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새터 (22)
▶ 아이템의 등급이 상승(고급→희귀)하였습니다.
신비로운 빛이 잦아듦과 동시에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 뭐야 이거!’
최근 들어 이렇게 놀랐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등급이 상승하다니.’
아이템의 등급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어졌다.
일반, 고급, 희귀, 전설, 재앙.
전설 등급 이상은 게이트 안에서만 구할 수 있는 반면, 희귀 등급 이하론 장인의 손을 거쳐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나 한 번 정해진 등급은 그 어떤 장인의 손을 거쳐도 올라가는 법이 없었는데, 태주가 그 어려운 일을 최초로 해낸 것이다.
물론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진짜 희귀 등급으로 바뀌었네.’
목걸이를 잡는 순간 확연하게 달라진 세부 옵션들이 나타났다.
[신성력이 깃든 행운의 목걸이]
- 등급: 희귀
- 강화 성공률 20% 증가
- 30%의 확률로 신성 공격 발동- 치명타 확률 20% 증가
- 치명상 확률 20% 감소
- 체력 회복 속도 10% 증가- 마나 회복 속도 10% 증가
- 근력 5% 증가
- 공격력 5% 증가
- 방어력 5% 증가
- 민첩성 5% 증가
- 속성 대미지 5% 감소
- 상태 이상 대미지 5% 감소
총 6개의 항목이 새롭게 추가됐고, 강화 성공률을 제외한 기존 옵션 5개가 더 나은 확률로 개선되어 있었다.
▶ 목걸이에 깃든 능력은 착용 시에만 적용됩니다.
‘와…… 내가 목걸이를 다 차네.’
장신구는 크기에 비해 만만치 않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보석들도 그리 저렴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마력이 깃든 반지나 팔찌 등의 경우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웃돌곤 했다.
그러다 보니 태주처럼 여유가 없는 헌터들은 장신구에 투자할 돈을 기본 장비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기나 방어구의 수준이 만족스러웠던 건 절대 아니었다.
▶ 착용한 아이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24시간 들고 다닐 수 없는 활과 달리 목걸이의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속적인 버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제 과잠까지 입으면 더 날아다니겠네.’
헌터학과 학생들 역시 프로들과 마찬가지로 장비를 구입하거나 착용할 순 있었다.
물론 던전에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어 대부분 수업이나 대회에 참가할 때만 한시적으로 사용했는데, 과잠이나 목걸이의 경우 흉갑이나 투구처럼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아 훨씬 활용도가 높았다.
‘그나저나 헤파이스토스는 어떻게 된 거지?’
신화에 대한 조예는 없었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대장장이의 신이라는 것 정도만 흘려들은 적이 있었다.
‘혼돈의 입구는 또 뭐고.’
의도치 않았던 회귀인 만큼 첫날부터 알 수 없는 현상들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으로선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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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의 마지막 밤은 늘 캠프파이어였다.
- “와…… 실물 진짜 장난 아니지 않냐? TV로 볼 땐 그 정도가 아니었는데.”
- “야, 난 좀 전에 팬클럽까지 가입했어. 3기로. 심지어 내일모레 굿즈도 와.”
- “아무튼 카메라가 잘못했네. 아니, 어떻게 그런 여신 같은 외모를 그따위로…… 어? 태주야.”
강당 밖으로 나오던 9조의 아이들이 공연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던 태주를 발견했다.
- “야, 우리가 널 얼마나 찾았는데.”
- “그러게. 너 아까부터 어디 있었냐?”
회귀 전엔 옆에 있어도 없는 사람 취급을 했지만, 지금은 태주의 빈자리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는 동기들이었다.
“어. 잠깐 바람 좀 쐬러 나왔어.”
아이들의 관심이 싫지만은 않았던 태주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아니, 걸그룹을 안 보고 바람을 쐬러 나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 야심한 시각에?”
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던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하긴, 서혜린이 있는데 걸그룹이 눈에 들어올 리 없지.”
- “어! 너 설마 서혜린이랑 통화하러 나왔던 거 아니야?”
- “태주야, 나 나중에 서혜린이랑 영상통화 한 번만 시켜주라. 어?”
농담 반에 헛소리 반인 의미 없는 대화였지만, 외로운 학부시절을 보낸 태주의 입장에선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이 순간이 시간 낭비로 느껴지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벤치에서 일어난 태주가 헛웃음을 지으며 앞장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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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목탑처럼 높게 쌓아올린 장작 주위로 100명의 신입생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자, 이제 새터의 마지막 순서가 되었는데요. 혹시 많이 추우세요?”]
- “네!”
팔짱이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던 아이들이 움츠러든 자세로 목청을 높였다.
[“안 그래도 여러분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교수님께서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교수님?”]
사회자와 눈이 마주친 학과장이 농구공 크기만 한 파이어볼을 여러 개 만들어 아이들이 서 있는 곳 뒤편에 일정한 간격으로 띄워 놨다.
- “오 완전 따뜻해.”
- “역시 4차 각성 법사는 클래스가 다르네.”
추위에 굽어졌던 신입생들의 등이 파이어볼에서 발산되는 열기에 저절로 펴졌다.
[“지금도 추워요?”]
- “아니요!”
[“네, 좋습니다. 그럼 학생회에서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공개하기에 앞서 캠프파이어 점화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사회자가 기다란 각목 하나를 집어든 뒤 태주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신태주 후배님?”]
“네.”
신입생 대표가 점화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태주가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위해 맨 앞줄을 사수하고 있었다.
[“매년 신입생 대표가 점화를 해왔거든요.”]
“아, 네.”
화려한 불쇼를 계획하고 있던 태주가 사회자가 내민 각목을 모른 척 받아들었다.
[“불은 저 뒤편에 있는 파이어볼에 붙이시면 됩니다.”]
각목을 건넨 사회자가 장작이 쌓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바로 그때.
“이것 좀 갖고 있어봐.”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손에 든 각목을 옆 사람에게 맡긴 태주가 이 교수에게 선물 받은 활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 “어! 뭐야!”
- “갑자기 웬 활?!”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태주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음?”]
태주를 등진 채 걷고 있던 사회자가 때 아닌 소란에 얼른 뒤를 돌아봤다.
[“어? 신태주 후배님,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상황 파악에 들어간 사회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점화식이요.”
[“네?”]
학과장의 눈치를 살피던 사회자가 태주에게 다가가려던 바로 그때.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불화살을 고른 태주가 장작이 쌓여 있는 곳을 겨냥한 뒤 활시위를 당겼다.
- “오! 뭐야 저거!”
- “야! 화살촉 끝에 불이 붙어 있어!”
파이어 애로우의 존재를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교, 교수님…….”
3차 각성 궁수인 이종도 교수가 옆에 있던 학과장을 부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보고 있네.”
범상치 않은 능력임을 직감한 학과장이 태주의 활솜씨를 유심히 지켜봤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즐기고 있던 태주가 5초간의 버티기를 통해 화염 효과를 발동시켰다.
- “어! 화살촉에 붙은 불이 횃불처럼 커졌어!”
- “마, 말도 안 돼…….”
매직 아처의 진가를 확인한 아이들의 눈이 걸그룹을 봤을 때보다 더 휘둥그레져 있었다.
바로 그때.
쉬이익!
태주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화염에 휩싸인 채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 “어! 쐈다!”
- “야, 무슨 화염 방사기를 쏘는 거 같지 않냐?”
화염 효과 자체만으로도 화력이 어마어마했지만, 이 교수의 활에 붙은 속성 대미지 버프 덕분에 불길의 크기가 훨씬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딱!
목표물에 정확히 꽂힌 파이어 애로우가 캠프파이어를 위해 준비된 장작더미를 한순간에 불기둥으로 만들었다.
화르르!
[“아! 신태주 학생이 새내기 배움터 사상 최초로 불화살을 이용해 점화식을 거행하였습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건 사회자만이 아니었다.
- “야, 이거 실화냐?”
- “매직 아처라더니 순 거품이네. 언빌리버블.”
- “아니, 대체 어디까지 성장하려고 그러지?”
운이면 운, 실력이면 실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무결점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태주가 새터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시키며 활을 집어넣었다.
*
*
*
잠시 후.
태주가 불을 지핀 캠프파이어의 열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를 무렵,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남겨둔 사회자가 위장 신입생들의 정체를 신입생들에게 공개했다.
- “뭐?! 김…… 김환이 선배라고?!”
- “뭐야, 그럼 태주가 선배를 기절시켰던 거야? 그것도 새끼손가락 하나로?”
- “그냥 김환이 기만했네.”
- “어떡하지. 나 어제 술 먹다 김환한테 병신이라고 그랬는데.”
9조의 아이들이 사회자 옆에 서 있는 김환의 실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태주에게 망신을 당한 김환의 경우 정체가 공개되기 전보다 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지만.
[“자 위장 신입생들의 정체가 공개되자마자 여기저기서 후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요.”]
술렁이는 분위기를 확인한 사회자가 신입생들의 당황한 얼굴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뭐, 이미 늦었다는 걸 아시겠지만, 지금부터 제 옆에 있는 위장 신입생 3명이 새터 기간 동안 선정한 최고의 신입생과 최악의 신입생 한 명씩을 여러분께 발표할 겁니다.”]
- “뭐야, 지희 선배가 얘기했던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이거였어?”
- “근데 최고의 신입생은 당연히 태주 아니냐? 솔직히 난 이번 새터 때가 입시 때보다 더 임팩트 있던데.”
- “그러게. 딱밤, 서혜린, 술롱도르, 순간 이동, 피구, 보물찾기, 장기자랑, 불화살, 와…… 뭐, 대충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도 끝이 없는데?”
- “음…… 확실히 존재감으론 따라올 사람이 없네.”
9조의 아이들은 물론 주변에 있던 다른 동기들까지 태주의 수상을 낙관하고 있었다.
[“참고로 최고의 신입생에겐 1학년 때 배우는 모든 전공과목의 족보가, 최악의 신입생에겐 최고의 신입생을 조력할 의무가 1년간 주어지게 됩니다. 아, 물론 최고의 신입생을 본받으라는 아주 합리적인 이유에서 말이죠.]
설명을 이어가던 사회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야, 말이 좋아 조력이지 그냥 꼬봉이 아니냐?”
- “뭐, 누가 될진 모르지만, 1년간 아주 원 없이 부려먹으면 되겠네.”
- “근데 최악의 신입생이란 꼬리표는 졸업할 때까지 따라다니겠지?”
- “글쎄. 뭐, 원래 안 좋은 이미지가 더 오래가는 법이니까.”
다들 남의 일처럼 얘기하고 있었지만, 슬픈 예감에 휩싸인 균성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