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새터 (17)
태주는 허창민이 참가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 전, 근력과 방어력 부문에 참가해 1등을 거머쥔 인물이 바로 허창민이었기 때문이다.
- “간다!”
텅! 텅! 텅! 텅! 텅! 텅! 텅! 텅!
원통형 결계 속에 갇힌 아이들이 주먹으로 투명한 벽을 연타했다.
[“지금 결계 밖으로 나오려는 도전자들이 이를 악문 채 필사적으로 격파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수기는커녕 미세한 흠집조차 나지 않은 결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 “야 이 썅! 이거 왜 이렇게 단단해!”
- “크윽. 이러다 내 주먹이 먼저 깨지겠어!”
텅! 텅! 텅! 텅! 텅! 텅! 텅! 텅!
- “와 도저히 못 해먹겠네.”
- “나 살짝 폐소 공포증 걸릴 뻔했어.”
의욕이 넘치던 지원자들이 하나둘 마법진 위에 주저앉았다.
[“아! 시작한 지 10초 만에 탈락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 “지희 선배 말처럼 객기로 나간 애들은 진짜 광탈에 개망신까지 당하겠네.”
- “그러게. 우리 조에서 나간 애들도 태주만 빼곤 다 포기한 거 같은데?”
- “근데 어차피 태주 말고는 다 올림픽 정신으로 나간 거잖아. 말 그대로 참가에 의의를 둔 도전.”
이러한 상황이 올 것을 예견하고 있던 9조의 아이들이 유일한 희망인 태주에게 응원을 집중시켰다.
- “뭐, 그렇긴 하지. 신태주 파이팅!”
- “태주야! 절대 포기하면 안 돼!”
태주의 탈락으로 응원할 대상이 사라지면, 응원상을 받을 확률이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이야!”
텅!
“이야!”
텅!
투명한 벽을 노려보던 허창민이 한 방, 한 방에 힘을 집중시켜 신중하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바로 그때.
쩌적!
꿈쩍도 하지 않던 결계에 약간의 균열이 발생했다.
[“아! 보이십니까 여러분! 지금 허창민 선수의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허창민의 곁으로 달려온 사회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 “근데 태주는 왜 아까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손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 “그러게. 주먹은 쥐고 있는데, 딱히 날릴 생각은 없어 보이네.”
- “야, 저러다 허창민이 먼저 깨는 거 아니야?”
- “어! 그럼 응원상도 물 건너가는데!”
- “태주야! 빨리 결계를 쳐!”
태주의 침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원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공격을 재촉했다.
물론 태주가 노리는 타이밍은 따로 있었지만.
‘허탈함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지.’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함과 동시에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히고 싶었던 태주가 허창민에게 착각할 시간을 주었다.
“이야!”
텅!
“이야!”
텅!
쩌적!
허창민이 만든 균열이 거미줄 모양으로 번지고 있었다.
- “허창민 파이팅!”
- “최강 1조!”
1조의 실세인 허창민의 선전에 조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 허창민 선수의 결계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금이 가고 있습니다!”]
허창민의 결계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사회자가 이번엔 태주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반면 신태주 선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1분이 다 되도록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는데요!”]
동아리 가입까지 제안했던 사회자의 입장에선 내심 태주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새끼손가락만으로도 사경을 헤매게 했던 그 엄청 파워의 소유자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허창민의 결계를 슬쩍 쳐다본 태주가 깍지를 낀 채 기지개를 켰다.
[“아! 드디어 신태주 선수가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 “태주야! 빨리 시작해!”
- “그래! 이러다 허창민이 먼저 나오겠어!”
싸늘하게 식어가던 9조의 분위기가 태주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 거짓말처럼 달아올랐다.
“이야!”
텅!
쩌적!
승리를 확신한 허창민이 벌겋게 달아오른 주먹으로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아! 세로로 커다란 금이 갔습니다! 이제 한두 번만 더 치면 결계가 깨질 것 같은데요!”]
금이 가는 소리를 들은 사회자가 허창민의 결계 앞으로 황급히 되돌아갔다.
바로 그때.
기지개를 마친 태주가 펀치 기계를 칠 때처럼 자세를 잡았다.
‘역시 간지는 한 방이지.’
딱밤을 때리거나 피구를 할 땐 힘 조절을 하는 것이 필수였지만, 목표물이 결계인 이상 사람을 상대할 때처럼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
‘자! 간다!’
추격의 의지를 불태우던 태주가 체중을 실은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쾅!
주먹이 닿는 순간 태주를 둘러싸고 있던 결계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금이 갈 틈도 없었다.
물론 신입생들의 수준을 고려해 만든 결계였지만, 이렇게 쉽게 파괴되리라고는 마법을 시전한 학과장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레이트 배리어!”
결계가 흡수하지 못한 여분의 파워가 폭발의 후폭풍처럼 아이들을 덮치기 직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학과장이 태주를 강력한 방어막 안에 가두었다.
콰과과광!
쩌적!
강당을 날려버릴 정도의 강력한 충격파가 학과장이 만든 높은 수준의 실드마저 금이 가게 만들었다.
‘이…… 이 정도라고?’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태주도 마찬가지였다.
근력의 상승으로 인해 활쏘기가 편해진 것은 느꼈지만, 주먹을 쓸 일이 없는 궁수의 특성상 순수한 펀치력까지 시험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 “…….”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아이들이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
뒤로 나자빠진 사회자 역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마이크만 움켜쥐고 있었다.
‘만인지상이라…… 제법이군. 신태주.’
방어막을 거둔 학과장이 이 교수의 말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찢…… 찢었다.”
태주의 뒤에 있던 참가자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신…… 신태주가…… 신태주 선수가 결계를 뚫었습니다!”]
자신의 본분마저 잊고 있던 사회자가 바닥에 앉은 채로 목이 터져라 외쳤다.
- “와!”
- “완전 미쳤다!”
- “역시 궁수는 힘캐였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이들이 조와 상관없이 신태주의 이름을 연호했다.
- “신태주! 어이! 신태주! 어이!”
[“그야말로 원! 샷! 원! 킬! 1라운드 근력 대결의 승자는 무투가도 전사도 아닌 매직 아처였습니다!”]
“…….”
태주의 진짜 힘을 확인한 김환이 딱밤을 맞은 부위를 손바닥으로 가린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얘들아! 응원 구호는 이럴 때 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아, 맞다! 우리 응원 구호도 만들었었지?!”
넋을 놓고 있던 9조의 아이들이 의자 위로 올라가 점프를 하며 준비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 “신태주! 워어어어어 워어어어어 9조의 신태주! 신태주! 워어어어어 워어어어어 9조의 신태주!”
조원들 중 한 명이 야구광이라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응원가를 오마주했는데, 박자에 맞춰 팔짱을 꼈다가 만세를 하는 동작이 노래만큼이나 중독성이 있었다.
[“아! 9조에게 응원 점수 100점을 드리겠습니다!”]
편애중계를 하게 된 사회자가 9조의 흥겨운 응원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 “야, 9조 애들이 하는 구호는 뭔가 귀에 착착 감기지 않냐?”
- “아 저거 뭐더라. 나 예전에 야구장에서 들어봤는데.”
- “어차피 태주가 이겼는데 우리도 따라 해볼까?”
- “어? 저기 벌써 따라하는 애가 있는데?”
9조의 구호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들이 일찌감치 응원을 시작한 임세준의 모습을 발견했다.
바로 그때.
- “신태주! 워어어어어 워어어어어 9조의 신태주! 신태주! 워어어어어 워어어어어 9조의 신태주!”
조원들의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이 하나둘 의자 위로 올라가 9조의 구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28기 대통합의 현장.
태주를 구심점으로 하나가 된 신입생들이 경연이란 사실도 잊은 채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 모두가 신태주 선수를 응원하며 떼창을 하고 있습니다! 신태주! 워어어어어 워어어어어 9조의 신태주!”]
심지어 중립을 지켜야 할 사회자까지 응원에 동참하며 태주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
‘마, 말도 안 돼…….’
반면 승리를 코앞에서 놓친 허창민은 태주의 의도대로 허탈함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저런 힘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격차에 심각한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은 허창민이 2라운드에 대한 도전을 스스로 포기했다.
*
*
*
잠시 후.
- “와…… 저 정도면 탱커를 맡아도 되겠는데?”
- “야, 딜러가 몸빵까지 되면 너무 사기캐 아니냐? 아니, 어떻게 된 게 라이트닝 공격을 맞아도 미동조차 안 하지? 난 겨울에 정전기만 나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 “어제 술롱도르에 뽑힐 때 알아봤지만, 독성 공격도 전혀 효과가 없던데?”
두 번째 대결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태주의 평온한 얼굴에 혀를 내둘렀다.
[“아! 근력에 이어 방어력 부문의 왕좌까지 신태주 선수의 차지로 돌아갔습니다!”]
랜덤으로 가해지는 속성 공격을 버티는 두 번째 대결 역시 엄청난 체력 수치와 저항 스킬을 갖춘 태주의 압승으로 끝났다.
- “야, 천재에게 가려진 수재의 반전은 어떻게 된 거냐?”
- “…….”
허창민의 승리를 장담했던 1조의 아이가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왕좌를 되찾으려는 자는 개뿔. 야, 팝콘각은커녕 게임 자체가 안 되던데?”
- “하…… 나도 창민이가 기권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
- “그래, 뭐, 네 말처럼 전사의 근력과 방어력이 궁수를 압도할 순 있는데, 태주는 우리가 아는 평범한 궁수가 아니니까.”
동기들의 평가대로 태주는 기존의 상식마저 뒤집어버리는 반전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자, 이제 3번째 대결로 넘어가 보겠는데요. 이번엔 모두가 아는 놀이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이용해 가장 민첩한 신입생을 가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행 방식에 익숙해진 지원자들이 별도의 지시 없이도 무대 위로 몰려들었다.
[“아 3관왕을 노리는 신태주 선수도 어김없이 자리해 주셨습니다.”]
사회자가 태주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신태주 선수, 명단을 미리 살펴본 결과, 참가자의 90% 이상이 어쌔신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유일한 궁수 클래스 지원자로서 어떠한 결과를 예상하고 계십니까?”]
“글쎄요. 제가 이 게임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겸손한 태도로 질문에 응했지만, 대답과 달리 태주의 표정에선 강한 자신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민대엽.’
인터뷰를 하던 태주가 무대에 오르고 있는 대엽의 축 처진 어깨를 발견했다.
‘잘 봐라. 내가 너희 형을 꺾을 유일한 재학생이니까.’
한국대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S급 어쌔신, 민주엽을 뛰어넘으라는 과제를 부여받은 태주가 던전 안에서의 진검승부에 앞서, 그의 동생인 대엽을 선전포고의 도구로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