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입학시험 (4)
“추가 오류는?”
통제실로 돌아온 학과장이 프로그래머에게 물었다.
“없습니다. 몬스터의 움직임도 정상이고요.”
“그래.”
학과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50조는 어떻게 할까요? 이왕 재시험을 볼 거면, 중단을 시키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프로그래머가 50조의 진행 상황을 화면에 띄우며 말했다.
“아니. 재시험은 없으니까 따로 안내하지 마.”
“그래도…….”
“총장님의 뜻이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분위기 파악을 마친 프로그래머가 슬그머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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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다들 스톱!”
일찌감치 탈락한 방우혁이 다른 조원들의 진행을 막아섰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니까 한 명도 움직이지 마.”
방우혁은 다른 조원들을 볼모로 재시험을 요구할 작정이었다.
“저기요. 떨어졌으면 좀 비키시죠.”
보다 못한 조원 한 명이 방우혁을 밀어냈다.
“뭐? 비켜? 아 나 이것들이 진짜 주제 파악을 못 하네.”
방우혁이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
“야, 니들이 나 없어도 여길 깰 거 같아?”
속마음을 드러낸 방우혁이 조원들의 빈축을 샀다.
- “뭐래, 저 미친 새끼가.”
- “그러게. 지 혼자 뒤져놓고 왜 우리한테 지랄이지?”
- “야, 시간 없으니까 길막하지 말고 빨리 꺼져.”
조원들의 원성에도 방우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 “아까 그 매직 아처랑 같이 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 “아, 내 말이. 시작부터 웬 또라이 새끼랑 엮여 가지고.”
심지어 태주에 대한 아쉬움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 “어? 저기 누가 뛰어오는데?”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조원 한 명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 “뭐? 뒤?”
방우혁과 대치 중이던 조원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 “어! 저 사람은…….”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5분 뒤에 출발한 태주가 자신들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 “말도 안 돼.”
방우혁이 지체한 시간을 고려해도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 “저분 우리랑 같은 난이도 아니었어요?”
- “뭐야, 15분 늦게 출발한 거 맞아?”
- “몬스터들을 다 쌩까고 왔나?”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사이, 태주가 지나갔다.
쌩!
어찌나 빠른지 바람까지 느껴졌다.
- “뭐지? 우리한테 눈길 한번 안 주네.”
서운해도 어쩔 수 없었다.
테스트 중이기도 했지만, 단독으로 응시한 이상 조원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와…… 달리기도 겁나 빨라.”
조원들이 태주의 뒷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 “자! 우리도 빨리 출발합시다!”
태주에게 자극받은 조원들이 방우혁을 옆으로 밀쳐냈다.
“야! 어디가! 야!”
방우혁이 멀어지는 조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방우혁 지원자.”]
던전 안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학과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글을 수거한 뒤 비상구로 나가세요.”]
“아니요! 전 아직…….”
[“마지막 기회입니다. 셋 셀 동안 안 움직이면, 2차 평가와 상관없이 바로 탈락입니다. 하나.”]
학과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카운트를 시작했다.
[“둘. 셋. 방우혁 지원자는 한국대학교 헌터학과에 최종 탈락하셨습니다.”]
“네?! 최종 탈락이요?!”
[“결과에 대해선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으며, 고글에 대한 수리비는 별도로 청구하겠습니다.”]
“저…… 저기, 잠시만요!”
당황한 방우혁이 CCTV로 달려가 두 팔을 흔들어댔다.
[“…….”]
물론 학과장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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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교수님! 신태주 학생이 벌써 보스가 있는 곳에 도달했습니다!”
프로그래머가 학과장을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나도 보고 있네.”
태주가 학과장의 편견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깨버렸다.
“학과장님, 저 정도면 추천서가 없어도 합격 아닙니까?”
이 교수가 태주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이건 뭐, 재시험이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태주의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가 습격이란 컨셉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어! 설마 던전의 유형이 유출된 건 아니겠죠?”
이 교수가 태주와 협회장의 관계를 의심했다.
“유출? 추천서 한 장이면 끝날 일을 뭐 하러.”
학과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령 유출이 됐다고 해도 쉽게 나올 수 있는 점수가 아니야.”
학과장의 시선이 실시간 순위로 옮겨졌다.
【1위: 신태주】
“어! 깼습니다!”
흥분한 프로그래머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소요 시간은 12분 27초! 입시 사상 최단 기록입니다!”
태주를 비추고 있는 화면에 신기록 표시가 떠올랐다.
[최단 시간 클리어★1000점]
[올 킬 달성★1000점]
[노 미스 달성★1000점]
[노 대미지 달성★1000점]
[최고 점수 달성★1000점]
모의 던전에서 받을 수 있는 추가 점수를 하나도 빠짐없이 획득했다.
- “오!”
통제실에 있던 수많은 관계자들이 태주의 기록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 “야, 저게 사람이냐?”
- “통제실 생활 10년 만에 퍼펙트 찍은 놈은 처음 봤다.”
10명이 나눌 점수를 독식하다 보니 범접할 수 없는 총점이 나왔다.
【1위: 신태주 ▶ 10000점】
1차 평가 점수 5000점에 추가 점수를 합친 최고점이었다.
- “2차 시험도 안 봤는데, 커트라인을 넘네.”
- “노 미스랑 노 대미지는 가끔 나오는데, 다른 건 진짜 와…….”
통제실 안이 태주의 이야기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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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났다.
[테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고글에 마지막 메시지가 떴다.
능력치가 좋아져서 그런지 아무리 뛰어도 숨이 안 차네.
“이…… 이쪽으로 나오세요.”
출구를 지키던 조교도 꽤 놀란 눈치다.
그나저나 몇 점이나 나왔을까?
설레발은 금물이지만, 1등인 건 확실했다.
그 당시 1등이었던 6조의 클리어 타임이 25분 정도였으니까.
통제실에서도 지금 난리가 났겠지?
학과장님의 표정을 봤어야 되는데.
“미리 축하드려요.”
고글을 수거하는 조교가 빙그레 웃었다.
“감사합니다.”
인정을 받아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물론 헌터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저쪽입니다.”
100명이 넘게 타는 대형 리프트에 홀로 올라섰다.
철컹!
머리 위로 트레이닝 돔 바닥이 열렸다.
위이잉!
- “야! 야! 왔다! 왔다!”
- “대박! 먼저 출발한 조보다 일찍 올라왔어!”
내 얼굴이 드러나자 아이들이 웅성댔다.
- “이번 기수는 완전 꼬였네.”
- “왜?”
- “야, 저런 애가 동기면 아무리 잘해도 2등밖에 못하잖아. 안 그래?”
- “하긴, 저 정도 실력이면, 경쟁할 엄두가 안 나지.”
- “아마 장학금에 리더스 배지까지 싹쓸이할걸?”
리더스 배지.
게임으로 치면 업적을 달성한 자가 받는 상이다.
종류만 해도 200개가 넘는데, 20개만 따도 5대 길드에 갈 수 있다.
30개 이상 따면, 뭐, 완전 레전드급이고.
우리 기수에선 허창민이란 녀석이 최고였다.
무려 31개를 받은 S급 전사인데, 기존의 수석 합격자다.
물론 이번엔 내가 받을 차례지만.
리더스 배지는 협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전국의 모든 헌터학과에서 같은 기준으로 주어지는데, 아쉽게도 난 받아본 적이 없다.
과잠에 달고 다니면 포스가 어마어마한데.
다른 학과도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헌터학과의 경우 대학 간의 교류가 말도 못하게 활발하다.
툭하면 대항전, 툭하면 전국 대회.
경쟁의 대상이 동기로 국한되지 않는데, 리더스 배지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신분증으로 작용했다.
나의 실력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징표로.
쉽게 말해 어딜 가도 먹힌다는 뜻이다.
뭐, 지금껏 대표로 나가본 적은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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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과제에 응시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조가 돌아오자 방송이 나왔다.
[“개인 과제는 2시간 뒤에 시작되니 학생 식당이나 도시락을 이용해 점심을 해결하기 바랍니다.”]
- “아 올해 완전 망했어.”
- “야,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
시험에 지친 아이들이 하나둘 트레이닝 돔을 나섰다.
나도 그만 나가볼까?
거의 모든 지원자들이 가까운 학식으로 몰릴 거다.
시설도 후지고, 메뉴도 별로지만, 처음 온 입장에선 어디가 좋은지 알 수 없으니까.
참고로 난 교직원 식당을 이용할 생각이다.
작년에 지은 곳인데, 시설도 훌륭하고, 맛도…… 어?
트레이닝 돔을 나서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보였다.
뭐지? 당시엔 이러지 않았는데.
- “어! 쟤예요, 쟤!”
순간, 지원자로 보이는 녀석이 날 검지로 가리켰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스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나도 모르게 팔로 얼굴을 가렸다.
창피하다기보단 눈이 부셔서다.
- “손 좀 치워주세요!”
- “오른쪽도 봐 주세요!”
- “활 쏘는 포즈도 취해주세요!”
기자들의 요구가 정신없이 쏟아졌다.
- “신태주 씨! 세계 첫 매직 아처라는 게 사실입니까?”
- “간이 측정기를 2대나 부쉈다는데, 혹시 S급을 뛰어넘은 겁니까?”
- “신태주 씨!”
- “신태주 씨!”
뭐지?
사람들의 관심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카메라 체질인가?
“협의되지 않은 촬영은 하실 수 없습니다!”
황급히 달려온 조교가 포토라인을 막아섰다.
“시험에 방해가 되니 얼른…….”
- “허락은 이미 받았는데요?”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기자 한 명이 셔터를 눌러대며 말했다.
“네? 누구한테요?”
- “총장님이요.”
뭐? 총장님?
소문의 확산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나저나 총장님까지 나설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닌데.
내가 기억하는 총장님은 학생을 위한 분이 아니었다.
오직 한국대.
그중에서도 유독 헌터학과의 명성에만 집착했다.
본인이 헌터 출신이라 그런가?
아싸인 난 볼 일이 없었지만, 허창민같은 능력자는 총장님과의 독대가 잦은 편이었다.
뭐, 허창민이 좋아서 부른 건 아니었지만.
국제헌터협회에선 매년 다양한 순위를 발표한다.
헌터학과의 순위도 예외는 아닌데, 총장님은 한국대를 30위권 안으로 올리는 게 목표였다.
20위권 안에 들면 더 좋겠지만, 거긴 영미권 대학들의 전쟁터라…….
아무튼 순위를 높이기 위해선 국제 대회를 나가야 되는데, 당시엔 허창민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끝끝내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 “거, 안 보이니까 좀 비켜요.”
“네? 아, 네, 죄송합니다.”
무안해진 조교가 슬그머니 옆으로 빠졌다.
- “뭐야, 벌써 취재까지 온 거야?”
식당으로 가던 학생들이 기자들 주변으로 모였다.
- “심지어 총장이 부른 거래.”
- “뭐? 총장? 그럼 입학도 하기 전에 총장 라인을 탄 거야?”
다들 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눈빛들이 묘하다.
부러움 반? 질투 반?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비슷한 처지였는데.
하지만 내가 바라는 감정은 부러움이나 질투가 아니다.
두려움.
부러움과 질투는 해볼 만한 상대에게 느끼는 것이다.
두려움은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이 주는 감정이고.
그래서 난 모두에게 두려움이고 싶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압도적인 존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