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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8화 (18/242)

018. 새터 (4)

- “야, 저 차 또 왔다.”

- “어? 아까 간 거 아니었어?”

- “저 차도 휴게소에 있었나 본데?”

아이들이 버스와 속도를 맞추고 있는 슈퍼카를 의아하게 내려다봤다.

“아 저 새끼 저거 또 나타났네.”

요란한 배기음에 눈을 뜬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 창문으로 다가갔다.

“야, 괜히 어그로 끄는 거니까 다들 창문에서 떨어져.”

우진이 10조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리라고 손짓했다.

바로 그때.

- “어? 창문 내린다!”

거울로 써도 될 만큼 짙게 틴팅이 된 페라리의 운전석 쪽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 “어! 어디! 어디!”

운전자의 정체가 궁금했던 아이들이 또다시 창가 쪽으로 모여들었다.

- “어? 여자네?”

반쯤 내려간 창문 너머로 여성의 옆선이 드러났다.

- “와! 겁나 예뻐!”

얼굴의 절반을 선글라스로 가려도 미모는 숨길 수 없었다.

- “뭐 하는 사람이지?”

- “그러게. 나이도 엄청 젊어 보이는데?”

- “집이 잘 사나?”

- “헌터 쪽은 아니겠지?”

온갖 추측들이 난무할 무렵, 여성의 고개가 창문에 붙은 아이들을 향해 살짝 돌아갔다.

- “어! 우리를 올려다보는 거 같은데?”

- “뭐지? 선배님 말처럼 진짜 관종인가?”

- “근데 왜 우리 차 옆에만 붙어 있지? 저 앞에 다른 차들도 많은데…….”

차에 대한 관심이 차주에게로 옮겨지던 바로 그때.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여성이 그윽한 눈빛을 드러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어! 서…… 서혜린이다!”

- “뭐? 서혜린?”

서혜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20대 여배우였다.

- “와! 대박!”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든 아이들이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서…… 서혜린이 타고 있다고?”

아이들을 통제하던 우진마저 팬심을 드러내며 뒤늦게 합류했다.

- “누나! 팬이에요!”

- “드라마 잘 봤어요!”

- “전 영화도 3번이나 봤어요!”

세찬 바람을 뚫고 얼굴을 내민 아이들이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

아이들의 환호에 미소로 화답한 혜린이 선글라스를 올리며 창문을 닫았다.

- “어! 나 아직 사진 못 찍었는데!”

- “누나! 가지 마요!”

아이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혜린의 차는 여운만을 남긴 채 떠났다.

부아아아앙!

*

*

*

잠시 후.

한참을 내달리던 버스가 마지막 휴게소로 들어섰다.

[“자, 이번이 마지막 휴게소니까 다들 신태주 꼴 나기 싫으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알았어?”]

- “네…….”

태주를 놓고 온 뒤로 우진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야, 28기. 목소리 똑바로 안 내냐?”]

- “네.”

신입생들이 늘어지는 대답으로 우진의 방식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 “어! 서혜린 차다!”

창밖을 내다보던 아이들이 주차장에 서 있는 빨간색 페라리를 발견했다.

- “어? 진짜네?”

- “야, 사진 찍어달고 하면 좀 오버겠지?”

- “글쎄. 그래도 사인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 “아 화장실 갔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냥 있으려고 그랬는데.”

내릴 생각이 없던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

덜컥!

운전석 문을 연 혜린이 CF의 한 장면처럼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다.

- “야! 나왔다! 나왔다!”

- “오 대박!”

혜린의 실물을 영접한 아이들이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통로로 쏟아져 나왔다.

치!

- “야! 내려! 내려!”

버스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아이들이 뛰어내렸다.

- “누나! 팬이에요!”

- “저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돼요?”

혜린의 주위로 아이들이 몰렸지만, 여배우의 포스 때문인지 일정 거리 이상은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 “야, 너네 거기서 뭐하냐?”

다른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6호차 신입생들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 “여기 서혜린 있어! 서혜린!”

- “뭐?! 서혜린?! 야! 여기 서혜린 있대!”

혜린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 “야! 어디! 어디!”

팬미팅을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순식간에 혜린을 둘러쌌다.

“어? 학과장님, 애들이 왜 다 저기에…… 어! 혹시 싸우는 건 아닐까요?!”

1호차에서 내린 이종도 교수가 고개를 내빼며 물었다.

“으음. 일단 가보도록 하지.”

사태 파악에 나선 학과장이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스플릿.”

- “어! 어! 뭐야 이거! 왜 이래!”

순간, 학과장을 등지고 있던 아이들이 양옆으로 밀려나며 길이 생겼다.

“어? 웬 여자가 서 있는데요?”

태주밖에 모르는 바보인 이종도 교수가 혜린을 보고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시죠?”

혜린의 앞으로 다가간 학과장이 차분하게 물었다.

“교수님이세요?”

혜린이 선글라스를 벗자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 “우와, 실물이 100배는 더 예쁘네.”

- “야, 얼굴이 딱 내 손바닥 반만 한데?”

“야, 누군데 그래?”

어리둥절하던 이 교수가 옆에 있던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 “어? 교수님 진짜 모르세요? 배우 서혜린이잖아요. 우리나라 탑! 헌터로 치면 5차 각성 S급!”

“뭐?!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야?!”

신입생의 적절한 비유에 놀란 이 교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혜린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배우 서혜린입니다.”

얼굴을 드러낸 혜린이 학과장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아, 네.”

이종도 교수와 달리 학과장은 혜린의 정체를 알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우리 학과 학생들이 그쪽을 귀찮게 한 거 같군요. 제가 잘 타일러서…….”

“아니요.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미소를 머금은 혜린이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그게 무슨…….”

“이전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남학생이 제게 부탁을 하나 했어요.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순서를 양보해 주면 제 커피값까지 계산하겠다고.”

“그럼 그 남학생이 저희 학과 소속이라는 겁니까?”

“네. 근데 절 전혀 못 알아보더군요. 전 그 학생을 한 번에 알아봤는데.”

“네?”

“제가 그 학생 팬이거든요. 그래서 커피값은 됐으니까 급하면 먼저 주문하라고 했죠.”

떠들썩했던 아이들이 혜린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이게 웬걸? 벌써 출발한 줄 알았던 그 학생이 주차장에 홀로 남아 있는 거예요. 기다리겠다고 했던 선배가 무리한 심부름을 시킨 채 일부러 떠난 거죠. 한 마디로 부조리.”

혜린의 폭로에 아이들이 술렁였다.

- “야, 그 선배가 누구냐?”

- “와 진짜 쓰레기네.”

6호차에 탄 아이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챘지만, 나머지 신입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배의 치졸함을 비난했다.

“그럼…… 그 학생이 아직 휴게소에 있다는 겁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학과장이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바로 그때.

덜컥!

손에 커피를 든 태주가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팬으로서 그럴 수 있나요.”

혜린이 태주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 “어! 신태주다!”

- “뭐야! 그럼 서혜린이 팬이라고 했던 학생이 신태주였어?!”

- “와, 대박! 어떻게 서혜린까지 태주를 알지?”

태주의 등장에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어? 그럼 그 선배는 누구지?”

- “누구긴 누구야. 6호차에 탔던 조장이나 부조장이겠지.”

- “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신태주를…… 완전 미친 거 아니야?”

- “그러게. 총장님 라인에 학과장님까지 인정한 태주를 무슨 생각으로 물 먹인 거지?”

비난의 강도를 높이던 아이들이 이제는 선배의 정체를 밝히려 했다.

‘이런 씨. 일이 왜 이렇게 커진 거야.’

아이들 틈에 섞여 있던 우진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 했다.

바로 그때.

“선배님!”

단단히 벼르고 있던 태주가 우진의 뒤통수를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순간, 혜린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어떡하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오긴 했는데, 먼저 가시는 바람에 얼음이 다 녹아서…… 아, 이번 휴게소에서 다시 사다 드릴까요?”

우진에게 다가간 태주가 걱정스러운 척을 하며 커피를 건넸다.

“어? 아, 아니야. 괜찮아. 잘 마실게…….”

입이 바싹바싹 마른 우진이 초조한 얼굴로 커피를 원샷했다.

- “뭐야, 저 사람이었어?”

- “꼴랑 학번 하나 빠른 거 가지고 더럽게 유세 떠네.”

- “근데 이런 상황에서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나?”

- “역시 관상은 과학이야.”

사방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싸늘한 눈빛에 우진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전우진 학생.”

학과장이 우진의 이름을 불렀다.

“네?”

“대체 왜 그랬지?”

“아, 저, 그게…….”

“밝히기 곤란한 내용인가? 그럼 징계 위원회에서 듣는 게 더 낫겠군.”

머뭇거리던 우진이 학과장의 단호함에 덜컥 겁을 먹었다.

“교, 교수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다급해진 우진이 학과장에게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 순서가 틀렸어.”

“네?”

“자넨 지금 사정이 아니라 사과를 했어야 했네. 내가 아닌 태주군에게 말이야.”

“…….”

학과장의 지적에 할 말을 잃은 우진이 난감한 표정으로 태주를 돌아봤다.

“미, 미안. 내가 잘못했어.”

쭈뼛거리던 우진이 태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야, 전우진, 너 잠깐 나 좀 보자.”

“아! 아! 교수님! 잠시만요! 아! 아!”

태주를 끔찍이 생각하는 이종도 교수가 우진의 귀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이제 다 해결된 거야?”

묵묵히 지켜보던 혜린이 태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쎄. 태워준 건만 고마운 건 아닐 텐데.”

두 사람만의 비밀을 언급한 혜린이 묘한 미소를 남겼다.

차에서 내리기 전, 태주의 사연을 접한 혜린이 다이어트를 위해 가지고 있던 변비약을 우진의 커피에 섞었기 때문이다.

“아까 준 번호로 언제든지 연락해. 저녁 약속은 늘 비워둘 테니까.”

태주와 눈을 마주치던 혜린이 선글라스를 쓰며 시크하게 돌아섰다.

- “어! 뭐야! 설마 태주한테 번호까지 준 거야?”

- “뭐지…… 왜 매직 아처가 된 거보다 저게 더 부럽지?”

- “야, 솔직히 저 정도로 잘나가면 형이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

혜린의 적극적인 모습에 놀란 아이들이 태주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그럼 교수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러모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바쁘실 텐데 얼른 가보세요.”

학과장이 태주를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잠시 후.

“아직 안 온 사람 있어?”

6호차의 기사가 바로 뒤에 앉은 지희에게 물었다.

“네, 아직 한 명이 안 왔어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지희가 곤란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한 명? 누구?”

“아까 방송하던 그…….”

“아 그 매정한 학생?”

버스 기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참나, 아니, 남들한텐 그렇게 늦지 말라고 해놓고 왜 본인은 지각을 하지?”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연락이 왔는데요. 갑자기 설사병이 났다고…….”

“뭐? 설사? 어이구 참 가지가지도 하네.”

버스 기사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선배님, 늦었는데 그냥 가시죠.”

- “네, 맞아요. 지금 1초가 아니라 5분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진에게 불만을 갖고 있던 아이들이 출발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어떡하지? 이번이 마지막 휴게소라 버스를 놓치면 숙소까지 자비로 와야 되는데…….”

지희가 10조의 조장과 부조장을 불러 긴급히 상의를 했다.

“학생, 어떻게 할 거야? 시동 꺼 말아.”

이번엔 버스 기사가 지희를 재촉했다.

“저, 그럼 일단 출발해 주세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지희가 결국 아이들의 의견을 따랐다.

“오케이! 그럼 출발!”

우진의 낙오가 내심 통쾌했던 기사가 음악까지 틀며 핸들을 꺾었다.

물론 우진의 설사병이 혜린의 작품인 건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지만.

‘아마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일 거다.’

창밖을 내다보던 태주가 화장실에 틀어박힌 우진의 표정을 상상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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