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입학식 (1)
이게 다 몇 장이야?
하나, 둘, 셋, 넷.
우와, 오늘 받은 명함만 무려 14장이다.
허창민은 7곳이었는데.
이제 영상이 공개되면, 더 많은 러브콜을 받게 될 것이다.
잠깐, 한 곳당 최소 30만 원씩만 잡아도 14곳이면, 420…… 100만 원씩 잡으면…… 헉! 1400?!
정말이지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억대 연봉을 받는 사상 최강의 꿀알바다.
안 그래도 대학 주변에 집도 알아봐야 되는데…….
당시엔 오래된 하숙집이나 저렴한 원룸을 이용했었다.
물론 기숙사란 선택지도 있었는데, 줄곧 외부인 취급을 받던 시기라 썩.
지이잉!
어? 누구지?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입금 2,000,000 (아레나 길드)]
2…… 200?!
최대 100만 원이 국룰인 줄 알았는데…….
지이잉!
설마 이번에도 묻고 더블로?
화투패를 쪼듯 문자를 확인했다.
[입금 2,000,000 (풍림 길드)]
뭐야, 이거! 또 200?!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지이잉!
이번엔 어디…… 어?
[입금 1,000,000 (태동 길드)]
뭐야, 오 대표는 왜 100만 원밖에 안 보냈지?
시세에 따른 최고 대우는 맞지만, 경쟁 길드가 보여준 성의에 비해선 아쉬운 액수였다.
호객 행위는 안 한다고 하더니.
밀당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난 줄 서서 먹는 곳은 잘 가지 않는다.
식당 주인이 이상한 곳은 더더욱 그렇고.
지이잉!
[입금 3,000,000 (CH 그룹)]
뭐! 300?!
대기업은 역시 클래스가 달랐다.
300이면 용돈이 아니라 월급인데?
끝끝내 이루지 못한 취업의 한을 오늘에서야 풀게 됐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총 14개의 입금 문자가 경쟁하듯이 도착했다.
와…… 이게 다 얼마야?
3천만 원 정도의 용돈이 단 5분 만에 꽂혔다.
자립정책금만으론 살길이 막막했는데.
업체들 간의 영입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내 통장은 풍족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이잉!
누구지? 더 이상 올 데가 없는데…….
들뜬 마음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어? 총장님이네?
[영상이 공개됐으니 한번 확인해 보게. ㅎㅎ]
ㅎㅎ는 허허를 나타낸 건가?
글자만 봐도 음성지원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영상이 벌써 떴다고?
성의 있는 답장을 보낸 뒤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와…….
메인 화면이 내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국제헌터협회. 매직 아처의 발견은 인류의 새로운 진보. 적극 응원.]
[논란의 중심 매직 아처. S등급(2차 각성)으로 공식 인정.]
[유도 화살 신태주, 입시 영상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클래스.]
[등급 측정 영상 최초 공개. 불타는 측정기. 대중들의 반응도 뜨거워.]
[현직 헌터의 방심(?). A길드 소속 궁수. 고등학생 상대로 고전 끝에 패배.]
[꼬리 내린 각국의 헌터협회들. 공식 SNS를 통한 축하 메시지로 발 빠른 태세 전환.]
나를 둘러싼 모든 의혹들이 순식간에 해소됐다.
[실시간 검색어]
1. 신태주
2. 신태주 영상
3. 매직 아처
4. 신태주 해외 반응
5. N차 각성
6. 대한헌터협회
7. 신태주 SNS
8. A길드 궁수
9. 신태주 과거
10. 등급 측정기 가격
포털 사이트의 실검도 이미 장악한 상태였다.
뭐야, 근데 등급 측정기 가격은 왜 찾아보지?
안 그래도 물어달라고 할까 봐 후달리는데.
[(최초 공개) 신태주 영상 풀버전]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클릭해 반응을 살펴봤다.
[좋아요: 13522]
[싫어요: 68]
와…….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영상은 잘 나왔나?
플레이 버튼을 터치하자 자막까지 추가된 고화질의 영상이 재생됐다.
내 얼굴만 빼곤 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구나.
영상 속의 움직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었다.
내가 봐도 지적할 게 없네.
회귀 전에 얻은 정보가 매직 아처의 능력을 만나 완벽한 시너지를 이루었다.
댓글은 무조건 공감순으로 정렬.
= 대한민국은 신태주 보유국이다.
┗ 외쳐! 갓태주!
┗ 우린 지금 매직 아처의 시대에 살고 있다.
┗ 캬 국뽕에 취한다
첫 댓부터 아주 난리가 났네.
월드 클래스 헌터가 있다는 건 국력의 상징이자 국민의 자부심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6차 각성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날 기대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 나도 ‘두 유 노우 클럽’에 들어가는 건가?
= 중립 기어 박았던 놈들 다 어디 갔냐?
┗ 면허도 없는 ㅅㄲ들이 맨날 중립 기어 ㅇㅈㄹ┗ 영상 뜨니 귀신같이 사라짐.
┗ 댓삭튀 ㅋㅋㅋ
= 근데 A길드 궁수가 누구임?
┗ 네티즌 수사대 출동!
┗ 다른 기사엔 정 모 씨라고 나오던데?
┗ 나 같으면 쪽팔려서 은퇴함.
┗ 은퇴 각 날카롭게 섰다.
아 또 로그인 하게 만드네.
시벨롬의 정체는 나중에 들었는데, 아레나의 이동규 대표 말로는 잘리는 순간에도 날 원망했다고 한다.
자, 알아서 물고 뜯어라.
┗ 그거 아레나 길드 정진천임(S급 궁수, 2차 각성). 참고로 오늘 길드에서 쫓겨남. 인성도 별로임.
궁금증에 시달릴 팬들을 위해 댓글 하나를 남겨줬다.
뭐, 또 재미있는 기사 없나?
[매직 아처 신태주, 영상 공개 직후 부상……]
뭐?! 부상?!
아니, 왜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요즘 기자들은 팩트 체크도 안 하나?
오해가 생기기 전에 얼른 정정 기사를…… 어?
[매직 아처 신태주, 영상 공개 직후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
뭐야, 그 부상이 이 부상이었어?
정말이지 엄청난 어그로다.
내 도발 스킬보다 훨씬 더 강력한데?
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그런지 이런 낚시성 기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
*
*
시간 참 빠르네.
입학시험을 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학식 날이 됐다.
헌터학과의 경우 트레이닝 돔에서 따로 입학식을 가지는데, 오늘은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28기 수석 합격 신태주.
100명 안에 들기는커녕 476등을 했던 내겐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내 뒤에 무려 99명이나 있다니.
수석 합격자에겐 다양한 혜택이 있었다.
우선 입학금과 1년 치 등록금이 면제됐는데, 그밖에도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할 수 있는 기회와 리더스 배지 등이 주어졌다.
딩동!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그동안 새로운 거처도 얻었다.
시설을 나온 후에 얻은 첫 번째 보금자리인데, 예전처럼 하숙집이나 원룸 쪽은 아예 알아보지도 않았다.
오직 아파트.
시설에만 오래 살아서 아파트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아주 그 한을 풀었다.
물론 월세라는 게 좀 아쉽지만.
대신 매달 들어오는 용돈으로 열심히 투자를 하고 있다.
고작 5년 전으로 돌아온 거지만, 그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호재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빵빵!
집 앞에 도착한 콜택시가 신호를 보냈다.
으, 추워!
칼바람을 가르며 달려가 얼른 뒷좌석에 올라탔다.
덜컥!
“자, 어디로 모실까요?”
어? 이 목소리는 설마…….
공교롭게도 회귀와 동시에 만난 기사 아저씨였다.
“한국대학교로 가주세요.”
“어휴 한국대 학생이야? 공부 잘했나 보네.”
기사님이 룸미러를 힐끗거리며 물었다.
거의 두 달 전이라 그런지 기억을 잘 못하네.
“무슨 과야? 문과? 이과?”
“네?”
“에이, 농담이야 농담.”
“아, 네…….”
히터를 틀었는데도, 소름이 끼쳤다.
“헌터학과예요.”
“뭐? 헌터학과? 몇 학년?”
“오늘이 입학식이에요.”
“아 그래?”
운전 중이던 기사님이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학생, 축하해. 오늘은 내가 공짜로 태워줄게.”
“네? 아, 아니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마수걸이 손님도 아닌데 뭐. 그냥 기특해서 그런 거니까 부담 갖지 않아도 돼.”
“아, 네. 감사합니다.”
뜻밖의 호의에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인벤토리】
1.
[일반]
핫팩 (×4)
2.
[일반]
무선 이어폰 (×1)
3.
[일반]
지갑 (×1)
4.
[일반]
보조 배터리 (×1)
5.
[일반]
노트북 (×1)…….
인벤토리를 열어 목록을 살펴봤지만, 마땅한 물건이 없었다.
홍삼 스틱이라도 하나 드릴까?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Y를 선택하는 순간, 손에 홍삼 스틱이 들려있었다.
“기사님, 이거 하나 드세요.”
“어이구, 이게 뭐야. 홍삼 아니야? 학생은?”
홍삼을 받아든 기사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것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 어휴 기사 생활 25년 만에 이런 선물은 또 처음이네. 아무튼 잘 먹을게.”
기사님이 홍삼 스틱을 뜯어 입에 물었다.
“아, 맞다! 학생 오늘 입학한다고 그랬지? 그럼 그 활 쏘는 친구랑도 곧 만나겠네?”
“네? 활 쏘는 친구요?”
“아니, 난 뭐, 각성자도 아니고, 주변에 아는 헌터들도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우리 아들 녀석이 그 뭐더라 그…… 막 화살도 만들고 그러는 친구를 엄청 좋아하더라고.”
누가 들어도 내 얘기네.
“아아, 신태주요?”
“어! 그래! 그래! 신태주!”
나를 밝힐 타이밍을 자연스럽게 놓쳤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는데.
거의 다 왔으니까 그냥 조용히 내려야겠다.
“아니, 아직 각성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궁수가 되겠다고 아주 난리야 난리.”
“아, 네.”
“근데 학생, 한국대 헌터학과는 어떻게 합격한 거야?”
“네?”
“아니, 우리 아들이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데, 자기 목표가 한국대 헌터학과라고 그랬거든.”
“네.”
“근데 지금까지 각성을 못했으면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내가 볼 땐 최소 3년은 준비해야 될 것 같은데…….”룸미러로 보이는 기사님의 표정이 입시 설명회에 온 학부모처럼 상당히 진지했다.
“아니요. 전 고3 여름방학 때 했는데요 뭐.”
나는 좀 특별한 케이스지만, 택시까지 공짜로 얻어 탄 마당에 기사님의 희망을 꺾고 싶진 않았다.
“아 그래? 그럼 아직 가능성이 있는 거네?”
“등급만 잘 뜨면, 준비 기간이 짧아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학생이 그렇다니까 확실히 마음이 놓이네. 고마워.”
기사님의 목소리가 한층 더 밝아졌다.
“아니다. 내가 이럴 게 아니라 아들한테 연락해서 직접 들으라고 해야겠다.”
어? 기사님이 갑자기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어, 아들, 아빠야.”
[“어, 아빠, 무슨 일 있어? 아침부터 웬 영통?”]
“어, 딴 게 아니라, 너 앞으로 목표가 한국대 가는 거라고 그랬지? 한국대 헌터학과.”
[“어,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아빠가 지금 손님을 한 명 태웠는데, 한국대 헌터학과 학생이래.”
[“오 진짜?”]
“올해 들어간 형이라 지금 입학식장에 가고 있는데, 네 얘기를 했더니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고.”
[“뭐? 올해? 그럼 신태주랑 동기겠네?”]
아들의 텐션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어, 안 그래도 아빠가 물어봤어.”
[“대박! 나 완전 신태주 팬인데!”]
영상통화를 하던 기사님이 날 간절한 눈빛으로 돌아봤다.
“저기, 미안한데, 우리 아들이랑 통화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 내가 아빠로서 딱히 해준 게 없어서.”
“아, 저, 그게…….”
“그렇게 궁수 타령을 하는데 활도 하나 못 사주고…… 아, 부담스러우면 그냥 한 마디만 해줘도 돼.”
“정말 한마디만 해도 돼요?”
“어, 딱 한마디만.”
“네. 그럼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어? 진짜? 알았어. 잠깐만.”
신이 난 기사님이 아들과의 통화를 이어갔다.
“어, 아들, 내가 형 바꿔줄 테니까 인사 잘하고, 중간에 말 끊지 마. 알았어?”
기사님으로부터 휴대폰을 넘겨받은 난 약속대로 딱 한 마디만 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