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입학식 (3)
“아, 물론 강요하려는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난 2회차 신입생이다.
1, 2, 3, 4학년을 통틀어 가장 많은 던전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그럼 난 던전 실습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매직 아처로서의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던전 안에서의 검증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너한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물어본 거니까 수강 신청 전까지 천천히 생각을…….”
“아니요. 하겠습니다.”
더구나 전공 필수 과목이라 미리 들어 나쁠 것도 없었다.
물론 상급 학년의 전공과목은 수강할 수 없는 게 원칙이지만, 그건 교수님이 해결할 문제였다.
“어! 진짜?!”
엉덩이가 들썩일 만큼 좋아하신다.
“교수님께서 특별히 신경 써주신 건데 당연히 들어야죠.”
활까지 받은 마당에 모른 척할 순 없지.
“어, 그래, 그럼 내가 학과장님께 말씀드려서 한 자리만 추가시켜 달라고 할게.”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흔쾌히 응해줘서 내가 더 고맙지.”
원하는 대답을 얻은 교수님이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신입생은 수강 신청일도 다르고, 최대 18학점까지만 들을 수 있으니까 시간표 짤 때 15학점까지만 들어놔. 내 수업은 나중에 학과에서 추가시킬 거니까.”
“네.”
“자 그럼 이제 입학식을 하러…… 아, 태주야, 그거 들고 가기 귀찮으면, 여기 뒀다가 나중에…….”
▶ 접촉한 장비를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인벤토리】
263.
[고급]
고뇌하는 하급 정령의 활 (×1)
“아, 맞다. 너 인벤토리 능력자지. 내가 잠깐 착각했다.”
교수님이 날 보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
*
*
트레이닝 돔 앞은 이미 입학식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와…… 무지하게 많이 왔네.”
이종도 교수가 줄지어 들어오는 차량을 피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보육원에서 자란 태주는 누군가를 초대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태주처럼 혼자 있는 아이들도 보였지만, 사정상 오지 못한 것과 올 사람이 없는 건 엄연히 달랐다.
“어머 이 교수님, 안녕하셨어요?”
학부모 한 명이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아이고, 주엽이 어머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당연히 입학식 때문에 왔죠. 이번엔 3살 터울인 우리 둘째 아들.”
한국대 헌터학과에 들어가는 건 가문의 영광이었기 때문에 두 아들을 보낸 어머니의 자부심도 클 수밖에 없었다.
“아 주엽이 동생도 올해 합격했어요?”
“네, 교수님. 앞으로 우리 대엽이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교수에게 얼굴 도장을 찍은 학부모가 뒤쪽에 빠져 있던 둘째 아들을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대엽아, 얼른 인사 드려.”
“아, 안녕하세요.”
등 떠밀려 나온 대엽이가 긴장된 목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얘, 이름을 얘기해야지 이름을.”
대엽의 어머니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들을 닦달했다.
“아, 저는 민대엽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코치를 받은 대엽이가 경직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아들, 엄마가 누누이 말했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대엽의 어머니가 그새를 못 참고 끼어들었다.
“저기, 대엽이 어머님?”
“네, 교수님, 말씀하세요.”
대엽의 어머니가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주엽이가 그랬던 것처럼 대엽이도 잘 적응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다 못한 이 교수가 학부모를 진정시켰다.
“교수님 말씀 잘 들었지? 너희 형 반만 따라가도 좋으니까 엄마 실망하지 않게 잘해. 알았어?”
“아니요. 어머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이 교수가 학부모의 자의적인 해석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피곤한 아줌마네.’
태주는 A급 어쌔신인 대엽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따로 말을 섞어본 적은 없지만, S급 어쌔신인 친형이 워낙 유명해 덩달아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러니까 애가 소심해지지.’
태주가 이 교수를 남겨둔 채 자리를 피했다.
*
*
*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꽃다발을 든 신입생들이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人(인)수다에 셀카나 찍어 올려야겠다.’
플래시 세례를 독차지하던 태주지만, 오늘만큼은 철저히 앵글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사진은 역시 필터로.’
태주가 입학식에 모인 사람들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찰칵!
[신태주]
[게시물 37]
[팔로워 15.1백만]
영상 공개 직후 태주의 팬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였다.
팔로워만 1500만 명 이상.
웬만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그들 중 70% 이상은 해외 팬들이었다.
[입학식에서 한 컷.]
태주가 짧은 글과 함께 사진을 게시하자 무서운 속도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입학 ㅊㅋㅊㅋ
= 근데 왜 빈손임? 꽃다발 못 받음?
= 학교 앞에서 파는 거라도 하나 사지 ㅠㅠ= 사진 한 번 찍고 버릴 거 뭐하러 삼? 그 돈으로 뜨끈한 국밥이나 사 먹지.
┗ 국밥 빌런이 또…….
= 누나가 졸업식 때는 꼭 챙겨줄게. 참고로 나 플로리스트임 ㅋ┗ 4년 뒤에 생색내지 말고, 할 거면 지금 하시죠 ㅋㅋㅋ
‘하여간 오지랖들은.’
댓글들을 확인하던 태주가 싫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바로 그때.
[“이제 곧 입학식이 거행될 예정이오니 모두 트레이닝 돔 안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외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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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돔 내부는 입학식에 맞게 세팅되어 있었다.
- “야! 신태주다! 신태주!”
- “어디! 어디!”
잡담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태주를 돌아봤다.
- “야, 뭔가 입시 때보다 더 강해진 거 같지 않냐?”
- “어! 너도 느꼈어?”
태주가 스쳐갔던 아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 “내가 좀 둔한 편이라 웬만큼 센 마력이 아니면 거의 감지를 못하는데, 좀 전에 신태주가 지나갈 땐 진짜 와…… 솔직히 이 정도면, 인기척이 아니라 신기척이야 신기척.”
- “그러게. 소리만 안 냈지 거의 ‘형님 왔다 이 새끼들아’하면서 들어오는 기분?”
아이들의 평가는 정확했다.
태주의 몸에서 발산되는 마력의 크기는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주야!”
태주가 오는 것을 발견한 임세준이 가족까지 버리고 달려왔다.
“나도 합격했어! 이제 너랑 동기라고!”
태주 앞에 멈춰 선 세준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100명 중에 97등으로 붙었어! 완전 대박이지!”
무용담을 늘어놓던 세준이 태주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가 그때 얘기했지? 나중에 동기로 만나면 번호도 물어보고 말도 놓을 거라고.”
“…….”
세준의 휴대폰을 건네받은 태주가 연락처를 찍어준 뒤 말없이 돌려줬다.
“이제 우리 친구된 거 맞지?”
세준이 태주의 이름을 남다르게 저장했다.
[절친★갓태주]
“내가 지금 전화할 테니까 너도 빨리 내 번호 저장해.”
신이 난 세준이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폰을 꺼낸 태주가 종료 버튼을 누른 뒤 이름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임세준]
태주가 친분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이름으로 세준을 저장했다.
“뭐야, 그게 끝이야?”
태주의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세준이 서운함을 드러냈다.
“야, 난 네 이름에 이렇게 별까지 넣었는데…….”
세준이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된 태주의 이름을 보여줬다.
“나중에 같은 이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뭐라도 하나 더 붙여줘.”
“…….”
태주가 세준의 이름 뒤에 숫자를 덧붙였다.
[임세준1]
“됐지?”
“그래, 뭐, 1이 어디냐.”
세준이 체념한 얼굴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신입생 여러분들께선 10열 종대로 서주시기 바랍니다.”]
사회를 맡은 교수가 어수선한 아이들을 통제했다.
[“자, 자, 수상자가 드나들 수 있게 여유 있는 간격을 유지해주세요.”]
- “수상자? 야, 오늘 뭐 상주냐?”
- “상? 글쎄. 뭐, 과수석 정도는 주지 않을까?”
- “과수석? 그럼…….”
오와 열을 맞추던 아이들이 태주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 “하…… 그냥 재수할 걸 그랬나?”
- “그러게. 신태주랑 동기면 상이고 뭐고, 다 물 건너 간 건데…….”
- “솔직히 상도 상이지만, 난 졸업할 때까지 비교되는 게 더 스트레스야.”
태주를 질투하는 몇몇 학생들이 불만을 드러냈다.
“…….”
가만히 듣고 있던 태주가 거슬리는 곳을 힐끗 노려봤다.
- “…….”
태주의 눈빛에 겁먹은 아이들이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머금었다.
*
*
*
잠시 후.
태주의 2번째 입학식이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자, 이번엔 신입생 선서가 있겠습니다. 신입생 대표 앞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태주가 단상 앞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 “쟤가 바로 그 신태주란 애예요?”
신입생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학부모들이 태주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아까 보니까 계속 혼자 있는 거 같던데. 오늘 아무도 안 왔나?”
- “아무도 안 온 게 아니라 아무도 못 온 거예요.”
- “네? 왜요?”
- “2살 때부터 쭉 보육원에 살았대요.”
- “아 네.”
- “에휴 수석을 하면 뭐하고, 선서를 하면 뭐해요. 이런 뜻깊은 날에 꽃다발도 하나 못 받는데.”
- “그러게요. 불쌍해서 어쩐다.”
태주의 능력을 시기한 학부모들이 동정하는 척 아픈 곳을 찔러댔다.
바로 그때.
철컹!
굳게 닫혀 있던 트레이닝 돔의 문이 활짝 열렸다.
- “저기, 잠시만요.”
근처에 있던 조교 한 명이 트레이닝 돔 안으로 들어선 남자를 제지했다.
- “혹시 입학식에 오셨어요?”
- “네.”
- “신입생 가족으로요?”
- “아니요?”
- “그럼 왜…….”
- “전 그냥 배달 왔는데요?”
- “네? 배달이요?”
도어스토퍼로 문을 열어둔 배달원이 밖으로 나가 화환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 “어! 뭐야 저거!”
- “저거 화환 아니야?”
- “야, 뒤에 또 들어오는데?”
심지어 각기 다른 업체에서 온 수십 명의 배달원이 개업식에서나 볼 법한 3단 화환을 들고 줄줄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늦게라도 보냈으니 용서해다오.]
[그저 빛태주, 입학을 축하한다.]
[나도 못 받아본 화환을 보낸다.]
[(축) 과 수석 (입) 신 태 주 (학)]
길게 늘어뜨린 리본들마다 태주의 입학을 축하하는 팬들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 “와…… 저게 다 몇 개야?”
- “꽃다발 하나도 클래스가 다르네.”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입구 쪽을 향해 있었다.
‘내가 SNS를 끊던지 해야지 원.’
팬들의 성의는 고맙지만, 입학식의 진행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단상 앞에 선 태주가 총장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신경 쓰지 말게. 어차피 오늘은 자네가 주인공 아닌가.”
태주바라기인 최 총장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 “꽃다발도 없다고 했더니 아예 화환으로 받았네. 에휴”
- “그러게요. 역시 연예인이랑 재벌, 그리고 S급 걱정은 하는 게 아닌가 봐요.”
태주를 무시하던 학부모들이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