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 레이드의 기초1 (6)
[“물론 거절은 거절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려 했던 태주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함 교수의 즉흥적이고도 일방적인 제안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시간 낭비라는 건가?’
애초에 이미지 관리용으로 구성한 공대라, 9명의 팀원이 있든 없든 태주의 전력엔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교.]
- “네, 교수님.”
입구 쪽에 있던 조교가 함 교수의 부름에 한쪽 손을 들었다.
[“나머지 애들 데리고 탈락자 대기실로.]
편애의 아이콘인 함 교수가 성에 차지 않는 학생들의 도전 기회를 가차 없이 박탈해 버렸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조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 “네? 아, 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쪽은 함 교수였지만, 오히려 인솔 책임을 맡은 조교들이 미안한 마음으로 후배들이 있는 곳을 힐끗거렸다.
- “어…… 다들 이쪽으로 올래?”
비상구로 다가간 조교 한 명이 당혹감에 휩싸인 학생들을 조심스럽게 불러 모았다.
- “뭐야, 진짜 이대로 나가는 거야?”
- “야, 대놓고 파리 목숨이라는데 뭐, 별수 있냐?”
- “떨어질 건 알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씁쓸하네.”
고글을 벗은 아이들이 하나둘 비상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태주야, 아무튼 우리 몫까지 힘내.”
- “그래. 다 같이 들어가진 못해도 끝까지 응원할게.”
- “아, 그리고 아까 뽑아줘서 고마워. 나중에 우리가 밥 한 번 살게.”
태주를 둘러싼 공대원들이 탈락자 대기실로 향하기 전, 격려의 말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태주야, 무리할 필요 없이 그냥 1분 27초만 넘으면 돼. 알았지?”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고 있던 세준이 화면상에 남아 있는 허창민의 생존 시간을 보며 말했다.
“대신 죽어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태주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 큰 세준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함부로 승리를 낙관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야, 임세준.”
“어?”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세준의 쓸데없는 걱정에 헛웃음을 친 태주가 인벤토리를 열어 피닉스의 집요한 발톱과 고뇌하는 하급 정령의 활을 꺼냈다.
▶ 착용한 아이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난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죽이러 가는 거야.”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헌터의 뜻은 사냥꾼.
순식간에 전투 준비를 마친 태주가 사냥감을 독식하기 위해 던전 입구로 나아갔다.
*
*
*
[증강현실이 구현됩니다.]
[피해가 누적되면 테스트가 중단됩니다.]
[00:00:01]
모의 던전 안으로 들어서자 스톱워치가 작동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보스전이라는 것을 아는 태주가 의미 없는 구간을 과감하게 통과했다.
바로 그때.
크아아아아!
머리가 셋 달린 레드 드래곤이 태주의 등장에 아가리를 벌리며 포효했다.
물론 증강현실로 생성된 몬스터라 실제론 고성능 스피커에서 구현한 실감나는 효과음에 불과했지만.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저런 건 3마리로 쳐야 되는 거 아니야?’
화살을 고른 태주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6개의 눈동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때.
[“제발 잠 좀 깨자.]
강한 기대감을 에둘러 표현한 함 교수의 나른한 목소리가 드래곤의 포효보다 더 강렬하게 태주의 귀를 사로잡았다.
‘저도 기다리느라 하품이 나왔습니다.’
통제실과 연결된 CCTV를 올려다보던 태주가 이번 미션의 핵심 스킬인 간파를 활성화시켰다.
태주가 유경험자인 것은 맞지만, 그 당시, 아무런 피드백 없이 수업을 끝낸 함 교수의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해당 던전에 대한 공략법을 누구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 스킬 『간파』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눈앞의 대상이 특수한 고글로만 보이는 허상이긴 하지만, 도발과 마찬가지로 실체성 자체가 스킬의 효력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생성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간파의 첫 희생양이었던 스톤 골렘 역시 추가 과제를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간파할 대상을 3초간 바라보십시오.
레드 드래곤을 노려보던 태주가 속으로 숫자를 세어 나갔다.
‘하나…… 둘…… 셋.’
▶ 스킬 『간파』가 발동되었습니다.
순간, 간파 대상의 공략 포인트가 태주의 머릿속에 데이터처럼 전송됐다.
‘저기였구나.’
레드 드래곤의 약점을 알아낸 태주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같은 시각.
테스트에서 제외된 27명의 학생들이 조교의 뒤를 따라 탈락자 대기실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섰다.
- “어? 왜 다 그쪽에서 나와?”
모의 던전에 대한 후일담을 나누고 있던 탈락자들이 자신들과 다른 문으로, 심지어 단체로 들어오는 동기들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교수님이 태주 빼고 다 여기로 가래.”
- “우린 던전에 들어가 보지도 못 했어.”
- “우리보고 파리 목숨이래.”
새롭게 합류한 아이들이 부모에게 일러바치듯 푸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뭐?!”
- “와…… 진짜 캐릭터 한결같네.”
- “저런 게 바로 입뺀인가?”
입구 컷을 당한 동기들로부터 듣게 된 충격적인 사실에 탈락자 대기실이 술렁였다.
물론 일방적인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는 허창민만큼 태주의 소식에 민감한 녀석도 없었지만.
‘이번엔 내가 이긴 건가?’
최고 기록 보유자인 허창민이 태주의 무모한 도전을 반기며 승리를 확신했다.
“뭐야, 그럼 저길 태주 혼자 들어갔다는 거야?”
어느새 다가온 원무가 세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 이제 곧 나올 거야.”
휴대폰을 꺼낸 세준이 태주와 헤어진 시간을 확인했다.
“근데 저 안엔 뭐가 있는데 그렇게 빨리 떨어진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세준이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저기? 한계…….”
“뭐? 1개?”
세준이 원무의 비유적인 대답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 1개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고. 한계.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그런 뭣 같은 한계가…….”
답답했던 원무가 세준의 한쪽 어깨를 움켜쥔 뒤 앞뒤로 흔들어댔다.
“아아, 한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세준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원무의 손을 치워냈다.
“사실은 안에 드래곤 한 마리가 있어. 그것도 졸라 짱 센 최강의 드래곤이…….”
“졸라 짱 세다면 혹시…… 투명 드래곤?”
한계의 실체를 알게 된 세준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모의 던전의 출구를 돌아봤다.
“아니. 뭐, 그 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머리 셋 달린 레드 드래곤.”
“아아, 레드 드래곤…… 그래도 레드 드래곤 정도면 킹정이지.”
판타지 세계관의 최강자로 묘사되곤 하는 드래곤들의 경우 그 종류와 상관없이 게이트 안에서 마주치기 싫은 기피 대상 1순위였다.
“야, 근데 태주 들어간 지 2분 넘지 않았냐?”
태주의 기록이 궁금했던 원무가 동기들에게 가려진 출구 쪽을 보기 위해 목을 쭉 뺐다.
“어? 그러게. 왜 아직도 안 나오지?”
대화에 정신이 팔려 있던 세준이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바로 그때.
[“큭큭큭큭.”]
탈락자 대기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요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 “누구인가?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
- “뭐야, 설마 교수님이 그런 거야? 갑자기 왜?”
- “아니,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터진 거지?”
- “어? 잠깐.”
때 아닌 웃음소리에 스치는 불길한 예감.
- “태주가 떨어졌나 본데?”
- “어? 그런가?”
함 교수의 기행에 혼란스러워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출구 쪽을 향했다.
- “…….”
한순간에 고요해진 탈락자 대기실 안.
아이들의 숨소리와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적막함이 이어지는 가운데.
팟!
한쪽 벽면에 걸린 대형 화면의 전원이 느닷없이 켜졌다.
- “어? 저게 갑자기 왜 커지지?”
- “이제 테스트가 다 끝났으니까 등수를 매기려는 거 아니야?”
- “근데 태주는 얼마나 버텼을까?”
- “그러게 태주의 기록을 알아야 1등을 정할 수 있는데.”
- “이번엔 창민이가 1등 아닐까? 솔직히 레드 드래곤을 혼자서 상대하는 건 좀 무리잖아.”
- “하긴, 2등인 1분 17초하고도 무려 10초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1등이니까.”
- “어? 이러다 혹시 우리보다 기록이 안 좋은 거 아니야?”
- “야, 그게 되겠냐?”
- “아니야. 쟤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게 혼자 들어가면 아무래도 시선을 분산시킬 수 없으니까 공격이 더 집중되겠지.”
한동안 말을 아끼고 있던 허창민이 자신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대다수의 의견에 취해 입에 발린 소리를 덧붙였다.
“그래도 결과는 나와 봐야 알지.”
물론 머릿속으론 이미 태주를 위한 위로의 멘트를 고민하며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었지만.
- “오오, 저 겸손함 보소.”
- “저게 바로 승자의 여유인가?”
- “역시 1등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네.”
- “아, 내 말이. 나 같으면 진짜 1등 찍자마자 SNS에 자랑한다.”
- “하긴, 태주를 이겨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마음에도 없는 말에 속은 몇몇 아이들이 허창민의 신중함을 높게 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근데 태주랑 허창민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맞붙었지?”
- “어디 보자. 입학시험 때 한 번, 새터 때 한 번, 그리고…….”
- “오늘까지 총 3번인가?”
- “어, 그런 거 같아.”
- “으음. 그럼 2대0이었던 상대 전적이 2대1로 되는 건가?”
- “뭐, 창민이 말대로 까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분위기로 봐선 그럴 가능성이 크지.”
순위 발표가 미뤄질수록 태주에 대한 기대감도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 “어! 떴다!”
새까만 화면을 주시하고 있던 탈락자 한 명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탈락자 순위]
- “어?! 진짜 떴네?!”
- “야! 1등 누구야! 누구!”
- “허창민?! 신태주야?!”
- “와…… 내 등수도 아닌데 왜 이렇게 궁금하지?”
삽시간에 몰려든 아이들이 까치발을 세우며 화면 앞을 기웃거렸다.
바로 그때.
[1. 허창민 (전사) 00:01:27]
최상단에 뜬 허창민의 이름에 지지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 “어! 창민이가 이겼다!”
- “드디어 S급끼리의 경쟁 구도로 가나요?”
- “아아, 태주는 2등인가 보네.”
- “그래도 창민이랑 몇 초 차이 안 나겠지?”
- “뭐, 몇 초가 됐든 진 건 진 거니까.”
- “창민아 축하해.”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허창민의 등과 어깨를 두드리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후우……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뭐.”
결과를 확인한 허창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껴뒀던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2. 민대엽 (어쌔신) 00:01:17]
- “어? 태주가 아니네?”
- “뭐야, 그럼 태주는 몇 등이야?”
2등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자 허창민을 비롯한 99명의 아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 김호철 (어쌔신) 00:01:17]
-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 “말도 안 돼.”
심지어 공동 2등은 물론 상위 10명의 명단이 공개되는 동안에도 신태주란 이름 석 자는 보이지 않았다.
*
*
*
잠시 후.
[73. 엄득구 (전사) 00:00:00]
[73. 하재룡 (전사) 00:00:00]
[73. 임세준 (궁수) 00:00:00]
- “어? 이상하다. 왜 태주만 이름이 없지?”
- “그러게. 던전에 들어간 사람은 태주까지 포함해서 총 73명이잖아. 그럼 테스트에서 제외된 애들을 동점자로 처리한다고 해도 74등부터 표시하는 게 맞는데.”
- “혼자만 시험을 봐서 결과가 누락됐나?”
등수를 확인하던 아이들이 평가의 정확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던 바로 그때.
- “어! 저게 뭐야!”
기존의 화면이 전환되며 새로운 명단이 공개됐다.
[생존자 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