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새터 (6)
점멸 실습?
점멸은 회피, 기습, 추격 등 방어적인 활용과 공격적인 운용이 모두 가능한 단거리 순간 이동이었다.
[47:59:11 (정지)]
스킬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태주가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붉은 점을 정지 버튼 위로 옮겼다.
▶ 과제 수행을 위해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특별 과제를 수락하는 순간 강렬한 빛이 발생했지만, 이젠 눈 감을 타이밍을 계산할 만큼 익숙해진 상태였다.
*
*
*
이번엔 사막인가.
눈을 뜨자마자 숨이 턱턱 막혔다.
약간의 바람과 크고 작은 모래 언덕.
어떤 과제가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점멸 실습이란 명칭처럼 속도감 있는 전투가 펼쳐질 것 같다.
▶ 과제를 시작합니다.
이종도 교수님께 받은 활을 신속히 꺼내 들었다.
[고뇌하는 하급 정령의 활]
- 등급: 고급
- 공격력 15% 증가
- 치명타 확률 5% 증가
- 명중률 20% 증가
- 화살 속도 10% 증가
- 속성 대미지 30% 증가
입학식 이후로 줄곧 이 녀석만 쓰고 있는데, 확실히 모든 면에서 일반 등급의 활을 압도했다.
그나저나 고급이 이 정도면 재앙은 어느 정도라는 거지.
무기의 등급은 크게 5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일반, 고급, 희귀, 전설, 재앙.
사실 희귀 등급까지는 장인의 손에서 탄생하는데, 전설 등급부터는 오직 게이트 안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재앙 등급의 경우 장비가 가진 저주로 인해 구해도 쓸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 [경고]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펑!
모래 언덕 하나가 폭발하면서 오징어 대가리 같은 것이 솟구쳤다.
와…… 더럽게 크네.
모래 위로 드러난 것만 아파트 15층 높이인데, 다리 부분은 여전히 모래 속에 잠겨 있었다.
▶ 점멸을 이용해 몬스터를 처치하시오.
▶ 과제 수행을 위해 스킬이 임시 개방됩니다.
【스킬】
3. 점멸 (임시)
스킬창엔 벌써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어 있었다.
[점멸]
- 효과: 반경 10미터 안에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을 함.
반경 10미터면 상당히 먼 거리인데.
내가 알기론 도움닫기를 통한 멀리뛰기 신기록도 10미터가 채 안 됐다.
물론 올림픽에서 세운 비각성자의 기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각성자가 10미터나 되는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소모 마나: 300
- 재사용 대기시간: 없음
뭐야, 쿨타임이 없다고?
도발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5분, 폭주의 경우 그보다 두 배 많은 1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탯】
[마나: 119,200]
마나를 300씩 잡아먹지만, 마나의 수치를 확인한 결과 사용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물론 쿨타임이 없다고 남발하다간 화살이나 스킬 사용에 제약이 걸리겠지만.
▶ 제한 시간 60분.
[00:59:59]
쿠오오오!
대왕 오징어의 포효에 모래 폭풍이 일어났다.
크윽.
눈을 뜨기 힘든 건 둘째 치고,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 화살의 특성상 정확도가 떨어질 것 같다.
펑!
으악!
바닥에서 오징어 다리 하나가 솟구쳤다.
모래 폭풍만 신경 쓰느라 발밑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물론 내 시선을 빼앗기 위해 바람을 일으킨 거겠지만.
짝!
컥!
이번엔 녀석의 다리가 공중으로 떠오른 날 배구공처럼 내리쳤다.
쾅!
총알처럼 날아간 내 몸이 약진을 일으키며 바닥에 처박혔다.
아프다.
진짜 졸라 아프다.
살면서 이렇게 아픈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몸이 욱신거린다.
▶ 심각한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 체력의 40%가 감소하였습니다.
▶ 신체 능력의 저하로 움직임이 둔화됩니다.
▶ 출혈로 인해 피해가 지속적으로 누적됩니다.
체력이 받쳐줬으니 망정이지 솔직히 이 정도 충격에서 살아남을 각성자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쿠오오오!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는지 녀석은 大자로 뻗은 날 또 한 번 내리치려 했다.
이러다 쥐포 되겠네.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대미지가 누적된 탓에 확실히 움직임이 둔해졌다.
몸이 생각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느낌?
정말이지 점멸을 사용하기엔 최적의 상황이다.
▶ 스킬 『점멸』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Y를 바라보자 반경 10미터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원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 이동할 위치를 선택하세요.
원의 중앙엔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붉은 점이 있었다.
▶ 커서의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스킬이 발동됩니다.
화살의 종류를 선택할 때와 같은 방식인데, 신속함이 생명이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오징어 다리에 깔리기 직전, 녀석의 타격 범위를 고려해 피할 곳을 선택했다.
콰과과광!
▶ 스킬의 효력이 종료되었습니다.
와…… 이래서 점멸을 쓰는 구나.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내가 상상했던 지점으로 몸이 이동해 있었다.
쿠오오오!
공격에 실패한 오징어가 괴성을 지르며 다리를 들어올렸다.
읍!
빨판에 붙어 있던 모래들이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쿨타임이 없는 것을 이용해 한 번 더 자리를 옮겼다.
와…… 그냥 생매장 될 뻔했네.
내가 누워 있던 자리가 녀석의 공격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딱 관을 묻기 직전의 모습?
점멸이 없었다면 이미 F학점이 떴을 것이다.
어?
대왕 오징어가 힘겹게 들어 올린 다리를 좌우로 흔들며, 시선을 빼앗기 시작했다.
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할 순 없지.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바닥에서 두 번째 다리가 솟구치기 전, 재빨리 화살의 종류를 바꿨다.
[파이어 애로우]
- 마나로 생성한 속성(불) 화살- 활시위를 당긴 채 5초간 버티면 『화염』 효과 발동.
- 소모 마나: 10
사막이라 가만히 놔둬도 반건조 오징어가 되겠지만, 오징어는 역시 불에 굽는 게 제 맛이었다.
스스스스.
발밑에 있던 고운 모래들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지금이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펑!
예상대로 두 번째 다리가 모래 바닥을 뚫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다리 하나씩 잘근잘근 씹어주마.
활시위를 당긴 채 5초간 버티니 화살촉에 붙어 있던 작은 불씨가 횃불처럼 커졌다.
쉬이익!
손끝을 떠난 화살이 화염에 휩싸인 채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푹!
깃까지 박힌 파이어 애로우가 오징어의 두 번째 다리를 속에서부터 빠르게 익히기 시작했다.
속성 대미지 버프가 30%라 확실히 위력적이네.
쿠오오오!
녀석도 당황했는지 불이 붙은 다리를 다시 모래 속으로 끌어당겼다.
쉬이익! 푹!
밖으로 나와 있던 첫 번째 다리까지 공략한 난 곧바로 녀석의 눈을 조준했다.
물론 연이어 솟구치는 나머지 8개의 다리를 점멸로 피하면서 말이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펑!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펑!
느려.
쉬이익! 쉬이익!
날 노려보는 녀석의 섬뜩한 두 눈에 화살 한 발씩을 꽂아 넣었다.
푹! 푹!
화염에 휩싸인 눈이 하얗게 변해가며 제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흥분한 오징어가 눈에 불을 켜고 날 찾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쉬아아악! 콰과과광!
8개의 다리가 사막 위를 닥치는 대로 쓸고 내리쳤다.
물론 점멸을 익힌 내겐 어떠한 피해도 줄 수 없었지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
*
잠시 후.
쿠오오오!
오징어 통구이가 된 녀석이 마지막 절규와 함께 힘없이 널브러졌다.
콰과과광!
연체동물 주제에 오래도 서 있었네.
▶ 몬스터를 처치하였습니다.
▶ [특별 과제]를 완료하였습니다.
▶ 점수를 산정합니다.
▶ 과제 점수 [A+]
체력이 40%나 깎였지만, 다행히 최고 점수가 나왔다.
점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그런가?
안 그래도 내일 있을 장기자랑 종목 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민첩성 대결이 있는데, 솔직히 점멸만 있으면, 어떤 어쌔신들이 나와도 자신이 없을 것 같다.
질 자신이…….
▶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일일 과제를 수행했을 때보다 스탯의 상승폭이 컸다.
▶ 히든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스킬】
3. 점멸
스킬을 획득하자 점멸 옆에 붙어 있던 (임시) 표시가 사라졌다.
▶ 과제 점수의 합산이 기준점을 넘었습니다.
▶ 장학생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Lv.5 → Lv.6
레벨 5에 도달한 기념으로 얻은 특별 과제지만, 센 놈을 처치해서 그런지 한 방에 레벨 6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 평점이 『4.0(A0)』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 우수한 성적에 따른 『추가 보상』이 발생하였습니다.
뭐? 추가 보상?
▶ 패시브 스킬 『저항』이 개방되었습니다.
어? 패시브 스킬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화살이나 액티브 스킬만 보상으로 주어졌는데…….
【스킬】
4. 저항 (패시브)
[저항]
- 효과: 모든 속성 공격과 상태 이상 공격의 대미지를 최대 100%까지(최소 51%) 감소시킴.
패시브 스킬의 경우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유지되기 때문에 마나의 소모도 없고, 재사용 대기시간도 없었다.
그나저나 이거 엄청난 능력인데?
심지어 ‘모든’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속성 저항과 상태 이상 면역을 일일이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한 마디로 상대방의 변칙적인 공격에 대한 대처가 유연해진 것이다.
잠깐.
이것만 있으면 방어력 부문도 그냥 우승하겠는데?
방어력 대결의 종목은 ‘속성 공격 (랜덤) 버티기’였다.
원래는 압도적으로 늘어난 체력 수치로 무식하게 버틸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저항 스킬의 도움을 받으면 체력적인 부담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현실로 돌아갑니다.
*
*
*
강렬한 빛이 가시는 것을 느낀 태주가 천천히 눈을 떴다.
- “야, 넌 그래서 뭐 나갈 거냐?”
- “나? 글쎄. 그래도 하나 정도는 나가보고 싶은데…….”
현실에서의 시간은 과제가 수행되는 동안 멈춰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여전히 명단 앞에 서서 참가 여부를 고민하고 있었다.
“선배님, 그 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뒤쪽에 빠져 있던 태주가 지희의 손에 들린 볼펜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 어, 당연하지. 자.”
태주의 부탁이 반가웠던 지희가 얼른 펜을 넘겨주었다.
“근데 갑자기 펜은 왜?”
“아, 저도 장기자랑에 나가보려고요.”
태주의 참가 소식을 접한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 “어! 무슨 종목으로 나가게?”
- “태주의 딱밤 실력을 봤을 때, 근력은 무조건 나가야 되지 않을까?”
- “근데 근력이 세면 보통 민첩성이 떨어지던데.”
- “김환이 딱밤을 못 때려서 아직 방어력도 확인되지 않았잖아.”
- “그럼 그냥 근력만 나가는 건가?”
아이들의 의견은 분분했지만, 명단 앞에 다가선 태주의 손놀림엔 거침이 없었다.
- “어! 뭐야 이거!”
- “야, 태주야, 너 진짜 저걸 다 나갈 거야?”
흥미롭게 지켜보던 아이들이 태주의 과감한 선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8기 장기자랑 참가 명단 (9조)]
[조 이름: 우리상조]
★ 근력
- 종목: 맨몸으로 결계 격파.
- 참가희망자: 신태주
★ 방어력
- 종목: 속성 공격 (랜덤) 버티기.
- 참가희망자: 신태주
★ 민첩성
- 종목: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참가희망자: 신태주
★ 치유력 (힐러만 참가 가능)- 종목: 광역 힐 범위 대결.
- 참가희망자:
★ 행운
- 종목: 선택장애자의 복불복.
- 참가희망자: 신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