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새터 (7)
태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녁을 거르지 않았다.
빈속에 술을 마시면 더 빨리 취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빨리 취한다는 건 실수할 확률이 더 높다는 뜻이었다.
흑역사의 탄생.
단 한 번의 실수로 아싸가 된 이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휴학, 입대, 자퇴, 편입.
특히 열정이 과한 신입생 시절엔 분위기에 휩쓸려 과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엔 태주도 낙하산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술자리를 기웃거렸다.
심지어 술 게임을 모르면 아싸처럼 비춰질까 인터넷도 한번 뒤져보고, 선배가 따라주는 술도 어사주인 양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물론 알쓰이자 술고자인 태주가 술고래들의 페이스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한 4명만 따라올래?”
조장인 지희가 방에 있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 “술 가지러 가는 거예요?”
- “어! 그럼 저도 갈게요!”
앞선 소개 행사 때만 해도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앞다투어 지원했다.
개개인의 인성과 아싸 여부가 판가름 될 새터의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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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술자리 세팅을 마친 우리상조 멤버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 “오늘 술 먹다 죽으면 다 우리 조가 수습하는 거야?”
- “에이, 설마 죽기야 하겠어?”
각성자의 신체는 일반인보다 우월했다.
알코올 분해 능력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술을 처음 접한 아이들도 본인의 주량을 과신해 필름이 끊기곤 했다.
“자, 이거 받아.”
은근슬쩍 태주 옆에 앉은 지희가 고무로 된 양면 팔찌를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 “어? 이게 뭐예요?”
“이거? 음주 팔찌.”
- “네? 음주 팔찌요?”
팔찌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여기 보면 안팎으로 색깔이 다르지?”
- “네.”
“술을 마시고 싶을 땐 녹색이 보이도록 차고, 술을 전혀 못 마시거나 잠깐 쉬고 싶을 땐 빨간색이 보이도록 차면 돼. 물론 판단은 전적으로 본인이 하는 거고.”
- “오 이거 완전 합리적인데요?”
- “그러게. 솔직히 술자리 때문에 좀 걱정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 “근데 한창 달리고 있을 때 빨간색으로 뒤집으면 다들 분위기 깬다고 그러지 않을까요? 살짝 아싸처럼 보이기도 하고.”
- “듣고 보니 후배들이 죄다 빨간색 팔찌만 차고 있으면, 새터를 준비한 선배들 입장에서도 좀 민망할 것 같은데.”
물론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아니.”
지희가 빨간색 팔찌를 찬 손목을 아이들에게 들어 보였다.
“이걸 준비한 게 학생회인데 설마 너희들한테 눈치를 주겠어?”
팔찌를 만지작거리던 아이들이 지희의 말에 색깔을 정하기 시작했다.
- “어? 태주도 녹색이네?”
- “역시 S급이라 술도 센가?”
- “이러다 막잔은 자작하는 거 아니야?”
태주의 손목을 확인한 아이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글쎄. 술은 오늘이 처음이라…….”
물론 설정이었다.
새터에 참석하기 며칠 전, 2차 각성과 주량의 상관관계를 테스트하고자 시중에 있는 술들을 일일이 마셔봤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
유리의 빈소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회귀 전 태주의 주량은 차마 세어 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회귀 후, 태주는 자신의 피에 숙취 해소제가 흐르는 것처럼 쉽게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능력치뿐만 아니라 간도 S급이 된 것이다.
- “어? 진짜?”
- “야, 근데 얼마 전까지 미자였으면 안 마셔본 게 정상 아니야?”
- “그러게. 듣고 보니 놀라는 게 더 이상하네.”
- “이야 첫 잔도 따르기 전에 술부심 나오나요?”
조원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술잔을 준비하던 바로 그때.
- “자, 선배님,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이미 취기가 오른 것 같은 조원 한 명이 거꾸로 든 소주병 바닥을 팔꿈치로 친 뒤 현란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새끼, 또 오버하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주가 술자리를 주도하고 싶어 하는 동기의 잔망스러운 기술에 민망함을 느꼈다.
- “오!”
물론 술자리 경험이 없는 신입생들의 눈엔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 “합!”
소주병 안에 회오리를 만든 조원이 교차된 두 팔을 돌리며 뚜껑을 열었다.
- “와!”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놀란 신입생들이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 “합!”
아이들의 호응이 커질수록 병 따기 동작도 거해졌다.
이번엔 열린 소주병 입구를 엄지 한 마디로 단단히 틀어막은 뒤 힘차게 빼냈다.
뽕!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막혔던 입구로 소주가 뿜어져 나왔다.
- “합! 합!”
병 따기에 심취한 녀석이 손날과 손가락 사이로 병목을 쳐대며 소주를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버리는 술이 더 많지?’
태주가 흥건해진 바닥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 “자! 한 잔 받으시죠!”
자신만의 의식을 마친 신입생이 지희의 옆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 나 빨간색인데.”
태주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지희가 어색한 눈웃음을 지으며 팔찌를 보여주었다.
- “네? 아…….”
지희의 거절에 머쓱해진 아이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와…… 내가 다 화끈거리네.’
인싸가 되려는 조급함이 아싸를 만든다는 걸 태주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얘들아, 우리도 게임이나 할래?”
술잔이 서너 번 비워질 무렵 지희가 술자리 게임을 제안했다.
- “네! 좋아요!”
구부정하게 있던 아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근데 너희들 뭐 아는 게임 있어?”
- “더 게임 오브 데스!”
- “이중모션!”
- “베스킨~ 라빈스~ 써리~ 원!”
홍조를 띤 아이들이 절제되지 않은 성량으로 두서없이 대답했다.
“오 의외로 많이 아네? 그럼 흐름이 끊기지 않게 랜덤 게임으로 할까?”
후배들의 적극성에 놀란 지희가 게임을 시작하기 전 두 팔을 걷어붙였다.
“룰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의견이 갈릴 땐 우리 학과 기준으로 할게.”
- “네!”
“아, 그리고 빨간색 팔찌를 찬 사람들은 벌주를 마실 수 없으니까 그냥 음료수로 대신할게. 다들 이의 없지?”
- “네!”
“자, 그럼 시작한다.”
조원들의 얼굴을 쭉 한 번 훑어 본 지희가 우렁찬 목소리로 텐션을 끌어올렸다.
“지희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무슨~ 게임! 게임~ 스타트! 아~싸, 홍삼! 에블바리 홍삼! 아~싸, 너! 너!”
술자리 게임의 특징은 상당히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인싸가 하는 게임인데 시작부터 아싸만 외치네.’
소극적이던 아이들도 하나둘 분위기에 동화되어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는데, 희생자가 나올수록 방 안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물론 제로를 외치면서 엄지를 드는 등 의욕에 비해 실력들은 형편없었지만.
잠시 후.
-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내 어깨를 봐! 탈골 됐잖아!”
걸리면서 배워야 하는 술 게임의 특성상 빈병이 쌓이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 “야, 근데 태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걸리지 않았냐?”
- “어? 그러게. 술잔이 그대로네?”
- “내가 아까부터 계속 태주만 공격했는데, 진짜 온갖 페이크를 다 걸어도 한번을 안 걸려. 완전 프로게이머야 프로게이머.”
눈이 풀리기 시작한 아이들이 태주의 엄청난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프로게이머는 무슨. 자, 빨리 시작해.”
모든 것이 우연인 양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주량이 약했던 태주는 회귀 전, 벌칙에 걸리지 않기 위한 게임별 필승 전략들을 부단히 연습했었다.
바로 그때.
“똑똑! 지희야.”
2학년 선배 한 명이 문 앞에서 고개만 내민 채 말로 노크를 했다.
“좀 있다 28기 술롱도르를 뽑을 거니까 지원자가 있으면 5분 뒤에 학생회 방으로 보내줘.”
과자를 집어먹던 아이들이 눈을 끔뻑거리며 지희에게 물었다.
- “선배님, 술롱도르가 뭐예요?”
“어, 그러니까 그게…….”
“아, 그건 내가 대신 설명해 줄게.”
지원자를 모집하러 온 선배가 지희의 대답을 가로챘다.
“너희들 혹시 발롱도르라고 들어봤어?”
- “어? 그거 최고의 축구 선수만 받을 수 있는 상 아니에요?”
“술롱도르도 비슷한 거야. 매년 신입생들을 상대로 최고의 주당을 가리는 거지.”
- “그걸 받으면 뭐가 좋은데요?”
“술롱도르를 수상하면, 학생회에서 제작한 술병 모양의 배지가 주어지는데, 이걸 보여주면, 학교 인근에 위치한 모든 술집에서 50%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그것도 무려 졸업을 할 때까지…… 어때. 정말 엄청난 혜택 아니야?”
- “오 이거 완전 대박인데?”
녹색 팔찌를 차고 있던 신입생들이 솔깃한 표정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술롱도르를 배출한 조엔 특별 안주도 제공되니까 관심 있는 사람은 조장인 지희한테 얘기해. 그럼 수고.”
추가 설명을 마친 선배가 이번엔 10조가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 “선배님! 저 나갈래요!”
- “어! 저도요!”
혜택에 눈이 먼 조원들이 참가 의지를 불태웠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묵묵히 듣고만 있던 태주가 고여 있던 술잔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선배가 밝히지 않은 술롱도르의 숨겨진 특전, 포션.
2회차 신입생인 태주는 제약회사에서 협찬한 최고급 회복 포션 20개가 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저도 나가겠습니다.”
탁!
태주가 깨끗이 비운 술잔을 거꾸로 내려놓으며 출사표를 던졌다.
- “오 박력 쩌는데?”
- “와…… 진짜 개간지다.”
태주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어? 태주가 나가면 전 포기하겠습니다.”
- “네, 저도 열심히 응원만 하겠습니다.”
태주의 기세에 위축된 아이들이 갑자기 후보 단일화를 선택했다.
- “그래. 괜히 여럿이 나가서 경쟁률만 높이지 말고, 믿을 만한 사람 딱 한 명만 내보내자.”
- “이야 오늘 태주 덕분에 특별 안주 먹는 거야?”
- “그러게. 아까부터 과자만 주워 먹었더니 입천장만 까졌어.”
조원들 역시 태주를 대표로 추천하며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말 괜찮겠어?”
게임의 규칙을 아는 지희가 태주의 등에 손을 갖다 대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물론 술롱도르의 방식을 아는 건 태주도 마찬가지였지만.
“학생회 방으로 가면 되죠?”
구질구질한 포부 따윈 생략한 태주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와!”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태주의 패기에 흥분한 조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 “야! 태주야! 그냥 다 찢어버려!”
- “그래! 누가 28기를 대표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와!
아이들의 응원에 시크한 미소로 화답한 태주가 폭주 스킬을 발동시키며 당당히 문을 나섰다.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기다려라…… 추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