아의 눈앞에 손바닥을 휘저으며 관심을 구걸했다.

“어? 어, 지금 뭐라고 했어?”

그제야 집중력이 무너진 슬아가 화들짝 놀라며 동기의 부름에 반응했다.

- “아니, 이 상황이 지금 멍 때릴 때야?”

“아, 미안.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 “아무리 태주한테 무관심해도 그렇지 이번 건 좀 너무했다.”

“아니, 뭐, 잘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눈치 없는 동기 덕분에 속마음을 숨긴 슬아가 여전히 관심이 없는 척 영혼 없는 대답을 둘러대며 얼른 시치미를 뗐다.

바로 그때.

“자, 자, 쉬는 시간 아니니까 다들 조용히 하고, 박성규 넌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억울한 표정 그만 짓고 가서 세수나 하고 와. 태주는 잠깐 내 옆으로 오고.”

성규가 시비를 걸었을 때와는 달리 과잉 대처가 문제 될 수 있는 민감한 상황이었지만, 최소한의 개입을 택한 이 교수는 하극상의 여지가 있는 태주의 행동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물론 그러한 판단의 밑바탕엔 태주에 대한 호의적인 성향이 깔려 있었지만.

“네, 교수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 교수의 곁으로 자리를 옮긴 태주가 100명의 선배들과 정식으로 마주했다.

물론 다른 학과에선 휴학, 입대, 자퇴, 편입 등의 이유로 모든 동기가 4학년 수업을 함께 듣는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국가 비상사태에 상시 동원되는 조건으로 군복무가 면제된 각성자들의 경우 극심한 성적 미달로 인한 학사 경고나 학사 경고의 누적으로 해당 학년을 다시 수료해야 하는 유급 처분을 받지 않는 이상 무난하게 졸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각성자들이 모인 한국대 헌터학과에선 기수가 같은 100명의 인원이 동일한 강의를 수강하는 것도 크게 이례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이 안에서 일인자가 되라는 건데…….’

커리큘럼의 자율권을 담보로 학과장이 제시한 조건은 민주엽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었지만, 입시 때부터 수석을 놓친 적이 없는 민주엽을 이기라는 것은 곧 4학년들과의 경쟁에서 1등을 차지하라는 뜻과 동일했다.

“자, 모두 주목.”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한 이 교수가 태주에게 빼앗긴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어쩌다 보니 자기소개를 시킬 타이밍을 놓친 것 같은데, 뭐, 이쯤 되면 충분히 소개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이 중에서 태주를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몇몇은, 아니, 어쩌면 대다수의 인원은 까마득한 후배와 수업을 듣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규처럼 성숙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거나 텃세를 부리는 행위는 가급적 자제해주길 바란다.”

이 교수가 태주의 한쪽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뭐, 어차피 태주가 이 수업에 참여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건 지금 이곳에 있는 너희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모두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수강을 밀어붙인 이 교수는 오늘 아침에 나온 기사와 조금 전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이 태주의 실력에 대한 아이들의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좋아. 그럼 본격적인 수업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크고 작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겨울 방학 내내 굳어 있던 근육들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태주야, 너도 이제 들어가서 따라해.”

이 교수가 시범을 보이기 전, 태주를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들여보냈다.

“자, 굳이 오와 열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정확한 동작을 위해선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옆 사람이랑 너무 따닥따닥 붙어 있지 말고, 양팔 간격으로 넓게 넓게 서. 앞뒤 간격도 좀 여유롭게 벌리고.”

매사에 파이팅이 넘치는 이 교수가 의욕적인 목소리로 체조 대형을 잡아 나갔다.

바로 그때.

- “야.”

앞줄에 있던 선배 한 명이 적당한 자리를 찾고 있던 태주를 불러 세웠다.

“네?”

- “저기 맨 뒷줄로 가 봐.”

이름 모를 선배는 엄지로 자신의 뒤쪽만 가리킬 뿐,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맨 뒷줄?’

중간 중간 선배들이 서 있어 누구의 부탁을 받은 것인지는 한눈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승부가 됐든 대화가 됐든 기선 제압에 성공한 태주의 입장에선 딱히 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네.”

덤덤한 대답과 함께 발걸음을 돌린 태주가 자신을 힐끗거리는 선배들 사이로 유유히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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