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69화 (69/242)

069. 글로벌 영어 (1)

- “뭔데 그래?”

일체형 책상에 걸린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고개를 쭉 내뺀 아이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 “야, 근데 이 일체형 책상 너무 불편하지 않냐? 책상 면적도 너무 좁아서 책 한 권만 펴도 자리가 없어.”

탱커에 적합한 덩치를 지닌 전사 클래스의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 “그러게. 왜 멀쩡한 의자를 책상에 붙여서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었지? 신체 조건에 상관없이 사이즈도 다 똑같……. 어? 뭐야, 이거! 퀸스맨?!”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 신태주. 유일 클래스에 대한 글로벌 길드의 러브콜? 영국의 『퀸스맨』과 미국의 『캘리포니아 불리스』 또한 공개적인 관심 표명.]

- “야! 캘리포니아 불리스도 있는데?!”

기사를 접한 아이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아담한 강의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을 동시에 집중시켰다.

- “에이, 깜짝이야……. 야, 아침부터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 “퀸스맨이랑 캘리포니아 불리스가 왜? 둘이 뭐, 합병이라도 했어?”

영문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란의 이유를 물었다.

- “야, 이거 봐 봐. 지금 퀸스맨이랑 캘리포니아 불리스가 태주한테 공개적인 관심을 표명했대.”

포털 사이트에 걸린 기사를 맨 처음 발견한 아이가 휴대폰을 번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 “어! 진짜?!”

- “헐, 대박!”

- “야! 나도 보여 줘!”

태주의 소식에 놀란 아이들이 휴대폰 주위로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 “어? 진짜네?”

- “야, 근데 퀸스맨 길드면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영국에서도 탑3 안에 드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잖아.”

- “하긴, 뭐, 우리도 알 정도니까.”

- “근데 규모나 명성은 캘리포니아 불리스도 만만치 않을걸? 예전부터 미 동부는 게이트 스위퍼스가, 서부는 캘리포니아 불리스가 장악하고 있다는 말도 있잖아.”

- “와아, 그럼 둘 중에 어딜 가야 되는 거야?”

- “글쎄. 근데 그 정도 네임 밸류면 어딜 가도 괜찮지 않을까? 뭐,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만.”

- “아아, 나도 이런 데서 연락 한 번 받아보고 싶다.”

- “연락? 차라리 네가 지원하는 게 더 빠를걸?”

이번 일의 제삼자인 아이들이 의미 없는 저울질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그래도 궁수라면 퀸스맨 길드로 가야지.”

태주와 관련된 대화엔 어김없이 끼어드는 세준이 슬그머니 다가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어? 왜?”

궁수인 아이들은 세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클래스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퀸스맨의 대표님이 6차 각성 궁수거든.”

- “뭐? 6차 각성 궁수? 그럼 본인도 궁수라 태주에게 눈독을 들이는 건가?”

- “오오, 6차 각성이면 정말 어마어마한데? 우리나라는 아직 5차까지밖에 안 나왔잖아.”

- “솔직히 6차 각성부터는 인간계가 아니라 신계지. 신계.”

N차 각성의 한계로 여겨지는 6차 각성의 경우 무수히 많은 실전 경험과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의 훈련, 거기에 압도적인 재능이라는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다다를 수 있는 신의 경지였다.

“게다가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은 분이라 이름에 경칭도 붙어 있어. 개리 콜린스 경이라고……. 심지어 별명도 로빈 후드의 후예야.”

대를 이어 궁수가 된 세준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궁수 업계에 대한 정보가 풍부할 수밖에 없었다.

- “와아, 그런 대단한 사람이 태주를 언급했다고?”

- “그러게. 이건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제안인데? 완전 어나더 레벨이야.”

- “으음. 엄청난 건 맞는데, 솔직히 놀랄 만한 제안은 아니지 않나? 태주는 이미 국제 헌터협회에서도 인정을 받았잖아. 매직 아처의 발견은 인류의 새로운 진보다. 적극 응원한다. 뭐, 이런 식으로.”

- “하긴, 태주는 입시 때부터 쭉 주목을 받았으니까.”

- “다 같은 동기라는 생각에 잠시 망각했던 거지. 그래서 익숙한 게 무서운 거고.”

동기들의 입장에선 러브콜의 유무와 관계없이 속칭 메인 스트림이라 불리는 영미권의 초대형 길드들이 태주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 “근데 길드들은 원래 자국 헌터 우선주의 아니야? 우리나라만 해도 외국인 헌터가 거의 없잖아.”

- “그래도 유럽이나 북미 쪽은 사정이 좀 다를걸?”

- “하긴, 땅덩어리가 넓거나 범국가적인 연대를 형성하고 있으면 자국민만으로 커버할 수 없겠지.”

- “뭐야, 이러다 진짜 외국으로 스카우트 되는 거 아니야?”

- “어? 그럼 태주한테 매달 용돈을 주던 국내 길드들은? 다 들러리 신세가 되는 거야?”

- “야, 세준아, 풍림도 그 중 하나 아니야?”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세준에게 집중됐다.

“어? 잠깐……. 에이 씨, 그러고 보니까 이거 우리 회사랑 경쟁자네?”

자신이 경쟁 길드의 대표를 칭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세준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근데 태주가 해외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풍림에서 먼저 손절하지 않을까? 뭐, 길드의 규모로 봤을 때 큰돈이 나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헛돈을 쓰는 기분이 들 거 아니야.”

- “하긴, 세준이가 태주랑 친하다고 해도 개인의 선택을 강요할 순 없으니까.”

“야, 그래도 태주의 생각은 들어봐야 되는 거 아니야? 솔직히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태주가 다른 길드에 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불안감이 엄습한 세준이 아이들의 속단에 발끈하며 반박했다.

물론 세준의 바람과 달리 태주가 풍림에 가겠다는 뜻을 밝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외국에서 일은 할 수 있지. 근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 아니야?”

맨 앞줄에 앉아 관심 없는 척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있던 A급 법사 류정웅이 무리지어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 “뭐? 진짜 문제?”

“잘 생각해 봐.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길드들이 왜 태주를 원하고 있는지.”

정웅의 경우 냉소적인 성격 탓에 교우관계가 그리 원만한 편은 아니었지만, 각성자가 되기 전부터 한국대를 지망할 만큼 명석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가 빠르고 실리에 영악했다.

-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는데?”

- “야, 궁금하니까 빨리 말해 봐.”

기사에 언급된 표면적인 정보에만 집중했던 아이들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정웅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귀화……. 정확히 얘기하면, 헌터에게만 적용되는 특별 귀화 때문이겠지.”

참을성 없는 아이들의 성화를 즐기고 있던 정웅이 안경의 브리지 부분을 검지로 밀어 올리며 말했다.

- “뭐?! 귀화?!”

- “에이, 설마…….”

대다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지만, 헌터의 귀화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정웅의 의견 또한 함부로 무시할 순 없었다.

“뭐? 설마? 너희들 한국 국적의 헌터가 다른 나라 길드에 취업할 땐 특수 비자를 받아야 되는 거 정도는 알고 있지?”

지적 허영심이 강한 정웅이 거만한 말투로 물었다.

- “뭐? 특수 비자? 그런 건 그냥 스카우트하는 쪽이 알아서 처리해 주는 거 아니야?”

“맞아. 하지만 포인트는 비자 발급의 절차가 아니라 특수 비자에 붙는 각종 제한들이야.”

- “각종 제한들?”

단순히 해외 길드에 진출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만 있었을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머리 아프고 복잡한 실무에 큰 관심이 없었다.

“조금 전에 누군가 그랬지? 길드들은 원래 자국 헌터 우선주의가 아니냐고. 맞아. 자국 헌터 우선주의. 그래서 제안이 붙는 거야. 그래야 자국 헌터들이 레드오션으로 변한 취업 시장에서 최소한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

- “어? 근데 그 정도 어드밴티지는 당연한 거 아니야? 예를 들면, 홈그라운드의 이점처럼.”

“자국 헌터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지. 근데 태주처럼 특수 비자로 들어온 이방인에게도 당연하게 느껴질까? 한 달에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의 숫자도 제한되어 있고, 연봉과 던전 부산물에 부과되는 세율도 자국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데?”

- “뭐?! 진짜?!”

해외 진출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들을 알게 된 아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 “그럼 굳이 왜 나가는 거야?”

- “그러게. 그럴 거면 그냥 한국에 있지.”

“이유야 다양하지.”

아이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했던 정웅이 기다렸다는 듯이 해외 진출의 장점들을 나열했다.

“일단 버는 액수가 달라. 길드 차원에서의 지원과 인센티브의 종류도 국내에 비해 훨씬 세심한 편이고.”

- “마치 메이저 리그나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 선수의 연봉이 국내 리그에 있을 때보다 몇 배 더 높아지는 것처럼?”

“한마디로 비교 불가지. 뭐, 물론 퀸스맨이나 캘리포니아 불리스처럼 세계적인 길드에 한정된 얘기지만.”

- “우와, 몇 배씩이나? 그럼 세금을 많이 떼도 국내에서 받는 것보단 훨씬 더 많겠네?”

“게다가 커리어와 인맥도 쌓을 수 있고, 세계적인 길드의 운영 시스템에 대한 벤치마킹도 할 수 있으니까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지.”

- “또 듣다 보니까 굳이 안 갈 이유도 없겠네?”

“안 갈 이유는 없지. 대신 돌아갈 이유도 없어진다는 게 문제지만……. 사실 귀화를 택하면, 아무런 제약 없이 이득만 취할 수 있게 되거든. 특히 태주처럼 유니크한 특성을 지닌 각성자의 경우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도 기대해볼 수 있고.”

“뭐야,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태주가 파격적인 계약 조건에 혹해서 특별 귀화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잠시 말을 아끼고 있던 세준이 태주의 행보에 대한 정웅의 상반된 추측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태주를 노리는 길드는 국내에서만 벌써 스무 곳이 넘어. 해외 역시 퀸스맨과 캘리포니아 불리스가 먼저 스타트를 끊은 상태고……. 아마 이번 기사도 태주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의도적인 액션일걸? 상식적으로 태주의 마음을 선점해야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고, 계약을 통해 실력을 검증해야 특별 귀화의 제안 여부를 검토할 수 있으니까.”

경쟁 길드로서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세준과 달리 정웅은 냉철한 관점에서 근거 있는 주장을 제기했다.

- “근데 정웅아, 너는 해외 진출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 “그러게. 혹시 친척 중에 누가 귀화를 했어? 아님 그냥 개인적인 관심으로 검색해본 건가?”

정웅의 해박한 지식에 놀란 몇몇 아이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바로 그때.

“아, 그거…….”

자신의 박식함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던 정웅의 입에서 다소 충격적인 대답이 흘러 나왔다.

“사실은 나 인생 2회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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