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입학시험 (3)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교가 학과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신태주 씨가 매직 아처인 것 같습니다.”
조교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학과장님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조교가 다가왔다.
“저…… 신태주 씨?”
“네.”
“죄송하지만, 조원 없이 혼자 응시하라는 교수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특례 입학이니 실력이나 보겠다는 뜻이네.
학과장님은 지금 통제실로 향할 것이다.
모의 던전엔 CCTV를 비롯한 각종 평가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통제실에서 그 모든 것을 컨트롤했기 때문이다.
- “10명이서 하는 과제를 어떻게 혼자서 하지?”
- “그러게. 막말로 활만 소환했지 매직 아처라는 증거도 없는데.”
학과장님의 지시를 납득하지 못한 건 다른 지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뭘 해. 그냥 초반에 광탈하는 거지.”
방우혁 새끼가 또 입을 놀렸다.
물론 광탈의 대상이 자신인 건 꿈에도 모르겠지만.
“대신 교수님께서 어드밴티지를 주셨습니다.”
“어드밴티지요?”
“네. 던전의 난이도를 낮추고, 힐이 가능한 조교를 붙여드릴 겁니다.”
이건 어드밴티지가 아니라 광탈 방지용이다.
내가 너무 일찍 떨어지면 실력을 확인할 시간이 없으니까.
“싫은데요.”
“네? 싫다고요?
조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되물었다.
“그럼 혼자서 응시하진 않겠다는 겁니까?”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인 조교가 다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니요. 어드밴티지를 받는 게 싫다는 겁니다.”
“네?!”
“교수님의 뜻대로 혼자 응시하겠습니다. 단체 과제의 난이도로 힐러 없이.”
내 대답이 트레이닝 돔 지하를 뜨겁게 달궜다.
- “오! 개 멋있어!”
- “대박! 따라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다.”
[“통제실에서 알려드립니다. 모든 지원자들은 진지한 자세로 시험에 임해주세요.”]
스피커에서 학과장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통제실로 갔네.
“자! 자! 다들 집중하세요!”
인솔 조교들이 지원자들을 통제하며 분위기를 잠재웠다.
물론 지원자들의 눈동자와 CCTV의 렌즈는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신태주 씨를 제외한 모든 인원은 서둘러 출발하세요.”]
“어? 우리는 한 명이 빠졌는데 그냥 들어갑니까?”
조원들 중 한 명이 조교에게 다가가 불리함을 어필했다.
“9명이 아니라 3명으로도 클리어 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4학년을 기준으로 둘러댄 얘기지만.
“야, 내가 10사람 몫을 해내는데, 뭐가 걱정이야.”
방우혁이 기세등등한 얼굴로 손목을 풀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 스킬 『도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방우혁의 뒤통수를 3초간 바라봤다.
▶ 스킬 『도발』이 발동되었습니다.
관종에겐 어그로가 딱이지.
동기 한 명이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
*
*
[“신태주 씨, 출발하세요.”]
정확히 15분 후에 방송이 나왔다.
“…….”
CCTV를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낸 뒤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와…… 진짜 추억 돋네.
이번 던전은 한 단어로 요약된다.
습격.
경험상 지원자의 절반 이상은 반도 못 가서 떨어질 거다.
입학시험 땐 나도 광탈을 했으니까.
물론 지금은 몬스터의 종류부터 습격 지점까지 훤히 알고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처럼 하위권으로 합격한 신입생의 경우 입학시험에 사용된 던전으로 과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증강현실이 구현됩니다.]
고글의 전원이 켜지며 문구가 떠올랐다.
[피해가 누적되면 테스트가 중단됩니다.]
고글엔 몬스터에게 입은 피해량이 표시된다.
대미지를 입을 때마다 수치가 올라가는데, 100%가 되면 전원이 꺼진다.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직업적 역할에 충실하면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직업적 역할을 추가한 건 딜러가 아닌 직업을 배려한 거다.
물론 딜러든 힐러든 점수를 모르는 건 똑같지만.
[획득한 포인트는 통제실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설명을 마치는 순간 타이머가 떠올랐다.
[00:29;59]
탁! 탁! 탁! 탁!
시작부터 전력 질주를 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시간이 지체되는 구간이지만, 몬스터가 등장하는 곳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생의 클래스를 보여주지.
던전의 지형은 동굴이었는데, 곳곳에 난 구멍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바로 지금처럼.
꾸웨엑!
첫 번째 습격 포인트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생겨나서 깜짝 놀랐겠지?
통제실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거다.
쉬이익! 딱!
몬스터를 관통한 화살이 벽에 꽂혔다.
증강현실로 구현된 몬스터라 명중을 해도 화살이 박힐 순 없었기 때문이다.
쉬이익! 딱!
처치한 몬스터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물론 등급에 따라 생명력이 높은 놈들도 있는데, 그럴 경우 공격의 기여도에 따라 포인트가 배분된다.
완전 애들 장난이네.
몬스터 6마리를 순식간에 제거했다.
이러다 따라잡겠는데?
내 앞엔 15분 먼저 출발한 50조가 있었다.
*
*
*
통제실 안.
“학과장님, 보면 볼수록 놀랍지 않습니까?”
가장 큰 모니터엔 태주의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
“저 친구가 협회장님 추천으로 들어온 학생 맞죠?”
S급 궁수이자 3차 각성자인 이종도 교수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첫 매직 아처가 우리 학교에서 나오다니. 시험이 끝나는 대로 언론에 알려야겠죠?”
교수로서의 경력은 길지 않지만, 인재 양성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
태주의 신들린 플레이를 지켜보던 한중연 학과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낙하산이라고 해서 영 못마땅했는데…… 입학을 거부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한국대 출신인 이종도 교수는 유능한 인재를 다른 학교에 뺏기고 싶지 않았다.
“출발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벌써 1/3 지점을 돌파했습니다.”
“…….”
학과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했다.
“솔플에 노 대미지에 최단 시간 기록까지. 이거 잘하면 먼저 출발한 조까지 따라잡겠는데요?”
이종도 교수의 혼잣말은 계속됐다.
눈치 없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모니터에 집중하다 보니 학과장의 얼굴을 볼 여유가 없었다.
“허창민이 워낙 유명해서 그 친구만 기대했는데…… 아니, 시험 당일에 2차 각성을 할 줄 누가…… 어? 학과장님, 어디 편찮으세요?”
한중연의 안색을 확인한 이종도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게 마음에 들면 이 교수가 한번 맡아보게.”
학과장이 눈도 안 마주치며 말했다.
“어! 정말이십니까?!”
“단, 지나친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될 걸세.”
“네! 명심하겠습니다!”
기대감에 부푼 이종도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저, 교수님,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좀 이상한데요?”
증강현실을 담당하는 프로그래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니. 뭐가.”
팔짱을 낀 학과장이 관심 없는 말투로 물었다.
“다른 조는 문제가 없는데, 유독 50조의 몬스터들만 특정 지원자를 다구리, 아니, 집중 공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학과장이 프로그래머 곁으로 다가갔다.
“화면 크게 띄워봐.”
“네.”
통제실에선 증강현실과 지원자들의 모습을 겹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
*
모의 던전 안.
[몬스터로부터 심각한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누적된 피해가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사망으로 간주하여 테스트가 종료됩니다.]
“이런 썅!”
방우혁이 고글을 벗어 바닥에 집어던졌다.
탁!
“아니! 왜 나만 공격하냐고!”
도발의 효과는 광범위했다.
몬스터와 악령은 물론 적으로 설정된 허상들까지.
지목된 대상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으면 실체성을 불문했다.
*
*
*
통제실 안.
“어! 교수님!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인을 파악하고 있던 프로그래머가 학과장을 돌아보며 외쳤다.
“확실해?”
“네. 워낙 많은 인원이 참가해서 잠깐 오류가 난 것 같습니다.”
스킬의 효과가 종료된 것뿐이지만, 진실을 알 리 없었다.
“그럼 불이익을 본 지원자는 몇 명인가?”
“50조 전원이 오류의 영향을 받았지만, 직접적인 피해자는 한 명입니다.”
“으음.”
“재시험으로 가는 게 맞을까요?”
학과장의 눈치를 보던 프로그래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로 그때.
지이잉!
학과장의 휴대폰에 껄끄러운 이름이 떴다.
[최지문 총장님]
총장실에선 통제실을 비롯한 교내의 모든 CCTV를 볼 수 있었다.
“예, 총장님.”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학과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총장이 전화를 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
호통을 치거나 명령을 하거나.
보통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시작은 늘 신사적이었다.
[“허허, 한 교수, 늘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
[“아니긴, 자네처럼 학교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감사합니다.”
[“감사? 허허, 감사는 내가 해야지.”]
“예? 그게 무슨.”
[“재시험을 안 보기로 했다며?”]
“…….”
휴대폰을 든 학과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재시험 여부를 논의하기도 전에 총장의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능구렁이 같은 총장이 학과장의 대답을 강요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일단 회의를 거쳐…….”
[“회의? 허허, 재시험을 위한 회의는 필요 없네.”]
“총장님.”
[“한 교수, 한국대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셈인가?”]
“그렇지만.”
[“해당 학생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시험의 신뢰도가 떨어지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억울한 지원자가…….”
[“아니.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억울한 지원자가 아니라 한국대의 명예네.”]
총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학과장의 말문을 막았다.
[“신뢰를 쌓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지.”]
최지문 총장은 대의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물론 희생을 경시하는 그의 냉정한 성향에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래도 좋다면 오류를 인정하게. 어차피 시험에 대한 책임은 자네가 지는 거니까.]
총장의 압박이 협박으로 바뀌었다.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타협할 수 없음을 직감한 학과장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허허, 역시 한 교수는 대화가 통해. 아, 그리고 기철이, 아니, 협회장이 추천한 그 용감한 학생 말이야.”]
1세대 헌터인 최 총장은 5차 각성을 이룬 S급 법사이자 송 회장의 벗이었다.
“신태주 학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 그래, 신태주. 오늘 보니 그 친구가 아주 물건이더군.”]
“아직은 정확한 측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허허, 그걸 꼭 받아봐야 아나?”]
“예?”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네. 한국대의 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지.]
최 총장은 태주의 능력을 대외적으로 이용하고 싶었다.
[“그러니 한 교수가 각별하게 신경을 쓰게. 떨어진 놈들 하소연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예, 총장님.”
통화를 마친 학과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총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신념을 꺾는 건 늘 괴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