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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5화 (15/242)

015. 새터 (1)

잠시 후.

태주의 선서와 총장의 입학식사에 이어 특별 시상이 거행됐다.

[“네, 이번엔 수석 합격자에 대한 시상이 있겠습니다. 호명이 된 학생은 단상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를 맡은 교수가 시상 분야를 언급하며 학생들 쪽을 바라봤다.

[“한국대학교 헌터학과 제28기 수석 합격자…….]

긴장감 조성을 위해 잠시 뜸을 들였지만, 모두의 시선은 이미 태주를 향해 있었다.

[“신태주. 축하합니다.”]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태주의 이름이 불리자 곳곳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와 잘생겼다!”

가장 큰 리액션을 보이는 건 역시 태주의 옆에 있던 임세준이었다.

[“신태주 학생은 헌터학과 입시 사상 가장 높은 점수로 합격을 하였으며, 그 압도적인 결과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되지 않은 바, 28기 수석 합격자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덤덤한 얼굴의 태주가 또다시 단상 앞으로 나갔다.

[“시상은 최지문 총장님께서 직접 해주시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최 총장이 태주에게 다가갔다.

“허허, 오늘 아주 자주 보는군.”

태주를 제외한 그 어떤 신입생도 입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호명되지 못했다.

[“우선 수석합격증서의 수여가 있겠습니다.”]

“수고했네.”

최 총장이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수석합격증서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부상으로는 1년 치 등록금과 리더스 배지가 주어집니다.”]

“이건 내가 직접 달아주겠네.”

최 총장이 헌터협회 마크가 찍힌 케이스에서 리더스 배지를 꺼냈다.

“자네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수석 입학》

황금빛 배지의 정중앙엔 수여 조건이 새겨져 있었다.

“네. 제 스스로 한계를 정하진 않겠습니다.”

태주가 왼쪽 가슴에 달린 배지를 내려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 “와…… 저게 그 말로만 듣던 리더스 배지야?”

- “저거 20개만 있으면 5대 길드도 프리패스래.”

- “어? 그래? 그럼 뭐, 학기당 2~3개씩만 모으면 되겠네?”

- “뭐? 2~3개? 야, 신태주가 있는데, 네가 무슨 수로 2~3개씩을 모아.”

박수를 치던 동기들이 단상 앞에 선 태주의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

*

*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입학식 역사상 가장 많은 꽃을 받게 되었습니다.]

입학식을 마친 태주가 화환들과 찍은 인증샷을 올렸다.

바로 그때.

지이잉!

학과 사무실에서 보낸 문자가 태주의 휴대폰을 울렸다.

[헌터학과 28기 새터 일정 알림]

새터란 새내기 배움터의 줄임말로 신입생들에게 학교생활을 알려주는 행사였다.

보통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헌터학과의 경우 다른 학과들과 달리 참석이 강제됐다.

‘또 술판만 벌어지겠네.’

새터에 대해선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주량이 약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싸 라이프의 시작이 바로 새터였기 때문이다.

[준비물: 눈치껏, 건강한 간]

물론 그때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

*

*

새터 1일 차 아침.

트레이닝 돔 앞엔 이미 단체로 대절한 버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자, 지금부터 조별로 인원 체크 하겠습니다!”

확성기를 든 선배 한 명이 신입생 명단을 흔들며 외쳤다.

태주가 배정된 조는 9조.

당시엔 5조였지만, 떨어진 방우혁 대신 새로운 합격자가 들어오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물론 어느 조에 들어가든 태주가 모르는 신입생은 없었지만 말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하는 짓은 똑같네.’

태주가 9조에 합류한 남학생 한 명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일명 신입생인 척하기.

새터 때마다 하는 선배들의 장난인데, 킬링 포인트는 역시 후배들의 반응이었다.

‘누가 걸릴진 몰라도 학교생활 오지게 꼬였네.’

신입생의 경우 입시 때 한 번, 입학식 때 한 번, 총 2번의 만남이 전부였다.

100명이나 되는 동기들의 얼굴을 완벽히 구별할 수 있는 신입생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오직 한 명, 신태주만 빼고.

“안녕. 너 신태주 맞지?”

신입생으로 위장한 2학년 선배가 태주에게 다가와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와…… 이게 나한테 작업을 거네?’

위장 신입생은 총 3명이 투입되어 있었다.

물론 100명의 신입생을 10명씩 나누면 금방 티가 나는데, 직업과 성별을 핑계로 적게는 8명, 많게는 12명씩 차등적으로 조원을 배정해 쉽게 눈치챌 수 없었다.

다른 조의 인원수 따윈 관심 없는 신입생들의 특성상 위장 신입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와도 함부로 의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혹시 내 얼굴 기억 안 나? 입시 때 학식에서 한번 마주쳤는데.”

태주가 위장 신입생의 거짓말을 단번에 알아챘다.

다른 신입생이었다면 무조건 속았겠지만, 태주는 그날 학생 식당이 아닌 교직원 식당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 미안. 내가 그때 정신이 없어서.”

칼자루를 쥔 태주가 모른 척 맞장구를 쳐줬다.

동기들이 당황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들키지 않았다고 착각한 선배들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이미지 관리.

위장 신입생들은 주로 선배들의 험담을 주도하거나 금기사항을 깨도록 유도했다.

동기라고 생각해 정신 줄을 놓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흑역사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반면 선배들의 얼굴을 알고 있는 태주는 진실을 숨긴 채 상황을 즐길 수 있었다.

위계질서가 심한 헌터학과에선 학점 관리만큼이나 평판 관리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에이, 뭐, 그럴 수도 있지.”

신입생으로 위장한 선배가 태주의 팔뚝을 터치하며 친한 척을 했다.

“우리 갈 때 같이 앉을래? 아, 다른 친구가 있으면, 뭐, 어쩔 수 없고.”

선배들이 태주를 찍은 건 역시 꼬투리를 잡기 위함이었다.

잘나가는 후배는 건방질 것이란 편견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1티어 회사로부터 용돈을 받는 태주의 잠재력이 내심 부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의도를 간파한 태주가 선배들에게 찍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그래.”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태주가 동기를 대하듯 편하게 말했다.

너무 조심스러운 티를 내거나 극존칭을 사용할 경우 선배들의 의심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 진짜? 그럼 네가 창가 쪽에 앉아. 자리도 네가 원하는 곳에 앉고.”

접근에 성공했다고 판단한 선배가 잇몸을 만개하며 웃었다.

‘아주 신이 났네.’

물론 위장 신입생의 목적이 꼭 장난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최고의 신입생과 최악의 신입생.

새터의 마지막 밤엔 선배임을 공개한 위장 신입생들이 이틀 동안 관찰한 두 명의 신입생을 선정했다.

심지어 부상도 있었는데, 최고의 신입생이 된 1인에겐 1학년 때 배우는 모든 전공과목의 족보가…….

최악의 신입생에겐 최고의 신입생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한 가지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다.

1학년 내내 최고의 신입생을 수발하는 아주 굴욕적인 임무가 말이다.

‘1학년 족보는 내가 가져간다.’

전공과목의 족보는 회귀자인 태주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교수님의 성향과 수업 방식은 물론 과제의 내용과 시험의 유형들까지 싹 다 기억하고 있는 태주지만, 그 내용을 리마인드 시켜줄 도구가 있다면 훨씬 더 수월하게 학점을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내가 먼저 앉을게.”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눈치챘다는 사실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위장 신입생의 존재가 알려지는 순간, 선배들의 평가는 끝이 나고, 부상으로 주어질 족보와 심부름꾼 또한 없던 일로 되기 때문이다.

- “신태주 왔지?”

9조의 조장을 맡은 2학년 선배가 명단을 확인하며 두리번거렸다.

“네.”

- “어, 그래, 네가 그 말로만 듣던 헌터학과의 자랑이자 헌터 업계의 미래구나.”

태주와 눈이 마주친 조장이 살짝 비꼬는 투로 말했다.

- “자, 다음은…… 김환. 김환 왔냐?”

“네!”

태주에게 접근한 위장 신입생이 해맑은 표정으로 번쩍 손을 들었다.

‘와…… 설레는 척하는 거 봐라 저거.’

태주가 선배의 신입생 연기를 속으로 비웃었다.

물론 모른 척 눈감아주고 있는 조장의 연기 또한 심히 가증스러웠지만.

- “어…… 우리 조는 일단 다 온 거 같으니까 다들 자기 짐 챙겨서 6호차 앞으로 가. 부피가 큰 건 밑에 있는 트렁크에 알아서 넣고. 자, 자, 출발.”

조장의 지시에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근데 태주야.”

나란히 걷던 김환 선배가 태주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어, 왜.”

“넌 왜 빈손이야?”

트집을 잡았다고 생각한 김환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진짜 딱 건강한 간만 챙겨온 거야? 준비물엔 분명 눈치껏 가져오라고…….”

“가져 왔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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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가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세면도구를 꺼냈다.

“아…….”

무기만 소환되는 줄 알았던 김환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좋겠네. 무겁게 안 들고 다녀도 되고.”

지적을 하려던 김환이 급하게 칭찬으로 포장했다.

“힘들면, 네 것도 넣어줄까?”

“어? 아니야, 괜찮아. 고마워.”

당황한 김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것보다 지갑에 든 학생증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 저기 있다! 6호차!”

화제를 돌리고 싶던 김환이 버스를 가리키며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먼저 가서 좋은 자리로 맡아 둘게!”

“어, 그래, 고마워.”

태주가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자, 9조는 기사님이 있는 왼쪽에, 10조는 오른쪽에 앉으세요.”

버스기사 뒤에 앉은 부조장이 신입생들을 안내했다.

“어, 태주야, 안녕.”

태주가 타는 것을 본 9조의 부조장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태주가 부조장을 맡은 여자 선배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난 2학년 윤지희야,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A급 힐러인 지희는 태주의 팬이었다.

심지어 태주의 人수다를 팔로워하고 있었는데, 사실 9조에 지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네.”

태주는 지희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심한 만큼 선배들의 프로필을 기억하는 것 또한 후배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어! 태주야! 여기!”

미리 타고 있던 김환이 버스에 올라탄 태주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 그래.”

위장 신입생은 버스의 중간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통로 쪽에 앉은 김환이 태주가 오는 타이밍에 맞춰 다리를 치워줬다.

“야, 태주야, 너 들어올 때 있던 여자 선배 봤어?”

태주가 앉은 것을 확인한 김환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어.”

“아까 물어보니까 우리 조 부조장이래. 2학년.”

“아, 그래…….”

태주가 관심 없다는 얼굴로 팔짱을 낀 채 한껏 기대어 앉았다.

“어때?”

“뭐가.”

“저 선배 어떠냐고.”

김환의 입꼬리에서 음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의미야?”

“아니, 내가 여기서 보니까 널 대하는 눈빛이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더라고.”

지희가 태주의 팬인 걸 알고 있는 김환이 슬쩍 밑밥을 깔았다.

“글쎄. 난 잘 모르겠던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태주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래? 하긴, 뭐, 너 좋다는 여자가 한둘은 아니니까. 너 이번 입학식 때도 화환만 수십 개 받았잖아.”

신입생인 척을 하기 위해 사전조사까지 하고 온 김환이었다.

“설마 팬들을 위해 어장관리만 하려는 건 아니지?”

“어장관리?”

“그래도 대학까지 왔는데, 소개팅도 잡고, 연애도 해봐야지. 안 그래?”

“연애는 무슨. 나는 괜찮으니까 너부터 해. 얼굴도 네가 더 나은 것 같으니까.”

이미지 관리에 들어간 태주가 선배의 외모를 띄워 주면서 자연스럽게 거절했다.

“내…… 내가?”

선의의 거짓말에 넘어간 김환이 손바닥으로 한쪽 뺨을 쓸어내렸다.

‘새끼, 좋아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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