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입학시험 (2)
50조에 속한 10명의 지원자들이 동그랗게 모였다.
“…….”
하나같이 어색한 표정으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
딱 한 명, 방우혁만 빼고.
“시간 없으니까 일단 직업부터 까고 시작하자. 난 A급 법사.”
재수생도 있는데 반말을.
당시엔 방우혁의 등급이 조에서 가장 높았다.
제일 낮은 사람은 뭐.
[“대리 시험 방지를 위해 조별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신분 확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성자의 정보는 협회에 등록되기 때문에 간단한 조회만 거쳐도 동일인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신분 확인 좀 하겠습니다.”
대학원 과정에 있는 선배 한 명이 우리 조로 다가왔다.
이 형도 참 오랜만이네.
친분은 없었지만, 시험 감독관으로 자주 들어와 친근하게 느껴졌다.
“저부터 해주세요.”
이번에도 방우혁이 나댔다.
“이름이?”
“방우혁이요. A급 법사.”
그놈의 A급 타령.
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빨리 일그러뜨리고 싶다.
“방우혁…… 네, 맞네요. 자, 그 다음 분?”
얼굴을 대조한 조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고진규라고 합니다. 직업은 B급 힐러고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등급 순으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
*
*
“그럼 이제…… 신태주 씨 한 분 남았네요? E급 궁수 맞으시죠?”
명단을 확인하던 조교가 내 이름을 불렀다.
“E급? E급인데 한국대를 지원해?”
방우혁이 날 아래위로 훑어봤다.
“이렇게 허수들이 많으니 경쟁률만 높아지지.”
이런 미친. 당사자를 앞에 두고 못하는 소리가 없다.
“근데 왜 하필 우리 조야. 짜증나게.”
“저기요. 지원자들끼리 예의를 좀 지키시죠.”
보다 못한 조교가 방우혁을 제지했다.
“자, 그럼 신분 확인도 끝났으니까 계속 조별 회의를…….”
“아니요. 저 아직 대답 안 했는데요.”
돌아서려는 조교를 불러 세웠다.
“네? 조금 전에…….”
“대답은 제가 아니라 이 새끼가 했잖아요.”
이번엔 내가 방우혁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뭐, 뭐? 이 새끼? E급밖에 안 되는 새끼가 진짜 뒤질라고.”
흥분한 방우혁이 새우 눈을 부릅떴다.
“혹시 수정할 정보라도 있으세요?”
조교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등급이 잘못됐습니다.”
“네? 등급이요? E급이 아니세요?”
“2차 각성을 했습니다. 바로 오늘.”
“네?! 2차 각성이요?!”
조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방우혁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이, 거기 무슨 일이야?”]
웅성거리는 소리에 학과장님이 반응했다.
“어…… 여기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네.”
당황한 조교가 학과장님에게 달려갔다.
- “야, N차 각성은 나중에 되는 거 아니야?”
- “그러게. 초기 각성이면 몰라도 2차 각성 이상은 레이드 경험이 많아야 되는데.”
근처에 있던 녀석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하긴, N차 각성을 한 대학생은 나밖에 없으니까.
아마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대가로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근데 그게 뭐.
난 내 힘을 숨기고 싶지 않다.
폐급이라 손가락질 받는 삶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신태주 학생, 잠깐 앞으로.]
보고를 받은 학과장님이 다가오라 손짓했다.
“네.”
걸음을 내딛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회의를 위해 모인 아이들이 알아서 길을 터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공의 맛인가.
지원자들의 시선을 즐기며 당당하게 나아갔다.
- “야, 그냥 허언증 아니야? 막말로 레이드도 못 뛰는 고딩한테 N차 각성이 생길 리 없잖아.”
- “하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니까.”
물론 내 말을 의심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자네군.”
학과장님이 낙하산으로 들어온 날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그래, 2차 각성을 했다고?”
진정성을 의심한 학과장님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왜 협회에 보고하지 않았지?”
“오늘 아침에 겪은 일이라 보고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협회의 업무 시간보다 시험 시간이 더 빠르거든요.”
“그 말인즉슨 등급 측정을 못해봤다는 건데, 어떻게 2차 각성이라 확신하지?”
“달라진 걸 느꼈습니다. 뭐, 학과장님께서도 이미 느끼셨겠지만.”
등급이 높을수록 발산하는 에너지가 달랐다.
E급이 촛불이면, S급은 태양이니까.
“뭐?”
“그래도 못 믿으시겠다면,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착각인지 아닌지는 실력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잠깐.”
학과장님이 날 멈춰 세웠다.
“조교, 가서 간이 측정기 가져와,”
“네? 아, 네!”
옆에 있던 조교가 교보재실로 황급히 뛰어갔다.
[“별일 아니니까 다들 조별 회의에 집중하세요.”]
술렁이는 아이들을 통제한 학과장님이 마이크를 끄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딱 두 가지야. 하나는 공정하지 못한 것, 또 하나는 실력도 없이 운만 좋은 것.”
나를 저격한 게 분명하지만, 애써 변명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이유야 어찌 됐건 실력으로 공정하게 통과하면 그만이니까.
“왜 이런 행운이 계속되는지 모르겠지만, 운으로만 버틸 수 없는 곳이 헌터학과란 걸 곧 알게 될 거다.”
설교를 마친 학과장님이 다시 마이크를 켰다.
[“개인 정보가 잘못된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
지원자들 모두 제자리에 선채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없으면 정확히 5분 후에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교수님, 여기 있습니다.”
심부름을 갔던 조교가 간이 측정기를 내밀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놔.”
“네.”
간이 측정기의 성능도 나쁘진 않았지만, 협회에 있는 측정기만이 대외적인 등급으로 인정됐다.
“교수님, 준비됐습니다.”
“시작해.”
“네.”
세팅을 마친 조교가 테이블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편한 손을 올려두면 측정 결과가 나옵니다.”
어째 나보다 조교가 더 긴장한 것 같다.
“네.”
자그마한 기계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올려놨다.
“…….”
측정이 시작되자 지원자들의 토론 소리가 잦아들었다.
뚜두두두두두두두.
심지어 간이 측정기에서 나는 소리가 500명의 숨소리보다 컸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데.
결과를 궁금해 하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삐! 삐! 삐! 삐! 삐! 삐!
“어? 이게 왜 이러지?”
경고음에 놀란 조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측정기를 살펴보던 조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 껐다 다시 켤까요?”
“으음. 일단 끄고, 다른 걸로 가져와. 뜯지 않은 새 제품으로.”
“네!”
조교가 또 한 번 교보재실로 뛰어갔다.
학과장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다.
하긴, 기계의 문제가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간이’이긴 하지만, S급인지 아닌지는 측정할 수 있었다.
물론 각성 수준이 너무 높으면 지금처럼 에러가 나지만.
아무래도 협회에 있는 거대한 측정기로 판단해야 될 것 같다.
“교수님, 가져왔습니다.”
언박싱이야 뭐야.
조교가 박스도 뜯지 않은 간이 측정기를 두 개나 안고 왔다.
“시작해.”
“네.”
간이 측정기 2개가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였다.
“아까처럼 해주시면 됩니다.”
조교가 첫 번째 간이 측정기의 스위치를 켰다.
“아니요. 2개 다 켜주세요.”
“네?”
“어차피 독립적으로 측정되니까 양손으로 동시에 하겠습니다.”
“두 개를 동시에요?”
당황한 조교가 학과장님을 돌아봤다.
“교수님, 어떡하죠?”
“오류가 날수도 있으니까 그냥 하나씩 해.”
학과장님이 내 제안을 거부했다.
꽤 불안하시구나.
두 번째 측정에서도 경고음이 울리면 세 번째 측정을 중단시킬 거다.
내가 주목받는 그림은 원하지 않으니까.
- “야, 쟤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야? 완전 패기 쩌는데?”
- “그러게. 이번에도 측정 불가면, 어나더 레벨이란 소린데…….”
아이들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학과장님의 표정은 굳어졌다.
삐! 삐! 삐! 삐! 삐! 삐! 푸슈.
이번엔 과열된 측정기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꺼졌다.
- “오!”
지원자들의 감탄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교수님…….”
뜻밖의 결과에 놀란 조교가 학과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여기까지 하지.”
예상대로 측정이 중단됐다.
“곧 시험이 시작되니 측정은 협회에서 받도록 하게.”
“네.”
간이 측정기 두 대를 박살 낸 뒤 쿨하게 돌아섰다.
- “야, 저 정도 포스면 거의 수석 아니냐?”
- “내 말이. 교수 앞에서도 겁나 당당해.”
등급은 정정되지 않았지만, 나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단체 과제를 진행하겠습니다. 1조부터 10조까지 앞으로 나오세요.”]
트레이닝 돔 지하엔 여러 개의 던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던전처럼 만든 인위적인 공간인데, 학기 중엔 수업에 따라 구조를 바꿨다.
[“제한 시간은 30분. 15분이 경과하면, 다음 조가 출발합니다.”]
위이잉!
트레이닝 돔의 바닥이 열리며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 “오, 대박!”
애들은 애들이네.
지원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촌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
*
*
[“41조부터 마지막 50조까지 준비하세요.”]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실력 발휘 좀 해볼까?”
방우혁이 자신만만하게 앞장섰다.
아주 신이 났네.
50조가 배출한 최종 합격자는 단 2명, 나와 방우혁뿐이다.
물론 실력으로 통과한 건 저 새끼밖에 없지만.
철컹! 위이잉!
초대형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갔다.
- “오!”
지원자들의 표정이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밝다.
뭐, 올라올 땐 다들 죽상이겠지만.
사실 트레이닝 돔의 면적은 지하의 1/10도 안 된다.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
재학생들은 이곳을 개미굴에 비유했는데, 통제구역이 많아 정확한 크기는 가늠할 수 없었다.
*
*
*
“자, 1분 뒤에 진입하겠습니다.”
조교들이 던전 입구 10개를 개방했다.
척! 척!
웃음기가 사라진 조원들이 무기를 꺼내들었다.
“던전 안에 들어가면 고글이 작동됩니다.”
고글은 증강현실을 구현해주는 장비다.
주로 몬스터를 생성하거나 지형적인 디테일을 보완하는데, 운영비도 적게 들고, 부상의 위험도 없었다.
“어? 신태주 씨, 설마 빈손으로 오셨어요? 아까 분명 궁수로 확인한 거 같은데…….”
준비 과정을 살피던 조교가 화들짝 놀랐다.
“이거 봐 이거. 본인 장비도 못 챙기면서 뭐? 2차 각성? 야, 분위기 망치지 말고, 가서 기권이나 해.”
이때다 싶었던 방우혁이 맹비난을 퍼부었다.
하……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건 여전하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활을 꺼냈다.
“어! 뭐…… 뭐야 이거!”
당황한 방우혁이 뒷걸음질을 쳤다.
“어떻게 활을…….”
함께 있던 조교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측정은 보류됐지만, 한눈에 봐도 E급 각성자의 능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매…… 매직 아처다!”
조원들 중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 “뭐?! 매직 아처?! 어디! 어디!”
출발을 준비하고 있던 10개의 조가 동시에 술렁였다.
- “매직 아처가 진짜 있다고?!”
- “역시 한국대 클래스 어디 안 가네. 난 올해도 글렀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다.
난 대한민국, 아니, 인류 최초의 완성형 매직 아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