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직업 탐구1 (1)
트레이닝 돔 지하에 위치한 궁수 훈련장.
첫 수업인 만큼 12명의 아이들 모두 늦지 않게 모여 있었다.
- “야, 너 그 활 얼마 주고 샀냐?”
- “나 이거 할부로 산 거야. 12개월 꽉 채워서.”
다행히 얼마 전에 있었던 궁수 모임의 영향으로 어색함 따윈 없었다.
- “근데 증강현실 수업이 아니네?”
훈련장의 구조를 둘러보던 아이가 말했다.
- “그냥 엄청 큰 실내 양궁장 같은데?”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였다.
태주의 입장에선 입이 근질거렸지만, 사실 이곳은 평범한 양궁 훈련장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 “어! 교수님 왔다!”
입구 쪽을 보고 있던 아이가 엄 교수의 등장에 호들갑을 떨었다.
- “새터 때 안 왔던 교수님이지?”
- “어. 나도 오늘 처음 봤어.”
아쉽게도 태주바라기인 이종도 교수는 직업 탐구 수업을 맡지 않았다.
- “뭐야, 교수님 몸이 엄청 좋은데?”
- “와…… 저 정도 벌크업이면 거의 헬스장에서 살아야 되는 거 아니냐?”
- “몸만 보면 궁수가 아니라 탱커인데?”
아이들도 곧 깨닫게 되겠지만, S급 궁수이자 3차 각성자인 엄승준 교수는 겉모습과 달리 섬세한 활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 “야, 얼굴도 겁나 무섭게 생겼어.”
- “그러게. 결석은커녕 지각만 해도 큰일 날 분위기네.”
- “강의 시간에 조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 “음…… 그러다 영원히 잠들지 않을까?”
범상치 않은 체격을 지닌 엄 교수의 강렬한 첫인상에 아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엄 교수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아이들이 경직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뭐야, 이거. 이래서 활시위나 당기겠어?”
성큼성큼 다가오던 엄 교수가 세준의 팔뚝을 덥석 움켜쥐며 말했다.
“크윽.”
팔뚝을 잡힌 세준의 얼굴이 엄 교수의 악력에 급격히 일그러졌다.
“활쟁이는 원래 힘이야 힘!”
자신과 같은 체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엄 교수가 아쉬움에 언성을 높였다.
“던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강하면 살고, 약하면 죽는다.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궁수를 택한 이상 열외는 없다. 눈높이 수업? 차등적 커리큘럼? 글쎄. 사회에 나가서도 과연 그딴 소리가 통할까?”
아이들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던 엄 교수가 세준의 활을 뺏어 들었다.
“신입생치곤 꽤 좋은 활을 쓰는군.”
엄 교수가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았다는 세준의 활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아, 예…….”
세준이 엄 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살.”
엄 교수가 세준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 “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당황한 세준이 황급히 꺼낸 화살 한 발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헌터 업계는 이미 포화상태다. 한마디로 레드오션에 진입한 지 오래지.”
화살을 움켜쥔 엄 교수가 발사선으로 다가가자 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과녁 하나가 올라왔다.
위이잉!
“때문에 적당한 훈련으로 길들어진 헌터는 던전 안에서든 사회에서든 도태되기 마련이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눈을 감은 엄 교수가 멀리 있는 과녁을 등진 채 활시위를 당겼다.
“이 간단한 섭리는 비단 자연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쉬이익!
과녁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던 엄 교수가 빠르게 돌아서며 활시위를 놓았다.
딱!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꽂혔다.
[10점]
순간, 발사선 바닥에 설치된 화면에 점수가 나타났다.
- “우와!”
- “와, 대박!”
- “야, 나 순간 욕 나올 뻔했어.”
엄 교수의 정교한 활솜씨에 놀란 아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점수판을 바라봤다.
“캠퍼스는 낭만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일종의 직업 훈련소다. 그러니 프로가 되러 왔으면, 지금부터 경쟁을 하는 것에만 익숙해져라.”
시범을 마친 엄 교수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발사선을 벗어났다.
“자. 이제 네가 해봐.”
기선 제압에 성공한 엄 교수가 빌린 활을 돌려주며 세준에게 지시했다.
확실히 말투로 보나 교육 방식으로 보나 교수보단 교관이란 칭호가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 “네? 제…… 제가요?”
활을 건네받은 세준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
팔짱을 낀 엄 교수가 달마의 눈빛으로 세준을 말없이 노려봤다.
“여…… 여기서 쏘면 되나요?”
엄 교수의 기세에 눌린 세준이 발사선으로 이동하자 이번에도 역시 과녁 하나가 올라왔다.
위이잉!
“몰입이 안 된다면 내가 상황 하나를 설정해주지.”
엄 교수가 세준의 양어깨를 움켜쥔 뒤 과녁을 등지도록 돌려놨다.
“넌 이미 몬스터의 공격으로 두 눈을 잃은 상태다. 힐러의 도움을 받기 전까진 장님 신세를 면할 수 없지.”
엄 교수의 악력에 긴장한 세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힐러보다 먼저 몬스터가 나타났다. 심지어 사냥감의 등을 포착한 맹수처럼 아주 빠르게 접근하고 있지.”
“후…….”
심호흡을 한 세준이 화살 한 발을 꺼내어 활시위에 걸었다.
“기회는 단 한 번. 자, 이제 손끝의 감각을 살려 3초 안에 공격을 마쳐라. 하나, 둘…….”
엄 교수가 숫자를 세어나가자 상황에 몰입한 세준이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셋!”
정신을 집중시키던 세준이 엄 교수가 그랬듯 몸을 뒤로 돌리며 활시위를 놓았다.
쉬이익!
과녁이 있는 곳까지는 약 30미터.
최대 100미터까지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가변적인 구조였지만, 눈을 감은 상태로 맞히기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팅!
과녁을 벗어난 화살이 훈련장 끝에 설치된 방어벽을 맞고 튕겨 나왔다.
“…….”
소리를 듣는 순간 눈을 감고 있던 세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굳이 확인을 하지 않아도 알겠지?”
엄 교수의 냉정한 평가에 눈을 뜬 세준이 발밑에 뜬 점수를 확인했다.
[M]
미스. 곧 0점이란 뜻이었다.
“활이 아까운 실력이군.”
엄 교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혹평을 받은 세준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한국대라는 타이틀에 취해 스스로를 재능 있는 궁수로 여기고 있겠지만, 천만에. 이게 바로 너희들의 진짜 실력이자 궁수로서의 현주소다.”
- “…….”
아이들이 엄 교수의 날카로운 지적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물론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설마 뒤에 있는 적을 눈 감고 쏠 일이 있겠어? 아니. 미안하지만, 이건 내 경험에서 비롯된 훈련이다. 교수가 되기 전, S급 던전에서 맞닥뜨린 내 인생 최대의 위기였지.”
- “……?!”
부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엄 교수의 충격적인 고백에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왼쪽 팔을 내어준 상황에선 발로 활을 밀어낸 채 활시위를 당긴 적도 있었다.”
엄 교수가 힐러의 도움으로 회복된 팔을 들어 보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엄 교수의 모습을 상상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던전 안에서 장담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 “…….”
편안한 마음으로 왔던 아이들이 첫 번째 수업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너희들은 그저 궁수 흉내를 내고 있는 애송이들에 불과하다. 물론 내 수업을 듣게 된 이상 아마추어처럼 행동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 “…….”
고생길이 열렸음을 직감한 아이들이 궁수가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인원이라 출석 따윈 가볍게 생략한 엄 교수였다.
“모두 원하는 발사선으로 이동해라.”
엄 교수의 한마디에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 “설마 첫날부터 수업하는 거야?”
- “야, 지금 수업이 문제냐? 저 얼굴을 매주 봐야 되는 게 문제지.”
- “근데 이게 직업 탐구1이면, 2도 있는 거 아니야?”
- “뭐야, 그럼 이 숨 막히는 수업을 2학기 때까지 들어야 돼?”
발사선으로 향하던 아이들이 발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놨다.
“태주야, 넌 저런 교수가 걸렸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엄 교수에게 호되게 당한 세준이 태주의 곁으로 붙으며 물었다.
“어.”
단호함의 이유를 아는 태주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반엔 정신 교육을 동반한 고강도 훈련에 지쳐 궁수가 된 것을 후회하지만, 길드 마스터였던 엄 교수의 살 떨리는 경험담을 듣다 보면 훈련만이 살 길이라는 잔소리를 함부로 흘려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더구나 2회차 신입생인 태주는 엄 교수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격함 속에 숨겨진 인간미.
거친 표현 방식으로 인해 오해를 사는 부류였지만, 길드를 해체하면서까지 교단을 택한 엄 교수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아는 이들은 그의 서툰 화법을 절대 비난하지 않았다.
“어이, 거기 1, 2번.”
엄 교수가 발사선에 위치한 학생 2명을 무작위로 지목했다.
- “네!”
군기가 바짝 든 아이들이 합창을 하듯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상자 하나 보이지.”
팔짱을 낀 엄 교수가 훈련장 구석에 놓인 커다란 철제 박스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 “네.”
“자, 지금부터 셋 셀 동안 가져와. 하나…….”
- “네? 아, 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아이들이 엄 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네가 저쪽에서 들어.”
- “어, 알았어.”
상자의 양쪽 끝으로 이동한 두 사람이 사이드에 위치한 손잡이를 동시에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 “어?!”
허리를 펴려던 두 사람이 미동조차 없는 상자의 무게감에 놀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 “야, 힘 좀 줘봐.”
- “줬어.”
- “근데 이거 왜 이렇게 무겁지?”
- “그러게. 대체 안에 뭐가 든 거야.”
- “야, 그냥 양손으로 들자.”
- “어, 알았어.”
승부욕이 발동한 아이들이 이번엔 마주본 상태로 자세를 낮췄다.
- “하나, 둘, 셋 하면 드는 거다. 자, 하나, 둘, 셋! 흡!”
- “흡!”
어찌나 힘을 줬는지 엉거주춤하게 선 두 사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심지어 지켜보는 이들의 손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 “어우 씨, 안 되겠다.”
- “야, 일단 놔봐. 놔봐.”
물론 두 사람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굳게 닫힌 상자는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평온하게 놓여있었지만.
- “저, 교수님, 이거 둘이선 절대 못 들 것 같은데요?”
- “네. 아예 꿈쩍도 안 해요.”
상자에서 손을 뗀 아이들이 엄 교수를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될 리가 있나.’
내용물의 정체를 아는 태주가 동기들의 포기를 당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물론 두 사람의 실패를 예견하고 있던 건 태주만이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