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새터 (21)
▶ 열쇠의 모양과 일치하는 잠금장치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분석을 종료합니다.
‘이건 아니네.’
정신없이 흘러갔던 회귀 당일, 대학 입시에 등급 측정까지 마치고 돌아간 보육원에서 태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물함에 있던 물건을 인벤토리 안으로 옮기기 위해 열쇠를 집어 드는 순간, 열쇠에서 발산된 붉은빛이 사물함을 걸어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일직선으로 가리켰던 것이다.
일종의 내비게이션.
이 같은 능력이 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잠금장치와 관련된 물건들을 만질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되곤 했다.
특히 총장으로부터 받은 마스터 카드는 한국대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합격자 발표 전이라 내부로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트레이닝 돔 바닥을 향해 뻗어 있는 여러 갈래의 빛이 3등급 출입문들로 이어져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마스터 카드를 받았을 당시엔 상자 안에 든 카드를 눈으로만 확인 뒤 인벤토리에 넣어둔 터라 이러한 능력이 카드키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은 조금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매순간 거침없는 선택을 보여줬던 신태주 선수가 마지막 미션에서만큼은 꽤나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마치 열쇠 하나하나와 소통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습니다.”]
태주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사회자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
첫 번째 열쇠에서 손을 뗀 태주가 두 번째 열쇠 위로 조용히 손바닥을 옮겼다.
▶ 열쇠가 감지되었습니다.
▶ 분석을 시작합니다.
▶ 열쇠의 모양과 일치하는 잠금장치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분석을 종료합니다.
‘이것도 아니네.’
히든 미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열쇠들이라 나머지 9개는 자물쇠 자체가 없었다.
잠시 후.
다섯 번의 시행착오를 마친 태주가 여섯 번째 분석을 위해 손바닥을 갖다 대는 순간.
▶ 열쇠가 감지되었습니다.
▶ 분석을 시작합니다.
▶ 열쇠의 모양과 일치하는 잠금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정답임을 알려주는 메시지가 태주의 눈앞에 떠올랐다.
‘찾았다!’
▶ 잠금장치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순간, 태주의 손바닥 밑에 있던 열쇠에서 레이저를 연상케 하는 붉은빛이 뻗어 나와 자물쇠까지 이어졌다.
‘역시.’
[“아! 드디어 신태주 선수가 첫 번째 열쇠를 집어 들었습니다!”]
마른침만 삼키고 있던 사회자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커졌다.
[“정말 그 열쇠로 도전하실 겁니까?”]
“네.”
열쇠의 머리 부분을 쥔 태주가 왼손으로 자물쇠를 잡았다.
[“네! 좋습니다. 그럼 첫 번째 열쇠가 진짜인지 아닌지 지금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 “이번에도 한 방에 성공하는 거 아니야?”
- “에이, 설마.”
아직 3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사회자를 비롯한 관객들 모두 큰 기대감을 갖고 있진 않았다.
“…….”
척!
열쇠가 자물쇠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빛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바로 그때.
철컥!
태주의 손목이 열쇠와 함께 부드럽게 돌아갔다.
▶ 잠금장치가 해제되었습니다.
▶ 『혼돈의 입구 (0/4)』로 연결된 곳이 아닙니다.
물론 잠금장치가 풀릴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의 문구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지만.
▶ 위치 표시를 종료합니다.
[“어!”]
자물쇠의 고리가 빠지는 것을 목격한 사회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철커덕!
분리된 자물쇠를 움켜쥔 태주가 세리머니를 하듯 번쩍 손을 들었다.
- “우와!”
태주의 귀신같은 촉에 놀란 아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 “이런 미친!”
- “야, 인간적으로 이게 가능한 확률이냐?”
- “저건 운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행운의 신인데?”
- “근데 솔직히 매직 아처가 된 것만 봐도 운빨은 타고나지 않았냐?”
- “하긴, 그렇게 따지면 못 맞추는 게 더 이상하긴 하네.”
1차 미션 때부터 이어진 100%의 적중률이 동기들로 하여금 태주의 행운을 당연시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물론 5라운드에서 보여준 태주의 신들린 선택을 가능하게 한 건 타고난 운이 아닌 철저한 준비성이었지만.
사실 새터의 세부적인 이벤트까지 꿰뚫고 있던 태주는 이득을 독식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상태였다.
실수를 줄이기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과 동선 체크는 물론 이벤트별 필승 전략과 의심을 피하기 위한 합리적인 명분까지.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이상 알면서도 대비를 안 하는 건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8기 최고의 행운아인 금손, 신태주 선수가 또 신기록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성량 조절에 실패한 사회자의 흥분된 목소리에 스피커가 터질 지경이었다.
[“심지어 추가 열쇠 선택권의 이점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는데요!”]
다른 아이들에게 있어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지만, 태주에게 있어 추가 열쇠 스티커는 다음 미션의 우선권을 얻기 위한 수단이자 운이 좋다는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는 도구에 불과했다.
[“신태주 선수!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표정만 놓고 보면 마이크를 들이민 사회자가 우승을 한 것처럼 보였다.
“네, 뭐, 좋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태주가 한결같은 어조로 차분하게 답했다.
[“와…… 저 같았으면 벌써 무대 위를 뛰어다니고 막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역시 높은 각성 수준만큼이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도 남다른 것 같습니다.”]
사회자의 입에선 칭찬이 마르지 않았지만, 태주의 관심사는 오직 상자 속에 든 물건이었다.
“이제 열어봐도 되나요?”
[“네? 아, 네, 그럼요. 당연히 열어보셔야죠.”]
팬심이 드러난 나머지 눈치를 챙기지 못하고 있던 사회자가 한 박자 늦게 언박싱의 시간을 마련했다.
덜컥!
상자의 뚜껑을 연 태주가 히든 미션의 상품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신성력이 깃든 행운의 목걸이]
- 등급: 고급
- 강화 성공률 20% 증가
- 20%의 확률로 신성 공격 발동- 치명타 확률 10% 증가
- 치명상 확률 10% 감소
- 체력 회복 속도 5% 증가- 마나 회복 속도 5% 증가
목걸이를 잡는 순간 아이템의 정보가 자세하게 나타났다.
‘와…… 옵션이 빵빵하네.’
행운의 목걸이란 이름답게 강화 성공률과 치명타 확률 등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신성 공격 옵션의 경우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 추가 대미지를 줄 수 있었다.
‘이제 강화만 시키면 되겠다.’
히든 미션의 보상으로는 장신구가 주어졌지만, 1라운드부터 5라운드까지의 우승자에겐 장신구용 고급 강화석이 주어졌다.
▶ 목걸이에 깃든 능력은 착용 시에만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근력 부문의 우승자에겐 전반적인 공격력을 높여주는 강화석이, 2라운드 방어력 부문의 우승자에겐 방어와 관련된 능력치를 옵션으로 붙여주는 특별한 강화석이 부상으로 주어졌는데, 태주는 여기서 획득한 4개의 강화석으로 행운의 목걸이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이었다.
[“지금 보시는 이 목걸이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5대 길드에 속하는 태동의 오승훈 대표님께서 협찬해주신 선물입니다.”]
태동은 태주를 후원하는 업체들 중 한 곳이었다.
등급 측정을 하던 날 마주친 오 대표와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오 대표의 경우 겉으로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길드의 영입 의사와는 별개로 태주가 지닌 무한한 잠재력에 묘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 “오 대박!”
- “저거 남녀공용인가?”
- “와…… 포션에 한정판 과잠에 목걸이까지 얻어가네.”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긴 아이들이 부러운 눈으로 태주의 목걸이를 바라봤다.
잠시 후.
태주를 위한 응원 구호에 힘입어 응원상의 영광은 9조에게 돌아갔는데, 한국대학교라고 찍힌 USB메모리가 상품으로 주어지는 바람에 큰 선물을 기대했던 조원들 모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시상식 이후에 이어진 걸그룹의 축하 공연에 언제 그랬냐는 듯 광기 어린 함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 “와!”
- “누나 나 죽어!”
반면, 리더의 멘트와 앙코르곡의 제목까지 기억하고 있던 태주는 어수선한 틈을 타 강당을 벗어나려 했다.
조금 전, 시상식에서 받은 강화석을 인벤토리에 넣기 위해 잡는 순간, 상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
*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태주가 1라운드 우승 상품으로 받은 강화석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장신구용 고급 강화석 A형]
- 근력을 비롯한 공격력 수치 강화
- 강화 성공률 50~70%
▶ 『고급』 등급을 지닌 『장신구』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강화석의 경우 등급과 대상에 따라 용도가 지정되어 있었는데,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강화 성공률이 달라지곤 했다.
▶ 아이템의 강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N)
강화석을 움켜쥐자 태주를 당황하게 했던 질문이 또 한번 떠올랐다.
‘어떻게 헌터 스스로 강화를…… 회귀 전엔 강화석을 만져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태주는 장기자랑에서 모은 강화석을 대장장이에게 들고 갈 계획이었다.
강화에 쓰이는 재료를 구하는 건 헌터의 몫이지만, 원칙적으로 강화는 대장장이 고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 강화 대상을 선택해주세요.
진행을 수락하자 해당 강화석을 소비할 수 있는 아이템의 목록이 친절하게 나타났다.
【강화 가능 목록】
1.
[고급]
신성력이 깃든 행운의 목걸이
따로 보유하고 있는 목걸이가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한 개만 테스트로…….’
강화엔 성공률이라는 요소가 존재했는데, 강화에 실패할 경우 아이템 자체는 무사했지만, 힘들게 얻은 고가의 강화석을 허무하게 날려 버릴 위험이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숙련된 대장장이도 피할 수 없는 리스크였지만.
‘강화 성공률을 높여주는 목걸이니까 별문제 없겠지?’
▶ 『신성력이 깃든 행운의 목걸이』를 강화하시겠습니까? (Y/N)
Y로 시선을 옮기자 인벤토리 안에 있던 목걸이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났다.
‘와…….’
이번엔 손에 들린 강화석이 허공으로 떠올랐는데,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지구처럼 평행하게 위치한 강화석이 목걸이의 주위를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 강화를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강화에 들어가자 궤도 운동을 하고 있던 강화석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 강화 대상이 지닌 행운의 영향으로 강화 성공률이 증가합니다.
‘역시.’
태주의 예상대로 목걸이에 붙은 옵션이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 그때.
파앗!
빠르게 회전하던 강화석이 강렬한 빛을 발산하며 목걸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근력』과 『공격력』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 『치명타 확률』과 『신성 공격 발동 확률』이 증가하였습니다.
‘됐어!’
탄력을 받은 태주가 남은 3개의 강화석을 같은 방식으로 사용했다.
▶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방어력』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 『치명상 확률』이 감소하였습니다.
▶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민첩성』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속성 대미지 감소』와 『상태 이상 대미지 감소』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 『체력 회복 속도』와 『마나 회복 속도』가 증가하였습니다.
강화로 인한 효과들이 정신없이 떠오르던 바로 그때.
▶ 강화 대상의 수용 능력이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강화 과정에 개입합니다.
‘뭐? 헤파이스토스?’
강화를 마친 목걸이가 갑자기 신비로운 빛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