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헌터의 역사 (5)
“그레이트…….”
한 교수가 첫 단어부터 범상치 않은 주문을 매서운 눈빛으로 외기 시작했다.
- “어! 뭐야!”
- “꺅!”
브리즈를 한차례 경험했던 아이들이 한 교수의 손바닥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상체를 내뺐다.
앞선 마법은 VIP 초청권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이번 건 오답에 대한 페널티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 “그레이트로 시작하면 설마……. 그레이트 스톰?”
- “뭐?! 그레이트 스톰?!”
일부는 두꺼운 전공 서적으로 얼굴을 가렸고, 일부는 마법의 시전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였다.
물론 페널티의 정체를 아는 태주만은 평온한 얼굴로 동기들의 어수선한 반응을 즐기고 있었지만.
‘앞에 브리즈를 깔아놨으니 안 속을 수가 없지.’
태주가 신입생들을 조련하는 한 교수의 노련한 빌드 업에 헛웃음을 지었다.
“……한 명밖에 없구나.”
찰나의 반응을 살핀 한 교수가 강의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 “어? 뭐지?”
- “그러게. 왜 그레이트에서 멈추시지?”
상황 파악이 안 된 아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페널티 따윈 없었다.”
펼친 손바닥을 거둔 한 교수가 미동조차 없던 태주를 응시하며 페이크였음을 밝혔다.
- “네?”
- “어? 그럼 틀려도 되는 거였네요?”
- “근데 왜 페널티가 있다고 하셨지?”
“자세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헌터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담대한 자세를.”
한 교수가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테스트의 의도를 밝혔다.
“이 책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선배 헌터들과 너희들의 공통점. 그건 바로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마음이다.”
- “…….”
학생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한 교수의 일침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조금 전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너희들은 작은 보상에도 열의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손을 들었다. 그리곤 페널티가 따른다는 말에 곧장 손을 내렸지.”
“저, 교수님, 죄송하지만 그건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는 거지 나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허창민이 한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감싸고 변호하는 것 역시 참으로 적극적이군.”
“네?”
“신중함이란 말로 모든 상황을 포장했다면,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인 첫 번째 헌터도, 던전의 주인을 잡고 게이트를 닫은 첫 번째 길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던전 브레이크로 파괴된 도시를 수습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겠지. 물론 자네의 기준에선 신중함도, 조심성도 없는 무모한 바보들이겠지만.”
“…….”
겁쟁이 취급에 발끈했던 창민이 한 교수의 논리적인 반론에 말문이 막혔다.
“역사엔 언제나 주연과 조연이 존재하고, 난 너희들 모두가 역사의 주연으로 남길 바란다. 물론 도전을 두려워하고, 손해 보는 것을 꺼려하는 자에겐 절대 허락되지 않을 자리지만.”
- “…….”
한 교수가 다시 한 번 강의실을 둘러봤지만, 태주를 제외한 그 누구도 선뜻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허창민.”
“네, 교수님.”
“아직도 내가 자네의 신중함을 오해하고 있는 건가?”
“아닙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교수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한 채 파르르했던 창민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를 힐난하기 위해 벌인 테스트가 아니니 위축될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물론 비난할 마음은 없어도 기준을 충족시킨 자에겐 칭찬을 함이 마땅하겠지만. 신태주.”
창민의 반성하는 모습을 확인한 한 교수가 태주의 이름을 불렀다.
“네.”
“독보적인 행보를 보일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던 네가 결국 내 수업 시간에도 두각을 드러내는구나.”
주연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갖춘 유일한 인물의 정체를 눈치챈 동기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 “뭐야, 그럼 태주는 정답도 맞추고, 교수님의 테스트도 통과했다는 거야?”
- “와아, 역시 S급은 클래스가 다르네.”
- “아니. S급이 다른 게 아니라 태주가 다른 거야. 아까 창민이 못 봤어? 케이스 바이 케이스. 말은 똑바로 해야지.”
- “아아, 나도 그냥 바람에 뒤지든 말든 당당하게 앉아 있을걸.”
- “야, 아까 보니까 네가 제일 먼저 움찔하던데?”
라이벌 구도를 통한 동반 성장의 시너지 효과를 유도하려는 한 교수의 바람과 달리 이번 간접 승부에서도 대다수의 동기들은 태주의 압승을 인정했다.
“…….”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냉혹한 평가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창민이 책상 밑으로 내린 주먹을 떨리도록 움켜쥐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미리 채워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아, 교재가 없는 사람은 노트에다 적은 뒤 추후에 옮겨 적도록.”
- “네.”
신속하게 대답을 마친 아이들이 1372페이지를 펴며 필기구를 집어 들었다.
“주제는 정답을 통해 이미 공개됐듯 자신이 장차 이루고 싶은 헌터로서의 목표다.”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정신 상태부터 다잡은 덕분인지 한 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잡담은 그치고,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만이 강의실 안을 채웠다.
잠시 후.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이 있나?”
시험 감독관처럼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던 한 교수가 정적을 깨고 물었다.
- “아니요.”
작성을 마친 아이들이 볼펜을 내려놓으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목표를 당당하게 밝혀주길 바란다.”
- “…….”
이번에도 역시 별도의 페널티는 없었지만, 일기를 공개하는 것과 같은 민망함을 느낀 아이들이 동기들의 반응을 걱정하며 한 교수와의 아이 콘택트를 피했다.
“어디 보자……. 어, 그래, 허창민.”
첫 번째 발표자로 낙점된 것은 2인자의 이미지를 지우고 싶은 S급 전사 허창민이었다.
“네.”
호명을 당한 창민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오오, 일빠.”
- “난 S급으로 각성하는 게 목표인데, 이미 S급인 창민이는 뭐라고 적었을까?”
- “그러게. 나도 좀 궁금하긴 하네.”
왠지 모를 기대감에 휩싸인 아이들이 목소리를 낮추며 창민이 서 있는 방향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총 몇 가지 목표를 설정했지?”
“차후에 추가될 순 있지만, 일단은 한 가지로 추려 보았습니다.”
“한 가지밖에 없다는 건 달성 가능성이 높거나 일반적으로 바라는 목표들은 제외했다는 뜻인데……. 내 말이 틀린가?”
“아니요. 교수님 말씀대로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는 목표만 남겨 둔 상태입니다.”
“으음. 목표란 늘 초기에 설정한 것이 가장 원대한 법이지.”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의 어려움을 아는 한 교수가 원대한 목표엔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 “와아, 이거 시작부터 세게 나가는데?”
- “야, 근데 앞에서 저러면 바로 뒷사람이 제일 비교되는 거 아니냐?”
- “그러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에 남을 만한 목표가 안 떠오르던데……. 기껏해야 S급 던전 클리어나 영미권에 있는 대형 길드로부터의 스카우트 제의 정도?”
창민과 달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최초처럼 부담스러운 단어가 들어간 목표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보게.”
“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은 제 첫 번째 목표는 국제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는 것입니다.”
“국제 대회라면, 학부생의 신분으로 참가할 수 있는 대회와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의 자격을 얻어 나갈 수 있는 대회로 구분되어 있을 텐데.”
“네. 가능하다면 모든 대회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실제로 허창민은 태주의 회귀 전 최지문 총장의 총애를 받아 한국대학교 헌터학과의 대표로 국제 대회에 참가하곤 했었다.
물론 아쉽지도 않은 성적으로 번번이 수상엔 실패했었지만.
“하지만 국제 대회는 개인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 선발된 단 한 명의 최우수 학생만이 학년을 대표해 한국대의 엠블럼을 부착할 수 있고, 나아가 국가마다 배정된 티오로 인해 다른 헌터학과에서 뽑힌 경쟁자들과도 최종 선발전을 치러야 한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그럼 혹시 그렇게 선발된 국가 대표 헌터들의 성적 또한 알고 있나?”
“네. 안타깝게도 국제무대에서 입상을 한 한국인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제로의 확률에 도전해보겠다는 건가?”
“교수님이 제게 말씀하셨듯이 도전을 두려워하고, 손해 보는 것을 꺼려하는 자에겐 역사의 주연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역사의 주인공들은 늘 불가능에 가까운 무모함을 즐겼다는 공통점이 있지.”
현실적인 난관을 언급함으로써 발표자의 의지를 확인했던 한 교수가 창민의 굳은 결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올 거다. 물론 S급 각성자인 너의 실력을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듯 한국대 헌터학과를 대표할 수 있는 학생은 학년별로 단 한 명씩밖에 없으니까.”
한 교수의 암시는 창민과 동일한 S급 각성자이자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태주가 최후의 걸림돌이 될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난관을 눈치챈 건 한 교수만이 아니었지만.
- “야, 국제 대회에 나가는 게 저렇게 빡센 거였냐?”
- “그러게. 나도 국제 대회 수상을 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세상 쓸데없는 고민이었네.”
- “근데 한 명만 선발되는 거면, 창민이 보다 태주 쪽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 “글쎄. 구체적인 선발 방식을 몰라서 섣불리 단정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확실히 태주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지.”
창민의 입장에선 원치 않는 저울질이었지만, 태주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동기들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였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태주와 창민의 선발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동기들 중 두 사람의 실력을 평가할 만한 자격을 갖춘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건 그렇고, 학부생 시절에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 이르면 내년 개정판에도 실릴 수 있겠구나.”
“네. 꼭 그럴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잘 들었다. 이제 자리에 앉아도 좋다.”
“네.”
창민이 발표를 마치자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동기들의 박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좋아. 그럼 이제 다른 사람의 목표도 들어볼까? 신태주.”
태주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박수를 치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주에게로 돌아갔다.
“네.”
“총 몇 가지 목표를 설정했지?”
창민이 받았던 질문에서 토시 하나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