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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생일 파티의 주인공 (13/101)

#13. 생일 파티의 주인공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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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에 접어들어 속도가 느려진 차 안. 태준은 이따금, 옆자리에 앉은 나린을 힐끔거렸다. 나린은 출발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창밖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태준이 말을 걸어볼까 망설이는 사이 두 사람을 실은 차가 연 회장의 저택 앞에 당도했다. 나린이 차에서 내리자 태준도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16558026990374.jpg“애들 좀 보고 가려고요. 여기 모여 있다고 해서…….”

태준은 짤막한 설명으로 나린을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뜰이 나오고, 뜰 위의 편편한 돌길을 걸어 저택 입구에 다다랐다.

1655802699038.jpg“어서 오세요.”

현관에서 미옥이 흐뭇한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하였다. 미옥 또한 이 연극을 진짜로 알고 있는 관객 중 하나였다. 세훈의 방으로 가려는 태준이 능숙하게 2층 계단으로 향하는데, 응접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세 남자가 툭, 튀어나왔다. 순서대로 연세훈, 명준우. 마지막은 도윤완.

16558026990391.jpg“어?! 왔어? 우리 막 파하려던 참인데.”

세훈이 아쉬운 표정을 섞어 태준을 반기고, 나린은 쭈뼛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16558026990374.jpg“벌써?”

16558026990391.jpg“응. 너 올 줄 알았음 미리 말해줄 걸 그랬나?”

16558026990374.jpg“아냐. 어차피 나린 씨 데려다주러 온 거야.”

16558026990391.jpg“좀만 일찍 오지. 저번에 준우가 프랑스에서 가져온 와인 땄는데.”

16558026990374.jpg“뭐야. 나도 없이.”

16558026990391.jpg“지난번 밴드 연습 때부터 약속 깨고 튕긴 건 너다.”

나린은 세훈과 태준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윤완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이유를 알 수 없게 눈길이 갔다. 어쩌면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로 친밀감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사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윤완은 나린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특유의 냉기로 가득했다. 새벽에 봤을 때랑은 완전 딴 사람이네.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이야. 나린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16558027011292.jpg“간다.”

윤완이 터벅터벅 나린의 곁을 스쳐 지나고, 나린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윤완의 동선을 따라 옮겨졌다. 그러다가 왠지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오늘, 모처럼의 쉼표와 같았던 하루를 선물해 준 사람이 그였으니까.

16558027011297.jpg“저기…….”

나린의 목소리에 거실 안의 남자들이 일제히 나린을 주목했다. 윤완 또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뜻밖의 시선 집중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나린은 용기를 내어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16558027011297.jpg“오늘, 고마웠어요.”

세훈이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다.

16558026990391.jpg“뭐야? 저녁은 태준이랑 먹었는데 왜 윤완이한테 고마워?”

윤완은 지그시 나린을 쳐다봤다. 고마워? 고마운 줄 아는 사람이 사고로 받은 충격을 추스르라고 준 휴가에 태준이를 불러내? 괜한 걱정을 한 거지, 내가. 잔뜩 뒤틀린 마음.

16558027011292.jpg“내일은 늦지 않게 출근해.”

싸늘한 대답을 남긴 윤완은 주저없이 자리를 떴다. 원래대로 돌아왔네, 도윤완 부사장님. 익숙한 반응을 마주하고 나자 나린은 도리어 후련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 어쩌면 저 모습이 더 편할지도.

16558026990391.jpg“뭐야, 뭐야. 둘이 뭐 있었어?”

세훈이 흥분해선 나린을 추궁했지만 나린은 그저 빙긋 웃어줄 뿐이었다.

16558027011297.jpg“아니에요. 그냥 회사에서 일이 좀 있었어요.”

16558026990391.jpg“뭐야, 무슨 일인데?”

16558027011297.jpg“저 이만 올라가 볼게요. 태준 씨, 오늘 저녁도 맛있었고 태워다준 거 고맙습니다.”

태준을 향해 인사를 건넨 나린은 가벼운 걸음으로 총총,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그녀와 닮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준우의 눈빛. 듣지 못한 회사에서의 일이 궁금하다는 세훈의 눈빛. 언제 만나도 밝고 따뜻한 여자라며 흐뭇해하는 태준의 눈빛. 각기 다른 세 개의 눈빛이 나린의 발걸음을 뒤쫓는다. *** 생일 파티를 하루 앞둔 저녁. 세훈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갑자기 잡힌 모임 때문에 막 테라 호텔로 향하던 그는 계단 옆 방문 앞에서 딱 방의 주인과 마주쳤다.

16558027011297.jpg“아,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만나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나린은 집에서도 꼬박꼬박 인사말을 붙인다. 역시 재미있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세훈이 물었다.

16558026990391.jpg“나를? 왜?”

16558027011297.jpg“이거…….”

나린은 수줍은 손동작으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예쁘게 리본이 매어져 있는 자그만 선물 상자였다.

16558026990391.jpg“뭐야?”

건네어지니 받긴 받았는데, 세훈은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수 전달되는 선물을 받아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그가 성인이 되던 해, 생일 선물이 주식 계좌로 입고되었던 그날 이후, 어느 누구도 이런 식의 선물 전달을 해준 적 없었으니까.

16558027011297.jpg“좀 이르지만, 생일 선물이에요. 별건 아니고 직접 만든 쿠키거든요. 뭐가 필요하실지 몰라서…….”

선물에 자신이 없는지 나린이 말끝을 흐린다. 생일 파티 통보를 받고 선물을 고민하던 나린은 지난 주말, 급히 베이킹 수업을 예약해 쿠키를 만들었다. 물건은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고 나린의 상식선에서 가장 좋은 걸 고른다손 쳐도 그의 눈엔 마냥 우스워 보일 것 같았다. 이럴 땐 정성이 최고지. 정성이 듬뿍 담겼다는 미사여구로 세훈의 눈과 귀를 가릴 심산이었는데, 막상 만들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초라했다. 몇 마디 말로는 포장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남들 눈을 피해 파티 전에 미리 건네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나린의 예상 범주를 크게 벗어났다.

16558026990391.jpg“직접 만들었다고?”

삽시간에 감동으로 물든 세훈의 얼굴이 나린을 당황시켰다.

16558027011297.jpg“네.”

16558026990391.jpg“진짜?”

16558027011297.jpg“……네.”

16558027011297.jpg‘뭐지……. 혹시 쿠키 만드는 게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노동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부잣집 도련님이니.

16558027011297.jpg“아, 이거 어렵지 않아요. 베이킹 수업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어요.”

과도한 감동을 불식시켜 줄 의도에서 나린은 다급히 덧붙였다.

16558026990391.jpg“직접 만든 거라 이거지? 나를 위해서?”

……하나도 안 듣고 있잖아.

16558027011297.jpg“네…….”

16558026990391.jpg“고마워!”

세훈이 덥석 나린의 손을 부여잡는다. 나린은 선물을 주고도 되레 몸 둘 바를 몰라졌다. 이런 게 취향 저격일 줄은 몰랐는데…….

16558026990391.jpg“잘 먹을게.”

발걸음이 경쾌해진 세훈은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갔다. 나린은 벙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테라 호텔 2501호. 세훈이 나린으로부터 선물 받은 쿠키 상자를 보란 듯이 테이블 정중앙에 올려놓는다. 전리품을 전시하듯 자부심이 철철 흘러넘쳤다.

16558026990374.jpg“뭐냐, 이게?”

태준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또 별거 아닌 걸로 주목을 받고 싶은가 보다 했다.

16558026990391.jpg“쿠키.”

16558026990374.jpg“쿠키? 어디 건데? 너 단 거 잘 안 먹잖아.”

준우 또한 상자는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미니바로 가서 와인을 골라 왔다.

16558026990391.jpg“연나린표 쿠키.”

16558026990374.jpg“연나린?”

친구들의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세훈은 의기양양해졌다.

16558026990391.jpg“너넨 직접 만든 쿠키, 선물 받아본 적 없지?”

1655802705627.jpg“왜 없어. 우리 어머니랑 친한 파티셰 분이 주기적으로 만들어서 보내주시는데.”

준우의 대꾸에 세훈은 말이 안 통한다는 얼굴로 갑갑해 했다.

16558026990391.jpg“아니, 그런 거 말고.”

16558026990374.jpg“그러니까 이게 나린 씨가 직접 만든 거라고?”

태준이 상자를 집어 든다. 세훈은 냉큼 태준의 손에서 상자를 되찾아왔다.

16558026990391.jpg“만지지 마. 내 거야.”

1655802705627.jpg“유치하다. 나이가 몇이냐?”

제가 고른 레드 와인을 시음하며 준우가 타박했다. 그때 윤완이 룸 안으로 들어섰다.

16558026990391.jpg“도윤완, 배고프지? 쿠키 먹을래? 네가 원한다면 하나 정도는 줄 수 있어. 준우랑 태준이는 안 줄 거지만.”

윤완은 피로한 얼굴로 소파에 몸을 묻었다.

16558027011292.jpg“됐어. 입맛 없어.”

1655802705627.jpg“왜? 또 무슨 일인데?”

준우는 삼분의 일쯤 채운 와인잔을 윤완의 앞에 놓아주었다. 시음 결과 묵직한 바디감이 윤완의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았다.

16558027011292.jpg“뉴델리 라인 신규 투자 건.”

1655802705627.jpg“아. 뭐가 잘 안 돼?”

16558027011292.jpg“검토 보고서가 엉망이야. 워스트 케이스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고, 손익 시뮬레이션도 엉성하고.”

16558026990374.jpg“네 기준이 너무 높은 거겠지. 웬만하면 좀 융통성도 발휘하고 그래라.”

16558027011292.jpg“그게 몇 백억짜리 투자인데 융통성을 발휘해?”

준우와 태준은 눈을 맞추며 빙그레 웃었다.

16558026990374.jpg“어차피 CFO는 경험 삼아 1년만 하고 말 거 아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텐데, 가서 너 같은 CFO 만난다고 생각해 봐.”

16558027011292.jpg“나 같지 않은 CFO면 다 잘라야지. 현장이 하려는 걸 견제하고 리스크를 짚어주는 게 경영지원실 역할인데.”

AI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딱 저런 모습이겠지. 태준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훈은 도윤완의 등장으로 제 쿠키가 관심을 잃은 게 못마땅했다. 낭만이라고는 없는 것들. 그래, 안 먹으려면 말아라. 내가 다 먹는다. 그는 보란 듯이 쿠키 하나를 꺼내 포장을 뜯고 입안에 넣어 와그작와그작 씹어댔다. 그러나 윤완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타인의 일에는 웬만해선 관심을 두지 않는 그였다. 무감한 표정이 된 윤완이 앞에 놓인 와인잔을 집어 드는 찰나.

1655802705627.jpg“나린이가 직접 만든 쿠키래.”

준우가 잔을 부딪혀주며 굳이 묻지도 않은 정보를 전달해 준다. 이게 그의 관심을 끌어갈 것이라고, 이 방 안의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나린이가. 이 한마디에 그가 눈을 빛냈다.

16558027011292.jpg“걔가 왜?”

윤완의 질문에 세훈은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신이 났다.

16558026990391.jpg‘역시. 도윤완 너도 부러운 거지? 천하의 너라도 이런 수제 쿠키는 못 받아봤을 테니까.’

16558026990391.jpg“생일 선물이래. 이런 정성이 들어간 선물 처음 받아 봐. 맛은 별론데 그래도 먹을 만하네.”

세훈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느닷없이 윤완의 손바닥이 세훈 앞에 펼쳐지고,

16558027011292.jpg“나도 줘.”

16558026990391.jpg“……어?”

막 새 쿠키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려던 세훈의 손이 멈칫하였다.

16558027011292.jpg“나도 달라고.”

윤완의 독촉에 태준과 준우, 준우와 세훈은 차례로 시선을 부딪혔다. 도윤완이 저런 걸 먹는다고?

16558026990391.jpg“입맛 없다며?”

16558027011292.jpg“배고파졌어.”

얼얼한 표정이 된 세훈은 쿠키 하나를 집어 윤완의 손 위에 올려놔 주었다. 비닐 포장을 벗겨낸 윤완은 쿠키를 입에 물었다. 잘게 부순 쿠키 조각을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하는 입 모양이 무척이나 신중해 보였다. *** 마침내 토요일. 채 여사가 여러모로 공을 들인 세훈의 생일 파티 날. 오늘은 세훈의 생일 말고도 나린이 이 세계에 정식으로 데뷔하는 의미가 있었다. 덕분에 나린도 일찍부터 바빴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올라오자 채 여사의 비서가 찾아왔다. 무뚝뚝한 얼굴의 여비서는 이런저런 주의사항들을 일러주고 떠났다. 점심을 먹고는 출장 스타일리스트가 방문해서 드레스 착용을 거들고 헤어 메이크업을 해주었다. 홀터넥 스타일의 하얀 드레스를 갖춰 입은 나린이 1층 거실로 내려온다. 넥 부분에는 진주 장식이 촘촘히 둘러져 있고, 무릎까지 오는 치맛자락은 걸을 때마다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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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8026990391.jpg“이게 누구야?”

먼저 거실에 내려와 있던, 턱시도 차림의 세훈은 과장된 손짓으로 눈이 부시다는 시늉을 했다.

16558027011297.jpg“놀리지 마세요.”

16558026990391.jpg“놀리는 거 아냐. 진짜 딴 사람 같아.”

세훈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른 시간부터 부산을 떠느라 피곤했는지 나린이 소파에 탈싹 주저앉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미옥이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하이힐을 발밑에 놓아주었다.

16558027011297.jpg“……이걸 신고 걸으라고요?”

어마어마한 굽 높이에 입이 떡 벌어졌다. 나린의 반응을 재밌게 지켜보던 세훈의 눈에 테이블 위 가지런히 놓인 서류철이 포착되었다.

16558026990391.jpg“어? 혹시 이게 참석자 명단이에요?”

1655802699038.jpg“아까 보니까 그런 것 같던데요.”

미옥은 주방으로 돌아가며 무심히 답했다. 세훈은 흥미로운 눈으로 명단을 훑었다. 막힘없이 종이를 넘기던 그가 홀연 손을 멈추어서 나린의 고개가 기우듬해졌다.

16558027011297.jpg“왜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세훈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16558026990374.jpg[여보세요.]

거실은 고요했다. 나린은 폰에서 새어 나오는 태준의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식별해낼 수 있었다.

16558026990391.jpg“나.”

16558026990374.jpg[알아. 왜?]

16558026990391.jpg“한지아…… 윤재오네 회사 다니냐?”

세훈은 무턱대고 맥락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한지아’라면 태준이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는 중이라던 그 ‘지아’인 것 같고……. 윤재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들어본 듯한 이름이 나린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아, 맞다. 그 사람! 큰엄마가 태준 씨 다음으로 선볼 상대로 지정했던……. 며칠 전의 기억에 닿은 나린은 어렵지 않게 이름의 주인을 끄집어냈다.

16558026990374.jpg[어. 거기 PK 백화점으로 이직했는데. 왜?]

세훈의 표정이 한층 심각해졌다.

16558026990391.jpg“오늘 파티 참석자 명단을 보고 있는데…….”

16558026990374.jpg[…….]

16558026990391.jpg“아무래도 주인공이 나랑 나린이만은 아닌 것 같다.”

세훈이 나린을 슬쩍 쳐다보고, 나린은 공연히 긴장을 했다. 막연하게나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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