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1화 (11/242)

011. 등급 측정

진짜 오랜만이네.

측정실로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땐 E급만 떠도 좋아했는데…….

헌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신기했던 순간이었다.

물론 E급을 위한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늦지 않게 왔구나.”

협회장님이 환한 미소로 반겨줬다.

“총장님이 태워주셔서 편하게 왔습니다.”

“그래. 컨디션은 괜찮고?”

“네. 측정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으음. 다행이구나.”

“진우는 별일 없죠?”

송진우.

초등학생인 진우는 협회장님의 손자이자 내 인생의 첫 터닝 포인트였다.

두 번째 기회는 뭐, 술김에 주문한 보조제였지만.

“그 녀석이야 늘 뛰어놀기 바쁘지.”

모든 할아버지들이 그렇듯 협회장님 역시 휴대폰을 꺼내어 손자의 영상을 보여줬다.

물론 난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없지만.

하……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와 축구를 엄청 잘하는데요?”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맞장구만 쳐줬다.

“허허, 역시 자넨 보는 눈이 있어.”

드래곤 앞에서도 당당했던 S급 전사지만, 손자의 재롱

앞에선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 이거, 또 시작이구먼.”

보다 못한 총장님이 협회장님의 휴대폰을 마법으로 빼앗았다.

“바쁜 사람들 모아 놓고 손자 자랑만 할 건가?”

“음! 음!”

민망해진 협회장님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럼 주인공도 왔으니 바로 시작을 하겠네. 자, 이쪽으로.”

협회장님이 날 측정기 앞으로 이끌었다.

“이미 해본 적이 있으니 따로 설명하진 않겠네.”

방식은 같지만, 협회에 있는 측정기는 간이 측정기와 달리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 “설마 저것도 터뜨리는 거 아니야? 풉!”

뒤에서 오 대표의 농담이 들렸다.

뭐, 농담일지 아닐지는 내 손에 달렸지만.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천천히 오른손을 갖다 댔다.

“잠깐.”

태동의 오승훈 대표가 태주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협회장이 오 대표의 돌발 행동을 의아하게 여겼다.

“막말로 전 세계가 볼 영상인데, 리허설도 없이 가면 되겠습니까?”

오 대표가 협회장을 보며 말했다.

“일단 기계에 문제가 없다는 건 확인시켜 줘야죠. 가뜩이나 의심병 걸린 놈들인데. 잠깐 실례.”

오 대표가 태주의 손바닥을 옆으로 떼어 냈다.

“저 잘 찍히고 있어요?”

오 대표가 촬영팀을 돌아보며 포즈를 취했다.

- “네? 아, 네.”

카메라맨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 “어휴 저 관종 진짜…….”

풍림의 임경수 대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 “이럴 땐 우리도 마음이 잘 맞네요.”

아레나의 이동규 대표가 임 대표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저부터 측정하겠습니다.”

오 대표가 활짝 편 손바닥을 기계에 갖다 댔다.

[프로필 확인 중……]

손바닥을 스캔하자 그동안의 측정 기록이 떠올랐다.

[이름: 오승훈]

[초기 각성: A급]

[2차 각성: S급]

[3차 각성: S급]

[4차 각성: S급]

[5차 각성: S급]

[6차 각성: 해당 없음]

S등급이 반복되고 있지만, 별도의 표기법이 없을 뿐, 성장을 멈춘 건 아니었다.

‘해당 없음’이라는 표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S급 내에서도 나름의 성장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E부터 S급까지는 커트라인이 있었다.

해당 등급을 인정받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건데, 이 부분은 간이 측정기로도 판단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상대적인 기준에 의한 등급 측정이 있었다.

이는 S급에게만 해당하는데, 직전에 기록한 자신의 마력 수치를 3배 이상 상승시켜야 성장이 인정됐다.

[측정을 시작합니다.]

우우우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측정이 시작됐다.

소요 시간은 고작 1분.

하지만 자판기 커피를 기다릴 때처럼 측정자의 마음은 한없이 지루했다.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에 결과가 나왔다.

[6차 각성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현재 등급은 S입니다.]

“정확하네.”

성적표를 받아든 오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 기계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손바닥을 뗀 오 대표가 옆으로 물러났다.

“자, 이제 시작하시죠. 갓태주님.”

자리를 내어준 오 대표가 정중하게 두 손으로 안내했다.

물론 그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사실 오 대표의 여유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리허설을 핑계로 등급을 보여준 것도 루키에 대한 일종의 기선 제압이었는데, 다른 길드의 대표들도 비슷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19살의 슈퍼 루키.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라는 점은 탐났지만, 아직은 자신들의 실력이 우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의도와 달리 태주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평가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줄고 기대감은 커졌다.

결과에 대한 확신.

태주는 이미 상태창에 나온 자신의 등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태주가 말없이 측정기 앞으로 다가갔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오 대표가 입으로 드럼소리를 내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태주가 손바닥을 기계 위에 갖다 댔다.

[프로필 확인 중……]

태주 역시 오 대표가 그랬듯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쳤다.

[이름: 신태주]

[초기 각성: E급]

[2차 각성: 해당 없음]

흠잡을 곳 없던 오 대표의 기록과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 “근데 E급에서 바로 S급이 된 적은 없지 않아?”

- “E급이 2차 각성을 하면 잘해야 C급이지. 보통은 D급이고.”

- “회장님이 B급 이하는 명함도 주지 말라고 그러셨는데…….”

- “하긴, 매직 아처가 꼭 S급이란 법도 없으니까.”

곳곳에서 의심의 목소리가 나왔다.

- “근데 S급 궁수도 이겼다며. 그럼 최소한 비슷한 등급인 거 아니야?”

- “긴장을 너무 안 해서 맨몸으로 갔나 보지. 풉!”

- “아니면 일부러 봐줬나? 거물급 신인이 등장한 것처럼 포장하려고? 솔직히 아레나 이 대표가 협회랑 짬짜미를 잘하잖아.”

의심 뒤에 찾아온 건 조롱

섞인 농담과 비웃음이었다.

물론 최지문 총장만큼은 다른 의미의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최 총장은 오히려 그들의 경솔함을 비웃고 있었다.

측정실에 모인 인사들 중 태주의 입시 영상을 본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태주와의 악수를 통해 이미 범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측정을 시작합니다.]

우우우웅!

측정이 시작되었음에도 잡담은 계속됐다.

줄어든 기대감으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새끼들 더럽게 쫑알대네.’

발끈한 태주가 조용히 어금니를 깨물었다.

바로 그때.

▶ 대상에 대한 적의가 감지되었습니다.

태주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 분노 수치가 급상승하였습니다.

▶ 전투를 위한 최적화가 진행됩니다.

▶ 새로운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스킬】

2. 폭주

도발에 이은 두 번째 스킬이 태주에게 부여됐다.

[폭주]

- 효과: 모든 능력치를 5배로 상승시킴.

- 소모 마나: 200

- 지속시간: 60분 (단, 본인의 선택에 따라 사전 종료 가능)- 재사용 대기시간: 10분

버프를 위한 액티브 스킬은 처음이었다.

‘다섯 배라…….’

새로운 스킬을 얻은 태주가 한 가지 재밌는 생각을 떠올렸다.

‘다 뒤졌어.’

▶ 스킬 『폭주』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태주의 시선이 Y로 향했다.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뭐지? 누구랑 싸워도 이길 것 같은 이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은…….’

세포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극대화되는 기분이었다.

- “음?”

- “뭐, 뭐지 이거?”

변화를 느낀 건 태주 본인만이 아니었다.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태주의 몸에서 발산되는 마력의 크기도 눈에 띄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 “말…… 말도 안 돼.”

-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마력이…….”

측정실에 있던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팟! 파밧!

멀쩡했던 측정기에서 갑자기 스파크가 일었다.

- “워.”

현장에 있던 이들이 합창을 하듯 반응했다.

‘라이트닝 마법도 쓰는 사람들이 호들갑은…….’

띠!

측정기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왔다.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화면도 이미 경고 메시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 “이러다 진짜 터지는 거 아니야?”

- “협회장님, 혹시 모르니까 실드라도 칠까요?”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 “근데 오 대표가 했을 땐 멀쩡했잖아.”

- “그러게. 5차 각성자도 견딘 기계가 왜…….”

- “뭐야, 그럼 저 고딩이 오 대표보다 강하다는 거야?”

- “에이 설마.”

태주를 두고 수군대던 사람들이 오 대표가 있는 곳을 힐끗 쳐다봤다.

“…….”

측정 내내 여유를 부리던 오 대표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웅! 웅! 웅! 웅! 웅! 웅! 웅! 웅!

1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던 측정기의 진동 소리가 점점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만 뗄까요?”

태주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협회장을 돌아봤다.

“으음. 아무래도 그러는 게…….”

펑!

협회장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발음이 들렸다.

- “실드!”

- “배리어!”

위험을 인지한 법사들이 일제히 방어 주문을 외쳤다.

퍼벙!

추가 폭발과 함께 불길이 일어났지만, 측정기를 감싼 방어막 덕분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물론 웬만한 폭발 정도는 맨몸으로 받아낼 괴물들이었지만.

- “워터 볼!”

- “헤비 레인!”

물 속성 마법이 캐스팅 되자 화재도 곧 진압됐다.

“신고식 한번 요란하게 하네.”

아레나의 이 대표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태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와…… 간이 측정기가 그냥 터진 게 아니네. 대체 마력이 얼마라는 거야?”

- “오랜만에 초대박 신인 한 명 나왔네.”

- “저 친군 우리가 찜했으니까 다들 눈독 들이지 마. 알았어?”

- “아니, 무슨 그런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누군 뭐, 여기 구경하러 왔어?”

- “자, 자, 일단 용돈부터 두둑이 준비하자고.”

태주를 의심했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모아 칭찬하기 시작했다.

- “그나저나 이제 어디 가서 측정을 하지?”

- “그러게. 우리나라에도 한 대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

- “뭐야, 그럼 새 제품을 들이기 전까진 아무도 측정을 못하는 거야?”

- “협회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협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정확한 폭발의 원인부터 분석해 봐야겠지만, 모두가 느꼈듯 태주군의 마력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네.”

- “…….”

협회장의 말에 모두들 침묵으로 수긍했다.

“따라서 등급이 측정되진 않았지만, S급에 해당하는 마력을 지녔다고 판단, 예외적으로 2차 각성에 성공한 S급임을 인정하는 바이네. 혹시 이의 있는 사람 있나?”

상당히 이례적인 결정이지만, 현 시점에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허허, 태주군, 축하하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최지문 총장이 제일 먼저 박수를 유도했다.

“뭣들 하나? 나라의 큰 기둥이 탄생했는데. 자, 다들 박수.”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태주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협회장과 총장은 물론 5대 길드의 수장에 대기업의 스카우터들까지.

감히 눈도 마주칠 수도 없던 업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자신을 축하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 “축하해 태주야. 앞으로도 우리 세준이랑 친하게 지내.”

▶ 스킬의 효력이 종료되었습니다.

분노가 사라지자 폭주로 증가했던 능력치도 평소대로 돌아왔다.

‘내가…… 나라의 큰 기둥이라고?’

처음으로 이름값을 하게 된 태주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허허, 태주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마디 해보게.”

이번에도 최 총장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머금은 태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 “뭐야, 그게 끝이야? 진짜 한마디만 하네?”

- “하하하하!”

- “우리 시간 많으니까 한마디만 더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모두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물론 누군가는 태주의 무한한 잠재력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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