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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7화 (17/242)

017. 새터 (3)

“태…… 태주야! 내가 소원 하나 들어줄 테니까! 그냥 이렇게 때려! 이렇게!”

다급해진 김환이 중지를 튕기며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했다.

-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자답게 처맞자!”

- “그래. 여기 힐러만 4명이라 어차피 맞아도 안 죽어.”

- “야, 근데 딱밤 맞고 뒤질 정도면, 그냥 자퇴해야 되는 거 아니야?”

- “그러게 무슨 몬스터한테 맞은 것도 아니고.”

위장 신입생의 존재를 모르는 아이들이 맹비난을 퍼부으며 김환을 몰아붙였다.

“알았어. 그럼 새끼손가락으로 치는 대신 소원 2개 콜?”

태주가 중지를 왼손으로 움켜쥐며 역제안을 했다.

“2…… 2개씩이나?”

“그럼 3개로 할까?”

중지를 뒤로 잡아당긴 태주가 오히려 소원의 개수를 늘렸다.

“아, 알았어! 2개! 2개 할게! 새끼손가락에 소원 2개 콜!”

태주의 마력에 위축된 김환이 결국 손해 보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 소리 내면 2대인 거 알지?”

새끼손가락을 튕기던 태주가 또 한 번 김환의 대사를 흉내 냈다.

“자, 간다.”

태주가 엄지로 누른 소지를 김환의 이마에 정조준했다.

“…….”

눈을 질끈 감은 김환이 온몸에 잔뜩 힘을 줬다.

바로 그때.

딱!

투석기처럼 발사된 태주의 새끼손가락이 김환의 이마를 정확히 가격했다.

“크흡!”

두개골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김환의 상체가 완전히 뒤로 넘어갔다.

쿵!

맞는 순간 정신을 잃은 김환이 통로 위로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뭐지? 나 완전 살살 쳤는데…….’

딱밤을 때린 태주가 폭주 스킬의 위력을 새삼 깨달았다.

- “우와 미쳤다!”

- “와 이마에 무슨 총알 맞은 줄?”

- “궁수가 무투가를 힘으로 제압하다니.”

- “야, 좀 전에 비명도 못 지르지 않았냐?”

- “어. 나도 딱밤 소리밖에 못 들었어.”

새끼손가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파워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야! 김환 코에서 쌍코피 난다!”

- “자세히 보니까 이마도 푹 꺼진 거 같은데?”

- “뭐야,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 “야! 누가 빨리 힐 좀 넣어봐!”

김환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얘들아, 잠깐만 비켜봐!”

A급 힐러 지희가 아이들을 밀치며 황급히 달려왔다.

“인텐시브 힐!”

한쪽 무릎을 꿇은 지희가 김환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 “제……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 “저도요!”

힐러인 신입생들이 김환의 곁으로 다가와 힘을 보탰다.

- “힐!”

- “힐!”

잠시 후.

“크윽.”

정신이 돌아온 김환이 이마를 움켜쥔 채 고통을 호소했다.

“야! 김환! 괜찮아?! 이거 몇 개야!”

심각한 표정의 지희가 김환의 얼굴 앞에 손가락 두 개를 흔들었다.

“두…… 두 개요.”

후배들 앞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한 김환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하…… 진짜 자퇴를 해야 되나.’

선배의 위엄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굴욕적인 패배까지 당했으니 위장 신입생을 준비한 입장에선 심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태주가 김환의 이마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야, 너 같으면 괜찮…… 크윽.”

치료는 끝났지만, 아직 후유증은 남아 있었다.

- “야, 신태주랑 게임할 땐 절대 걸리면 안 되겠다.”

- “그러게. 난생 처음으로 딱밤이 무서워졌어.”

- “와…… 딱밤도 저 정도인데, 인디안밥까지 맞으면 어떻게 될까?”

-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그냥 척추가 반대로 접히는 거지.”

버스 안은 온통 태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태주야, 둘이 따로 앉을래?”

어색한 기류를 느낀 지희가 태주의 뜻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전…….”

“그래. 나 좀 혼자 있고 싶다.”

이마를 매만지던 김환이 태주가 나가도록 다리를 치워줬다.

바로 그때.

- “야, 태주야 이쪽으로 와.”

- “그래. 여기 자리 있어.”

맨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창가 쪽 자리를 양보하며 태주에게 손짓했다.

“태주야, 어떡할래?”

지희가 태주의 의사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네. 그러죠 뭐.”

자리에서 일어난 태주가 미련 없이 뒤쪽으로 이동했다.

딱밤 한 방에 자신의 힘을 증명한 것은 물론 귀찮게 달라붙던 위장 신입생도 깔끔하게 떼어냈기 때문이다.

- “역시 버스 맨 뒷자리는 짱이 앉아야지.”

- “야, 태주야 나 새끼손가락 한 번만 만져 봐도 돼?”

- “어! 나도! 나도!”

뒤쪽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반색을 하며 태주를 반겼다.

물론 태주에 대한 아이들의 호감이 커질수록 우진의 눈빛은 싸늘해지고 있었지만.

[“…….”]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우진의 입장에선 6호차의 실세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위기처럼 느껴졌다.

교수들이 있는 1호차와 달리 나머지 버스에선 조장과 부조장을 맡은 선배들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는데, 태주의 등장으로 인해 그 체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태주를 어떻게 골려주지?’

*

*

*

잠시 후.

[“아, 아.”]

마이크를 잡은 우진이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8기.”]

- “네!”

[“한 3분 뒤면 휴게소에 도착하니까 화장실 갔다 올 사람들은 늦지 않게 다녀오고, 몸이 안 좋으면 참지 말고 빨리 빨리 얘기해. 알았어?”]

- “네!”

대답을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 “와 대박!”

우측에 앉아 있던 신입생 한 명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 “야! 저거 봐봐 저거!”

- “야, 왜. 왜…… 어! 페라리다!”

우진의 공지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창문에 밀착하기 시작했다.

- “저거 이번에 나온 신형 아니야?”

- “와…… 우리나라에 몇 대 안 들어왔다고 그랬는데.”

부아아아앙!

바로 옆 차선엔 수억 원에 달하는 붉은색 슈퍼카가 아이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 “야, 저런 거 끌고 다니려면 한 달에 얼마나 벌어야 되냐?”

- “글쎄. S급 헌터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들만 탈 수 있지 않을까?”

- “어! 그럼 우리들 중에서 태주가 제일 가능성이 크네?”

- “태주야, 너도 저런 차 한 번 타보고 싶지 않냐?”

동기들 중 한 명이 태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기회가 되면 뭐.”

태주가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페라리의 뒷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부아아아앙!

[“저 새끼 저거, 저렇게 빨리 갈 수 있는데, 괜히 우리 옆에 붙어서 자랑질만 하다 가네.]

안내방송을 하던 우진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차주의 행동을 지적했다.

[“야, 저런 것들은 남들의 시선에서 우월감을 느끼니까 이따가 또 도로에서 마주쳐도 절대 쳐다보거나 소리 지르면 안 돼. 알았지!”]

- “네!”

우진의 말에 기계적으로 대답한 아이들이 또다시 슈퍼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

*

*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첫 번째 휴게소 안으로 들어섰다.

[“1초라도 늦으면 바로 출발할 거니까 정확히 10분 안에 돌아와라.”]

우진이 휴대폰 시계를 보여주며 시간엄수를 강조했다.

- “네!”

치!

버스가 멈추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읏! 짜!”

버스에서 내린 태주가 깍지 낀 두 손을 하늘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바로 그때.

- “야, 너 그 얘기 들었어?”

- “뭐, 무슨 얘기?”

- “나도 6호차에 있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아주 난리도 아니었대.”

- “6호차에서? 왜?”

다른 버스에서 내린 동기들이 태주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딱밤 얘기가 벌써 퍼졌나 보네.’

물론 사건의 당사자인 김환 역시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 “야, 근데 김환이란 애가 누구냐?”

- “그러게. 그런 이름은 나도 처음…… 어? 야, 쟤 아니야? 방금 목걸이에 김환이라고 적혀 있던 거 같은데?”

- “아 그럼 쟤가 그 딱밤 맞고 기절했다는 애야?”

- “어? 근데 왜 갑자기 걸음이 빨라지지? 혹시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들었나?”

화장실로 향하던 김환이 얼른 목걸이를 빼서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게 사람을 봐가면서 건드려야지.’

명백한 하극상이었지만, 상대가 먼저 동기인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선배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바로 그때.

“야, 신태주.”

태주의 등 뒤에서 우진의 묵직한 저음이 들렸다.

‘무슨 일이지?’

“네, 선배님.”

발걸음을 멈춘 태주가 뒤따라오던 우진을 돌아봤다.

“화장실 가냐?”

“네.”

“그럼 같이 가자.”

무표정하게 다가오던 우진이 태주의 곁을 유유히 스쳐갔다.

‘뭐야 저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지희와 달리 호의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네.”

어쩔 수 없이 동행을 하게 된 태주가 한 발짝 뒤에서 우진을 따랐다.

“아까 보니까 활만 잘 쏘는 게 아니라 힘도 세던데?”

앞서가던 우진이 태주를 힐끗 쳐다봤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밤으로 사람도 잡을 뻔했는데.”

우진이 칭찬인지 시비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뉘앙스로 말끝을 흐렸다.

“너 요새 용돈벌이가 나쁘지 않다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거의 20군데가 넘는다던데. 맞아?”

“아, 네, 뭐.”

태주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난 아직 명함도 한 번 못 받았는데…… 좋겠다?”

2학년 때 용돈을 받는 것도 상당히 이른 편이었지만, 태주의 경우 입학 전부터 업체들의 관리를 받는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근데 넌 어디랑 계약할 거야? 아레나? 풍림? 아니면, 태동? 아, 맞다. 이번 신입생 중에 풍림 후계자도 있다던데. 너도 알아?”

“네. 친구입니다.”

“뭐? 친구? 와 역시 끼리끼리 모이네.”

질투심이 묻어나는 우진의 질문 공세는 화장실을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이 새낀 뭐가 이렇게 궁금한 게 많지?’

순간, 인터뷰 100개는 몰아서 한 거 같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야, 신태주. 너 그렇게 돈도 많이 버는데 음료수라도 하나 사야 되는 거 아니야?”

버스로 돌아가던 우진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아,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진짜 살 거야?”

“예, 제가 사오겠습니다.”

“그럼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사와. 제일 큰 사이즈로.”

우진이 턱 끝으로 매점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 근데 출발 시간이 다 된 거 같은데, 지금 갔다 와도 괜찮을까요?”

태주가 휴대폰을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우리가 마지막에 출발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갔다 와. 기사님한테는 내가 따로 말씀드릴 테니까.”

“네, 그럼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지갑을 소환한 태주가 우진을 남겨둔 채 걸음을 재촉했다.

*

*

*

[“자, 아직 안 온 사람 없지?”]

버스에 올라탄 우진이 신입생들을 향해 물었다.

- “어? 아직 태주가 안 왔는데요?”

태주의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뭐? 아직도 안 왔다고?”]

자신이 심부름을 보냈다는 사실을 숨긴 우진이 모른 척 미간을 찌푸렸다.

[“야, 내가 아까 내리기 전에 얘기했지. 10분 안에 안 오면, 1초만 늦어도 출발할 거라고.”]

- “그래도…….”

창밖을 내다보던 신입생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그래도는 뭐가 그래도야. 어!”]

아이들의 말문을 막은 우진이 버스 기사에게 출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저씨, 괜찮으니까 그냥 가주세요.”]

“어차피 우리는 뒤따라가는 입장인데 그냥 기다렸다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버스 기사 역시 아이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 우진아, 후배 교육도 좋지만, 오늘은…….”

[“그런 식으로 오냐오냐 하니까 요즘 후배들이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알아?”]

지희의 말을 잘라버린 우진이 후배들을 노려보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 “야, 너 태주 번호 있냐?”

- “아니, 난 오늘 처음 봐서…….”

- “나도 없는데 어떡하지?”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명단엔 태주의 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아쉽게도 6호차에 탄 동기들 중엔 연락처를 아는 이가 없었다.

[“아저씨, 이건 우리들 문제니까 일단 출발해 주세요.”]

“어, 그래…….”

치!

공회전을 하고 있던 버스 기사가 마지못해 문을 닫았다.

- “저 선배라는 새끼 졸라 매정하네.”

- “그러게. 신태주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나?”

- “악감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까 트레이닝 돔 앞에서 인원 체크할 때 보니까 살짝 비꼬듯이 얘기하더라고.”

우진이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아이들이 엔진 소리에 묻힐 정도로 조용히 뒷담화를 나눴다.

- “야, 그나저나 태주는 이제 어떡하지?”

- “그러게. 콜택시라도 불러야 되나?”

- “같은 방향이면 다른 차를 얻어 타도 될 것 같긴 한데…….”

버스는 출발했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휴게소 쪽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쯤 엄청 당황했겠지?’

끝까지 시치미를 뗀 우진이 태주의 표정을 상상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

*

*

잠시 후.

부아아아앙!

먼저 간 줄 알았던 빨간색 페라리가 6호차 뒤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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