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새터 (5)
마지막 휴게소를 떠나 한참을 달린 끝에 강원도에 위치한 리조트에 도착했다.
치!
문이 열리자 잠들었던 아이들이 하나둘 하품을 하면서 내렸다.
“9조만 이쪽으로!”
우진의 부재로 조장이 된 지희가 명단이 든 손을 번쩍 들며 조원들을 불러 모았다.
“인원 체크가 끝나야 방에 들어가니까 쉬고 싶으면 빨리 빨리 모이세요!”
지희가 왼손을 오므려 입 옆에 붙인 뒤 확성기처럼 사용했다.
“자, 그럼 얼추 다 온 거 같으니까 호명된 사람은 대답과 함께 손을 들어주세요.”
- “네!”
우진이 9조를 이끌었을 때와 달리 아이들의 태도는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 “야, 조장이 바뀌니까 진짜 놀러온 거 같지 않냐?”
- “그러게. 어떻게 이 타이밍에 설사병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지?”
휴게소에 남겨진 우진은 결국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
*
*
잠시 후.
앞장섰던 지희가 미리 받은 카드 키를 도어락에 갖다 댔다.
삑!
“자, 여기가 바로 9조가 머물 방이야.”
지희가 활짝 연 문을 닫히지 않게 고정시켰다.
- “따라라라따 따라라라라.”
기대감에 부푼 아이들이 집을 소개할 때 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차례대로 들어갔다.
- “와 생각보다 되게 넓은데?”
- “어? 주방 시설이 있어서 안주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
- “근데 침실이 2개밖에 없어서 다는 못 잘 것 같은데?”
- “야, 이런 데서는 원래 다른 방에서도 잤다가 막 복도에서도 깨고 그러는 거야.”
짐들을 한곳에 모은 아이들이 하나둘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쭉 한번 둘러보니까 어때? 나쁘지 않지?”
마지막으로 들어온 지희가 아이들의 신발을 정리하며 물었다.
- “네!”
- “제 자취방보다 100배는 더 좋아요.”
우진이 없는 9조의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였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조별 시간이니까 다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둥그렇게 모여 있어. 난 잠깐 학생회 방에 갔다 올 테니까.”
부조장의 역할을 병행하다 보니 다른 조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10분 후.
“얘들아, 서로 대화 좀 하고 있었어?”
방으로 돌아온 지희가 태주 옆자리에 은근슬쩍 앉았다.
“어…… 앞으로 2박 3일 동안 아주 타이트하게 움직일 거니까 일정을 설명하기 전에 자기소개부터 하고 갈게.”
지희가 학생회 방에서 받아온 일정표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자, 그럼 일단 나부터 할게.”
바닥에서 일어난 지희가 이름표에 적혀 있지 않은 자신의 프로필을 간략히 소개했다.
물론 새로울 것이 없는 태주는 경청하는 척 딴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새터엔 다양한 상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로 길드나 선배들의 협찬으로 준비한 선물들인데, 생각보다 고가인 제품들이 많아 입시 때보다 더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곤 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독식해 주마.’
태주의 머릿속에선 이미 상품을 획득하기 위한 계획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당시엔 무대 밑에서 박수만 치다 갔지만, 2회차 신입생이 된 이상 들러리가 될 순 없었기 때문이다.
- “와!”
지희의 소개가 끝나자 아이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태주야, 이제 네 차례야.”
바닥에 내려앉은 지희가 옆에 있던 태주의 한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
다음 사람으로 지목된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바로 그때.
- “근데 솔직히 태주 정도면 넘어가도 되지 않나?”
- “그러게. 이미 네임드 중의 네임드인데.”
- “태주야, 힘든데 그냥 앉아 있어. 어차피 우리가 다 인터뷰로 찾아봤으니까.”
- “그래. 여기에 너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연락처나 좀 뿌려줘. 뭐, 서혜린 번호까지 보내주면 더 좋고.”
조원들의 말대로 태주는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그래. 그럼 뭐, 앞으로 잘 부탁할게.”
- “와!”
한쪽 무릎을 채 펴보기도 전에 자기소개가 끝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주를 향한 아이들의 반응은 앞선 지희의 소개 때보다 더욱 폭발적이었다.
잠시 후.
자기소개 순서를 마친 지희가 앞으로의 스케줄을 조원들에게 일러줬다.
“오늘은 첫날이라 특별한 행사는 없는데, 이따 저녁 식사 후에 학교생활에 대한 안내가 있을 거야.”
- “어? 그럼 내일은 뭐 해요?”
조원들 중 한 명이 손을 반쯤 올리며 물었다.
“어…… 일단 너희들의 숙취 해소를 위해 아침 행사는 없고, 점심엔 간단한 체육 활동과 보물찾기, 저녁엔 장기자랑과 축하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뭐, 마지막 밤인 만큼 캠프파이어랑 학생회가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도 있고.”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언급하던 지희가 대단한 비밀인 양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이벤트에 위장 신입생이 연관된 건 태주도 알고 있었지만.
- “와, 보물찾기도 있어요?”
- “상품이 뭔데요? 설마 초등학교 때처럼 연필이나 공책 같은 건 아니겠죠?”
- “에이 설마. 그래도 한국대 클래스가 있는데…….”
술이나 마실 줄 알았던 아이들이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금하면 내일 직접 확인해 봐. 뭐,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건 보물이라고 할 수 없지만.”
지희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 “보물이 총 몇 개나 있는데요?”
- “그냥 지금부터 미리 찾으면 안 돼요?”
보물을 선점하기 위한 아이들의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보물은 총 10개. 정확히 말하면 선물 교환권인데, 공정한 승부를 위해서 미리 숨겨 두진 않을 거야. 아, 물론 꽝도 섞여 있으니까 종이를 펴보기 전까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지희가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게임의 규칙을 설명했다.
- “어? 근데 태주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 “그러게. 이미 다 가져서 흥미가 없나?”
- “그럼 태주야, 내일 내가 찾는 거나 잘 구경해. 나 유치원 때부터 완전 보물찾기 선수거든.”
태주의 상황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이 설레발을 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물론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태주 역시 강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지만.
‘그래. 그렇게 열심히 행복회로나 돌려라.’
보물의 위치를 아는 신입생은 태주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와는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보물을 숨긴 장소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학생회의 일처리 방식을 4년이나 지켜본 결과, 사전 답사 때 결정한 내용은 큰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장기자랑에 나갈 인원들을 뽑을 건데, 일단 조 이름부터 정해야 응원상도 노릴 수 있으니까 생각나는 거 있으면 아무거나 편하게 얘기해봐.”
팬을 꺼내든 지희가 일정표 뒷면에 받아 적을 준비를 마쳤다.
- “어…… 우리가 9조인데, 조장이 잘렸으니까 ‘9조조정’ 어때요?”
- “아니야. 우리한테 응원상을 달라는 의미에서 ‘우리상조’라고 지어야 돼. 옷도 검은색으로 맞춰 입고.”
- “야, 근데 상조는 어감이 좀 그렇지 않냐?”
- “아무려면 어때. ‘신입생의 뇌9조’나 ‘내래 고조’같은 것만 아니면 되지.”
5분이 넘도록 쓸 만한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다.
“태주야, 넌 뭐, 괜찮은 아이디어 없어?”
빈 종이를 든 지희가 과묵하게 있던 태주의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그냥 우리상조가 괜찮은 거 같은데요? 뭔가 우리만 살아남은 느낌도 들고.”
- “그치! 이야 역시 태주는 날 선택할 줄 알았어.”
아이디어를 낸 조원이 태주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뭐야, 그럼 진짜 우리상조로 해? 별로면 지금 얘기하고.”
아무것도 적지 않고 있던 지희가 태주의 말에 처음으로 팬을 움직였다.
- “아니요. 들어 보니까 적당히 어그로도 있고 괜찮은 거 같아요.”
- “네. 뭐, 중요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걸로 해요.”
결국 태주의 한 마디에 조 이름이 결정됐다.
- “선배님, 근데 장기자랑 때 우리 조는 뭐해요?”
- “하긴 뭘 해. 그냥 단체로 막춤이나 추다 들어오는 거지.”
- “그냥 누구 한 명이 대표로 나가면 안 되나?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없지만, 열심히 해봤자 호응도 거의 없을 것 같은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장기자랑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장기자랑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어? 그럼요?”
“우리 학과의 장기자랑엔 총 5가지 부문이 있어. 근력, 방어력, 민첩성, 치유력, 그리고 행운.”
지희가 손가락을 한 개씩 접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모두 헌터에게 필요한 기초 능력들인데, 우리 조에서도 종목마다 최소 2명씩은 나갈 거야. 뭐, 지원자가 없으면 강제로 내보낼 수도 있고.”
- “그럼 혹시 한 명이 여러 종목을 나가는 것도 가능한가요?”
- “이것도 보물찾기처럼 상품이 있어요?”
- “정확히 뭘 어떻게 경쟁하는 건데요?”
장기자랑의 정체에 안도한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일단 중복 참여도 가능하고, 상품도 당연히 있는데, 내 경험상 객기로 나갔다간 망신만 당할 수도 있어.”
지희가 참가 명단을 아이들에게 흔들어 보였다.
“이걸 벽에 붙여놓을 테니까 나가고 싶은 사람은 원하는 종목 옆에 이름을 적어놔. 대결 방식도 여기 다 나와 있으니까 알아서들 참고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희가 자신의 눈높이 정도 되는 위치에 참가 명단을 붙였다.
[28기 장기자랑 참가 명단 (9조)]
[조 이름: 우리상조]
★ 근력
- 종목: 맨몸으로 결계 격파.
- 참가희망자:
★ 방어력
- 종목: 속성 공격 (랜덤) 버티기.
- 참가희망자:
★ 민첩성
- 종목: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참가희망자:
★ 치유력 (힐러만 참가 가능)- 종목: 광역 힐 범위 대결.
- 참가희망자:
★ 행운
- 종목: 선택장애자의 복불복.
- 참가희망자:
물론 태주는 치유력을 제외한 모든 종목에 지원할 예정이었지만.
- “어? 이거 종목들이 생각보다 빡센데?”
- “그러게. 선배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간 광탈에 개망신까지 당할 분위기네.”
명단 앞에 모여든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참가 여부를 고민했다.
바로 그때.
▶ 장학생 레벨이 일정 수준(Lv.5)에 도달하여 특별 과제가 주어집니다.
태주의 눈앞에 생소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 특별 과제?’
두 달 가까이 일일 과제만 수행했던 터라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 과제 제출 기한 2일.
심지어 24시간이었던 과제 제출 기한도 48시간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난이도가 훨씬 높은가? 48시간이면 결국 새터가 끝나기 전까진 해결하라는 건데.’
▶ 과제 달성 시 『히든 스킬』이 개방됩니다.
‘히든 스킬?’
현재 가지고 있는 스킬은 도발과 폭주가 전부였다.
▶ 제출 기한을 넘길 시 과제가 소멸됩니다.
[47:59:59 (정지)]
이번에도 마감 시간을 알려주는 작은 타이머가 시야 가장자리에 나타났다.
▶ [특별 과제] 점멸 실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