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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에필로그(2): 좋은 아빠가 될게 (101/101)


#101. 에필로그(2): 좋은 아빠가 될게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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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도래했어야 할 ‘그날’이 엿새가 지나도록 오지 않고 있다. 달력을 보던 나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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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거 아니에요?”

 
지지난 주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춥다며 이불을 둘러쓰는 나린을 보고 미옥이 의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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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몸살일 거예요. 윤완 오빠한텐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확실하지도 않은데 그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아서 나린은 재빨리 부인하며 입단속부터 시켰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나린의 가슴에 그 말이 콕 걸렸다. 단단히 인이 박여서 도무지 빠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커피를 끊었다. 아무리 졸리고 머리가 아파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테라 호텔로 옮겨온 이래 오늘 해도 그만, 내일 해도 그만인 일들까지 모조리 오늘 처리해왔던 나린은 처음으로 일을 미루고 일찍 퇴근했다.

미옥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하고, 퇴근길에 산 임신테스트기를 꺼내든 채 욕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설명서가 시키는 대로 테스트를 해보았다.

결과 칸에 핑크색 두 줄이 짙게 그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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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화들짝 놀란 나린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 테스트를 해보았으나 결과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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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얼떨떨한 상태로 욕실을 나온 나린은 그길로 미옥이 있는 키친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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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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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무래도 임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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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역시 그렇죠? 거봐요. 내가 딱 보니까 그런 거 같더라고요.”

미옥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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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들어가 누우세요. 초기에 조심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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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병원부터 가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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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그렇지. 최 기사한테 얼른 차 대기시키라고 할게요.”

수선을 떠는 미옥을 보니 반대로 나린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기분이 이상해서 가만가만 배를 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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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안에 아기가 생겼다고?’

테스트기가 잘못된 건 아닐까. 두 번이나 눈으로 확인해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근처 산부인과로 진료를 받으러 가는 길에 미옥이 나린을 부축하며 뒤따랐다. 아무리 괜찮다고 일러도, 미옥은 절대 나린이 혼자 걷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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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집, 여기 잘 보이네요.”

초음파 화면을 보던 의사가 까만 바탕에 콩알만 하게 보이는 작은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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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주 차 접어들었고, 예정일은 2월이에요.”

2월. 아기를 만나기로 예정된 달.

이번 겨울은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의사로부터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나린은 그제야 커피 한두 잔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쪽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다. 앞으로 공부할 게 많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산모 수첩을 받고 다음 진료 예약까지 잡은 뒤 집에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웠다. 초저녁부터 누울 생각은 없었는데 미옥이 부득부득 우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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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일 있어도 다 잊고 푹 쉬세요. 큰 사모님껜 언제 말씀드릴 생각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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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윤완 오빠한테 먼저 알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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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애기 아빠가 먼저 알아야죠.”

암막 커튼을 치고 불을 끈 미옥이 침실을 떠나고, 나린은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윤완은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나서 퇴근을 했다. 아직 자고 있는 나린을 대신해서 미옥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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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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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나린이 벌써 퇴근했어요?”

거실 소파에 놓인 나린의 가방이 눈에 띈다. 피렌체에서 마음에 들어하길래 선물해준 걸, 나린은 분신인 양 매일매일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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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 방에서 자요. 들어가 보세요.”

웬일로 일찍 왔지. 계속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더니 심해졌나.

걱정을 앞세운 그는 미옥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포착하지 못한 채 조심스레 문고리를 비틀었다.

침대 위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잠들어 있는 나린을 보니 마음이 한없이 아늑해졌다.

이 그림 하나에 전부를 걸었었다.

전부를 걸고서 지켜낸 작품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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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요?”

잠깐 지켜보다 조용히 나갈 생각이었는데, 나린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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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

침대에 걸터앉은 윤완은 애틋한 손길로 나린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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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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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몸 안 좋은 거야?”

도리도리, 나린이 고개를 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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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이렇게 일찍 퇴근했는데?”

뜻밖에 안겨드는 아내를 윤완이 두 팔 벌려 따스히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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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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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는 알까. 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 온 신경이 반응한단 걸.

네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꺼내면 아직도 두근거리고 긴장이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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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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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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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대요.”

그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고백에 윤완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잠시 넋을 놓은 윤완은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다시 맞부딪힌 시선이 서로에게로 마구 얽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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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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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호기롭게 알리긴 알렸는데 그의 표정이 오묘했다. 윤완의 기분을 가늠할 수 없어서 나린은 불현듯 초조해졌다.

그러고 보면 그는 아이를 원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상의 끝에 피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얼른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한다면 아이를 좀 늦춰도 상관없단 말을 했었다.

몸이 예민해지니 마음도 예민해졌는지 당시엔 여상하게 넘겼던 말과 행동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아프고 신경 쓰였다.

혹시 다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닐까.

지레 겁을 먹고 말았는지 눈이 따끔해졌다. 고작 이런 일로 눈물이 나다니 당황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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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기뻐요?”

눈을 깜빡여 물기를 증발시킨 나린이 그의 반응을 살피며 묻는다. 윤완은 설레설레, 빠르게 도리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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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감격에 겨운 그가 조심조심 나린을 끌어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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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기쁘지. 그걸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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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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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를 만큼 기뻐. 머리가 텅 빈 것 같아.”

불쑥 찾아온 안도감에 나린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어렸다.

뱃속의 아기를 생각해서 함부로 울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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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말만 하면 다 대령할 기세로 윤완이 묻는데 드르르르, 나린의 폰이 세게 진동한다.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던 감동의 분위기가 조금 흐트러졌다.

협탁 위로 손을 뻗은 윤완이 나린의 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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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이.”

발신자 정보를 공유하는 걸로 허락받은 셈 친 그는 나린을 대신해서 전화를 받았다.

단순히 사촌오빠가 건 전화가 아니다. 내 아이를 가진 아내의 직장 상사가 퇴근 후에 건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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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아. 오늘 보고하려고 했던 예산안 말이야.]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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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윤완의 목소리가 착 내리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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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린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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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했는데 일로 전화하는 건 무슨 경우야?”

윤완은 세훈의 질문을 묵살한 채 차갑게 내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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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린이가 급한 거라고 했는데 CEO 회의가 길어져서 결재를 못 해줬거든. 같이 있으면 좀 바꿔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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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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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곤란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나린이 손을 내밀었지만 윤완은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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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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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전화 너머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세훈이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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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나린이야? 근데 왜 네가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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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이 쉬어야 돼. 연락하지 마. 야근도 시키지 마. 휴일 근로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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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그래? 뭐 잘못 먹었냐?]

윤완은 대답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일에 치여 살고 있는 나린은 보호가 절실히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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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회사에 알려. 큰어머님께도 말씀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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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걱정하고 아끼는 지극한 마음을, 나린은 외면할 수 없었다.

***

나린은 윤완의 성화대로 셀장과 팀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서 단축 근무에 돌입했다. 안정기에 접어든 다음 말하고 싶었지만 제도를 이용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채 여사는 아예 휴직을 권했다. 임신은 휴직 사유가 아니었으나 다른 사유를 찾아서 제시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특혜로 비춰질 걸 염려한 나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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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면 안 돼.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받을 거 같으면 꼭 휴직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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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안심이 안 됐는지 채 여사는 입주 도우미를 추가로 파견했다.

특명을 받고 온 새 도우미는 나린을 주방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이따금 미옥을 도와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던 나린은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승태와 지숙도 소식을 듣자마자 나린을 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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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숙모가 다른 건 못 해줘도 먹는 건 챙겨줄 수 있으니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지숙이 당부했다. 제 눈엔 아직 아이 같은데, 아이가 아이를 가졌다니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부부는 닮는다고 승태 또한 지숙의 등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요새 들어 부쩍 눈물이 늘었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 며느리 사랑을 키워가던 일현의 오버는 절정에 달했다. 차를 사주겠다, 별장을 선물해주겠다, 사랑을 물질로 환산하려 드는 그를 말리느라 나린은 애깨나 먹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엔 금 여사가 무려 세 명의 비서를 거느리고 들이닥쳤다.

비서실장이 지근에서 금 여사를 지키는 사이, 다른 두 비서는 바리바리 싸 들고 온 CD와 DVD와 책들을 남김없이 서재에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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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스케줄 짜서 전달할 거야. 참고해서 그대로만 따라 해.”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베푸는 호의임을 모르지 않기에 나린은 미소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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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어머님.”

딱 봐도 방대한 양에 눈앞이 조금 캄캄해지는 것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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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간다.”

속전속결로 용건을 끝낸 금 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린이 황급히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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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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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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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도 들고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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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현관 앞에서 멈칫한 금 여사는 힐긋, 나린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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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게 태교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거 아니니?”

그러고는 뭐라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미련 없이 떠나가 버렸다.

나린은 이 모두가 아기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축복이라 여겼다.

스트레스를 받을까 걱정한 윤완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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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얘기해. 내가 어른들 찾아뵙고 당분간 오시지 말라고 부탁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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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괜찮아요.”

나린이 길게 하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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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자도, 자도 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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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또 자.”

윤완은 베개를 반듯하게 놓고서 나린을 눕힌 뒤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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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 꼬물이 덕분에 호강하네요.”

극진한 대접이 황송해서 그를 보며 말갛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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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도 호강할 기회가 있었는데 네가 발로 걷어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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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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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씻겨주려고 했을 때.”

나린의 두 뺨이 단풍 색으로 물들었다.

가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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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 태교에 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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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안 그래도 당해낼 수 없는 상대인데 무기가 하나 더 생겼으니 윤완은 바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 오면 뱃속의 아기는 좀 더 자라 있겠지.

그때는 셋이서 단풍잎이 흐드러진 길을 걸어도 좋겠다.

눈을 감은 채 꿈속으로 멀어져가는 나린을 보며 그가 미소를 띠었다.

***

잠에서 깬 나린이 커튼을 걷자 한여름 땡볕이 벅차도록 쏟아져 들어왔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줄 알았는데 어느새 아침이었다.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 채 여사가 병원을 새로 지정해주었다. 새 병원 예약 시간까지는 아직 세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간만에 휴가를 낸 나린은 여유를 만끽하며 느릿느릿 거실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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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

기지개를 켜려다가 윤완의 목소리를 듣고서 흠칫, 팔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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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출근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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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냈어. 병원 같이 가려고.”

휴가를 쓰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걸 알기에 일부러 검진 날짜를 언급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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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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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관심만 있으면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그가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으니까.

그러니 병원 정도는 혼자서 다녀볼 참이었는데.

사소한 배려에도 마음 안에서 감동의 물결이 찰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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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기다려.”

나린을 조심조심 소파에 앉힌 윤완은 바쁜 걸음으로 키친으로 향했다.

나린이 그의 자취를 좇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데 윤완이 케이크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축제를 상징하는 삼각 가랜드 장식과 기다란 초 하나가 꽂혀 있고.

하얀 생크림 바탕 위에 새긴,

‘Hello, Baby.’

초보 아빠가 아기에게 건네는 소박하고도 서툰 첫인사.

테이블에 케이크를 내려놓은 윤완이 불을 당겼다.

이런 거 할 줄 모른다더니.

나린은 금세 눈물로 반짝반짝한 눈이 되어 초를 불어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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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아.”

고개를 드니 흐릿해진 시야를 뚫고 그가 선연히 담긴다.

언제나처럼 서로를 보는 눈길이 신뢰로 단단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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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좋은 남편이 될게.”

이보다 어떻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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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가 될게.”

좋을 수 있을까.

다정함을 속삭이던 입술이 한순간에 분위기를 바꿔 다가오고.

입술이 맞닿는 순간, 나린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익숙한 듯 새롭고 아찔한 감각은 결코 순간에 산화하지 않았다.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여 튼튼한 울타리를 두른다.

다가올 미래가 기대되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려운 건 없었다. 아무것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대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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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세상으로> 전편 완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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