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 자신 있어? (96/101)


#96. 자신 있어?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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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나갈 무렵, 나린이 윤완의 손에 룸 키를 쥐여 주고 떠났다.

윤완은 어서 손님들이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파티의 주인이기에 연회장이 빌 때까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배웅을 마친 뒤 서둘러 2703호로 향한다.

키를 태그해 룸 안으로 들어가니 2501호보다 널찍한 공간이 그를 맞이했다.

‘HAPPY BIRTHDAY’가 무지개 모양으로 레터링 된 창 너머, 어둠이 화려하게 빛났다. 천장에는 하트 모양 풍선이 너울너울 떠다닌다.

창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엔 와인이 세팅되어 있고, 발치엔 큼지막한 상자가 리본을 매단 채 놓여 있었다.

- ‘열어보세요.’

네모반듯한 메모가 리본 밑에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시키는 대로, 몸을 낮춰 리본을 풀고 커버를 열었다.

입고 있는 턱시도보다 편해 보이는 셔츠와 슬랙스가 눈길을 사로잡는 것도 잠시.

지난 봄, 나린의 생일이 눈에 박힐 듯 선해졌다.

회식에 참석했다가 고기냄새와 기름기로 범벅이 된 채 호텔에 갔었고.

샤워를 마친 나린이 갈아입을 옷이 없어 곤란할까봐 이렇게 옷 선물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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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대로 똑같이 해주겠다는 건가.’

귀여운 발상에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를 찾아 두리번대던 눈길이 침실로 이어지는 문에 닿았다.

- ‘여긴 아직 안 돼요.’

널따란 문에 아기자기하게 붙은 경고문이 시선을 붙든다.

저 안에 숨어 있을 게 뻔한데. 기대에 부푼 얼굴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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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열어버릴까.’

잠깐 그런 짓궂은 마음을 품었다가 관두었다.

이 방을 장식하고 있는 모든 게, 오로지 그를 위해 쏟아 부은 그녀의 시간이다.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니 정성껏 받아줘야지.

- ‘갈아입는 건 여기에서.’

주인을 연상시키는 단정한 손 글씨의 인도를 받아 오른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게스트 룸 욕실에서 씻고 새 옷을 착용한 뒤 밖으로 나오니, 와인 테이블에 앉은 나린이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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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잘 어울릴 줄 알았어요.”

단아했던 파티 드레스는 온데간데없고, 어깨와 쇄골을 그대로 드러낸 슬리브리스 드레스가 얇디얇게 몸을 감싼 채.

눈처럼 흰 피부와 아찔한 굴곡을 그리는 몸 선에 윤완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디캔더에서 퍼져 나오는 와인 향에 벌써부터 취할 것만 같았다.

향에 취하는 건지.

그림 같은 너에게 취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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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라고 이벤트 해 주는 거야?”

당장이라도 덮치고픈 마음을 꾹 누르고서 얌전히, 그녀의 앞에 착석한다.

괜찮아. 밤은 기니까.

해가 뜰 때까지, 놓아주지 않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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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이 정도는 해 줄 능력이 되거든요.”

과감한 의상과는 정반대로 애교스러운 눈웃음이 심장을 강타했다. 그를 묶어두고 있던 인내심이 맥없이 풀리고 말았다.

본능이 조종하는 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는 뒤에서 나린을 꼭 끌어안았다.

일자로 패인 쇄골 위에서 그의 양 팔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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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아야죠.”

나린이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 바동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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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선물이야.”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어.

말을 마친 그의 입술이 목선에 닿고.

목을 물었던 입술이 볼을 머금고, 다시 눈가에 내려앉기까지.

덥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나린의 호흡을 흩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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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줄 거 있단 말이에요.”

말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가 입술을 댄 곳마다 깨어난 신경들이 소란을 피워대 집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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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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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꼭 오늘 줘야 해요.”

방금 전에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정성껏 받아주겠노라 다짐한 걸 기억한 그는 아쉬움을 감추고 자리로 돌아왔다.

나린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곤두선 감각을 잠재우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몸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나린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뭘 준비했길래 저렇게 비장할까.

그 모습마저 윤완의 눈엔 깨물어주고 싶게 귀엽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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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맹자 구절 얘기했을 때 말이에요.”

비장하게도 맹자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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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꺼냈던 말이기에 윤완에게는 되짚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조금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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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할지도 모른다고 했죠?”

그때 나린이 구절의 뜻을 오인한 걸 정정해주려 뱉은 말을 여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핵심은 그가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는데.

……네가 변할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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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 변해요.”

비장함이 절정에 달했다.

그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웠을 때, 나린은 이상하게도 그 말을 떠올렸다.

어쩐지 가슴이 시렸다.

잠시라도 나의 연인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까 꼭,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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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면서 자연히 변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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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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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일 뿐, 내 마음은 그대로일 거예요.”

등 뒤로 옮겨간 나린의 손이 자그마한 상자를 쥐고 돌아왔다.

윤완이 멍하니 바라보는데 나린이 상자를 연다.

두 사람의 키 차이만큼이나 지름 크기가 다른 커플링이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자그만 다이아몬드가 중앙에 콕 박힌 채 더없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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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결혼해줄래요?”

얼굴 위로 사르르 미소를 녹인 나린이 살며시 왼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 위에, 윤완이 홀린 듯 제 손을 올려놓고.

느릿하게 움직인 나린의 오른손이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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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 생일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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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를 향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윤완은 아직 반지 함에 남아 있는 반지를 마저 꺼냈다.

그녀의 생일엔 그의 프러포즈링이 빛났던 자리.

그곳에 또 한 번 반지를 끼운다.

같은 반지를 낀 손가락이 부드럽게 서로에게 감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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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빈틈없이 얽힌 손에 시선을 고정시킨 나린이 불쑥 말머리를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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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빠랑 달라요. 참을성이 없어서 기다릴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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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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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답을 해줬으면 좋…….”

재잘재잘 앙증맞게 움직이던 입술이 온통 열기로 뒤덮였다. 더는 어떤 소리도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게 되었다.

거침없이 엉겨드는 그를 겨우 밀어낸 나린이 눈을 홉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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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부터 해야죠.”

곧바로 억센 힘에 손목을 제압당하고 말았다. 나린의 손이 그의 어깨에서 떨어진다.

그가 기습적으로 휙, 나린을 안아 들고.

나린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목에 찰싹 매달렸다.

아직 아닌데. 아직 건배도 안 했고, 축하주도 안 마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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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 대답이야.”

가벼운 키스가 애태우듯 두어 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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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해줄게, 그 대답.”

나린은 더욱 세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느라 울렁이는 가슴을 채 다독이기도 전에 등이 침대에 닿았다. 적당히 폭신하고, 적당히 단단한 매트리스가 잘록하게 휜 허리를 받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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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침대를 짚고 몸을 평행하게 놓은 그가 두 팔 안에 갇힌 나린을 내려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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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한 눈빛, 작심한 표정.

조금은 겁을 주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싫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

싫다고 하지 않을 거란 걸 다 알면서.

나린은 말없이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자연스럽게 몸이 밀착되었다.

상대의 대담한 손길에, 작심했다던 눈빛이 한층 더 음험해졌다.

내려 닫힌 나린의 눈꺼풀 위로 뜨겁게 달궈진 입술이 닿았다.

머리 위에 놓인 나린의 손을, 윤완이 깍지를 낀 채 지그시 내리눌렀다. 약속의 징표를 두른 두 손가락이 다시 맞물렸다.

열기를 실은 그의 입술이 더욱 과감해지자 버거운지, 나린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가 그녀의 쇄골께를 물었다 놓았다.

자극을 견디지 못한 나린은 머금었던 숨결을 토해냈다. 가벼운 접촉에도 자꾸 반응하게 되었다.

주위를 맴돌던 그의 입술이 마침내 그녀의 입술 위로 포개어지고.

더운 숨이 그녀의 목 안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공중으로 흩어지는 숨결이 아깝다는 듯. 그러니 전부 그의 몸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듯.

애태우듯 보듬던 손길도, 부서질까 조심스럽던 몸짓도 점점 거세어졌다.

당신의 눈빛에 몸의 감각이 변한다.

당신의 몸짓에 시간이 달리 흐른다.

흐트러지는 호흡 너머 빠르고 또 느리게, 우리의 밤이 저문다.

마침내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아뜩해지는 감각 끝에 연인은 서로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

더 자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번쩍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킨 나린이 주위를 둘레거린다.

암막 커튼이 꼼꼼히 드리워져 있어 바깥세상의 시각은 가늠할 수 없었다.

폰을 켜서 아직 오전임을 확인하고, 소파에 걸쳐둔 슬립을 챙겨 입은 뒤 조심조심 밖으로 나왔다.

윤완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나린은 침실에서 먼 게스트 룸 욕실을 택해 샤워를 마쳤다.

침대로 되돌아오자, 밤새 그녀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던 여파인지 그는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아닌 타인을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

이젠 곁에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의 연인.

애틋한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부스스 눈을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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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잤어요?”

나린이 싱그러운 미소로 그의 아침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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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일어났어?”

그가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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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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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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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길래요. 오늘 다른 일정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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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짤막하게 대답한 윤완이 휙, 나린의 허리를 잡아채 쓰러뜨린다.

두 사람의 위치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분명 방금 전까진 나린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가 나린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그 길었던 밤의 시작처럼 나린은 또다시 그의 두 팔 안에 놓이고 말았다.

이불이 스르르 떨어지고, 우람한 상체가 위용을 드러내며 나린의 시야를 차단했다.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난밤의 감각이 고스란히 깨어났다.

그래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윽한 눈으로 나린을 훑던 그는 홀연 몸을 일으켰다. 은은히 풍겨오는 샴푸 향에 이성을 되찾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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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올게.”

윤완이 침실에 딸린 욕실로 들어간 뒤, 나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불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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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했다.’

그러나 욕실에서 나온 윤완은 여전히 위험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촉촉하게 물기마저 더해졌다.

허리 위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가 욕실 문을 밀어 닫고.

또 저 품 안에 갇히기 전에, 그래서 하루가 순간 삭제되어 버리기 전에, 냉큼 몸을 일으키기로 한다.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린 나린이 총총 다가가 그의 허리를 조심스레 감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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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선물 어땠어요? 기대한 만큼이었어요?”

그가 어깃장을 놓았던 걸 되새기며 물었다.

맨몸에 손이 닿자 윤완의 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샤워한 보람도 없게 다시 땀이 날 것 같았다.

윤완은 애써 본능을 내리눌렀다.

본능에 충실하느라 대화마저 불가능한 남자친구는 되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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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어? 내가 후회하고 있다는 거.”

나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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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에 프러포즈했을 때 천천히 대답하라고 한 것도 진심이고, 지금 빨리 결혼하고 싶어진 것도 진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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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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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시피일시라. 그때랑 지금이랑 사정이 달라졌을 뿐인 거죠.”

기분 좋은 배신감이 윤완의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다.

역시 여우야. 다 알고도 모른 척했던 거였어.

윤완의 엄지와 검지가 살짝 나린의 코끝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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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당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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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평생 못 당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자신 있어요?”

반 발짝 멀어진 나린이 그와 눈을 맞췄다. 손은 여전히 그의 허리춤에 척 얹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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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할 소릴.”

나린의 몸이 순식간에 붕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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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외마디 비명이 윤완의 목덜미에 닿았다.

미소를 띤 그가 나린의 눈동자를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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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야말로 자신 있어? 매일 이럴 텐데.”

한 손으로 윤완의 목을 꽉 붙든 나린은 또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어 그의 심장 위를 콩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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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좀 해주면 안 돼요? 번쩍번쩍 안아 들 때마다 얼마나 놀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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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는 안 하네? 예고만 해주면 마음껏 안아 들어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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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게 아니라…….”

뒷말은 이을 수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 않으니까.

뭐든 좋아.

그게 뭐든, 내게 해주는 애정표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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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해. 적어도 집 안에선 걸어 다닐 일 없게 받들어 모셔줄 수도 있어.”

윤완의 눈빛이 낯선 색으로 물들었다. 그가 짓궂은 표정도 지을 수 있는 남자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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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못 가 후회하려고.”

나린이 소심하게 저항해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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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면 얼른 결혼해서 한집에 살아보든지.”

그는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뭐든 빨리 배우는 사람이라서 이런 능글맞음도 금방 익혔나 보다.

침대에 걸터앉은 윤완이 허벅지 위에 나린을 앉혔다. 기우뚱하는 느낌에 나린은 계속 그의 목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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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선물.”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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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고의 생일이었어.”

곧바로 입술을 틀어막는 온기에 나린은 아무 답도 해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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