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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5화 (25/242)

025. 새터 (11)

‘어? 왔다.’

통화를 염두에 둔 태주가 빈 방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조금 전에 올리신 게시물을 보고 이렇게 DM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면, 이 번호로 언제든지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010……]

‘오 시작부터 적극적인데?’

조용한 장소를 찾은 태주가 다이렉트 메시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신영제약 홍보팀장 안상현입니다.”]

태주가 전화를 받는 안 팀장의 목소리에서 의욕적인 느낌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좀 전에 DM을 주셔서…….”

[“아, 신태주 씨,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발신자의 정체를 알게 된 안 팀장이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신태주 씨께서 저희 제품을 홍보해 주신 덕분에 처음으로 실시간 순위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150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지닌 업계 최고의 유망주가 신생 기업의 제품을 대가 없이 홍보해 주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 제 팔로워들이 또 검색을 해봤나 보네요.”

전속 모델에 대한 열망을 숨긴 태주가 자신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어필했다.

[“저,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신영제약의 전속 모델이 되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 전속 모델이요?”

태주가 당혹스러운 척 말끝을 올렸다.

[“저희가 아직은 신생 기업이자 업계의 후발주자지만, 이번 파이안을 시작으로 수많은 최고급 포션 라인들을 연달아 출시할 예정입니다. 자본금을 비롯한 전문 인력들도 충분히 확보한 상태고요. 아, 물론 회사의 내실을 자랑하려는 건 아닙니다. 파트너십을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신태주 씨가 저희 신영제약을 선택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란 겁니다. 물론 일류제약처럼 인지도가 높은 기업의 러브콜은 거절하기 힘드시겠지만.]

“아니요. 신영제약을 굳이 다른 곳과 비교할 생각은 없습니다. 회사의 잠재력에 대해서도 이미 관심 있게 지켜보는 단계고요.”

[“하하. 그렇지 않아도 신태주 씨의 뛰어난 투자 안목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습니다.”]

상현은 홍보팀장답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기 전 태주에 대한 정보부터 수집한 상태였다.

[“매달 업체로부터 받는 용돈으로 인해 어느 정도 여유자금이 있으신 건 알고 있었지만, 신태주 씨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한 곳이 저희 신영제약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 그럼 팀장님께선 제 의도를 오해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제가 가진 주식 가치를 띄우기 위한 의도적인 홍보로.”

태주가 안 팀장이 품었을 법한 합리적인 의심을 단도직입적으로 언급하며 홍보의 고의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전 신영제약의 주식만 매입한 것이 아니라 제일제약, 보국양행, TY바이오로직스, 황제약품, 한양제약 등등. 소위 포션과 관련된 테마주들에 두루두루 투자한 상태입니다. 주가를 띄우고 싶었다면 다른 회사의 제품들을 먼저 홍보했을 거고요.”

공격적인 저점매수.

해명이 필요한 투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장기 투자처인 신영제약의 주식으로 최대의 수익을 얻기 위해선 파이안의 출시로 주가가 뛰기 전에 투자를 집중해야 했다.

물론 그러한 의도를 숨기기 위해 경쟁 회사들의 주식도 일정 부분 사 모으는 치밀함을 보여줘야 했지만.

[“아니요! 전 그저 스무 살 답지 않은 신태주 씨의 판단력과 결단력을 높이 평가하려던 것뿐입니다.”]

태주의 발 빠른 대처에 당황한 안 팀장이 영상 통화가 아님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자신을 향한 의혹을 사전에 제거한 태주가 안 팀장의 반응에 소리 없이 웃었다.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 역시 오해를 사는 게 싫었을 뿐이지 팀장님을 몰아붙이려던 건 아니니까요.”

[“하…… 정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약이 무산될까 걱정했던 안 팀장이 태주의 지능적인 일보 후퇴에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신영의 전속 모델 자리를 제안하셨는데, 포션 광고엔 주로 네임드 헌터를 쓰지 않나요? 그에 비하면 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에 불과한데.”

안 팀장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한 태주가 먼저 운을 뗐다.

[“네,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사실 광고 모델을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경력이나 자격이 아닌 이미지와 인지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태주 씨는 이미 광고주들이 원하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계신 거고요.]

태주를 잡기 위한 안 팀장의 설득은 계속됐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겠지만, 저희 신영제약에선 앞으로의 성장이 더 기대된다는 공통점을 지닌 신태주 씨를 파이안의 광고 모델로 낙점한 상황입니다. 뭐, 어디까지나 신태주 씨의 의사를 묻지 않은 저희의 일방적인 바람이지만.]

“…….”

태주가 고민에 빠진 척 잠시 말을 아꼈다.

상대방의 의지를 확인한 이상 더 좋은 계약 조건을 따내기 위해선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전 밀당을 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계약 기간은 1년이고, 임시로 책정된 개런티는 약 6억 원입니다. 물론 모델 경험이 없는 신인에겐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지만, 신태주 씨가 가진 파급력이나 앞으로의 홍보 효과를 미루어 봤을 때 관행에 따라 몸값을 제시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본론으로 들어간 안 팀장이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언급했다.

[“아, 그리고 재계약이 성사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이 제시될 겁니다.”]

‘뭐지? 내가 생각했던 금액보다 훨씬 센데?’

재계약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차츰차츰 몸값을 높이려던 태주의 계획이 기분 좋게 무산됐다.

‘역시 업계 1위가 될 재목은 떡잎부터 다른 건가?’

[“혹시 옵션에 대해서도 궁금하신가요?”]

“옵션이요?”

이번에도 모른 척 되묻기는 했지만, 사실 제약회사의 광고 모델이 개런티만 받는 건 아니었다.

[“네. 세부적인 계약 조항이라 따로 얼굴을 뵙고 말씀을 드리는 게 맞지만,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리신 것 같아서 짧게나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태주의 승낙을 바라는 안 팀장이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계약의 장점을 어필했다.

[“일단 파이안을 비롯한 저희 회사의 모든 최고급 포션 라인이 계약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지급될 겁니다.”]

“아, 네.”

[“뿐만 아니라 광고 효과가 기대되는 대회에 나갈 시 그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성적과 무관하게 지원해 드리며, 입상까지 하실 경우 회사 차원에서 마련한 소정의 격려금과 각종 추가 혜택을 별도로 제공해드릴 겁니다.”]

‘격려금이라…….’

프로들의 세계만큼은 아니지만, 학부시절에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의 종류만 해도 상당히 다양했다.

특히 국제 대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태주의 경우엔 더더욱 그러했고.

“그럼 저만 오케이 하면 계약이 성사되는 겁니까?”

통화 내내 신중한 모습을 유지하던 태주가 최고 대우에 가까운 훌륭한 계약 조건에 진전된 태도를 보였다.

[“어휴, 그럼요.”]

태주의 긍정적인 물음에 안 팀장이 황송한 목소리로 답했다.

[“계약서는 메일로 미리 보내드리는 편이니 시간 날 때 한번 꼼꼼히 확인해보시고, 어…… 미팅 날짜의 경우 편의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해 드릴 수 있으니까 최소 하루 전에만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네, 그럼 조만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됐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은 태주가 생애 첫 광고 계약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입생들이 해장을 위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강당에 모여들었다.

- “어후 죽겄다…… 야, 넌 속 괜찮냐?”

배를 문지르던 아이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 “아니, 오늘 밤엔 나도 빨간 팔찌나 차고 있으려고.”

생기가 돌았던 얼굴들이 하룻밤 사이에 폭삭 늙어 있었다.

- “아 참, 근데 오늘 무슨 보물찾기 한다고 그러지 않았냐?”

- “어, 안 그래도 선배한테 물어봤는데, 체육 활동을 시키는 동안 학생회에서 숨길 거래.”

- “아 그래서 우리를 강당에 몰아넣었구나?”

- “아무래도 애들이 돌아다니면,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까.”

- “그럼 그냥 강당 구석에 누워 있다가 보물이나 찾으러 가면 되겠네.”

- “뭐, 꼴찌로 출발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 “꼴찌? 그게 무슨 소리야?”

- “안 그래도 너 같은 애들이 있을까 봐 선배들이 규칙 하나를 추가시켰거든.”

- “규칙?”

- “어. 체육 활동 시간에 조별 대항전을 하는데, 결과로 등수를 매긴 다음에 시간차를 두고 출발시킬 거래. 3분씩 차례대로.”

- “뭐야! 그럼 마지막 10등은 1등으로 출발한 조보다 27분 늦게 출발하는 거야?!”

- “뭐, 선물 교환권이 10개밖에 없다니까 뒤로 갈수록 확률은 희박해지겠지.”

- “와…… 그럼 어쩔 수 없이 체육 활동에 목숨 걸어야겠네?”

- “좀 악랄하긴 해도 그게 선배들의 목적이니까.”

- “후 경쟁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술이 확 깨네. 근데 대결 종목은 정확히 뭐야?”

- “핸디캡 피구.”

- “뭐? 핸디캡 피구? 그건 또 어떻게 하는 건데?”

- “글쎄. 나도 선배가 딱 거기까지만 얘기해 줘서.”

신입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내가 나설 차례군.’

[“아, 아, 지금부터 딱 1분 드릴 테니까 빨리 조별로 모이세요.”]

술롱도르의 사회를 맡았던 선배가 마이크를 들고 아이들을 통제했다.

“9조! 9조 이쪽으로!”

느긋하게 서 있던 태주가 지희의 목소리를 따라 순식간에 이동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

*

[“자, 이제 다 모인 것 같으니까 대진표를 추첨하기에 앞서 핸디캡 피구에 대한 규칙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자가 신호를 주자 무지개 색깔로 준비된 7가지 머리띠가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진 밝힐 수 없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이 머리띠는 색상에 따라 각기 다른 핸디캡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머리띠 하나를 집어 아이들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각 조에선 딱 7명씩만 출전할 수 있는데, 선수 개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머리띠를 오직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 “혹시 조원들끼리 같은 색을 골라도 되나요?”

적극적인 신입생 한 명이 사회자를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네. 심지어 모든 조원이 같은 색을 골라도 됩니다.”]

“…….”

각각의 머리띠에 부여된 핸디캡의 종류를 알고 있는 태주가 색깔을 통일할 수 있다는 사회자의 대답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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