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24장 서전(緖戰)-2(1)
[11901] [연재] 궁귀검신(弓鬼劍神)제24장 서전(緖戰)-2 첨부파일 :
등록자 : 한옥영(chohan1) 조회수 : 0
등록일 : 2001-11-22 01:41:56 관련자료 : 없음 본문크기 : 28475 bytes
"쳐라!"
남궁세가의 서쪽 문을 부수고 난입하는 흑도의 무인들을
맞이한 것은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천악의 싸늘한 음성이었
다.
"와아!"
"죽어라....!"
황보천악의 명령이 떨어지자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적들을
향하여 일제히 달려나갔다.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대체로 권
장법이 능해서 대부분이 맨손으로 뛰어 나갔으나 개중에는
검을 들고 나서는 자들도 있었다. 이와는 다르게 팽가의 무
인들은 그들의 독문 도법인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를 주로
사용하기에 한결같이 거대한 도를 들고 싸움에 임했다. 먼저
기선을 잡은 쪽은 이대세가였다. 이대세가의 무인들은 벌떼
처럼 달려드는 흑도의 무인들을 마구잡이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명이 교묘하게 짝을 이루어 적을 베어나갔다.
비록 급조해서 만든 연합공격술(聯合攻擊術)이었지만 이렇게
다수를 상대하는 데에는 톡톡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
들 중에 특히 뛰어난 실력을 보인 것은 팽도정, 팽조윤 남매
였다. 이들은 마치 오랜 동안 합격술(合格述)을 연마한 것처
럼 서로가 상대의 위기를 보호해 가며 흑도의 무인들을 무자
비하게 쓸어갔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제법 상황이 좋소이다."
전황을 주시하던 제갈공이 약간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말
을 했다.
"하하, 저 따위 오합지졸이야 그 수가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하겠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짝을 지어 공수에 대비한 연습
을 한 것이 주효했소이다."
황보천악과 팽언문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공격을 하는 흑도의 무인들은 계속 쓰러
지고 있었지만 이대세가의 무인들은 어쩌다 한두 명이 쓰러
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초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대세가가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밀릴 줄은 몰
랐소...허...."
"그것보다는 저들이 일대일이 아닌 무리를 지어 우리의 공
격을 막아내는 데 그게 우리의 수하들을 당황하게 하는 이유
가 되는 것 같소이다. 우리의 공격에 대비해 급히 연습한 것
같은데...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야 겠소이다."
궁사흔으로부터 남궁세가의 서쪽을 공격하라는 명을 받은
파력궁(波力宮)의 궁주 마검풍 유경(劉璟)과 잔결방(殘缺幇)의
방주인 독패검 좌광두(左狂頭)는 공격해 들어간 흑도의 무인
들이 형편없이 몰리자 내심 당황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이름도 없는 소문파의 무인들로 오대세가의 정예를 상대하기
란 역시 역부족임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자신들의 직계 수
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라. 우리의 미래가 이곳에 달려 있다. 가서 공을 세우
라!!"
유경의 말에 지금껏 뒤에서 관망만 하고 있던 파력궁의 문
도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이들은 앞서 공격했
던 자들이 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을 기해서
접근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가 적에 비해 월등한 것을
이용해 연합공격을 펴는 이들을 아예 둘러싸고 공격을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도륙을 당했던 흑도의 무사들
도 제법 대등하게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세가의 무인들
에게 특히 위협이 되는 것은 잔결방의 방도들이었다. 잔결방
은 말 그대로 몸 어느 한 부분이 정상인과는 다른 자들로 이
루어져 있었다. 남들과 다르다보니 성장과정에서 많은 서러
움을 겪었고 그 서러움이 쌓이고 쌓여 이들에게 남은 것은
깡과 독기뿐이었다. 이대세가의 무인들에게 상처를 당하면
그 빛을 갚고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공격이 무인들이 가장 금기시 하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
법이었다. 게다가 이런 기도가 실패하면 아예 몸을 던져 자
신을 희생하곤 동료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극단적인 수를 쓰
기도 했다. 잔결방의 방도가 하나둘씩 쓰러져 갔지만 그에
따라 이대세가의 무인들도 상당히 많은 수가 땅에 쓰러지고
있었다. 전세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저....저!"
여지껏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삼대세가의 수뇌들은 경
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의 수하들이 무공이 월둥 함에도
잔결방의 악독한 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또한 잔
결방과 함께 뒤늦게 공격을 시작한 파력궁의 무인들도 만만
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라 어찌어찌 방어는 하고 있었
지만 이대세가의 무인들은 급격히 밀리고 있었다.
"이놈들!"
결국 팽언문이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들고 있던 도를 앞
세우고 싸움에 뛰어들었다. 삼국시대의 맹장(猛將) 여포(呂布)
의 용맹이 이러했을까?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는 그의 도를
그 누구도 받아내지 못하였다. 그렇게 지독하게 무인들을 물
고 늘어졌던 잔결방의 방도들 또한 팽언문에게는 감히 덤비
지 못하고 피해 다녔다.
"허, 대단하구만. 내 일전에 그의 형의 무위를 본 적은 있
지만 이 친구는 더 대단한 것 같구만... 그러나 나도 구경만
할 수는 없지!"
팽언문의 활약을 잠시 지켜보던 황보천악도 싸움에 끼어
들었다. 황보천악과 팽언문의 등장에 잠시 기가 꺾여 있던
세가의 무인들은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였다. 반대로 잔결방
의 희생(?)으로 기선을 잡아가던 흑도의 무인들은 그 기세가
주춤했다. 더구나 맨 마지막에 싸움에 뛰어든 황보천악에게
그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였던 잔결방주 좌광두가 미처 삼초
를 버티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그들의 사기는 급격
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서쪽의 싸움이 점차 백도
쪽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반면에 당가와 함께 싸우고
있는 동쪽의 백도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동쪽의 흑도세를 이끌고 있는 자들은 패천궁의 호법인 귀
면쌍살이었다. 그 무공이나 흑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마검풍이나 독패존에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귀면쌍살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형인 대살(大煞)은
쌍륜(雙輪)을 무기로 사용하며 닥치는 데로 살상을 하고 있
었고 동생인 소살(小煞)은 자신만큼이나 무식하게 생긴 부
(斧)를 휘두르며 백도진영을 휘젓고 있었다. 그러나 강남 백
도의 우두머리라는 자들은 이들을 슬슬 피하며 겨우 조무래
기 몇몇을 상대하기 급급했다. 결국 싸움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백도의 무인들이 쓰러졌다. 백도인들이 그
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당가의 무인들의 암기가 적절한 시기
에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풍처럼 백도의 무인들을 쓸어가던 대살을 막아선 것은
당문성과 말리는 아버지를 끝까지 졸라 남궁세가에 온 당소
미(唐素美)였다. 당문성은 대살과 직접 손을 섞고 있었고 당
소미는 대살의 틈을 파고들며 비침을 날리곤 했다. 당가의
부녀가 대살을 막는 동안에도 소살은 백도의 진영을 마음껏
휘젓고 있었는데 그를 막고자 청룡문의 문주인 상방충과 그
의 수하들이 막아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당문은 도나 검보다는 독(毒)과 암기에서 중원의 그 어떤
무가보다 최고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암기나 독이라
는 것은 근거리보다는 원거리에서 적을 상대하기에 더 편리
했다. 전체적으로 보아 같은 실력을 지녔다면 아무래도 근거
리에선 검이나 도를 익힌 무인보다는 다소 손색이 있었다.
그런데 대살과 당문성의 무공은 애초에 큰 차이가 나는데다
가 대살이 당문성에세 좀처럼 거리를 주지 않고 집요하게 쫓
아다니며 공격을 하자 당문성은 겨우 몸만 빠져나가는 상황
에 처해 있었다. 때때로 도움을 주는 당소미의 암기가 없었
다면 이미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대살은 또 한번 자신이 쌍륜을 피하며 달아나
던 당문성에게 오른쪽 손에 들고 있던 륜을 집어던졌고, 그
륜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당문성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호연십팔보(湖燕十八步)를 이용해 간
신히 륜을 피하던 당문성에게 허벅지의 상처는 곧 죽음을 의
미했다.
"흐흐, 어디 더 도망가 보거라..."
대살은 이를 악물고 멈춰서 있는 당문성을 보며 입가에 조
소를 지었다.
"멈춰라. 악적!"
당소미는 대살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자 급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모든 암기를 던wu보았다.
"따다당!"
대살이 가볍게 륜을 들어올리자 날아오던 암기는 벽에 가
로막힌 듯 모조리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당소미가 던진 최
후의 암기를 막은 대살은 당문성에게 한걸음씩 다가갔다. 처
음에는 몰랐지만 대살이 사용하는 륜에는 독이 발라져 있는
듯 싶었다. 치명적으로 목숨을 뺏는 독은 아닐지라도 온몸에
힘이 빠지고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보면 상
당히 위력적인 독인 모양이었다.
'제길 독에 당하다니...'
중원에서 독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하던 당가의 후손이었기
에 밀려오는 수치감은 그 누구보다 더 했다.
"흐흐, 이제 보니 당가의 암기도 별것이 아니로군. 그래...
그 많은 비침을 날리고도 나에게 상처 하나를 입히지 못하
니...하하핫!"
굳은 듯이 땅에 앉아 있는 당문성에게 다가간 대살은 살짝
고개를 돌려 어쩔 줄을 몰라하는 당소미를 쳐다보며 앙천광
소(仰天廣笑)를 터뜨렸다. 그때였다.
"너 따위가 비웃을 당가가 아니다."
한줄기 음성과 함께 대살을 향해 무엇인가가 엄청난 속도
로 날아오고 있었다. 대살은 황급히 들고 있던 륜을 들어 날
아오는 무엇인가를 막았지만 엄청난 힘의 여파에 의해 몇 발
자국 뒤로 물러서고서야 신형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헛, 아무리 내가 급하게 막느라고 내공을 제대로 싣지 못
했지만 이런 위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살은 황급히 자신을 물러나게 한 힘의 주인을 찾아 고개
를 돌렸다. 그러자 깔끔한 당의를 입은 오척 단구의 노인이
조약돌 몇 개를 들고 서 있었다.
"아...아버님!"
"할아버지!!"
당문성과 당소미는 그 노인을 보고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의미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당문성은 이런
꼴을 보인 것을 죄송스러워 했고, 당소미는 겁에 질려 있다
가 구원자를 만났으니 환호성을 지른 것이었다. 당천호는 그
런 자신의 손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더니 여전히 앉아
있는 당문성에게 시선을 주었다. 당천호의 시선을 받은 당문
성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당천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긴장을 하며 서 있는 대살에게 조용히 말을 했다.
"우리 당가는 너희 형제 따위에게 조롱을 당할 정도로 약
하지 않다. 왜 그런지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당천호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있는 대살은 온몸에서 소름
이 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암왕이라니...빌어먹을.... 남궁세가에 이 인간이 와 있단 소
식은 듣지 못했는데.... 오늘은 득 보단 실이 많겠구나...'
대살은 형세의 불리함을 깨닫고 잽싸게 자신의 동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우야. 빨리 이곳으로 와라. 급하다.]
사실 귀면쌍살이 패천궁의 호법이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
이었다. 이들은 오랜동안 패천궁의 소궁주였던 관패의 호위
를 맡다가 이번에 관패가 궁주가 되면서 그 공을 인정받아
호법이 된 자들이었다. 실력 면에서 헌원강이나 목사혁에 비
해 한참 모자람이 있었다. 자신을 막던 상방춘을 거의 빈사
상태까지 몰고 갔던 소살은 대살의 전음을 받고 쏜살같이 다
가왔다.
"두 놈이면 상황이 다를 줄 아느냐?"
그 모양을 지켜보던 당천호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쥐방울만한 영감탱이가...감히..."
소살은 당천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기 딴에는 위협
을 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고 말았다. 소살은 자신의 앞에 있는 노인이 누구인
지 몰랐다. 오랫동안 관패의 옆을 지키느라 패천궁을 잠시도
떠나보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대살도 마찬가지였다. 다
만 대살은 당문성이 아버지라 부르고 당소미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 당천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급하게 온 소살은 그 노인이 누구인지 알 리가 없었다. 다만
건방진 꼴이 우스워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인데....
"쥐방울이라...."
소살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던 노인의 자그마한 몸
에서 갑자기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왜소한 몸이 언제나 마음에 걸린 그였다. 그래서 인지
자신의 몸에 대한 말이 나오면 언제나 예민해 하던 당천호였
다. 달라지 당천호의 기도에 흠칫한 소살은 슬쩍 대살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의 의미를 알고 있는 대살은 소살에
게 전음성을 보냈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저 늙은이가 암왕이라 불리는 늙은
이다. 너와 내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당하기 힘든 상대
다. 저 늙은이가 손을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해야
한다. 그럼 준비해라...]
대살은 계속해서 당천호를 노려보며 소살에게 은밀히 기습
을 제의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들이 당천호를 상대로
이기는 방법은 당천호가 암기를 발출하기 전에 손을 써서 그
기회를 주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가 손을 쓴다는 것은 그땐
이미 그들이 죽음을 선고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대살은 당천호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용서하시지오. 제 동생이 어르신을 잘 몰라서....하앗!"
인사를 하던 대살은 온 힘을 모아 쌍륜을 던졌다. 그것을
신호로 소살도 자신의 부를 휘두르며 당천호에게 달려들었
다. 대살이 던지 쌍륜을 두 갈래로 갈라져 당천호를 노렸는
데 그 빠르기나 기묘한 변화가 몹시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그 뒤에서는 소살이 덤벼들고 있으니 함부로 몸을 움직이기
도 뭐했다. 하지만 당천호는 여유가 있었다.
"흥!"
가만히 서 있던 당천호는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왼쪽으로
파고드는 륜으로 오히려 달려가더니 재빨리 몸을 돌려 륜을
낚아 챈 다음 돌아가는 몸의 탄력에 힘을 실어 그 륜을 자신
에게 달려오는 소살에게 던지고 자신의 오른쪽을 파고드는
륜은 미처 잡지 못하고 가볍게 흘려버렸다. 대살이 던진 륜
을 피해 어떻게든지 행동을 보일 당천호의 약점을 파고 들려
했던 소살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앞에 형이 던진 륜이 나타
나자 허겁지겁 몸을 돌려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당천호가 던
지 륜은 소살의 간발의 차이로 머리카락만을 자르고 멀리 날
아가 버렸다. 되돌아오는 하나의 륜을 잡은 대살은 그저 어
안이 벙벙했다. 세상에 자신의 륜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걸 무기 삼아서 자신의 동생을 공격하다니... 하지만 감탄을
하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공격을 당했던 당천호의 손이 서
서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해라!"
대살은 재빨리 경고를 했다. 하지만 소살도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탈영비접(奪影飛蝶)!"
느릿하게 움직이던 당천호의 손이 순간 사라졌다. 그리곤
세 개의 자그마한 물체가 소살에게 날아갔다. 조그마한 노리
개의 크기를 지닌 나비모양의 암기(鐵蝶)였는데 손의 빠름에
비교해서는 너무도 느리게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소살은
나비처럼 너울거리며 날아오는 그 암기의 움직임을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저리 느리게 날아오는 암기를
피해 뒤로 도망을 가자니 체면이 서질 않았다.
"어디 이따위 것으로..."
"꺼져라! 부풍파암(斧風破巖)!!! "
"안돼!!"
소살은 대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날아오는 암기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렇게 느리게 날아오던 철
접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이 소살의 부를 피해 그의 정수
리와 목, 그리고 가슴에 깊이 박혀버리고 말았다.
"이...이..."
소살은 대살을 보며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평생을 자신과 같이 보
낸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소살의 죽음을 본 대살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죽어라!"
하나뿐인 륜을 들고 마구잡이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미
흥분을 한 대살의 공격은 더 이상 위력적이지 않았다. 당천
호는 그저 몇 개의 우모침(羽毛針)을 선사했을 뿐이었다. 그
것으로 끝이었다. 패천궁에서 새롭게 호법으로 발탁된 귀면
쌍살 형제는 그렇게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당천호는 나란히
쓰러져 있는 그들을 보며 조그맣게 읇조렸다.
"그 누구도 당가를 모욕할 수는 없다.... 설령 그가 신이라
할 지라도..."
싸움은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천호의 등장
은 단지 귀면쌍살의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절대고수의 등장!
백 마리의 이리가 편을 나누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홀
연히 나타난 호랑이 한 마리가 어느 한편을 든 다고 생각해
보라. 이미 그 싸움은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호랑이가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단번에 물어 죽인다고 하
면...
결국 사기가 오른 백도의 일방적인 도살만이 있을 뿐이었
다.
이렇게 남궁세가의 동쪽과 서쪽에서 치열한 교전이 있었지
만 사실상의 주력인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궁사흔이 이끄는
흑도의 무인들이 맞붙은 정문의 싸움보다는 다소 모자람이
있었다. 어느새 서로의 사상자가 반수를 넘고 온몸에 피를
뿌리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이들 또한 흑도의 이름 없는 문
파의 무인들을 앞세우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의 힘을 뺀 다음
그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자 이번 전투에서 처음으로 패
천궁의 정예인 흑기당이 나섰다. 흑기당은 앞선 흑도의 무인
들과는 애초에 수준이 달랐다. 물론 패천궁을 제외하고 흑도
에서도 큰 문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패천
궁주의 명령에 의해 이번 싸움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 그들
도 훗날을 대비한 중요한 전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처음으로 싸움에 나선 흑기당은 당주인 은세충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오늘날에 대비해 가주인 남궁검이 심혈을 기울여 연습시킨
오행검진(五行劍陣)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만드는 오행검진은 무당의 칠성검
진(七星劍陣)이나 소림의 나한진(羅漢陣)에 비할 바는 아니지
만 나름대로 공수의 짜임이 탄탄한 검진이었다. 하지만 그들
을 상대하는 흑기당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을 만들어 공
격을 하였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방법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
이 아니라 오랜 싸움의 경험을 통해 저절로 터득하게 된 실
용적인 연수공격 방법이었다. 지금껏 뒤에서 전투를 지휘하
던 남궁검도 지금은 흑기당의 당주인 은세충과 부당주인 추
혼마도 (追魂魔刀) 요양(堯洋)을 맞이하여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대 일의 싸움임에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남궁검의
모습은 세가의 무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허허, 오행검진인가 봅니다. 대단하외다"
"글쎄요, 그것에 맞서 싸우는 저들 또한 상당한 실력을 지
닌 자들 같소이다."
중앙의 치열한 싸움과는 다르게 한가로이 노니는 두 명의
노인이 있었다. 백의를 입은 노인은 백도에서 검성이라 칭송
받는 남궁상인 이었고, 맞은편의 갈의를 입은 노인은 남궁세
가를 치기 위해 패천궁을 이끌고 온 천살검존 궁사흔이었다.
궁사흔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펼치는 오행검진을 칭찬하
자 남궁상인도 흑기당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들의 내심을
살펴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헐, 예상은 했지만 역시 대단하군...많이 지쳐있을 터인데...
흑기당을 상대로 저리 버티다니! 역시 흑기당을 뒤로 돌리기
를 잘했구나....처음부터 나섰다면 상당한 피해를 보았을 터!'
'흑기당이 저 정도면 아직 나서지 않은 패천혈마대의 무위
는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정녕 하늘은 우리 남궁가를 버리시
려는 것인가?'
두 절대자가 서로의 마음을 감춘 채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
되고 있는 장내의 싸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남궁세
가의 동쪽에서 일단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갑자기 등장한 그
들을 보며 장내의 사람들은 잠시 싸움을 멈추고 나타나는 이
들을 주시했다. 과연 어느 쪽의 사람들인가? 남궁세가를 지
원하는 무인들인가? 아님 그들을 전멸시킨 흑도의 무인들인
가?
"와아!!!"
"이겼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칼을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새벽의 미명(微明)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사람들은
당가와 백도의 무인들이었다. 동쪽으로 침입했던 흑도의 무
인들은 모조리 전멸시킨 이들은 암왕 당천호를 필두로 하여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는 궁사흔의 모습
은 담담했지만 내심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아뿔싸! 당천호가 이곳에 있을 줄이야.... 멍청한 놈들! 당
가의 인물이 왔다고만 했지. 왜 그 속에 당천호가 있음을 몰
랐단 말인가? 오늘은 힘들 것 같군....빌어먹을!'
"오늘은 이쯤 합시다. 암왕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구려...
허허허, 당형! 오랜만이외다."
궁사흔은 남궁상인에게 조용히 말을 한 후 고개를 돌려 자
신에게 다가오는 당천호에게 인사를 했다.
"오! 이게 누구신가? 천살검존 아니시오? 참으로 오랜만이
외다."
당천호 또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하들은 죽을 둥 살둥 싸우고 있는데 그 우두
머리 되는 자들은 서로 반갑게 한담이나 나두고 있다니...
남궁검을 비롯하여 백도를 이끈다는 사람들이 이러니 그
밑의 수하들의 혼란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백도
의 무인뿐만 아니라 궁사흔을 따라온 흑도의 무인들 또한 마
찬가지였다. 하지만 세 명의 절대자들은 이들이 어찌 생각을
하건 자기들끼리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이러니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그 치열했던
싸움은 순식간에 멈추어 버렸다. 도대체 자신들이 싸우기는
한 것인가? 하고 의심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리다. 조만간 다시 인사를 하러 오겠
소이다. 그때는 각오를 좀더 단단하게 하셔야 할 것이외다."
"하하하! 좋소. 인사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것이니 염렬랑은
붙들어 매시구랴"
당천호가 남궁상인을 대신하여 호탕하게 외쳤다.
"돌아간다!"
궁사흔은 남궁상인과 당천호에게 가볍게 포권을 하고 뒤돌
아 멍청히 서있는 은세충에게 명령했다. 그리곤 뒤도 안 돌
아보고 남궁세가를 빠져나갔다. 은세충은 뭐라 말을 하고 싶
었지만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궁사흔의 얼굴에 깔린 살
기를 보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믿기진 않지만 이번 싸움에선 자신들이 패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당천호가 나타났다는 것은 내포하는 그 의
미가 달랐다. 결국 자신들을 이끌고 온 궁사흔은 치욕스럽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옛 강호 동도를 오
랜만에 만나 웃음으로 헤어진다는 미명하에....
흑도의 무인들은 올 때도 그랬지만 사라질 때도 매우 신속
하게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비로소 싸움이 끝났음을 실
감할 수 있었다. 싸움은 끝났지만 단 한번의 싸움으로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삼백을 헤아리던 남궁가의 무인들이 무려 백 여명이 목숨
을 잃고 또 그 정도의 수가 부상을 입었다. 서쪽을 맡았던
황보세가에서 삼십 명, 팽가에서도 삼십 여명이 죽었고 특히
동쪽을 맡았던 백도의 무인들이 피해가 막심했는데 삼백의
인원 중 살아남은 자가 고작 칠십 명에 불과했다. 가장 피해
가 적었던 곳은 싸움엔 직접 참여를 하지 않았던 제갈세가와
단 두 명만을 잃은 당가였다.
흑도의 피해는 이보다 훨씬 컸다. 호법인 귀면쌍살을 비롯
하여 동쪽으로 쳐들어왔던 인원 사백이 모조리 전멸했고 서
쪽으로 쳐들어왔던 적들 또한 이백에 가까운 시체를 남기고
물러갔다. 정문의 인원까지 합하면 최소 구백에 이르는 흑도
의 무인들이 쓰러졌다.
단 한번의 싸움으로 무려 천 삼백에 달하는 무인들이 죽어
버렸다. 지금까지 이처럼 많은 사망자를 낸 싸움이 없을 정
도였으니 오늘밤의 치열함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궁
세가가 무너지거나 그들이 아예 포기하거나 결말이 날 때까
지 이 싸움은 계속 될 것이었다. 이것이 대승을 거두고도 백
도인들이 근심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싸움이 일어날 조짐
이 보이고 있었다. 그 시작은 패천궁의 또 다른 호법 목사혁
이 혈궁단 이십 명과 이백 여명의 수하를 이끌고 남궁가에서
정확하게 오 십리 북쪽에 있는 야산에 매복을 하면서 부터였
다.
---------
아! 싸움은 힘들어....ㅡ.ㅡ