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레이드의 기초1 (2)
공대 구성 미션은 왕따였던 태주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당시엔 동기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전력으로 낙인찍힌 탓에 팀원 합류 자체를 연거푸 거절당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원을 채우지 못한 마지막 조에 구색 맞추기용 멤버로 들어가 눈칫밥을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그때의 설움이 무색할 만큼 태주를 데려가려는 아이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 “태주야, 우리 조에 궁수가 없는데 들어올래?”
- “야, 내가 먼저 얘기했거든? 태주야, 우린 힐러만 셋이라 절대 죽을 일이 없어.”
- “신태주 절친이나 섭외 가능한 팀원, 무한 힐로 모십니다.”
물론 힐러 없이 단독 클리어도 가능한 태주의 입장에선 공대 선택을 미룬 채 이 상황을 즐기고 싶을 따름이었지만.
‘와…… 476등으로 합격했던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지금은 태주로 인해 차석으로 합격을 했지만, 회귀 전엔 S급 전사이자 28기 수석 합격자인 허창민이 똑같은 관심을 받았었다.
“태주야, 우리 같은 조 하자.”
옵션처럼 따라다니는 세준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제안했다.
“어! 그럼 나도 껴줘!”
“태주야, 나랑 원무는 세트인 거 알지?”
어느새 나타난 원무와 소영이 태주의 양팔에 하나씩 들러붙으며 말했다.
“미안. 그냥 난 제일 마지막에 알아서 들어갈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밀려드는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 태주가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은 아니다.’
인기와 실리.
물론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이득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훤히 꿰뚫고 있는 태주의 머릿속엔 이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계획이 들어 있었다.
- “어? 뭐야, 어디 갔어?”
- “야, 시간 없으니까 일단 다른 애들부터 영입하자.”
- “태주가 안 되면 허창민이라도 잡아야 되는 건가?”
드래프트 0순위이자 일당백의 능력을 지닌 태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아이들이 차선책을 떠올리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저나 허창민은 여전히 인기가 많네.’
물론 태주만큼은 아니었지만, S급이라는 높은 각성 수준과 차석이라는 프리미엄으로 인해 가장 흔한 클래스인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 “야! 여기! 여기!”
- “어? 다른 애들은?”
- “다 저쪽에 모여 있어. 빨리 가자.”
- “역시 의리의 3조.”
한산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태주가 함 교수의 시선에서 공대 편성의 양상을 지켜봤다.
‘확실히 초반은 인맥 놀이네.’
함 교수가 지시한 건 10개의 공대였지만, 한눈에 봐도 2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무리들이 친목을 도모하며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분명 생존에 유리한 팀원을 찾아 뭉치라고 했지만, 실전이 아니라는 생각에 대부분 새터 때 알게 됐거나 클래스별 모임에서 친해진 동기들의 익숙한 얼굴만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입을 굳게 닫은 채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던 함 교수의 두 번째 손가락이 천천히 접혔다.
- “야, 우린 힐러가 없는데?”
- “어? 진짜네? 여기 공대 없는 힐러 한 명 선착순!”
- “딜탱 가능한 전사나 무투가 구합니다!”
- “이타적인 어쌔신 1명만 와라!”
- “서포트 잘하는 법사 2명만 이쪽으로!”
인맥만으로는 한계가 있자 이번엔 자신들의 모임에 없는 클래스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
2분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함 교수의 세 번째 손가락이 서서히 굽혀졌다.
- “야, 너네 다 합해서 몇 명이냐?”
- “우리? 우린 아직 6명.”
- “어, 그럼 우리 팀은 5명이니까 일단 합칠래?”
- “너희 팀에 누구누구 있는데?”
- “나까지 포함해서 전사 2명, 법사 2명, 그리고 어쌔신 1명.”
- “뭐야, 다른 클래스는 없어?”
- “그럼 너넨 누구누구 있는데?”
- “우리는 전사 3명, 법사 1명, 무투가 1명, 그리고 힐러 1명.”
- “어? 그럼 우리끼리 합치면,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오겠는데?”
- “그러게. 후방에서 지원해줄 궁수도 없고, 힐러도 한 명밖에 없지만, 어차피 힐러는 100명 중에 15명밖에 없어서 많이 돌아가 봐야 한 팀에 2~3명이니까.”
인맥 놀이와 클래스 모집에 이어 나타난 현상은 연합이었다.
적게는 4명, 많게는 7~8명이 모인 무리들이 10명이란 기준을 맞추기 위해 서로의 구성을 공유했는데, 이는 곧 방출이라는 새로운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 “야, 근데 한 명이 오버되는데?”
- “그러게. 전사 5명, 법사 3명, 어쌔신 1명, 무투가 1명, 힐러 1명. 총 11명이네.”
- “으음. 전사나 법사 중에서 한 명이 나가야 될 것 같긴 한데.”
- “그래도 전사를 빼는 게 낫겠지? 솔직히 공대의 절반을 전사로 채우는 건 밸런스 측면에서도 썩 좋아보이진 않으니까.”
- “근데 차라리 무투가를 빼는 게 낫지 않아? 이왕이면 맨주먹보다 검이 더 든든하잖아.”
- “글쎄. 장비빨을 무시할 순 없지만, 무투가가 전사보다 힘도 세고, 민첩하잖아. 별다른 방어구 없이 몸빵도 좋고.”
- “그럼 전사를 셋이나 보유한 너희 팀에서 한 명을 방출하는 게 맞겠지?”
- “아아, 근데 그 셋이 다 나랑 절친이라 한 명만 내보내기 좀 그런데.”
- “정 그러면, 전사 5명 중에서 입학 성적이 제일 낮은 사람을 빼자.”
- “어? 그럼 너도 전사라 방출 후보에 포함되잖아.”
- “그거야 뭐 어쩔 수 없지.”
- “하아…… 좀 매정하긴 해도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것보단 덜 억울하겠지?”
팀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방출 대상으로 지목된 아이의 입장에선 민망함과 서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냉정한 결정이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쳐내고, 또 쳐내라.’
물론 각각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당사자들의 씁쓸한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태주는 그들의 소외감을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할 작정이었지만.
“…….”
함 교수의 네 번째 손가락이 접힐 무렵엔 아이들의 이동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이제 곧 트레이드로 넘어가겠네.’
공대 편성의 전개 양상은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키 플레이어 선점을 위한 움직임에 이은 친목 행위와 클래스 모집, 거기에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무리들의 연합과 그로 인해 야기된 기존 멤버의 방출까지.
이제 남은 건 공대의 구성을 최적화하기 위한 팀원의 맞교환과 던전 클리어의 마지막 퍼즐이라 할 수 있는 최종병기, 신태주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 “원하는 클래스로 줄 테니까. 힐러 독식하지 말고, 제발 한 명만 넘겨라.”
- “법사를 전사로 트레이딩 하고 싶은 공대 없냐?”
- “궁수면 몰라도 전사는 좀.”
- “어디 어쌔신 없는 조 없냐? 우리가 한 명 양보할 테니까 무투가랑 바꾸자.”
자신을 원하는 곳이 있다는 점에선 방출보다 낫지만, 상대 팀에게 넘겨주기로 한 클래스가 팀 내에 2명 이상 있을 경우 실력에서 밀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트레이드 대상자의 입장에선 그리 유쾌한 이동이 아니었다.
- “…….”
드디어 접힌 함 교수의 마지막 손가락.
이제 편성 마감까지는 고작 1분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 “야, 혹시 모르니까 태주 자리 하나만 빼놓자.”
- “아, 맞다. 태주가 있었지?”
현재 만들어진 공대의 숫자는 총 10개.
그중, 9명으로 구성된 공대는 한 곳뿐, 나머지 9개의 공대는 10명의 인원을 모두 채운 상태였다.
- “일단 9명으로 해놨다가 다른 팀한테 뺏기면 다른 애들로 채워 넣지 뭐.”
- “그럼 전사가 제일 많으니까 전사들 중에서 한 명 내보낼까?”
공대의 인원이 결국 10명으로 맞춰진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자신의 팀원을 고민 없이 방출시키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 타이밍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태주는 뒤늦게 방출된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질수록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 커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10명을 채운 조에서 방출된 9명의 아이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하나둘 모여들었다.
멤버의 구성은 전체 입학생의 약 3분의 1에 육박하는 전사 클래스가 8명으로 가장 압도적이었고, 2명의 궁수를 보유하고 있던 공대에서 방출된 B급 궁수 세준이 나머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쟤가 저런 성격이 아닌데.’
태주가 방출된 인원 속에 섞여 있는 세준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 “태주야, 너 아직도 어디에 들어갈지 못 정했어?”
- “태주야, 우린 아예 너랑 하고 싶어서 궁수 자리까지 하나 빼놨어.”
- “태주야, 공대장에 막타까지 다 줄 테니까 제발 우리 팀에 와라. 어?”
종료 약 20초 전, 모의 던전의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태주를 차지하기 위한 2차 대시가 시작됐다.
“아니. 그냥 내가 따로 하나 만들게.”
- “뭐?!”
- “저기, 태주야, 잠깐만.”
삼고초려를 연상케 하던 태주의 예상치 못한 행보에 동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안하지만, 누구랑 하든 똑같거든. 딱히 도움이 안 되는 건…….’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태주가 방출된 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났다.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한.
팀에서 쫓겨난 피해자지만, 오히려 팀에 기여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그래서 더 민망하고, 고개를 숙이게 되는.
그런 첫 번째 스무 살 속 신태주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그들의 중심에 태주가 나타났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구원자의 입장이 되어.
턱!
태주가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들에게 두 팔을 벌려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선언했다.
“10명. 끝.”
이들은 버려진 게 아니라 자신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 “태, 태주야…….”
태주의 공대원이 된 아이들이 고마움 그 이상의 감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며 말끝을 흐렸다.
- “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아니, 태주가 왜 저기서 나와.”
현장에 있던 모두가, 심지어 지루한 기다림을 이어 가던 함 교수마저 태주의 이해할 수 없는 결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주를 포섭하기 위해 희생된 아이들을 태주가 포용하는 반전 중의 반전.
물론 태주의 감정이 이입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인기와 실리를 동시에 얻으려는 태주의 계획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바로 그때.
“그만.”
시간을 체크하던 함 교수가 주먹 쥔 손을 내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리곤 수업 시작 10분 만에 처음으로 치열을 드러내며 섬뜩하게 웃었다.
“미친놈. 아주 마음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