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입학시험 (5)
“매직 아처가 된 것도 사실이고, 간이 측정기가 부서진 것도 사실입니다.”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하지만 지금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이게 전부입니다.”
- “야! 진짜야 진짜! 지금 바로 사진 보낼 테니까 일단 기사부터 올려!”
팩트를 확인한 기자들이 황급히 통화를 했다.
“조만간 정확한 측정을 위해 협회를 방문할 예정이고요.”
- “그게 언제죠?”
“글쎄요. 협회의 규정상 최소 일주일 전엔 예약을…….”
“오늘이네.”
기자들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총장님?
“허허,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총장님이 기자들 틈에서 나왔다.
- “어? 총장님.”
기자들도 예상치 못한 표정이었다.
- “야, 저 할아버지가 총장이래.”
- “뭐야, 전설적인 법사치곤 너무 평범하게 생겼는데?”
- “야, 원래 인자하게 생긴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야.”
아이들이 총장님을 보며 수군댔다.
“태주군?”
어느새 다가온 총장님이 악수를 청했다.
“내 소개는 방금 들었겠지?”
“네, 총장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벼운 목례와 함께 총장님의 손을 잡았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순간 곳곳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물론 기자들만 사진을 찍는 건 아니었다.
지원자들의 휴대폰이 전부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라도 하고 올걸.
조만간 SNS에서도 이슈가 될 것 같다.
人(인)수다를 다시 시작해야 되나?
“…….”
어?
악수를 하던 총장님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세 미소를 되찾았지만,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역시 예상대로군.”
총장님이 맞잡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악수를 핑계로 마력을 느껴봤네.”
총장님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냥 온 게 아니네.
하지만 마력을 느낀 건 총장님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총장님의 마력을 느꼈으니까.
물론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악수와 동시에 저절로 느껴졌는데, 신기한 건 그 힘에 압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지? 내가 더 강하다는 건가?
총장님은 무려 5차 각성자인데.
“허허, 내가 실례를 한 건가?”
사실 마력은 매순간 자연스럽게 발산된다.
각성 수준에 따라 그 크기는 다르지만, S급이든 E급이든 저마다의 마력을 뿜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마력의 한계는 발산만으로 느낄 수 없다.
등급 측정기나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상대방의 허락 없이 마력을 느끼는 건 실례가 맞다.
손님과 침입자는 엄연히 다른 거니까.
“아닙니다.”
뭐, 양해를 구하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허허, 그런가? 아 참, 협회장과는 이미 얘기가 끝났네. 자네와도 친분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기뻐하더군.”
총장님의 말에 아이들이 들썩였다.
- “뭐? 협회장하고 친하다고?”
- “와, 대박! 나도 쟤랑 친해지고 싶다.”
- “1차 시험부터 조진 새끼가 무슨. 너 어차피 여기 합격도 못 하잖아.”
- “하긴, 쟨 우리랑 노는 물이 다르지. 가기 전에 人(인)수다 아이디나 물어볼까?”
참 아이러니하다.
협회장님과의 친분이 호감을 얻다니.
회귀 전엔 오히려 비호감의 원인이었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자 논란이 사라졌다.
물론 추천서로 들어온 게 알려지겠지만, 이번만큼은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거다.
“협회까진 어떻게 갈 생각인가.”
“그냥 여기 올 때처럼 택시로.”
“그럼 내 차로 이동하게. 나도 어차피 참석할 생각이었으니까.”
총장님의 태도가 상당히 적극적이다.
이런 배려는 허창민에게만 하셨는데.
아무래도 국제 대회는 내가 나갈 것 같다.
“감사합니다. 총장님.”
“허허, 감사라니. 자네가 들어와서 내가 더 고맙지.”
총장님은 나로 인해 목표를 이룰 수 있고, 난 총장님의 편애 속에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일종의 공생 관계?
쉽게 말해 학교생활이 풀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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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시간표를 잘못 짜면 굶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자체 휴강을 통해 얼마든지 먹을 순 있지만.
참고로 난 4년 내내 혼밥을 했다.
고독한 미식가라고나 할까?
요즘엔 자발적 아싸들도 많아 눈치가 보이진 않았는데, 가끔 동기들이 몰려오면 고개가 숙여졌다.
이젠 뭐, 그럴 일도 없겠지만.
교직원 식당으로 들어서자 밥 냄새가 진동했다.
역시 한적하네.
교직원 식당의 경우 학생들의 이용 시간이 제한적이지만, 딱히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학식은 벌써 미어터지겠지?
다들 한바탕 뛰고 와서 땀 냄새도 진동할 거다.
인기 메뉴가 빨리 떨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무인주문기로 다가가 베스트 메뉴를 확인했다.
치즈돈가스와 참치회덮밥.
둘 다 끌리지만, 속이 더부룩하면 안 되니까 기름진 건 별로겠지?
기초 대사량이 높은 각성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살이 덜 찌는 체질이었지만, 그래도 폭식은 금물이었다.
일단 참치회덮밥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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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새콤한 초고추장이 부드러운 식감의 참치를 만나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바로 그때.
- “언니, 혹시 저 사람 아니에요?”
뭐지?
다른 테이블에 앉은 식객들이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 “어? 맞는 거 같은데? 입고 있는 옷도 똑같고.”
- “그죠! 기사에 나온 그 사람!”
뭐? 기사?
내 얘기가 벌써 올라왔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내 이름을 검색했다.
[신태주]
돋보기 표시를 누르기 무섭게 기사들이 떠올랐다.
[한국대 지원자 신태주(19). E급 궁수에서 매직 아처로 하루아침에 인생 역전.]
[미성년자 최초의 N차 각성자 신태주. 유일 클래스인 매직 아처로 세계를 놀라게 하다.]
기사마다 총장님과 찍은 사진이 박혀있었다.
댓글이나 좀 볼까?
[좋아요: 1489]
[싫어요: 36]
대중들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 매직 아처 나온 거 실화임?
┗ E급 궁수들 행복회로 오지게 돌리겠네.
┗ 오늘부터 희망고문 시작 ㅋㅋㅋ
= 인류 최초 7차 각성 가나요?
┗ 나이가 깡패라 가능할지도.
┗ 크으 국뽕이 차오른다!
물론 삐딱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 凸 7차는 개뿔 ㅋㅋㅋ 凸┗ 영상 뜨기 전까진 설레발 ㄴㄴ┗ 나도 일단 중립기어 박는다.
이 자식들이.
악플마다 비공을 누른 뒤 기사 목록으로 돌아갔다.
어?
좀 전에는 없던 자극적인 제목들이 눈에 띄었다.
[최초의 매직 아처 신태주? 각국의 헌터협회에서 해프닝 의혹 제기.]
뭐? 해프닝?
아니, 이것들이 속고만 살았나.
이젠 통제실이 아닌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다.
[한국대 총장 최지문의 초강수. 신태주의 능력은 진짜. 입학시험 원본 언론에 공개하겠다.]
[대한헌터협회. 신태주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에 유감 표명. 등급 측정이 끝나는 대로 공식 발표 예정.]
아주 난리도 아니네.
반박 기사를 내준 총장님과 협회장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 사람들을 허언증으로 만들 순 없지.
그래.
영상 공개가 결정된 이상 2차 시험도 찢어버린다.
*
*
*
남은 과제는 몬스터 웨이브.
버틴다는 개념이 어울리는 극악의 난이도로, 당시엔 95% 이상의 지원자들이 3단계를 못 넘겼다.
허창민이 세운 최고 기록도 4차 웨이브 초중반.
잘한 건 맞지만, 5차 웨이브에 히든 웨이브까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족할 만한 성적이 아니다.
물론 1차 웨이브에서 떨어진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 일일 과제가 도착하였습니다.
회덮밥 위로 메시지 창이 떴다.
▶ 과제 제출 기한 1일.
뭐지?
이 묘한 압박감은.
튜토리얼 퀘스트와 마찬가지로 선택권 따윈 없었다.
뭐, 과제라는 게 원래 강압적이긴 하지만.
▶ 과제의 완성도에 따라 학점이 부여됩니다.
어딜 가나 학점이네.
▶ F학점이 나오거나 제출 기한을 넘길 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뭐? 페널티?
능력치가 떨어진다는 건가?
일단 밥맛부터 떨어졌다.
이게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하루 만에 암흑기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래.
밤을 새서라도 마무리한다.
- “언니, 저 사람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봐요.”
- “그러게. 밥 먹다 말고 왜 인상을 쓰지? 기사 때문에 그런가?”
이런.
나도 모르게 비장한 표정을 지은 것 같다.
얼굴이 팔리니까 보는 눈도 많네.
슬슬 이미지 관리를 해야 되나?
▶ [일일 과제] 속사의 이해.
속사의 이해라…….
말 그대로 화살을 빨리 쏘는 미션 같다.
별로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이름도 무슨 교양 과목 같고.
그냥 시간 있을 때 후딱 해치울까?
점심시간은 아직 1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아니야.
2차 테스트가 남은 상황에서 힘을 뺄 순 없지.
과제의 난이도가 높을 경우 오후 시험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내일까지니까 일단은 시험에 집중하고…… 어?
[23:58:12 (정지)]
마감 시간을 알려주는 작은 타이머가 눈앞에 떠올랐다.
▶ 정지 버튼을 눌러 과제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거 은근히 신경 쓰이네.
대부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든 적든 과제에 투자한 시간은 똑같다는 것을.
오히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더 나태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 과제를 위해 소모된 시간과 스탯은 현실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어? 그럼 미룰 필요가 없겠는데?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붉은 점을 정지 버튼 위로 옮겼다.
▶ 일일 과제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예스.
▶ 과제 수행을 위해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뭐? 던전?
크윽.
플래시 세례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빛에 절로 눈이 감겼다.
*
*
*
눈을 떠보니 작은 통로 안이었다.
▶ 과제를 시작합니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활을 소환했다.
▶ [경고] 통로가 봉쇄됩니다.
쿵!
천장에서 내려온 돌문이 퇴로를 차단했다.
쿵!
이번엔 10미터 전방이 가로막혔다.
▶ [경고] 문에서 떨어지십시오.
쑤욱!
돌문에 난 수십 개의 구멍에서 철제 가시가 튀어나왔다.
▶ [경고]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맞은편에 커다란 방패가 나타났다.
뭐지?
꾸웨엑!
몬스터의 경박한 괴성이 방패 너머로 들려왔다.
대체 어디다 쏘라는 거야?
방패가 어찌나 큰지 통로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 속사를 이용해 몬스터를 처치하시오.
아니, 그러니까 뭐가 보여야 몬스터를 처치…… 어? 잠깐.
혹시 방패를 쏴서 밀어내는 건가?
그러고 보니 녀석의 뒤에도 가시 돋친 문이 있었다.
속사를 이용하라고 했으니까 몬스터의 접근 속도보다 빠르게 쏘면 되겠네.
▶ 제한 시간 20초.
[00:00:19]
꾸웨엑!
타이머가 작동하자 몬스터가 전진했다.
방패의 정중앙을 노리자.
활시위를 놓기 무섭게 활시위를 당겼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와…… 진짜 미쳤네.
내가 봐도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예전에 비하면 거의 3~4배 정도?
근력과 민첩성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발사 과정을 줄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팅! 팅! 팅! 팅!
화살에 맞은 방패가 뒤로 슬금슬금 밀려났다.
됐다!
녀석이 밀려나는 만큼 전진하면서 속사를 지속했다.
[00:00:15]
과제를 시작한 지 5초 만에 비명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